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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 길이 있다.
고난이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지 못한다.
고난이 우리의 길을 끊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고난도 우리의 삶을 압도하지 못한다.
고난은 우리에게 수학을 요구하는 과제다.
거기서 나의 생각과 생활의 헛점을 알게 하고
반성과 인내와 힘과 지혜를 배운다.
그리고 고난은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에 이르게 하고
스스로는 마침내 사라진다.
고난 앞에 실의와 원망과 공포심을 버리고
자신과 희망을 안고 늠름히 대하자.
그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전주인 것이다.
고난을 주선한 분에게 진정 감사하고 용기를 내자.
우리는 성장하고 향상하고 새로운 운명의 문이 막 열리고 있는 것이다......광덕스님의 명상언어집에서
오늘의 일요정기법회를 위해서 이른아침 회장단에서는 법회 전반을 꼼꼼히 체크하시고, 사무국봉사 보살님들께서는 정월합동차례, 정초기도,정월 조상천도기도 등 각종 기도접수 업무로 아주 바쁜 요즈음입니다.
토요일에는 법회보를 접고, 입춘 때 드릴 마하반야바라밀 다라니를 봉투에 넣고 있습니다.
현관에서,엘리베이터에서 마하반야바라밀!!! 송파 17구, 송파27구 보현보살님들께서 마하반야바라밀 불광의 밝은 광명으로 서로서로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이번주 찰밥,생수 보시는 강동6구, 강서구,관악구,분당구에서 준비하시고 직접 나누어 드리고 계십니다.
지난해 창립법회 선물로 드린 보온병에 각자 물을 담아 오셔서 생수값이 월 일백만원 이상 절약된다고 합니다. 일회용 종이컵 사용도 많이 줄이고 있으며 환경보호 실천도량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입니다.
법당안내팀과 새법우교육팀 보현보살님들 상이 없는 보현행을 실천하십니다.
인례 자성거사님을 따라 도량을 맑히는 천수경 봉독과 타종, 사회 추담거사님께서는 법회 시작을 알리고, 보살님들께서 지극한 정성으로 헌향과 헌다를 합니다.
보현행자의 서원 중 회향분
지은 바 모든 공덕을 널리 중생에게 회향하겠습니다.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며, 모든 부처님을 찬양하며, 내지 모든 중생을 수순한 것까지의 모든 공덕을 진법계 허공계 일체 중생에게 남김없이 회향하겠습니다. 바라옵건데 모든 중생이 안락하여지이다. 일체 병고는 영영 소멸하여지이다. 악한 일을 하고자 하면 하나도 됨이 없고, 착한 일을 하고자 하면 다 성취하여지이다........
금주의 법어 : '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定觀冥想)'이란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금주의 법사 : 경원사 주지 효림스님
지난12월 금강경 법문이 마무리되었고, 다음달에는 불광법회 형제들께 무슨경전으로 법문해주실지 기대됩니다. 효림스님께 감사드립니다 😊
매주 일요법회에는 500명~700명 정도의 많은 불광형제님들께서 함께 모여 법문을 듣고 법회를 스스로 꾸려나가는 보현행원 실천도량입니다. 부처님 정법을 영원히 지켜나가는 자부심과 긍지로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올라와서 이 자리에 서는 거지만 항상 설 때마다 조심스럽고 긴장이 됩니다. 오늘은 특별히 지난번에 예고했던 대로 이런 책, ‘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 다 한 권 갖고 계시죠. 소설을 읽듯이 급하게 읽는 책이라 하기 보다 이 책은 아직 가지지 못하신 분들은 하나 반드시 가져다 놓고 수행할 때마다 좀 의문스럽거나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이 책에서는 어떻게 설명했나 찾아보고 하는 지침서로 사용하기에 아주 적절한 책입니다. 불교 수행은 어쨌든 명상을 하는 겁니다. 불교 전문 용어로는 선정을 익히는 종교죠. 거기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한 책입니다. 본격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서 제가 또 시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제목은 지향처,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이란 뜻입니다. 손가락 지(指), 향할 향(向), 살 처(處)입니다.
