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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샘의 첫 번째 졸업여행(6월 24일~6월 28일)
6월 24일
날씨: 눈을 뜨니 흐려서 속상했는데 쨍 하다가 또 흐리다가 비도 좀 왔다. 그래도 다니기에 선선한 날씨여서 좋았다. 역시 행운의 7기-☆
8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짐을 쌌다. 옷가지 몇 개와 비옷, 세면도구 따위밖에 챙기지 않은 것 같은데 가방이 꽉 차서 빵빵하다. ‘하루 종일 들고 다녀야 할 텐데...’하고 걱정을 했지만 들어보니 또 그리 무겁진 않다. 내 짐을 챙기고 씻고 고양이들 화장실을 치우고 밥까지 다 챙기니 10시 40분이다. 나와서 버스를 탔다. 이제야 가슴이 좀 뛴다. 사당에 내려 3번 출구쪽으로 가는데 나와 같은 흰 티셔츠가 보인다. 같이 맞춘 깊은샘 티셔츠를 입은 성준이와 민철이다. 헉!!! 제주도에 가서 입자고 할 걸...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들 얼굴이 좋다. 홍대입구역으로 가서 공항철도를 탔다. 누워서 가도 되겠다고 하면서 좋아한다. 김포 공항에 닿아 만남의 장소에서 민철이 어머니가 정성껏 싸주신 주먹밥을 먹었다. 맛있게 그리고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그리고 표를 받고 수속을 했다. 탑승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탔다. 민철이가 많이 떨리나보다. 나랑 성준이가 장난을 쳤는데 그걸 믿고 무서워한다. 비행기가 움직이자 눈을 질끈 감고 양 손을 꽉 잡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제주 공항에 닿자마자 100번 버스를 탔다.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서 710번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가보니 5분 전에 버스가 떠나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다시 찾아보고 720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710번으로 갈아타기로 했다. 720번 버스를 타고 내렸는데 허허벌판. 버스가 언제 올지도 모른다. 정류장으로 옮기려는 찰나 쇠똥구리를 발견했다. 나는 마음이 바쁜데 아이들은 쇠똥구리에 정신이 팔렸다. 처음 본다고 정말 좋아했다. 쇠똥구리에 붙은 진딧물도 떼어주고 안전하게 가도록 찻길에서 먼 곳에 놓아줬다. 제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초조해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아이들은 발 닿는 대로 모든 것에서 배우고 생각하고 크는 것을... 선생이랍시고 뭔가를 넣고 더 배우길 바랐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는 마음을 탁 놨다. 이번 여행 행복하게! 마음 놓고!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지내자! 계획과 조금 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지. 하하하.
다시 버스 정거장에 가려고 길을 건너는데 택시가 서 있다. 필시 우리를 태우려고 하는 것 같아 뛰어가 물으니 이쪽은 버스가 두 시간에 한 대란다. 다랑쉬 오름까지 (깎아서) 7000원에 데려다주셨다. 우리는 입구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가장 가까운 버스정거장까지 2km나 돼서 나올 길이 막막했지만 아까의 깨달음대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기분 좋게 다랑쉬를 올랐다. 헥헥. 저번에 올랐던 용눈이 오름이 쉬워서 다랑쉬 오름도 똑같을 줄 알았는데... 하.... 힘들다. 그런데 땀이 나는데 개운하다. 다람쥐 같은 녀석들을 따라 겨우 정상에 오르니 시원하다. 타이머를 맞춰놓고 뒷모습 사진도 찍었다. 좋다. 가슴이 탁 트인다. 쉼터에 와서 시를 썼다. 재밌다. 날다람쥐들(성준, 민철)이 내려갈 땐 더 날쌔다. 겨우 겨우 내려가니 2km나 걸어갈 생각에 앞이 캄캄하다. 때마침 출발하는 연인들이 있길래 태워달라 부탁하니 흔쾌히 들어주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다섯 번 넘게 하고 버스 정거장에 내려서는 어쩌나 싶다. 두 시간에 한 대라는 버스는 언제야 올지. 그 순간! 아이들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차를 세우겠다고. 아이들이 손을 흔들자 금세 어떤 아저씨께서 세워주셨다. 아저씨는 아저씨의 목적지보다 우리가 가는 곳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는 곳까지 데려다 주셨다. 고마워서 인사를 하고 또 했다.
