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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님 마님
박 화 성
건넌방 아랫목에 자는 듯이 누워 있던 은애 할머니는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부시시 몸을 일으켜 앞미닫이를 열고 마루 끝으로 걸어나왔다.
주먹으로 두어 번 허리께를 두드린 그는 나직한 시렁 위로 구부정한 두 팔을 올려서 양복상자 뚜껑을 내렸다.
그는 그것을 소중하게 받쳐 들고 고개를 기웃이 빼서 안방으로 향했다. 방에서는 재봉침 소리가 달달달달 굴러 나왔다.
“아이구! 허구헌 날 저 짓만 허니…….”
은애 할머니는 가만히 중얼거리며 양지쪽으로 상자를 놓고 그 앞에 펴더버리고 앉았다. 상자는 푸르고 노랗고 희고, 그리고 또 보라색 따위의 종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독감에 걸려 열홀 동안인가 앓는 동안에 꽤 많이 모여졌다고 은애 할머니는 오른손을 쫙 펴서 꾸욱 늘러 보았다. 산뜻한 종이의 색깔로 하여 그의 손이 더욱 검고 쭈글쭈글하게 보였다.
딸의 바느질 솜씨 덕을 보려고 들어오는 옷감들은 대개 매끈하고 반들거리는 색색종이에 싸여 왔다. 전에는 들어오는 대로 다 그럭저럭 찢겨지고 구겨지고 그래서 버려지게 마련이었는데 이제는 할머니의 손으로 정리되는 것이다.
소일거리가 없는 그는 늘 헤프게 없어지는 종이가 아깝게 생각되여서 한번은 그것을 꼭 모아 두었다가 떡장사하는 조카며느리에게 주었더니 보름이 지난 후에 질부는 아리랑 담배 다섯 감을 사서 들고 왔다.
“아주머니께서 주신 종이 덕분에 떡이 더 잘 팔렸지 뭡니까? 딴사람들은 모두 누리께한 잡지장이나 신문쪽인데 전 곱다란 종이에 싸서 주니깐 아주 기분이 좋다구 야단들이죠.”
“그까짓 게 몇 장이나 돼서?”
“한 장에 여덟 조각은 나거든요. 그러니 조옴 많습니까? 다음에두 또 좀 모아 주세요.”
그렇게 하여서 은애 할머니에게 종이를 정리하는 일거리가 생겼고, 그러면 또 번번이 담뱃갑이 쥐어지곤 했던 것이다."
“이번엔 웬 이렇게 찢어진 게 많아? 그래두 잊지 않구 상자 속에 넣어 준 것만이라두 고맙지 뭐야.”
할머니는 성한 것과 상해진 종이들을 가려 놓고, 찢어진 곳을 가위로 도려서는 성한 것들 위로 얹었다. 그리고 찢어진 종이들은 또 한 데로 함께 모았다.
문득 눈앞에 가물가물 어릿대는 것이 있는 듯하여서 머리를 드니 흰 나비 한 쌍이 아직은 반쯤만 피어 있는 개나리나무 바퀴를 팔랑팔랑 오르내리고 있었다.
“꽃들은 필랑 멀었는데 나비는 먼저 왔군!”
어쨌거나 나비를 보니 완연히 봄은 온 모양이라고 할머니는 버릇이 되어 버린 한숨을 또 길게 내쉬었다.
“인제 여든이 꽉찼으니…… 무슨 시원한 꼴을 더 보겠다구 또 넘겨? 인제 갈 데로 가버려야지, 후유!”
나비들은 아무래도 꼭대기까지는 못 기어오르겠다는 듯이 날개를 팔팔거리며 뱅뱅 돕다가 담 구석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배추꽃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대문 밖에서 자동차가 빵빵 기척을 하니까 식모애가 벌써 알아듣고 달려가서 빗장을 뺐다.
문 안이 바듯하게 들어선 여인은 할머니를 보고 큰소리를 냈다.
“샌님 마님, 안녕 하셨어요?”
그다지 뚱뚱한 몸피는 아닌데도 서기가 뻗치도록 번쩍대는 은색 상하 의복의 치마가 부풀어서 대문이 부듯했던 모양이었다.