지두향처 유명월, 指頭向處 有明月 손가락이 향하는 곳에 밝은 달이 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 거기에 달을 가리키는 겁니다. 불견우인 오견지, 不見愚人 誤見指 어리석은 사람은 그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을 보는 겁니다. 손가락을 보라고 한 게 아닌데 손가락을 자꾸 흔드니까 손가락을 왜 흔들지 하면서 쳐다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르칠 오(誤)견지라 잘못 손가락만 본다. 연무지두 하견월. 然無指頭 何見月 그렇다고 손가락을 치워 버리면, 손가락이 없으면 어떻게 달을 볼 것이냐? 참 난감한 문제잖아요.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자꾸 보니 손가락을 없애버리면 그나마 달을 쳐다보기가 더 난감해집니다. 부요지두 막힐란. 復搖指頭 莫詰難 다시 손가락을 흔드는데 그걸 꾸짖거나 비난하지 마라. 오늘 이 책으로 혜담 큰스님께서 손가락을 한 번 흔드셨는데 거기에 대해서 허물할 것이 있느냐, 찬양한다는 뜻으로 시를 하나 지었습니다.
일찍이 옛날 선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부처님을 위시해서 부처님이 수많은 법문을 하셔서 그 법문을 모아놓은 것이 팔만대장경이잖아요. 또 역대 수많은 스님들이 수많은 저술과 어록을 남겼는데 그것이 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더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달을 쳐다보라는 설법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달은 쳐다보지 않고 자꾸 손가락만 쳐다봐서 더욱 시비 분별심만 크게 일으키더라. 그러나 손가락이 없으면 그나마 달을 쳐다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무 외람된 건지는 모르지만 불광법회에 나오는 불자 여러분은 말할 것도 없고 광덕 큰스님의 문도들, 혜담스님에게는 사제되는 스님들도 반드시 이 책은 한 번 읽어야 되겠다, 읽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학문을 연구하는 스님이 아니고 참선하는 스님인데 혜담스님은 그 동안에 여러 가지 많은 책을 쓰셨어요. 여기 앞에 앉아 계시는데 얘기하기는 좀 뭣해서 조심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합니다만. 그 중에 지금 나이가 들어서 70이 넘어서 이런 책을 썼다고 하는 것은 이 책이 아주 결정판이라고 느껴져요.
이 책을 소개하는 서두로 제목이 ’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입니다. 고따마는 고타마라 하기도 하는데 부처님의 이름입니다. 고따마 싯다르타죠. 붓다는 이름이라 하기 보다 부처님을 지칭하는 명사로 사용하지만 깨달으신 분이란 뜻입니다. 고따마가 깨달은 정관명상,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 제목에서 ’정관‘이란 말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정관이 핵심이에요. 구체적인 설명을 하기 전에 책에 나오는 대목을 하나 읽어드릴게요. (책 46쪽 아래부터~~)
첫째는 사마타를 남악 회양선사나 천태 지의대사, 남악 회양선사는 불교 선종에서 6조 혜능의 제자로서 우리가 남악 회양의 자손입니다. 천태 지의는 법화경을 중심으로 해서 종파를 설립했고 조계종은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지만 천태종이라고 우리나라에도 구인사에 가면 있어요. 처음에 60년대 70년대까지는 구인사가 천태학에 대하여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었어요. 지금은 천태종이 상당히 발전해서 신도도 많아졌거니와 학교도 세우고 천태에 대한 사상을 연구하는 데에 크게 기여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국 불교에서 천태라는 이 스님은 굉장히 큰 역할을 하신 스님입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천태 지의선사라고 하는 선사가 교상판석을 했는데 그 뒤에 화엄종에서 지엄이나 현수같은 분들이 해놓은 교상판석도 있어요. 여러 스님이 교상판석을 했는데 그 중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볼 때는 천태 지의의 교상판석이 가장 훌륭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렇게 훌륭한 스님이에요.