아이들과 걷는 여행, 버스 여행을 생각했을 때 같이 사는 세상, 이야기 나누는 세상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어차피 차를 몰지도 못하지만 못하는 게 오히려 다행으로 느껴졌다. 면허가 있었다면 당연하게 차를 빌렸을 테니 말이다. ‘우리’차 안에 갇혀 더 큰 ‘우리’를 볼 수 없다면 얼마나 슬펐을지.... 아이들과 함께 이런 세상의 도움과 따뜻함을 느끼니 정말 좋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던 옥돔과 내가 먹고 싶은 해물 뚝배기를 먹고 잠집으로 왔다. 잠집에 있는 해먹 하나에 그 어떤 잠집 보다 좋다며 함박웃음이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기뻐할 줄 아는 이 녀석들이 정말 예쁘고 자랑스럽다. 오늘은 잠이 잘 올 것 같다.
6월 25일
일어나 씻고 내려가니 아이들이 먼저 와 만화책을 보고 있다. 정성스레 만들어주신 충무김밥을 먹고 정거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어제 차 잡는 것이 좋았는지 히치하이킹을 하겠다고 난리다. 오래지 않아 버스가 왔다. 일출봉 입구에 내렸는데 눈앞에 일출봉을 보니 가방을 메고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과 옆에 있는 파출소에 짐을 맡기고 가자고 했다. 쭈뼛쭈뼛하며 들어가 가방을 맡기고 와서는 경찰 아저씨 친절하네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일출봉 올라가는 길이 온통 중국인이다. 그냥 모든 길이 사람들로 덮였다. 그래서 가는 길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흐르는 땀은 왜 이리 개운하게 느껴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상에 오르니 마음이 좋아졌다. 즐겁게 사진을 찍고 내려와 가방을 찾았다. 그리고는 성산항으로 걸었다. 걷는 길에 나비 세 마리가 살랑거린다. 아이들이 우리 셋 같다고 한다. 우리 깊은샘 같다고. 고맙기도 하고 코 끝 찡하기도 한 이야기다.
20~30분을 걸어 성산항에 닿았다. 배를 타고 우도에 갔다. 멋진 자전거가 있는 가게에 가방을 맡기고 자전거를 빌렸다. 길도 좋은데 자전거도 좋다. 쭉쭉 나가니 여느 자동차가 부럽지 않다. 조금 살피다 라면집으로 들어왔다. 조금 비싼감이 있기는 하지만 푸짐한 해물에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게 다 먹고 해변으로 향했다. 본디는 헤엄을 치고 싶었지만 햇빛이 나지 않아 물이 차가워 포기했다. 어어 하더니 민철이가 금방 게 한 마리를 잡아 올린다. 성준이도 둘러보더니 또 게를 한 마리 잡는다. 둘이 게 잡기 삼매경에 빠졌다. 날씨가 좋으면 바다 색깔이 더 예뻤을텐데 하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선선하게 돌아다니는게 더 좋겠다싶어 그냥 마음을 접었다. 자전거를 타니 정말 좋다.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하다. 한순간 한순간이 엄청 소중하다. 바다 풍경을 보며 한참 달려 지미스라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 땅콩 아이스크림 두 개와 한라봉 아이스크림 하나를 샀다. 땅콩 아이스크림이 텁텁할 것 같다더니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본다. 정말 정말 맛있다고. 꼬맹이들 데리고 다니니 작은 것에도 좋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욕심이 없다면 이렇게 모든 것에 기뻐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지나갔다. 또 자전거를 타고 길을 떠난다. 만나는 내리막길에 신나는 마음이 더 커진다. 아이들이 말을 타고 싶다고 줄곧 이야기 했던지라 말에겐 좀 미안했지만 짧은 길을 타기로 했다. 둘은 좋다고 소리치는데 나는 내 무게가 얹어진 것이 말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온 몸이 굳었다. 숨 막히는 2~3분이 지나고 말에게 사과하고 내려와 사진을 찍었다. 미영이라는 망아지가 특히 예뻤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도는 안녕! 택시를 타고 진숙 선생님이 추천해 준 새벽숯불가든으로! 3인분을 시켰는데 양이 상당하다. 600g이 아니라 거의 750g정도 된단다. 신선해 보였다. 맛은 더 좋다. 한 입 먹고는 셋 다 우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고소하고 쫄깃해서 자꾸 손이 갔다. 모두 합쳐 고기 4인분, 공기밥 4개를 먹고서야 끝이 났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과천에서는 먹을 수 없는 맛이라 다들 칭찬했다. 식당을 나오자마자 식당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쫄래쫄래 따라온다. 아이들은 좋아서 사진도 찍고 만지고 안는다. 또 버스를 탄다. 77정거장이나 가야한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이 자고 있다. 어두워지는데 오늘도 늦게 들어갈까 걱정이다. 못난 선생 만나 세상구경 달게 하는구나 싶다. 한 시간 반이나 와서는 갈아 탈 버스를 또 한참 기다렸다. 그리고는 내려서 또 걷는다. 조금 걸어가다 보니 민철이가 다급하다. 화장실에 가고 싶단다. 얼굴이 새하얗다. 급히 마을회관도 가보고 했지만 문이 잠겨있다. 어두운 공터에서 일을 보라고 한 뒤 성준이와 기다렸다. 한참 뒤 민철이가 바지에 지리지 않았다며 자랑스레 말하면서 걸어온다. 이런 무한긍정 녀석 같으니.... 금방 게스트하우스에 닿았다. 오늘은 너무 늦어 씻고 하루생활글 쓰고 자기로 했다. 나도 눈이 막 감긴다. 다들 안녕. ^^
6월 26일
날씨: 조금 흐리다. 걷기에 아주 좋다.
