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입니다. 올해 표어입니다. 올해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이신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는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의사인 누가는 예수님을 무작정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마리아를 통해서 잉태된 배경을, 그리고 약혼자 요셉이 이 사실을 알고 혼인약속을 파하려고 했던 것까지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출생까지도 자세히 기록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의 본질을 말씀한 것입니다. 1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아무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으니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18절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우리는 아들을 보므로 아버지도 아는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할 때 예수님은 대답합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 예수님이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예수님은 아니지만 아들을 통해 우리는 아버지를 보는 것입니다. 아들의 영광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은혜 위에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최상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아들을 내어주신 것은 가장 귀한 것을 내어주신, 전부를 내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내어주실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죄인에게 베푼 은혜요 사랑입니다. 할렐루야!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통해 세워진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값을 지불하고 사신 생명이 모여 이룬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선포되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곳입니다. 만약 지금 교회가 그러지 못하다면 이것을 회복해야 할 의무가 교회에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히 채워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증거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아야 하며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 드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거룩함과 성결함이 충만한 곳입니다. 교회는 그러해야 합니다.
1.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
이 교회를 일컬어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씀합니다. 딤전3:15입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사도바울은 교회를 일컬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합니다. 교회는 진리가 있는 곳입니다. 즉 진리를 믿고 따르고 전파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회에 진리를 맡겼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신약성경에 진리라고 표현된 단어가 ‘알레데이아’인데, 변할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바꿀 수 없는 사실, 도리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진실한, 겉과 속이 다르지 않는’ 이란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변할 수 없는, 진실한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또한 진리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과 성령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인 성령께서 진리이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이끌어주십니다.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영인 성령의 감동으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이 선포되어 빛과 생명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에게 소망을 밝히고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고 우리를 권면하고 교훈도, 책망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인 말씀으로 구원에 이르고 생명을 얻게 됩니다.
문제는 진리로 인도를 받는 자라면 진리를 가진 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의미가 “알레데이아” 단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믿는 자의 삶이 또한 진리를 전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았다면 삶에서도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등불을 켜면 자연히 주변이 밝아지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내 안에 들어오면 슬픔을 몰아내고 기뻐하듯이, 하나님의 평안이 내 안에 들어오면 불안을 몰아내고 평안해야 하듯이 진리가 내 안에 들어오면 나를 통해 진리가 드러나야, 흘러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전하는 통로가 되길 축복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교회의 문제는 다름 아닌 진리가 교회 안에 과연 보존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교회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진리대로 살아내고 있다면 자연히 세상 가운데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러하길 소망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진리를 보존하고 전파하므로 하나님과 세상으로부터도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의 나음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롬3:1,2에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특별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진리인 말씀을 맡았고 전파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과학 문명이 발달해도, 아무리 세상이 변질되고 타락해도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보존되고 전파되어야 할 책무가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2.진리로 자유하는 교회
교회는 이 진리로 자유하는 곳입니다. 요8:32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는 우리를 속박하거나 얽매이게 하는 법이 아닙니다. 두렵고 무겁게 하는 법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법입니다. ‘자유’란 우리가 어떤 속박된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사망에 매인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존재인 것 같으나 실상은 죄와 사망에 매인 종으로 살아가는 극히 부자유스러운, 자유의지와 권리를 빼앗겨 심판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입니다. 영혼을 묶고 있는 보이지 않는 올무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진리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사망의 권세자인 마귀를 멸하시고 일평생 죽음에 매여 종노릇하던 우리를 풀어주셨습니다. 교회는 이 자유를 아는 자가 모이는 곳이며 모여서 함께 이 자유를 확인하고 회복하고 누리는 곳입니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주 말씀 하시길 죄사슬 끊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할렐루야” 이런 찬송이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이 자유를 전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성경은 이 진리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다. 한순간, 잠시만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요이 1:2에 보시면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라고 합니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라고 했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진리를 떠나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도 영원히 진리를 믿고 따르길 축복합니다.
3.은혜가 더하여 넘치는 교회
그리고 교회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진리가 있는 곳에는 은혜가 있고 은혜가 있는 곳에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 내게 왜 은혜가 없는가에 대한 답은 내가 진리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은혜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은혜 없는 진리도, 진리 없는 은혜도 없습니다. 진리가 있는 곳에 은혜가 있고 은혜가 있는 곳에 반드시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가 충만한 곳에 은혜가 충만하고 은혜가 풍성한 곳에 진리도 풍성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러해야 합니다.
고후4:15에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은혜가 더하여 넘칠 때 우리를 통하여,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하여지고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은혜 받고 충만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받은 은혜를 지속하려면 무엇보다 감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치게 됩니다. 감사는 충만한 은혜를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다시 은혜를 풍성히 회복하는 비결도 감사입니다. 감사 대신 불평과 불만이 앞서면 받은 은혜도 땅에 쏟게 됩니다.
4.은혜 가운데 서 있는 교회
그래서 올해는 우리가 감사를 통해 은혜 가운데 서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행13:43입니다.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는 이들에게 부탁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내가 필요한 때만 아니라 ‘항상’ 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항상, 언제나, 수시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사소한 것에 낙심하고 절망하고 주저앉고 심령이 메말라지고 미움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분쟁이 생기고 틈이 생기게 됩니다. 다른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이래서 저래서가 아니라 은혜에서 떨어지면 그렇습니다. 은혜가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은혜는 윤활유와 같아서 딱딱한 것도 부드럽게 만들고 메마른 곳도 생기 있게 만들어줍니다. 돌같이 굳은 심령도 기경하여 물이 흐르고 생명이 자라나는 시냇가로, 옥토로 만들어줍니다. 이것이 은혜의 능력이고 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 마귀는 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게 만들려고 합니다. 은혜 받지 못하게 합니다. 은혜 받으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은혜 받으면 진리 가운데 거하고 진리와 함께 일하는 자가 될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은혜 떨어지면 마귀가 더 이상 걱정 안 해도 되는 존재이지만 은혜 받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기에 마귀가 염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가 단지 염려하는 수준이 아니라 마귀가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기쁨이요 자랑이 되는 주의 자녀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를 통해 은혜 가운데 굳게 서 있기를 축복합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사람이 되고 교회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