남악 회양선사나 천태 지의선사처럼 지(그칠 지止)라고 번역했을 때, 우리가 선정이라 하는 것은 이 책의 정관명상에서 정자(정할 정,定)에 해당되는 글자입니다. 무언가를 이것이라고 확정지을 때 쓰는 정자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선정(禪定)이라 하는데 천태 지의선사, 그 분은 지관(止觀)이라고 했어요. 지(止)라고 번역했을 경우에 대부분이 한글세대인 현대인이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정(定)이라고 번역했을 경우는 선정(禪定)이라든가 입정(入定) 등으로 번역했을 때처럼 그 의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여기가 참 중요한데 위빠사나를 보조지눌 국사처럼 혜라고 번역했을 경우에는 초기불교에서 주장하는 위빠사나의 본래 의미인 관찰이나 분석의 뜻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또한 혜가 의미하는 바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태지의 스님처럼 관이라고 번역했을 때는 위빠사나의 본래 의미가 잘 살아날 뿐만 아니라 쉽게 그 의미에 접근할 수가 있어서 수행을 용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것처럼 우리 한국불교, 특히 선종임을 자임하고 있는 조계종까지도 참선이라 하면, 즉 한국불교의 선수행은 지관겸수나 정혜쌍수의 관과 혜를 도외시하고 지, 정을 닦는 수행 일변도로 흐르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시정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문제입니다. (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 책 46~47쪽)
여기에 대해서 무슨 소리인가 하실 분도 계실 거니까 제가 조금 구체적으로 약간의 설명을 하겠습니다. 스님의 생각과 부합하는 설명을 할지 또는 엉뚱한 설명을 할지는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천태지의 선사가 지관이라 했을 때 지(止)라는 것은 좀 어려운 해석이니까 우리 선정할 때의 정(定)자를 사용하고 보조 지눌스님이나 기타 많은 스님이 정혜쌍수라 할 때의 혜(慧)는 위빠사나가 갖는 본래의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하므로 관(觀)으로 해서 선정의 정자와 천태스님의 관을 가져와서 정관으로 하자. 그런데 왜 이렇게 좋은 말이 우리 불교사에서 그동안 사용하지 못해왔던가? 이 말이 너무 선명하고 좋은 겁니다. 여기에 계시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참선 수행을 해온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참 멋지다. 이게 아무 것도 아니게 생각하여 정관이라 하면 어떻고 지관이라 하면 어떻고 정혜라 하면 어떤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에 정은 참선하니까 부처님 당시에 사용했던 산스크리트어로 사마타, 삼마지를 번역해서 삼매라 해서 삼매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지의 선사는 왜 지라 하고 우리 선종에서는 왜 정이라 했을까? 정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져서 무심의 경지에 들어간 상태를 지칭하는 말로 가장 적합한 글자로 선정한 것이 정(定)이란 글자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관이란 말은 보조 지눌이나 그전의 많은 스님들이 그것을 혜로 번역해서 위빠사나. 위빠사나란 말이 요즘 하도 유행해서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를 못한다 할지라도 말은 많이 들어봤지요? 요즘 스님 가운데 위빠사나 수행한다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위빠사나만 수행한다 또는 삼매, 선정만 수행한다는 것보다 두 개를 결합한 수행이 좋으냐? 그건 불교에서 오랜 동안 논쟁이 되어 왔어요. 지금도 적절한 비유인지 몰라서 조심스럽기는 한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고승 가운데 한 분이 성철스님이 계시죠? 이 스님만큼 혜, 위빠사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 스님이 없을 정도로 하셨어요. 그러면서 보조지눌의 정혜쌍수에 대해서는 부정하시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이건 팩트가 있는 말이니까 이의가 없어요.