“은애 엄마 방에 있어요?”
그는 겨드랑에 끼었던 납작한 책보를 들고 대청을 향하여 걸어갔다.
“아유! 인천 학생 왔수? 얘 어멈아! 인천 학생 왔다.”
재봉침은 그만두고 손으로 만지는 바느질을 하는지 조용하던 방에서 은애 엄마가 대청으로 발소리를 내며 나왔다.
“언니 오셨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어머닌 밤낮 인천 학생야. 노인이 다된 마님더러 학생이라면 되나요?”
“아이 어때? 난 여길 와야만 옛날의 회상을 일으킨단 말야. 인천 학생이라는 그 정다운 발음에서 말이지.”
오십대의 여인은 연신 입을 놀리면서 은애 엄마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흥 세상은 참 자알 돌아갔지. 저런 사람이 양반 행셀 하지 않나, 육십이 내일 모레인데도 새댁 차림을 허구 다니지 않나, 돈이 많으니 진짜 양반도 못 타는 전용 자동차를 가지구 있지 않나. 아유! 우리네처럼 가난뱅이에겐 야속한 세상이지만두 저런 자들에겐 예서 더 좋은 세상이 어디 또 있을꾸?”
은애 할머니는 거진 입속말로 신이 나서 중얼거렸다. 그러느라고 한번 만진 종이를 또 만져서 이리저리 놓았다 들었다만 하였다.
“그렇지만 말은 옳지. 제 말대루 나두 저치에게서 샌님 마님이란 말만 들으면 그만 옛날 생각, 영감 생각이 꼬릴 물구 뎀비거든.”
은애 할머니는 두 손을 놓고 머엉하니 샛노란 개나리꽃에 눈을 주고 있었다. 머리로는 아득한 사십여 년 전의 옛 일을 더듬으면서…….
지금은 은애 할머니지만 그때에는 명칭이 둘이나 있었다. 딸이 그때 네 살이었으니까 정선 어머니라고 불러도 되련만 기숙사의 학생들이 드난살이로 들어간 내외를 무엇이라고 부를는지 몰라서,
“우린 어떻게 불러야 되나요?”
하고 물을 때, 서른다섯 살의 젊은 마누라는,
“우리 영감님은 비록 가난해서 학교로 내외가 드난살이를 왔지만 본래 양반의 자손이시니깐 샌님이라고들 부르구려.”
하였다.
후취댁이나 되는지 샌님이라는 영감은 십오 세나 위여서 백발이 히끗히끗하고 주름살도 꽤 깊이 져서 노티가 있었다.
“그럼 아주머닌 그대로 아주머니라구 해두 돼요?”
“내가 샌님이면 우리 마누란 샌님 마님이 되는 기라우.”
이번에는 남편인 샌님이 나섰다. 학교의 바깥 심부름을 하는, 즉 뜰을 쓸고 학교의 정문이나 사무실의 문을 열고 닫고, 무엇이나 직원들의 요구하는 물품이나 일을 사오고 시행하는 소위 소사(小使)요, 솔직히 말해서 머슴의 사역으로 들어온 김응교(金應敎)는 기숙사가 새로 만들어지자, 그의 아내를 기숙생의 식모로 일하게 하어서 안팎으로 벌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기숙생들에게서는 샌님이니 샌님 마님이니의 존칭을 반지만 (스스로를 호칭을 지어 주었으니까) 학교에서는 언제나 ‘응교’이었다.
사무실 유리창으로 새파랗게 젊은 일인(日人) 여선생들이 머리를 내밀고,
“응교! 응교! 응교 어디 있소?”
하고 째어져 갈기난 목소리를 쨍쨍 울리면서 불러 댈 때 마누라는 그만 귀를 막고 싶도록 불쾌하고 듣기 싫어했다.
그러나 마누라를 부를 때는 ‘응교 부인’이라고 비교적 존대를 했다.
남편을 찾다가 없을 때 그들은 곧잘,
“응교 부인! 응교 어디 갔소?”
하고 물었다. 아니꼽고 화가 치밀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마누라는 꾹 참고 살아온 것이다.