오늘도 6시에 일어났다.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더 누워 있다가 7시가 넘어 방 밖으로 나갔다. 남자방 문을 살짝 열어보니 민철이와 눈이 마주쳤다. 위층에 올라가 있는 성준이는 아직도 꿈나라다. 씻고 아이들과 토스트를 먹고 가게로 갔다. 10km 넘게 걸을 예정이라 이온음료와 불량식품 하나씩을 샀다. 그리고 어제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가방을 메고 걷기 시작했다. 종알종알 담소를 나누고 웃으며 한 발 한 발 걸어갔다. 8시 반부터 걸은 터라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너무 힘들고 지쳤다. 항참 걷고 있는데 파인애플 아줌마가 “시원하고 맛있어요~!”하며 파인애플을 팔고 계셨다. 침을 꿀꺽 삼키며 열 발짝쯤 갔는데 자꾸 생각나서 “민철아 사줘~”라고 졸랐다. 용돈이 아직 남아있는 민철이에게 성준이와 함께 졸랐다. “박민철! 박민철!”하고 외치니 쑥스러운지 하지 말라고 난리다. 우리는 파인애플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셋이 신나서 사진 찍고 신나게 뜯어먹었다. 그 시원함과 달콤함이란!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거다. 파인애플이 가방을 가볍게 하는 마법을 경험하며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정자가 나왔다. 앉아서 쉬는데 우편함이 보였다. 1년 뒤에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인데 셋이 열심히 썼다. 아이들이 쓴 내용은 비밀이지만 내용이 아주아주 재미있었다.^^* 편지를 쓰느라 시간이 지체되어서 또 부지런히 걸었다. 법환포구를 지나니 저 멀리 크레인이 몇 십대 보였다. 강정 마을이 맞나 아닌가 갸우뚱하면서 계속 나아갔다. 그것의 정체를 알기까지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강정 마을이 맞았다. 그 쪽으로 건너가는데 아주 맑고 깊은 물이 나왔다. 푸른 옥색의 깊은 물이 정말 아름다웠다. 들어가 보니 깨끗하고 차가운 느낌이 온 몸에 전해져왔다. 물고기들이 팔딱 팔딱 뛰는 모습도 보였다. 이건 수질검사 안 해봐도 1급수다. 역시 일강정이란 말이 왜 생겼는지 왜 강정이 물 강자, 물 정자를 쓰는지도 알았다. 강정천에서 고개를 돌려 왼 쪽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공사현장 입구에 갔는데(노래를 부르며 공사현장 입구에 둘러서 계셨다) 아이들이 눈을 떼지 못하고 쳐다봤다. 바위처럼 노래가 나와 우리도 서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데 경찰들이 우르르 나와 의자에 앉아계신 신부님들을 번쩍 들어 옮겼다. 슬펐다. 눈물이 났다. 아이들과 버스 정거장에 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옳은 것을 조금 더 사랑하길...
