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절을 왜 사찰이라 부르는가 / 이희봉 교수
사찰, 인도불교 정신 살아 숨쉬는 언어
우리가 절을 부르는 몇 개의 이름이 있다. 절을 ‘가람(伽藍)’이라고 한다.
그 유래는 승단 거주처 범어 ‘sangha-arama’의 한자 음역,
‘승가람마(僧伽藍摩)’에서 온 가운데 두 글자라고 잘 알려져 있다.
인도에서 베다 시대 후기 브라흐만 즉 범(梵), 대 우주의 절대자 신에 대한 허례 제사보다
근본을 추구하고 체험을 중시하는 우파니샤드 시대에 접어들었다.
불교 잉태 배경이 된 시대정신이었다.
그 시기에, 출가한 자유사상가 사문(sramana, 沙門) 들이 많이 나타나
집단을 이루어 ‘상가(sangha)’라는 생활공동체를 형성하였다.
불교가 인도에서 지배적 종교가 되면서 ‘상가’는 불교 공동체를 특별히 지칭하게 되었다.
‘아라마(arama)’는 ‘정원이 있는 즐거운 집’,
곧 두 단어를 합친 ‘상가라마’는 출가 비구 승원으로 정착됐다.
중국은 ‘탑사’를 절로 명명
한편 한국에서 절을 보통 ‘사찰(寺刹)’이라 부른다.
‘사(寺)’는 중국에서 원래 외교부서 관청 명칭이었다.
절을 寺라고 하는 이유는 후한 명제 때 서역에서 불경을 싣고 온 흰 말이
관청 홍려사(鴻臚寺)에 머물렀고 추후 절을 세워
백마사(白馬寺)라 이름 지은 데서 유래되었다.
관청 명칭이 불교의 절 명칭으로 바뀐 것이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절을 ‘사찰’이라 부르는가?
절 ‘사(寺)’로도 충분한데 왜 ‘찰(刹)’자를 붙이는가에 대해,
필자가 과문해서 그런지 스님이나 불교 학자들이 설명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백과사전, 국어사전에도 ‘사찰’은 절과 같은 말, 높임 말 정도로 표기되어있다.
불교의 잃어버린 1700년을 보기로 하자.
한 문명이 다른 문명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당연히 번역 오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중국인들은 그들 문명 속에서 이해한 대로 또 오해한 대로 인도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인도에서는 부처 사후 스투파가 만들어지고 난 오백년 후에나 불상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중국으로 불교가 들어갈 시점에서는
경전과 함께 불상과 스투파가 동시에 들어가게 되었다.
불상은 중국인들이 그들 도교 전통의 신상의 하나로 쉽게 이해하여
사당에 모시고 제사지내게 되었다.
초기 중국 불교는 절 ‘사(寺)’자 대신 사당 ‘사(祠)’자를 썼었다.
그러나 불교의 원래 숭배 중심 조형물 스투파는 그들의 이해 세계 밖에 있었다.
따라서 목조 건물 속에 불상을 모시고
둥그런 인도 스투파를 작게 축소시켜 지붕위에 올려놓는다(그림1).
국내에서 이 전통은 금산사 미륵전 앞에 원래 탑이었다가
불타서 없어진 후 이전된 대장전 지붕 꼭대기에 축소된 스투파 흔적으로 이어온다(그림2).
또한 부처님 진신사리가 묻힌 통도사 적멸보궁 지붕 꼭대기에도 축소 스투파가 있다.
인도 반구형 및 구형 스투파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대좌가 높아지고
꼭대기 양산은 여러 층으로 솟아 스투파를 점차 높이 우러러 보게 되었다.
특히 위치상 중국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파키스탄 북부 간다라 지역에서 그러하였다.
그 중 인더스강 상류 길기트-카라코럼 고속도로 상의 칠라스 지역
강변 바위 암각화는 양산이 다층으로 발달하였음을 잘 보여준다(그림3).
중국형 다층 누각 탑이 인도의 다층 양산을 번안하였다는 설 외에도
그냥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중국의 다층 고층 건축을 채택하였다는 설도 있다.
어찌되었건 앞서 본 실상사탑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탑 꼭대기에는
모두 인도 스투파가 축소된 형태 그대로 재현된다.
중국에서 붓다(Buddha)는 ‘부도(浮屠, 浮圖)’로 음역되어 처음에는 석가모니를 나타냈으나,
점차 탑을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6세기의 ‘위서(魏西)’ ‘석로지(釋老志)’에 “천축의 옛 모습으로 다시 건축하여
1층에서 3, 5, 7, 9층에 이르는데 세상 사람들이 이어받아 ‘부도’라 하더라.”