많지 않은 일가붙이들은 정선 어머니라고 하여서 그에게는 ‘샌님 마님’이니 ‘응교 부인’이니 하는 것까지 합하여 셋씩이나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꼭 그의 맘에 들어 그를 흐뭇하게 해주는 호칭은 샌님 마님이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샌님 마님!”
하고 새된 소리로 부르면,
“네애, 왜들 그리우?”
하면서 쏜살같이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그들은 샌님에게 시키지 못할 것들을 그에게 부탁하고, 중에서도 인정이 많은 소녀들은 정선이 주라고 시골에서 보내 온 음식들이나 혹은 돈푼까지 주기도 했다.
인천 학생이 열두 살, 그때는 여자고등보통학교 본과 일학년에 입학이 되는 터라 그는 기숙사에 어린 학생으로 입사하였던 것이다.
인천 학생은 응교 내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구면인 것이다. 그들은 인천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왔고, 인천 학생네와는 바로 이웃이었다.
“웬일이세요?”
“여기까지 흘러온 기지 뭐.”
그들은 피차 당황해하던 나머지 이렇게 싱거운 말을 교환했다.
인천 학생네는 백정이었다. 자기네가 직집 쇠고기를 팔지는 않지만 남을 시켜서 큰 푸줏간을 경영하고 있었다.
소녀의 어글어글하게 큰 눈에 애원의 빛이 가득했다. 저들의 입에서 자기네의 근본이 탄로되면 어쩔까. 제발 입을 좀 다물어 주었으면…… 그런 눈초리로 그윽이 샌님 마님을 쳐다보았다.
“걱정 말아요.”
불쑥 그에게서 튀어나오는 말에 소녀는 비참하도록 일그러진 웃음을 띠고 새까만 머리통을 숙였다.
“샌님 마님 고마워요. 샌님 마님만 믿겠어요. 그 은혠 잊지 않을게요.”
소녀로서는 좀 엉뚱한 뒷받침까지 하였다. 그날 밤에 마누라는 남편에게 보고 겸 부탁을 했다.
“우리만 입을 다물면 누가 알겠어요? 인천에선 저 혼자 왔으니 우리 묻어 줍시다.”
과연 그들은 일체 숙면인 체를 하지 않았고, 인천 학생은 토요일에 가서 일요일에 올 때마다 무엇인가를 가져다 주었다. 생선 말린 것이나 떡이나 때로는 쇠고기 뭉치까지도…….
돈이 아쉬울 때는 인천 학생이 가져오는 고기를 팔기도 했다. 밖에 가지고 나가서 외치고 파는 게 아니래 기숙사의 반찬으로 정육올 사오랄 때는 넌지시 자기네의 것을 디밀었다.
그럴 때마다 좀 꺼림칙은 했지만 뭐 그냥 받는 게 아니고 정정당당히 물건을 주었으니까 번번이,
“이건 죄가 아니야. 당연한 일이지.”
하는 자위를 하였던 것이다.
삼 년간 인천 학생의 덕을 톡톡히 보다가 소녀가 졸업반 때에 그들은 아주 서울로 이사를 했는데도 꾸준히 서로 왕래를 하였고, 무슨 전문학교라나를 나와서 부잣집의 아들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떵떵거리고 사는 이날까지 인천 학생은 여전히 사흘이 멀다고 찾아오는 것이다.
다만 그냥의 방문이 아니라 바느질감을 끼고 오는 것이 서글펐다. 백정의 후손으로도 저렇게 장안을 휘젓도록 잘살고 있는데, 양반의 종자면서도 없는 탓으로, 가난한 죄로, 오십이 이마에 닿았건만 외딸 정선은 밤낮으로 바느질품만을 들고 있는 것이다.
“후유! 그놈들만 살았더라도…….”
어디를 갔다가 다시 넘어왔는지 흰 나비 한 쌍이 이제는 마당 한 복판에서 너울거렸다.
은애 할머니는 치마 끝을 뒤집어서 눈을 닦았다. 정선의 위로 두 번이나 참척을 본 아들놈의 생각만 나면 아무 때나 눈은 질적거려지고 금창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럼 언니! 모레나 보내 보세요만 워낙 밀린 게 많아서 어쩔지 모르겠어요.”