그래서 선정도 익히고 지혜도 닦으면 되는 건데 이걸 왜 같이 않는지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은 무엇이건대 위빠사나 하는 사람은 위빠사나만 좋다 하고 또 삼매를 수행하는 사람은 삼매만 제일이라 하는가?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는데 며칠 고민하다 적절한 설명이 될 것 같아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이게 뭐냐 하면 우리가 반야심경하고 여러분이 정진할 때 마하반야바라밀을 하는데 마하반야바라밀을 계속 반복해서 수행하면 그래서 삼매를 이루는 겁니다. 그걸 반야심경에서는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로 설명했어요. 그런데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그 뒷구절은 ’오온이 공함을 비춰봐 온갖 고액을 건넌다고 되어 있단 말입니다.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춰보는 그것이 관입니다. 적절하게 이해가 가시는지 잘 모르겠으나 긴장도 풀 겸 박수를 한 번 치세요.
여러분이 늘 정근할 때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는데 그것이 바로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이고 그럴 때 오온이 공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없어요. 금강경에 무아라고 하잖아요. 그 무아를 교리적으로 더 구체화시켜서 설명한 것이 오온이 공하다고 한 겁니다. 색, 수, 상, 행, 식으로 오온에서 온은 쌓을 온(蘊)으로 모였다는 뜻입니다. 색은 형상, 수는 그것을 눈으로 받아들이든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데 뒤에 보면 육근과 육식이 나오죠. 상은 그걸 좋고 나쁘고 시비분별을 일으키고 온갖 생각을 일으키잖아요. 행은 그렇게 해서 구체화된 행위를 하는 겁니다. 식은 그렇게 해서 형성된 것으로 오식이죠. 이것이 오온인데 그것은 다 공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를 나라고 인식하는 것은 무엇으로 나라고 하느냐 하면 오온을 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건 필요없는 거잖아요. 정말 자기가 나를 보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여, 불성을 봐야 되는데 그것만이 진짜 나라는 겁니다. 그것이 진아(眞我)입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하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수습이란 말, 평소에 잘 안 쓰는 말로 여러분은 처음 들어보는 말일 겁니다. 닦을 수(修), 익힐 습(習)으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닦아서 익힌다’는 소리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수행입니다. 우리 혜담 큰스님은 수습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우리가 학습, 배워서 익힌다고 하죠. 모든 것은 우리가 반복하는 데서 배움을 이룹니다. 반복해서 익숙해져야 됩니다. 이런 언어에 익숙해져야 하는 가운데 하나가 처음에 마하반야바라밀 하라고 하는데 잘 안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광덕 큰스님 법문 들어보면 법문의 중심이 마하반야바라밀을 하면 공덕이 있다고 많이 강조하셨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으로 동기부여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대학입시 공부를 하면 절에 와서 갑자기 다급해지는데 한 10년 전부터 기도를 열심히 하면 좋은데 기도를 얼마만큼 미리 해야 하느냐? 아들을 훌륭한 대학에 보내려면 아들을 낳기 전부터 기도를 해야 되는데 그래야 훌륭한 아들을 낳고 동기부여를 하죠. 훌륭한 아들을 낳아놓고 나서 훌륭한 대학도 가고 또 훌륭한 인물이 되도록. 옛날 큰스님 가운데에도 보면 부모가 훌륭한 아들을 낳으면 제가 잘 가르쳐서 출가를 시키고 훌륭한 스님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어머니 아버지가 발원하여 출가시켜서 큰스님이 된 옛날 스님이 많아요. 그런 것처럼 기도의 공덕인데 그것을 통해서 기도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됩니다. 