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촬영) 신각수 전 외교부차관 / 친주칸 박물관(沈寿官博物館) 소장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州)가 저술한 일한사전 <교린수지>(交隣須知)라고 합니다.
아메노모리는 1703년 부산 왜관에서 3년간 체류하면서
각고의 노력으로 한국어를 독학한 인물로 알려져있죠.
또한 당시 체류기간 중에
훗날 조선에서 출판될 일본어 학습서인 <왜어유해>(倭語類解)가 작성되는 데도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아메노모리의 <교린수지>는 10여년 전에,
오사카의 박물관에서 <조선통신사 전> 할때도 봤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18세기 초의 조선에서 사용되던 생활회화가 적혀져 있다는 것이죠..
반가와서 퍼왔습니다.
과거 한반도의 외교는 거의 중국과 일본(왜) 뿐이었죠.
중국 가는 사신들 중에 특히 해로로 배타고 가는 사람들은 죽는 경우가 많아서 서로 안가려 했다죠.
그때 중국에 갔던 사신들이나 수행원들이 돌아와 남긴 문학류가 '연행록'입니다.
반면 특히 17세기 이후 일본으로 간 사신은 조선통신사라고 부르고,
그들이 남긴 기록은 "통신사 사행록"이라 불립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일본보다 선진국이라서
일본에 남아있는 기록에 비하면 그다지 주목을 못받은 편이죠.
일본에는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근데 조선 통신사 일행이 오사카 항구 같은데 내리면,
쇼군이 있는 에도(=현재의 도쿄)까지 수백km 먼길을
어떤 때는 1km 정도의 거대한 의전대열을 이뤄서 행진했죠.
그만큼 대접이 융숭했다는 것이고,
중간중간 지역 영주가 제공하는 곳에서 묵었죠
그러면 일본 각지 내로라 하는 선비(=사무라이 학자)들이 와서
필담으로 대론도 하고, 시도 써서 교환하고 선물도 주고받고 했는데요..
당시 조선이 문화적 선진국이라서 일본인들은 엄청나게 적고 기록해서 보관했습니다.
조선통신사전은 볼만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부분은 주로 "술" 관련 내용이 많아서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