또 ‘낙양가람기’에서 영녕사(永寧寺) “그 가운데 구층 ‘부도’가 있더라.”는
구절에서도 부도는 ‘탑(塔)’이다. 한국에서 부도는 스님 사리탑으로 이름을 내 주었다.
중국 초기 불교에서 절을 ‘탑사(塔寺)’라 불렀다.
형태상 우뚝 솟은 탑(塔)과 관청에서 유래된 낮게 깔린 사(寺)가
서로 분명히 구분되어 결합한 ‘탑사’였다. 이 광경은 한국에서는 잘 남아있지 않지만
일본에서 목탑이 솟은 절에서 잘 볼 수 있다(그림4).
‘탑사’와 ‘사찰’ 같은 단어
한편 탑의 중심 기둥을 ‘찰주(刹柱)’ 또는 ‘찰간(刹竿)’이라고 호칭한다.
필자가 발굴해낸 바에 의하면, ‘찰다라(刹多羅)’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 전파 시
전 편에서 본 ‘양산’의 범어 ‘차트라(chattra)’의 한자 음역이고,
간략 대표 호칭이 바로 ‘찰(刹)’이다(중국발음은 ‘차’). ‘찰(刹)’은 곧바로 ‘양산’이다.
따라서 경전 속에 나오는 ‘탑찰(塔刹)’은 바로 ‘탑의 제일 꼭대기’ 양산을 가리킨다.
찰주는 ‘양산을 받치는 기둥’으로서 동아시아 목조 탑의 중심 꼭대기에서
바닥을 관통하는 구조 중심기둥이 되었다.
이리하여 뜻을 잃어버린 글자 ‘사찰’의 ‘찰(刹)’은
원래 양산의 인도 범어의 한자 음역어 ‘찰다라(刹多羅)’의 대표 첫 글자로서,
글자 그대로 ‘양산’이지만 탑의 핵심 특성 고귀함의 상징인 꼭대기 중첩된 양산이
곧바로 탑의 전체 속성을 대표하여 ‘찰(刹)’은 곧 ‘탑(塔)’이 된다.
고로 언어 ‘사찰(寺刹)’은 ‘탑사(塔寺)’와 앞뒤 순서만 바뀐 정확히 똑같은 단어다.
‘낙양가람기’에 절을 묘사한 구절, “‘금찰’은 영대에 비해 높고 강전은 아방궁처럼 장엄하였다.
(金刹與靈臺比高, 講殿共阿房等壯)”가 나온다.
‘금찰(金刹)’ 즉 ‘금 양산’은 곧바로 고층 탑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 된다.
따라서 양산을 지칭하는 ‘찰(刹)’을 포함하는 언어 ‘사찰’은
스투파 곧 탑이 불교 사원 중심이었던 인도의 원래 불교정신이 그대로 살아있는 언어이다.
우리 절에서는 탑보다 불상이 더 우선이지만 말이다.
5. 감은사탑 상부 찰주 곧 양산기둥.
따라서 ‘찰(刹)’과 ‘산(傘)’은 같은 대상
‘양산’의 음역(音譯)과 의역(意譯)의 차이뿐인 완전 같은 단어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아무 관련 없이 마치 별개의 언어처럼 사용된다.
오랜 세월이 흘러 어원을 잃어버린 ‘사찰’의 ‘찰(刹)’자와 탑의 ‘찰주(刹柱)’의 ‘찰(刹)’자는
같은 글자일 수밖에 없다. 범어 ‘야슈티(yashti)’의 영어 ‘parasol stick’으로 표기되는
중심 기둥을 ‘찰주’ 또는 ‘찰간이라고 지칭하는 전문가 방언 한자어보다도
‘양산기둥’이 더 원뜻에 맞으면서도 소통이 쉬운 현대 언어이다(그림5).
만약 한국 불교가 과거에 갇힌 종교에서 벗어나
현대인과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의미를 잃어버린 채 발음 기호로만 사용되는
‘찰주’ 대신 원 의미에 맞게 ‘양산기둥’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사찰의 ‘찰(刹)’자는 양산, 곧 탑이다. 탑의 중심기둥 ‘찰주(刹柱)’
즉 양산기둥과 같은 글자일 수밖에 없다.
일제 시기 탑 연구 선구자 고유섭 선생은 마찰 찰자 ‘찰주(擦柱)’를 쓰기도 하여
오늘날 일부 학자들도 이어받는데 명백히 잘못된 글자다.
또 하나 불편한 진실, 글자 그대로 엄밀히 말하자면,
탑이 없거나 탑이 중심이 아닌 절은 사찰이란 단어를 쓰기 곤란해진다.
2012. 03. 29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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