“바쁜데 나오지 말어. 보내긴 누굴 보내? 내가 받으러 또 와야지.”
딸과 인천 학생이 말올 주고받으며 대청으로 나오는데 운전수가 대문 밖에서 말올 넘겼다.
“이 과자상자를…….”
“오 참.”
대문이 열리고 여인은 두툼한 상자를 받아 식모애에게 주었다.
“이거 샌님 마님 잡수시라구 가져온 거야.”
“아이 뭘 그렇게 번번이…….”
그제야 은애 할머니는 마루에서 앉음새를 고치며 몸을 들썩거리고, 딸은 대청 끝에서 인사를 치렀다.
“언닌 저래 탈야. 인제 그만 가져오세요. 그럼 언니, 안녕히 가세요오.”
자동차 소리가 골목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샌님 마님의 입귀가 일그러졌다.
“세상두 좋지. 언니라니! 반말에 허세오에…… 돈이면 그만인 세상이니 더 말핸 뮐 해?”
워낙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서 한 번만 맡겨 본 어인이면 누구나가 다 단골이 되니까 날마다 틀이밀리는 바느질김에 묻힐 지경이었다.
안방에는 테이블만치 높은 길쭉한 바느질 상이 윗목으로 떠억 가로놓이고 그 옆 한쪽으로 재봉침이 있댜 식모애를 두어 부엌일은 참견하지 않고, 또 지시를 받아 박음질만을 하는 조수 여인을 데리고 하건만 바느질감은 책상으로 수북이 쌓인다.
“정말 모레 입게 해주세요, 네?”
서로들 빨리만 해달라고 조르지만 하는 수 없이 날짜를 정해야 하고 또 넘쳐 들어오는 것은 되돌려아 했다. 삯도 다른 데보다 이삼십 원이 더 비싸지만 유행과 맵시를 숭상하는 여지들의 사치욕이란 끝이 없는지 새로 났다는 각색 비단은 철철이 이 집에 먼저 모이는 듯싶게 옷감이 밀려드는 것이다.
인천 학생의 경우처럼 새치기를 할 때는 보통 삯의 갑절이나 세 곱을 내는 까닭에 정리로 보더라도 거절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를 먹는 셈이었다.
“아유! 에미는 남의 밥만 해주구 늙었는데, 딸년은 남의 바느질만 해주구 늙다니. 원 조상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대대손손이 이 모앙일까.”
입버릇이 되어 있는 푸념이 또 푸르르 솟아올랐다.
두 아들을 참척 본 후에 서른 살에야 얻은 딸이었다. 기숙사의 밥을 해주며 찌꺼기 음식으로 길렀을망정 내외에게는 다시없는 소중한 자식이었다.
“이 애나마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해줘아지.”
내외는 앉으면 그런 공론과 결심을 했다. 보통학교를 거쳐서 그리도 장안에서 일류로 꼽히는 이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시켰다.
어려서부터 수예에 뛰어나고 얌전하며 착실한데다가 인물마저 훤하니까 사윗감도 투철하게 나타났다. 집안도 좋고 전문학교를 나왔대서 졸업하자마자 큰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응교 씨네는 오랜만에 학교를 나와 딸과 함께 살았다. 다행히 시댁에 부모가 계시지 않고 직손이라 정선의 내외는 친정 부모를 알뜰히 섬겼다. 칠순이 가까운 아버지와 오십대의 어머니는 안팎으로 살림을 계란처럼 깨끗하고 알차게 꾸며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자손이 귀했다. 처음 이삼 년은 어린 신부니까 그렇겠거니 했지만 오 년을 접어들자 부모는 겁을 더럭 냈다.
“이게 여엉 해산을 못 하려나?”
어머니가 느지막이 출산을 시작했으니 딸도 내림이면 다행하지만 호옥 하는 우려로 날마다 조바심을 댔다.
“나처럼 낳아도 참척을 본다면야 차라리 안 낳는 게 났지만 그래도…….”
그러던 게 칠 년 만에야 태기가 있어서 딸을 낳았다. 아들이 아니라 섭섭은 하지만 사위도 그 해에 과장으로 승급하여서 손녀 은애는 이름 그대로의 은혜와 사랑을 타고 났던 것이다.
