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깨끗이 하라, 디모데전서 1:18-19
다니엘이 뜻을 정하신 이유? 하나님은 죄와 타협하시는분이 아니다.
그래서 뜻을 정한 다니엘에게 > 하나님은 은혜주신다.
지식, 문학에 능토, 꿈을 해몽하는 능력을 주신다.
당신의 집이나 사무실에 있는 연기 탐지기는, 특별하고도 임박한 안전사고를 대비해 설치되었다. 그러나 화재 경보기가 계속적으로 불발하여, 있지도 않는 위험에 대하여 거짓 경고를 보낸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작동하는 경고시스템은 경보장치를 전혀 갖지 않는 것 만큼이나 나쁜데 만약 그 경고를 무시하는 습관을 동시에 갖게 되면 더욱 나쁘다.
도덕적으로 더럽혀진 양심은 함부로 행동하게 된다.
경고 신호는 사라지고, 분명히 위험은 없다고 하지만 사실 위험은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심각한 것이다.
더군다나, 가장 더럽혀진 양심조차도 언제까지나 잠잠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심판 가운데 서게 되면,
모든 사람의 양심은 하나님, 의로우신 재판관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악행한 자의 마음을 굳어버리게 한 최악의 죄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악행자 자신에게 불리하게 증거하는 양심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죄가 얼마나 파괴적인가 하는 것을 쉅게 생각한다.
단지 영원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날마다의 삶 가운데에서 말이다.
우리는 언급되지 않은 수많은 죄가 우리의 가족과 우정, 그리고 경력을 어떻게 파괴시키고 있는지를 보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내면적인 엄청난 충격을 초래하는데,
예를 들면 당신의 기쁨과 자신감을 빼앗아 가며 영적인 성장을 억누르며,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교제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당신의 양심을 오염시키고 파멸시킨다.
실제로 반복적인 학대를 통하여 양심을 파기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바울은 양심이 뒤얽히고 타락한 사람들을 향하여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수치)에 있고”(빌립보서 3:19; 참조. 로마서 1:32)라고 하였다.
마음과 양심 모두가 심하게 더럽혀지게 되면,
그들은 무엇이 순결하고 무엇이 부정한지를 구별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많은 위반을 한 이후에 양심은 결국 잠잠하게 된다.
회심한 양심의 순결함을 지키는 것은 기독교인의 높고도 거룩한 의무이다.
바울은 이것에 대하여 할 말이 많았다.
“그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사도행전 23:1).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사도행전 24:16).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디모데전서 1:18-1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디모데전서 3:9).
선한 양심이란 당신 자신을 위한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건전한 양심은 그리스도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다.
이세상의 괘락을 즐기지만 , 하나님을 섬기지 않거나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빌리고도 갚지 않는 사람과 같다.
양심에 가책을 느낄 때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한다,. 왜?
하나님이 없다면 그를 섬길의무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바울은 증인으로서의 그의 양심을 자주 언급하였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린도후서 1:1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고린도후서 4:2).
베드로도 또한 순결한 양심의 가치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3:16).
깨끗하고 강한 양심은 당신의 영적인 성장과 아울러 다른 사람들을 향한 당신의 증거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양심이 올바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억제되지 않은 죄와 언급되지 않은 죄의식으로 인하여 방해 받거나 타락되지 않아야 한다.
내일은 어떻게 당신의 양심을 깨끗이 하며, 또한 그것을 어떻게 깨끗하게 유지하는가에 대하여 살펴 볼 것이다.
어떻게 우리의 양심을 항상 청결하고 깨끗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할 수 있을까?
또한 어떻게 우리의 양심을 민감하고, 부드럽고, 강력하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여 죄책감과 같은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혹시 그럴 때에라도 그것에 올바로 반응하게 할 수 있을까?
여기 기억해야 할 몇 가지 간단하고 실제적인 원칙들이 있다.
깨달은 죄는 즉시 고백하고 버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마음 속에 눌리는 짐이 있는지 점검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 준다.
잠언 28장 13절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죄를 자백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정상적인 삶의 일부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야고보서 5:16).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가장 마음 아파하시는 분에게 죄를 고백해야 한다.
다윗은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이다”라고 말했다.
잘못을 범하여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목하라.
주님은 우리에게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복음 5:23,24).
또한,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태복음 6:14,15) 라고 가르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민수기 5:6,7). 이러한 율법의 원칙은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신자들에게도 적용된다(빌립보서 19, 누가복음 19:8).
양심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라.
앞에서 이미 다룬 것처럼 연약하고 쉽게 상처받는 양심은 영적인 지식이 부족함으로 인해 오는 것이다(고린도전서 8:7).
만약 너무 상처받기 쉬운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
양심을 거슬러 행동하는 것은 죄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고린도전서 8:7)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서까지 어떤 일을 행하기보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의해 올바로 기능하는 양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당신의 양심을 하나님의 말씀에 푹 젖게 만들어야 한다.
양심의 가책을 받는 일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힘썼다고 고백했다(사도행전 24:16).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 일이 저절로 해결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양심이 눌리는 일이 있어도 방치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산이다.
그 문제를 즉시 다루지 않고 미룬다면 죄책감만 더할 뿐이다.
그것은 영적인 침체와 염려 그리고 다른 감정적인 문제들을 낳는다.
죄책감은 상처가 잊혀진 후에도 남아서 종종 삶의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종종 눌리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정작 그 원인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런 혼란스러운 죄책감은 영적으로 심각한 잘못 가운데 있다는 증상이 될 수 있다.
바울이,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디도서 1:15) 라고 말할 때, 그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살피는 기도로 즉시 마음 가운데 양심의 거리끼는 일을 다루는 것이야말로 양심을 청결하고 민감하게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일을 미룬다면 여러 복합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신자에게 있어서 자백하지 않은 죄와 우유부단함은 암과 같다.
그것은 영적 성장을 저해하며 주님께 유용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간다.
그 양심이 참된 거룩함과 일치하여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죄의식들이 직접적인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중요한 영적인 몸부림의 신호가 된다.
양심이 마음의 신념과 반응하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격려를 받게 되고 또한 날카롭게 될 수 있다.
말씀의 규칙적인 섭취가 연약한 양심을 강화시키고 혹은 과잉반응하는 양심을 절제시키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과오와 인간의 지혜, 그리고 잘못된 윤리로 마음을 채우게 되면 양심은 타락하고 손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깨끗한 양심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였고(디모데전서 3:9),
또한 양심을 더럽히거나 흐리게 하는 어떠한 것에 대하여 경고하였다(고린도전서 8:7; 디도서 1:15).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의 바위로 날카로워질 필요가 있다.
당신은 절대 감정에 따라서 당신의 삶을 지시해서는 안 된다.
감정에 고정된 양심은(일관성이 없으며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기만적이므로) 신뢰할 수가 없다.
우울증이나 비애감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의 경우, 양심이 그들의 감정에 의하여 영향을 받게 되면 특히 위험하다.
실의에 빠진 감정은, 올바르게 조언을 받은 양심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억제되지 아니하면, 그 영혼 가운데 불필요한 의심과 두려움을 유발하게 된다.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득되고 지도를 받아야 하며, 우리들의 변덕스러운 감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양심을 하나님의 진리와 성경의 가르침에 복종시켜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양심은 보다 분명한 곳에 초점을 맞출 수 있고,
또한 우리는 그러한 양심의 판단에 대해 더욱 믿을만한 반응을 나타낼 수 있다.
둔한 양심은 장애물 영적인 맷돌이다.
날카롭고 신뢰할 만한 양심은 영적인 성장과 안정성을 돕는 강력한 조력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