저항지대를 넘어 축복으로
왕하5:1-14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아멘
약 주전 2,800년전 쯤, 이스라엘 주변나라인 아람에 나아만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막강한 권력과 부귀를 누리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인생이었지만, 단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한가지 문제는 그가 가진 어떤 것으로도 해결 할 수 없는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몸이 썩어들어가는 문둥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살이 썩어들어가는 고통 속에 살고 있던 그에게 어느날 희망의 news가 들려왔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사는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면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지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장 엘리사를 만나러 떠납니다. 끔찍한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떠나는 그의 마음은 이미 문둥병이 고침을 받은 것 같았을 것입니다. 대단한 권력자인 그가 나타나면 엘리사가 맨발로 뛰어나와 자신을 영접할 것이며 정성스럽게 치료해줄 것이라는 상상을 했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모든 것이 해결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사업을 시작하면 이미 성공한 것 같고, 시작이 반이라는데, 시작했으니 마음으로는 이미 다 얻은 것 같고 이룬 것 같은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에게 도착했을 때에 기대와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당연히 나와 자신을 영접해야 할 엘리사는 나오지도 않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확 상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극진한 치료를 기대했던 나아만의 생각과는 다르게 엘리사의 종이 나와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면 깨끗해 질 것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기대와 생각과 너무나도 다른 상황에 자존심이 상한 나아만 장군이 폭발했습니다. 자기 나라에 강이 없어서, 고작 그 이야기 들으려고 여기까지 왔느냐고 화를 내면서 당장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본문을 읽으며 이 상황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경험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생각이나 마음으로는 다 이룬 것 같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나타나, 지연되기도하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시골의사 박경철씨가 쓴 자기 혁명이라는 책에 보면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저항의 중간지대”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운전을 배우려고 합니다. 운전을 하면 직장까지 출퇴근도 편할 것이고, 그밖의 여러 가지가 편할 것이기에 결단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운전을 배우기 시작하면 핸들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주변의 차들은 갑자기 공포의 대상이 되고, 다른 사람이 운전할 때는 그렇게 느려보이던 차가 직접 운전해보니 왜 이리 빠른지, 운전연습 한 시간 만에 머리는 지끈거리고, 뒷목은 뻐근하고, 몸살이 날 것 같습니다. 저항의 중간지대를 만난 것입니다. 이 순간 운전을 잘해 편안하게 다니겠다는 결심은 수시로 공격을 받습니다. 차라리 버스를 타자, 걸어다니자.....
이같은 저항의 중간지대는 우리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납니다.
저도 최근 벤츄라에 와서 시리어스한 저항지대를 만났습니다. 제가 지난 캐나다 운전 면허증이 renew해야할 날짜가 4월에 지난 것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라이센스 연장을 위하여 캐나다에 다녀와야 하나, 아니면 종교비자를 받을 때까지 견디다가 이곳에서 운전면허 시험을 다시 쳐야하나... 그러면 그동안 교회 사역을 비롯한 많은 일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어렵게 벤츄라에 와서, 빠른 시간 안에 아파트 렌트도하고, 모든 것이 좋았는데, 운전면허 하나가 막히니 정말 기막힌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도 힘들고, 막막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저항의 중간지대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지난해 운전면허에 대한 법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DMV가 문 여는 시간부터 달려가 신청을 시도했습니다. 날짜가 지난 캐나다 운전 면허증을 확인할 때는 정말 속으로 주여, 살려주세요 그랬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리튼 시험만 보고 템포러리 면허증을 발급받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 받을 때마다 기도해야지, 말씀 읽어야지, 순종해야지 하지만, 곧 저항의 중간지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항지대에 막혀 중도포기자가 될 것입니까 아니면 저항지대를 넘어 축복의 지경에 이를 것입니까?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이같은 저항지대를 넘어 그를 괴롭히던 문둥병이 고침을 받아 축복의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방식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저항의 중간지대에 막혀 분노하고 돌아가려고 했던 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의 머릿 속에는 이미 정해진 답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도착했을 때에, 엘리사가 나아와, 자신을 영접하고 정성껏 치료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엘리사가 택한 하나님의 방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와 충돌한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방법과 충돌한 것입니다. 이 충돌이 일어난 순간 나아만 장군은 분노했고, 이것이 축복을 막는 저항의 중간지대가 되었습니다. 나아만 장군만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이런 일에 대한 경고가 많습니다. 사울 왕도 그랬고, 돌맞아 죽은 아간이 그랬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13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종들의 전하는 말은 이러했습니다. 큰일을 행하던, 아니면 요단강에서 몸을 씻는 것같은 작은 일이든 하나님의 방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뭐가 문제가 되냐는 것입니다.