영감은 손녀를 안아 보고 사위와 딸의 극진한 정성을 다한 장례식으로 파란 많던 일생으로 끝났다. 그는 운명하기 전까지도,
“딸이라구 섭섭히 여기지 말우. 낳기 시작했으니까 옥동 같은 아들도 낳겠지.”
하는 위로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아들을 기다려야 할 시기에 사위는 급성 폐렴이라는 이상한 열병으로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정선이 이십구 세 되던 해 봄이었다.
“그놈의 아홉수가 기어코 나빴단 말야. 원 그 달덩이 같은 년의 어디가 박복하게 생겼길래 청과부가 되었을까?”
샌님 마님의 한숨이 말끝마다에서 호흡마다에서 사라질 줄을 모르는 날과 달이 끈끈이마냥 깐깐하게 지나가고 넘어가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기집이란 너무 손끝이 얌전해도 탈이지. 그결 그예 풀이해 먹구 살게 마련이니 말야.”
인천 학생 모양으로 설렁벌렁하는 덜렁꾼이가 도리어 대복을 타고 나는지 모른다. 양주 학생은 음전하고 부잣집 맏며느릿감 같더니만 과연 대갓집 종손이 되었고, 춘천 학생은 영리하고 민첩해서 학감이나 사감의 비위도 잘 맞추고 사랑도 받더니 기막히게 출세하여 나중에 대신의 부인이 되고 말더라니……
그리고 그 심술 사납고 변덕쟁이 마산 학생은 남편과 이혼하여 행상을 한다던가. 언제나 말이 없이 생글생글 웃고만 있던 얄상얄상한 개성 학생은 청춘에 죽어 버렸다고. 그리고 공부나 글씨나 뭣에든지 첫째로 꼽던 전라도 광주 학생은 지금 서울에서 한다하는 여학교를세워서 교장이 되었다 했다.
“나무 될 상은 떡잎 때부터 알아본다더니만 그걸로 보면 사람 될 상은 어릴 때부터 그려지는 모양이지. 오 참 또 하나 있군.”
함경도 원산 학생은 서글서글한 게 연한 뱃속같이 상냥하면서도 차고 매몰찬 데가 있었다.
그 학생은 달밤에도 혼자 나와서운동장 한가운데 우뚝 서 있거나, 유동목(流動木) 나무에 걸터앉아서 한참씩 뭔가를 생각하고 있기를 좋아하였다.
그 학생이 상급생이라 기숙사의 비용을 맡아서 썼는데 한번은 자기가 덜컥 자기네의 소용되는 물건을 사버리고는 정작 반찬거리를 잊고 왔다.
“그럼 왜 돈이 틀려요? 그 반찬거리 살 돈은 남아얄 텐데요.”
“아이구 내 정신 즘 봐! 깜박 잊었네. 내가 뭘 하나 샀더니만. 내 얼핏 다시 사오리다 ¨
“샌님 마님이 뭘월 사셨길래요?¨
“빨간 비단신이 하두 이쁘길래 우리 정선이 신발을 떠억 사구선 그만 깜박 잊었지 뭐유?”
원산 학생은 그 새까맣게 총명한 눈으로 깜박대고 있다가 방긋이 웃었다.
“그럼 그건 제가 정선이께 선사하죠. 오늘은 그냥 이걸루 저녁 반찬 하시구 그건 내일 사기루 허세요.”
“그래서야 되우?”
“아녜요, 그 돈은 제가 물 테니요. 그러잖아두 추석인데 제가 정선이께 선물 하나쯤 할 만하지 않아요?”
“너무 고마워 이걸 어떡허우?”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원산 학생은 싹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가 열네 살인데 어린 처녀로는 지나치게 알심이 있고 인성이 많더니만 지금은 이 나라에서도 아주 유명한 큰 책을 만드는 여자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 원산 학생은 인천 학생보다 한두 살 위인데도 아직도 젊은 티가 가시지 않았는데, 그 역시 뻔질나게 바느질감을 보내 왔다.