하루 이틀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열심히 하면 꿈에서도 무슨 소리를 중얼거려서 옆에 사람이 들어보니까 마하반야바라밀을 하는 겁니다. 그런 정도까지 가면 심히 많이 익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해본 보살님들은 아실 겁니다. 지난번에 얘기했죠. 어떤 보살님이 금강경을 독송할 때 얼마만큼 소리를 크게 내서 해야 됩니까? 하니 혜담스님이 내 귀에 들릴 만큼만 하면 됩니다고 해서 아주 굉장히 중요한 말이라고 했어요. 좌선하듯이 묵념으로 마하반야바라밀을 하면 내가 지금 마하반야바라밀을 하고 있는가 아닌가? 또 발음이 마하반야바라밀로 안 나오고 머허반야바라밀 이런 식으로 자꾸 나오는데 왜 그런가 하면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래요. 아주 익숙해지면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을 하고 있다는 의식이 없이 해도 발음이 또렷하고 정확하게 나와요. 꿈 중에 잠꼬대를 해도 마하반야바라밀이 딱 되는 겁니다. 그런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건 맞는 말인지 모르지만 또 부연설명을 하자면 우리가 생각한다고 하죠. 명상이라는 말은 딴 것이 없습니다. 명상을 여기 스님께서 분명하게 밝혀놨는데 명상은 현대 언어입니다. 고대 언어가 아니고 요즘 언어입니다. 우리가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명이 급격하게 발전했지요. 로봇 가운데에도 휴먼로봇이라면 세종대왕한테 가서 휴먼로봇 아시느냐 물으면 못 알아 듣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은 다 알아서 그것이 요즘 언어란 말입니다. 그런 것처럼 명상이란 말은 정관이라고 하지 왜 명상이라고까지 했느냐? 명상은 생각하는 것이긴 하지만 명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는 지침이 없어요.
인류 문명은 명상을 통하여 발전했다고 보면 돼요. 고대사에도 명상이란 말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색한다, 숙고한다 숙려한다 등 여러 가지 말을 많이 쓰지요. 명상을 통하여 명상의 끝까지 도달한 사람은 석가모니가 최초의 인물입니다. 불교 용어에는 선정 사마타가 명상과 혼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말인데 이런 것의 가장 마지막 궁극의 경지가 뭐냐? 절에 가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 놓은 적멸보궁이라 하고 사리전이라 하지 않죠. 해인사에 가면 대웅전을 대적광전이라 하죠. 대적, 적멸은 고요하다는 소리입니다. 가장 고요해서 생각이 깊이 들어가면 일체 망념이 다 소멸되어서 없어진 가장 궁극의 거기가 적멸입니다. 거기가 열반입니다.
어떤 스님이 돌아가시면 불교에서는 열반하셨다 또는 입적하셨다고 해서 고요 적자를 씁니다. 살아 있을 때는 조금 남아 있던 것이 비로소 완전 적멸의 경지, 열반의 경지에 들어갔다. 그런 용어가 나중에 선종에 와서는 그것으로는 좀 부족하다고 해서 6조 혜능스님 같은 분들이 자주 많이 사용하는 언어 가운데 하나가 무심, 무념, 무상이 됩니다. 그것에 완전한 무심, 완전한 적멸에 도달하고서야 우리의 업장이 완전히 녹아요. 이 업장도 단계가 있습니다. 언젠가 기회 되면 불광법회 불자님들에게 한 번 얘기하려고 하는데 금강경에도 보면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있다고 네 가지 단계를 말하죠. 수행의 명상에 들어가는 깊이가 어느 정도까지 들어간 것을 그렇게 표현했는지 하는 것을 지난번 금강경 얘기할 때 아껴뒀는데 나중에 구체적으로 얘기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어쨌든간에 우리가 정관명상을 통하여 할 수 있는 것은 궁국의 경지, 가장 마지막 번뇌가 완전히 소멸된 경지까지 도달하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본성인 불성이 착 드러나는 거예요. 그것을 불광이라고 합니다.(보리광보살님 녹취)
마무리하는 뜻에서 또 하나 다음으로 노납은 「반야경」을 공부하면서 내가 전에도 한 번 얘기했는데 스님께서 여기 계시는데 쑥스럽긴 하지만, 반야를 공부하신 분. 그래서 일본 유학까지 가서 반야를 공부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을 연구하신 스님이 역대적으로 가장 많습니다. 지금도 스님들이 강원에 가면 화엄경을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반야부」 경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적어요. 『대품반야경』은 600부라 분량이 아주 많습니다. 그것을 연구하는 스님이십니다.