오래지 않아 버스가 왔다. 버스를 타고 내렸는데 환승해야 할 버스가 오지 않아 애가 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버스를 탔다. 두 시 배를 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1시 48분에 도착했다. 500m 밖에 되지 않지만 도항 신고서를 쓰고 표를 끊어야 해서 뛰어가서 택시를 탔다. 부랴부랴 도항 신고서를 작성해서 표를 끊으려고 했더니 나오는 배가 없다고 내일이나 오란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울는 오늘 잠집이 협재라고!!! 내일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터덜터덜 협재로 향했다. 다들 피곤하다. 협재 잠집은 송순옥 선생님이 마련해 주셨다. 통화를 하려고 하는데 통화가 되지 않아 걱정이 됐다. 그런 걱정도 잠시. 잠집에 도착해 “저기....”하니 학교에서 오셨냐고 웃으며 반겨주신다. 젊은 부부와 여자 아이 둘이 살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다.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생명과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주에 딱 맞는 분들인 것 같다. 아이들과 이야기도 잘 나눠주신다. 좋은 분들과 이야기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바다에 나가보고 싶다고 해서 바다로 나갔다. 여기로 민물이 흐르고 그 앞이 바다다. 게도 살고, 새우도 살고, 조개도 산다. 집중해서 잡는 모습을 보며 쟤네는 그게 그리 좋나 싶다. 짜식들 제 버릇 누구 못주는 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놀다 맛있는 밥 먹고 잠집에 들어와 씻었다. 그리고는 셋이 한 책상에 앉아 하루생활글을 쓰고 있다. 조용히 둘러앉아 하루생활글을 쓰는 가운데 전해지는 느낌이 참 좋다. 아휴 졸려워-☆
6월 27일
날씨: 날이 제주에서 처음으로 화창하다. 협재 바다가 예쁘게 보일 것 같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섯 시 알람이 울렸다. 성준이에게 DMB를 켜주고 다시 잠에 들었다. 축구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녀석이라 고민을 하고 또 해도 보여주는게 나을 것 같았다. 축구가 끝날때쯤 깨어보니 우리나라가 져서 엄청 아쉬워하고 있었다. 하하하.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이상하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해 보았다. 한림공원에도 가야했고 계획에는 없었지만 제주 오일장 날이라 장에도 가고 싶고 또 아이들이 엄청 좋아하는 바닷가에도 오래 나가있고 싶었다. 결국 오일장 갔다가 한림공원에 갔다가 남은 시간을 해변에서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루로 나갔더니 맛있는 밥을 준비해주셨다. 톳밥인데 정말 맛있어서 셋 다 두 그릇씩 먹었다. 밥까지 든든하게 먹고 나서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시간을 맞추려면 빠듯하다. 그래서 밍기적거리는 아이들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다. 너희들 하고 싶은대로만 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을 먼저 하고 놀자고 말이다. 물론 화를 내면서 말하지는 않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차분히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버스를 타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말이다.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날인데... 하는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보니 둘 다 곤히 잠들어 있었다. 에휴하고 한숨을 쉬는데 그래피티를 한 멋진 건물이 휙 지나갔다. 뭔가하니 카약을 타는 곳이었다. 재빨리 손전화기로 검색을 했다. 그리고는 문자를 보내 가격을 물었다. 1인당 25000원이고 1시 체험이 남아있다고 했다. 하... 큰 돈이다. 어떻게 할까 머리를 굴리다가 한림공원에 가서 구경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바다를 온 몸으로 느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장님께 졸업여행인데 예산이 빠듯하니 5000원씩만 깎아달라고 부탁드렸고 흔쾌히 그렇게 해주셨다. 신났다. 도착할 시간이 되니 아이들도 일어났다. 아이들과 제주 오일장에 들어서니 별천지였다. 이것저것 없는 것이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동물을 파는 곳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 뻥튀기 가게에서 잠집 동생들 줄 뻥튀기를 사고 초콜릿 파는 곳에서 맑은샘 동생들 줄 초콜릿을 샀다. 카약 타러 가면 밥을 못 먹을 것 같아서 밥을 챙겨먹기로 했다. 자장면 두 그릇을 먹었는데 심심한 게 맛이 있었다. 두 청년들은 밥을 한 공기 더 시켜 남은 자장에 밥을 비벼먹고야 배를 두드렸다. 차시간이 되어 부랴부랴 버스를 타러 갔다. 카약을 타는 곳에 가니 젊은 두 분이 우리를 반겨주셨다. 구명조끼를 입고 준비운동과 간단한 노 젓는 법을 익히고는 바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강사 분들 배에 묶고 가고 나는 혼자 갔다. 5분도 되지 않아 감을 익혔다. 앞으로 쓱쓱 잘도 나갔다. 바다는 에메랄드빛이다. 정말 예쁘다. 물결도 예쁘다. 햇볕에 살갗이 따갑긴 했지만 내가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도 줄을 풀어주셨다. 역시! 나보다 더 잘 탄다. 서로 물도 뿌리며 열심히 노를 저었다. 아이들과 내가 노는 모습을 보며 강사분이 친동생 같다고 하셨다. 우린 항상 한 가족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누군가 한 번 더 짚어주니 새삼스레 기분이 좋다.