결국 축복은 하나님의 방식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달린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너희보다 높다고 하였습니다(사 55:8-9).
하나님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저항의 중간지대를 극복하고 축복에 이르는 길은 이것을 인정하고 믿는 것뿐입니다.
모세가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성장하면서 당시 세계 최고의 학문을 배우고 실력을 쌓았습니다. 그는 그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해방을 꿈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무너지고 쓰러진 그를 일으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때로 지치고 힘들게 하실 때, 오히려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 늦어지고, 돌아가는 것 같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마음에 평화를 이룰 것이고, 기도하며 인내하면 축복의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둘째, 목적을 분명히 하십시오.
나아만 장군이 자존심과 교만으로 인해 그는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화를 내며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때 그의 종들은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만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이 말은 당신이 여기까지 온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자존심 세우려고 온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군이자 권력자로 대접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온 이유는 분명합니다. 어떤 것으로도 고칠 수 없는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온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목적 회복의 순간, 그는 순종하며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고 깨끗해졌습니다. 아멘
믿는 자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믿는 자의 목적은 예수 안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아 구원받고 천국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육신의 문제, 물질의 문제, 인간관계라는 저항적 중간지대 때문에 목적을 상실한다면 어찌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코뿔소 이야기가 있습니다.
코뿔소는 몸무게가 2,000kg이상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달리기 시작하면 50km이상을 달린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형 자동차가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코뿔소는 눈이 나빠, 달리면서 앞에 있는 다른 동물이나, 방해물을 잘 보지도 못하고 피하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뿔소가 달리면 코뿔소가 피하지 않고 다른 동물들이 피한다고 합니다. 목적을 분명히 하여 달리면, 우리를 방해하는 것들이 물러날 것입니다.
제가 정말 어렵게 벤츄라 교회에 왔습니다. 여러분도 정말 어려운 시간을 인내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저를 받아주셨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인도하신 이유와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 하나님의 뜻이 대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가르치며,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을 섬기셨듯이 여러분을 섬기고 돌보라고 보내셨다고 믿습니다. 여러분께 기도를 요청합니다. 제가 이 목적을 잊지 않도록 기도해주세요. 늘 기억하고 지키고, 실행하도록 기도해주세요. 여러분도 유재익 목사와 더불어 벤츄라교회가 마지막 때에 영적으로 건강하고, 천국같은 교회가 되고자 하는 목적으로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때로는 여러분께 실망을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로가 기대에 못미칠 때도 있습니다. 저항의 중간지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목적을 기억하고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목적이 분명하면, 저항지대를 극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셋째, 영적인 이웃이 여러분을 복되게 할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종들의 권면으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함으로 문둥병을 고쳤습니다. 만약에 그의 곁에 종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평생 문둥병으로 고통 받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저항지대를 넘어 축복의 지경으로 가기 원하신다면 나아만 장군의 종들같은 지혜롭고 신앙적 이웃으로 가득한 인생 되시기를 소원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나홀로 구원받고 천국가기에는 너무 약한 존재를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우리가 혼자 있다면 얼마나 악하겠습니까? 또한 얼마나 약하겠습니까? 그래서 부부가 있고, 자녀가 있고, 교회와 성도가 있어서 함께 구원의 길, 축복의 길을 갑니다. 벤츄라교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초대 교회의 바울과 실라가 복음 전하다 잡혀 감옥에 들어가 있었지만, 그들은 한밤중에 옥문이 열리는 기적으로 감옥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감옥에 갇힌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중요 하고 함께 하는 성도는 더욱 중요합니다.
대화 속에 위로가 있고, 사랑이 있기를 원합니다. 중보기도의 능력이 충만한 교회인줄 믿습니다. 이렇게 내적 부흥이 일어나면, 외형적 부흥도 저절로 오게 될 줄 믿습니다.
저항지대에 잡혀 축복을 포기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제 닥칠 저항지대가 여러분을 힘들게 할 때마다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기억하셔서, 반드시 축복의 지경에 이르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