다음으로 노납(혜담스님 자신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반야경」을 공부하면서 ‘반야바라밀이 불교의 핵심’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된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이 왜 불교의 중요한 핵심인가?
『대품반야경』 경전을 다 읽어보시라고 권할 것은 아니고 불광 법회에서는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열심히 읽으면 「반야부」 경전을 다 읽으신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읽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근저에는 『대품반야경』 「법칙품 제37」 에서 설하는, “반야바라밀이 바로 부처님이다. 반야바라밀은 부처님과 다르지 않고 부처님은 반야바라밀과 다르지 않다”
‘반야바라밀’이 불교의 핵심 사상이다. 다른 사람들은 불교를 공(空)이라 하고 또는 중도(中道) 또 다른 데에서는 불교의 핵심 사상이 무엇이다, 무엇이다. 라고 여러 가지 말로 각기 표현할 수 있지만 반야바라밀이 곧 중도(中道), 반야바라밀이 공(空)이고 ‘반야바라밀’이 바로 부처님이다 이런 뜻 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반야바라밀’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 불광 법회에는 그런 분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마는 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 하면 그것은 처음 듣는 소리인데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하라고 하지 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 하지? 왜 큰스님께서 ‘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고 하였는가? ’반야바라밀‘이야 말로 불교의 사상이 압축되어 있고, 가장 불교의 핵심을 가르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은 부처님과 다르지 않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과 다르지 않다. 라는 법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반야바라밀’이 그대로 정각(正覺)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금강경에도 보면 계속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 하잖아요.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한문으로 번역하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입니다. 이것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 바른 깨달음(正等) 이것보다 더 보편적이고 평등한 것은 없다. 바른 깨달음. 그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이예요.
즉 ‘반야바라밀이 그대로 정각,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고 부처님이다.‘ 라는 「반야경」의 가르침에 눈이 떠진 것입니다. 또한 『금강경』.의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다.[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라는 법문에서 ’반야바라밀이 아닌 그것[卽非]이 반야바라밀‘ 이라는 곳을 보게 된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 부연해서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반야바라밀이고 반야바라밀이 아니요 이 이름이 이 반야바라밀이다.’ 그래서 이것이 금강경의 핵심적인 사상 이예요.
그래서 반야바라밀이 아닌 그것이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비로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혜담스님께서 반야바라밀을 염송하시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서 ‘반야바라밀‘을 연구하고 ‘반야바라밀’을 염송하면서 얻으신 하나의 당신의 그 소득 처, 견처(見處)를 이야기 하신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도 몇 번 말씀드렸지만, 이것을 너무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잘못하면 밑천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두루뭉술하게 대충 말씀드리는 것이 설명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유리하고, 옛날 큰스님들께서도 그렇게 설명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반야’는 우리가 번역할 때 ‘지혜’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그래서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는 반야를 수행하는 것을 ‘정혜(定慧)’ 이렇게 했는데 이제 본문을 마무리 하는 뜻에서 우리가 ‘사마타(삼매)’를 수행하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 조계종에서는 매우 익숙해져 있습니다.
위빠사나 관(觀)을 수행하는 것을 빠뜨리면 안 된다. 이것을 겸수해야 한다.
그것을 혜담스님께서는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위빠사나 수행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수행하는지는 안 만나봐서 잘 모르겠으나 ‘사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을 번역하면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알아차림을 해야 합니다.