기분 좋게 카약을 타고는 협재로 돌아왔다. 나는 힘을 많이 줬는지 발이 딛을 때마다 아파서 씻고 잠집에서 좀 쉬고 아이들은 짐을 놓고 쌩하니 다시 바닷가로 나갔다. 얼마나 잤을까. 성준이가 걱정돼서 왔다고 문을 연다. 금방 나가겠다고 말하고 옷을 입었다. 와 준 녀석에게 고마웠다. 나가보니 성준이는 모래성을 쌓고 있고 민철이는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밥 먹으러 가자고 하니 싫다고 고개를 젓는다. 밥 먹으러 가려면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그럼 다시 바다에서 못 논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삼각김밥에 라면을 먹고 다시 와서 놀기로 했다. 하하. 여기까지 와서 라면이라니. 셋 다 배가고파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은 배가 덜 찬 듯해 삼각김밥 한 개씩을 더 먹었다. 그리고 다시 바다에 가서 잠깐 놀다가 여덟시가 조금 넘어 들어와 씻었다.
하... 오늘을 조금 더 붙잡고 싶다. 조금 뒤에 과자잔치도 하기로 했는데 내가 눈이 감긴다. 빨리 써야 나갔다 올 텐데 굼벵이 같은 녀석들 놀다 이야기하다 하며 늦장을 부린다. 오늘 밤을 조금 더 늘리고 붙잡고 붙잡다가 자야겠다.
6월 28일
날씨: 좋다. 무척이나 좋다.
전날 12시에 잔 게 아이들에게 무리가 되었나보다. 8시 30분이 되도록 아이들이 꿈나라다. 눈을 슬핏 떴다가도 몸을 뒤집어 버린다. 나는 벌써 세수도 다 하고 가방도 다 챙겼는데... 줄곧 깨우니 겨우 일어났다. 벌써 아침식사는 마련되어 있었다. 먹기만 하면 두 그릇이다. 하... 청소년 될 준비라도 하듯 아이들이 여행 내내 밥을 어찌나 잘 먹는지. 흐뭇하면서도 또 약간 낯설기도 하다. 여기는 이틀이나 머물면서 잘해주셔서 정이 들었는데 혜리네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좀 서운하다. 혜리가 우리가 나가있으면 오빠들 어디 갔냐고 꼭 찾았다고 하던데... 혜리, 혜빈이 사진을 스무 장 넘게 찍고야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날씨가 좋다. 그래서인지 더 가기가 싫다. 고기국수를 먹고 공항으로 가려고 했는데 차를 놓쳐서 시간이 없다. 바로 공항으로 가 마지막 점심을 먹고 선생님들 기념품을 사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 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 행복했다. 6학년을 맡아 위태위태하기도 가슴 졸이기도 했던 선생으로서의 내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서로를 챙기며 아끼며 물 한 모금까지 나누어 마시는 우리가 참 좋았다. ‘우리’라는 말이 참 행복하고 고마운 시간들이었다. 민철, 성준, 한별 셋 다 길고 긴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 한 번씩 꺼내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면 한다.
첫댓글 퇴근길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성준이 민철이 참 부럽네요. 아주 특별한 졸업여행~
와 좋네요. 제주도 풍경에 아이들과 한별 선생님 모습이 그려져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어째 괜히 눈물이 찔금^^
처음에는 아이들의 일기를 옮긴듯하여 . . .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하며 이런생각 저런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써내려간 졸업여행 기행기 네요
여행은 그곳에서의 생생한 경험이 다녀와서 계속 생각하면서 어떤 의미를 갖게해서 약이되곤 합니다
아이들 또한 기억하고 있겠지요
제주도가 아름다운 사실에 대해서 익히고 돌아온 세사람이 부럽습니다
오년후 지안이는 어느곳을 걷고 있을까요?
잠이 안와 뒤척이다 이 글까지 보게 되었네요. 선생님과 아이들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져 재미나게 읽었어요. 아이들에게나 선생님에게나 좋은 추억 되었겠어요. 의리의 6학년! 이란 말이 퍼뜩 떠오릅니다.
왜 한별쌤 글을 읽고나니 울컥할까요?-_-)a
제주도에서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 많이 만들고 온 성준 민철 한별 모두가 부럽습니다. 그리고 맑은샘 안에서 잘 자라준 셋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한별샘의 글이 정말이지 너무 좋네요. 샘의 그 자리가 그립고 부럽네요. 소박한 이번 여행이 아이들에게는 피와 살이 될테고 한별샘에겐 내내 따뜻한 선물이 될 것 같아요^^ 읽는 내내 목이 메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