그뿐인가 양주 학생도 가끔씩 운전수에게 두루마기니 저고리니를 부탁해 오고, 그 장관 마누라가 된 춘천 학생도 두세 번 온 일이 있는데, 그들 중에서 제일 교만을 부리는 치가 그 춘천 학생이었다.
“그때도 깜찍하더니만…….”
모두 다 언니로 통하면서도 딸은 광주 학생이나 원산 학생이 오면 꼭 선생님이라고 존칭을 했다.
“그 학생들더런 왜 선생님이라니?”
“아이 어머닌 아무 보구나 밤낮 학생이래. 한 분은 교장선생님이구, 또 한 분은 우리 모두에게 교훈이 되는 글을 써주시는 분이니까 선생님이라구 해야지 않아요?”
“얘!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깐 어려서 내가 짐작한 대루 다 되고 말더라.”
“그러다간 어머니 관상쟁이가 되시겠네.”
“그러게나 말이다. 거진 다 되어 있지. 그렇지만 우리네 앞길은 모르지 않았니? 난 남의 밥만 지어 주구 늙었는데 넌 남의 바느질만 해주구 늙었으니 말이다.”
“어머닌 또 그 소리셔.”
딸은 발끈해서 그냥 바느질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이 샌님 마님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가 있다. 손녀 은애마저 양재인가 뭐를 전문한다고 늘상 그 어머니의 상 앞에 서서 큰 종이나 옷감을 펼쳐 놓고 그려 가며 가위로 싹뚝싹뚝 잘라 대는 데는 딱 질색인 것이다.
“목수장이는 끝이 있어두 바느질아치의 끝은 없다는데, 밤낮 가위질로 천을 싹싹 오려 내고만 있으니깐…….”
은애만은 그야말로 인천 학생이나 양주 학생처럼 편히 살게 하고 싶었다. 책을 만든다거나 학교를 세운다는 일은 저마다 못 하는 것이지만 평범한 주부로의 평안한 생활쯤이야 흔히 바랄 수 있는 사실이 아닐까?
그만큼 뛰어나게는(자가용을 가질 만큼) 살지 못할지라도 제 어미처럼 평생을 바늘만 가지지 않도록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얘! 넌 딸 하날 가지구 딴 걸 시키지 왜 하필이면 그걸 하게 내버려두니? 진절머리두 나지 않아서…….”
“지가 하겠다는 걸 어떡해요? 또 그거 아니면 별수 있어요? 혼자 벌어먹긴 그게 편리한 직업인걸요.”
“아니 너 미쳤니? 아직 결혼두 않은 앨 보구 혼자라니?”
“사람의 일생을 누가 장담합니까? 전들 이렇게 될 줄 짐작이나 했겠어요? 그러니 미리 생활력을 길러야죠.”
“이런 생각들이 다 방정이란 말야.”
할머니는 손녀의 앞날을(제 어미처럼 재봉침 에 매달리는……) 내다보는 것 같아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얘 은애야! 어미가 아무런들 너 하나쯤은 맘껏 공부시킬 수 있을텐데 왜 그 청승맞은 양잰가를 허는 거냐, 응?”
“할머니두 참, 난 엄마하구 달라요. 양재도 하지만 디자인이라는 걸 연구하거든요.”
“뭐? 띠자잉? 아니 뚜쟁이가 좋겠다. 연구는 해 뭘 해? 밤낮 연구 영구!”
“호호 할머니두, 지가 성공만 하면요오, 그날부터 엄만 이걸 다 집어치우구 지가 만들어 드리는 양복을 떠억 입구, 호호.”
“매친것!”
잘은 모르나 어쨌건 어미가 바느질을 집어치운다는 건 반가운 소리요, 또 제 입성도 은애가 제 손으로 지어서 버젓하게 입고 다니는 게 싫은 일은 아니나 제발 그 재봉침과는 인연을 멀리하게 하고 싶었다.
“난 밥 짓다 늙구 어민 바느질하다 늙었는데 너두 또 옷 짓다 늙을 테냐?”
“그럼 어때요? 사람이란 일생을 뭘 하면서 늙어 가는 게 아녜요?