내가 화두를 들고 화두 선(話頭禪)을 하더라도 ‘내가 지금 화두를 충실하게 들고 있는가? 아닌가.“ 수행을 잘하고 있는가를 내가 나를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동물이 안 되어 봐서 잘 모르지만, 다른 동물들은 자신을 객관화 시킬 줄 모릅니다. 사람만이 자기를 객관화를 시킬 줄 압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본다고 하는 것, 전에도 이야기 하였듯이 거울을 보면 사람은 자기를 객관화시킬 수 있는 지혜가 있기 때문에 거울을 보고 ‘아, 저것이 내 얼굴이구나.‘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 내가 바른 입술이 빨갛게 칠해졌다면 그것을 수정을 할 수 있듯이, 지금 수행을 하고 있는 내가, 나의 수행이 어느 정도인지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수행하고 있는 내가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를 끊임없이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 그것이 ’사띠‘입니다.
위빠사나 수행하는 사람들은 다르게 설명 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삼매, 선정(禪定)수행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봅니다.
그래서 그것을 끊임없이 확인하지 못하면 자기가 잘못된 길로 가는지, 잘된 길로 가는지 누가 나를 점검해주겠어요.
그래서 이것은 손가락으로 자꾸 저기 달을 쳐다봐라 하면 손가락을 쳐다보지 말고 달을 쳐다보고 저것이 달이구나 해야지 달을 쳐다보지 않고 가로등을 쳐다보고 달이라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것을 관(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데 있어서, 참선 수행하는데 끊임없이 자기를 객관화해서 자기를 관찰할 줄 아는 것. 그것은 전문용어로 반조(返照)한다고 합니다.
빛을 돌려서 보는 것을 회광반조(回光返照) 하잖아요. 사람 눈은 앞으로만 보게 되어 있잖아요. 그것을 돌려서 보려고 하면 그것을 반사하는 거울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거울을 통해서 자기를 볼 수 있는 것 이예요.
거울 역할을 해주는 것이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자기를 끊임없이 반조해 보는 것입니다.
다음에 또 스님께서 법문 하실 때 내가 법문한 것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고 여러분들에게 ‘정관명상’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불광 법회에서는 ‘반야바라밀’정진을 할 때, 하나의 나침반. 망망대해를 여행하는 사람이 깜깜한 바다를 두려움 없이 갈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침반이 있기 때문에 가잖아요. 나침반은 바늘이 파르르 움직이며 한 지점을 가리키잖아요. 나침반이 방향만이 아니라 몇 각도를 가면 우리고향이 나온다는 그것이 딱 나오잖아요. 그래서 「정관명상」이 불광 법회의 좋은 나침반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법문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본자운보살님 녹취)
마하보디합창단 찬탄곡: 임의소식(대행스님 작사, 김동환 작곡, 김회경 예술감독)
어제밤에 눈 오더니 날이 밝아 동이트고
가지마다 흰 백송이 꽃이 피-고
뿌리마다- 이어가고 천상 저 높은
산위에는 골짜기마다 칡뿌리 이어가고
칡꽃이 만발했으니 길을걷던
나그네의 대피리소리는 온 누리에
임의소식 전달하니 만꽃이여 - 만꽃이여 -
임의소식 들었는가 하노라.
불광법회 불광사 정상화 발원문 : 무아 부회장님! 언제나 젊은이처럼 함이 없는 보현행을 찬탄드립니다.
매주 현안보고 하시는 현진법회장님! 불보살님의 원력으로 불광법회를 이끌어주십니다.
새법우소개시간 : 앗! 선물이 하나 부족하네요. 여성 부회장님께서 급히 가져와서 곧 바로 챙겨드렸습니다.~^^~
오늘 불광법회에서 함께한 소중한 인연으로 꼭 성불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법회 후 법등가족 모임시간은 항상 즐겁고 행복합니다. 나눠드린 찰밥과 준비해온 소찬을 드시면서 한 주간의 회포를 풉니다. 매월 두번은 맛난 찰밥으로 공양합니다.
법회후에 곧바로 진행되는 금강경독송기도에 오늘은 송파5구의 법등가족모임도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광덕스님께서 구국구세의 원력으로 시작한 불광법회의 금강경독송기도는 불광법회의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질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현직대통령이 수감되는 몹씨 어려운 국내 정치상황, 금강경독송 기도로써 이 난국을 잘 이겨내고 대한민국이 세계속에 우뚝서는 그날을 위해서 일심염불 정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번주 매서운 한파에도 봉은사,동명사,조계사,화광사에서 1인 시위정진을 이어가는 불광법회 보현보살님들의 거룩한 정진에 불보살님의 가피가 항상하십니다.()()()
토요시위 정진에 동참하신 불광법회 형제님들의 간절한 호법 용맹정진으로 불광법회는 청정도량으로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부처님 정법이 영원하여지이다!!!
공양간 개방을 촉구하는 뜻으로 지난 몇주간 공양간 입구에서 몇몇 구법회에서 공양을 했었고, 지난 주에도 공양을 하고난 뒤 플라스틱 의자를 그대로 두었었는데 사측에서 아예 치워버리고, 화장실 출입문을 잠구고 전기도 차단했는지 불을 켤 수가 없어서 공양을 할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불광사는 불광법회에서 지은 불광법회 전용도량임을 대각회 사찰승인신청서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을 모르시지는 않을텐데요
굳게 잠긴 공양간이 제사 손님 공양을 위해 잠깐 열리는 순간, 마침 근처에 있던 심월행 보문부장님과 자행 전 보문부장님께서 공양간을 들어가려다 제지 당하는 모습입니다. 언젠가는 열리겠지요? 스님들의 마음이 열리면 공양간도 열리겠지요? 마음이 열리면 만사형통, 부처님 공부가 마음공부임을 새기고 또 새기겠습니다 .()()()
토요모임에서는 현수막 철거를 안해서 항상 불광법회팀에서 철거를 합니다.
그런데 불광법회 실상을 알리는 홍보물은 재빠르게 철거를 하는 그들입니다.
무엇이든 당당하면 그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2시 보광당 청정팀의 거룩하신 모습들입니다 .
이번주에는 책장도 말끔히 정리하고 먼지를 닦았습니다.
넓은 지하법당을 많은 분들이 이용하는데도 항상 청결하고 쾌적합니다. 무한감사를 드립니다.
설날합동차례, 정초기도, 조상천도기도 등등 유난히 바쁜 정월달 기도 홍보물을 게시했습니다.
시대상황과 새로운 문화에 따라 집에서 모시던 조상차례나 제사도 점점 간소화되고 변화되어서 사찰이나 성당에서 지내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부처님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국토 성취하자!!!
법등오서(法燈五誓)
우리는 불광법등입니다.
전법으로 바른믿음을 삼겠습니다.
전법으로 정정진을 삼겠습니다.
전법으로 무상공덕을 삼겠습니다.
전법으로 최상의 보은을 삼겠습니다.
전법으로 정토를 성취하겠습니다.
첫댓글 다양한 자료를 편집하여 법회일지를 기록하신 비로자나불님, 법문 녹취하신 본자운보살님, 그리고 법회 사진을 찍은 원각화보살님 외 많은 보살님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_()()()_
각자의 조각조각이 모여 불광법회가 여법하게 이어지는 모습이 경이롭고 환희롭습니다_()()()_
법회일지 편집하시느라 고생하신 비로자나불님을 비롯한 곳곳에서 수고하신
보현행자님들의 노고에 수희 찬탄 드립니다.
법회일지를 보며 나날이 법회가 번창하는 것 같아서 너무 좋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일심단결의 결과인 것이리라 미루어 짐작합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어 지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