할머니나 엄마나 다 남을 위해 봉사를 했으니 안 한 거보다 얼마나 장해요? 저두 그렇죠. 디자인을 연구해서 작은 걸루두 크게, 나쁜 걸루두 좋게, 좋은 걸루는 더욱 훌륭하게 만들면 오죽 좋아요? 참 할머니! 지가 할머니 나이트가운 한 벌 지어 드릴게, 응?”
“애라 매친것! 다 늙은 게 양복을 입어? 고게 별소릴 다 하네.”
“호호, 양복이 아니라 자리옷 말예요. 그걸 입으심 아주 멋질 거야!”
은애는 팔딱팔딱 뛰어서 안방으로 건너갔다. 스물세 살에 저만큼 철이 들면 괜찮겠다 싶어서 샌님마님은 합죽한 입을 헤 벌리며 웃었다.
게다가 듣자니까 아직 어린데도 무슨 발표회를 한다든가 해서 한번은 각색 화초의 화분이랑 붉은 천을 줄레줄레 단 꽃다발을 한 짐이나 싣고 왔고, 인물도 어미보다 더 기모하게 아기자기 예쁜데다가 키마저 날씬하여서 양장을 하고 나갈라치면 그저 통으로 깨물어 먹도록 싶게 맵시가 곱고 아담하고 귀여운 것이다.
“하느님 그저 우리 은애만은 제 남편이랑 백년해로 하게 해줍시오.”
하루에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여 빌고 있는 축원을 할머니는 또 한번 정성껏 외우고 나서 종이를 마저 추렸다.
성한 것들은 돌돌 말아서 끈으로 감고, 찢어진 종이들도 성한 것으로 한번 싸서 돌돌 말아 그것은 표적이 나도록 끄나풀로 묶었다.
할머니는 치마를 털고 일어나 빈 상자는 다시 시렁에 얹고, 파지 묶음은 안방 바느질 상 아래 구석께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던진 다음 좋은 것은 들고 건넌방으로 들어와서 선반에 올려놓았다. 질부가 담뱃갑이나 가지고 오면 쥐어 줄 양으로…….
“어머니, 아까 인천 언니가 가져온 과자 잡숫겠어요?”
딸의 소리가 방으로 건너왔다. 할머니는 또 아랫목에 잠시 몸을 뉘고 있던 참이었다.
“뭘? 이따가 은애 오건 겉이 먹지. 지금은 아무 생각도 없다.”
“그럼 그러세요.”
잠깐 잠이 들었던가 떠들썩하는 소리에 눈을 뜨니 은애가 쟁반에 큰 접시랑 찻그릇이랑을 잔뜩 담아 가지고 들어왔다.
“할머니, 일어나세요. 이거 잡숫게…….”
접시에 샛노랗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카스테라가 수북이 괴어 있었다.
“자 할머니!”
은애는 큰 덩이 한 개를 집어 할머니에게 드렸다.
“어멈은?”
“엄만 나중에 잡숫겠죠. 지금은 이거예요.”
은애는 제 눈에 대고 손가락을 배앵뱅 돌렸다. 눈알이 돌도록 바쁘다는 표현이었다.
“그럼 너나 먹으렴.”
“물론 이죠.”
은애는 한 입을 크게 베어 볼이 불룩하도록 입에 물고 우물거리면서 찻잔에 차를 부었다.
“이거 반도호텔의 특제라니 많이 잡수세요, 할머니!”
“오냐 오냐.”
과연 전에 먹던 것보다 더 만문한 샛노란 양떡은 입에서 살살 녹았다. 어느샌지 한 덩이가 눈 녹듯 입 속에서 스러졌다. 독감 후라 밥맛은 없었는데 그것만은 참 맛나다고 생각했다.
“자요, 할머니!”
은애가 집어 주는 대로 널름널름 다 먹고 나서 차를 두 잔이나 마셨더니 허리에 착 달라붙었던 뱃속이 볼록하게 일어났다.
“앳참, 자알 먹었다. 어멈두 먹으래라. 여간 맛있는 게 아니라구.”
“할머니, 이따가 또 잡수세요, 네?”
은애는 다 거둬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영감은 이 좋은 호강을 받지 못하고, 저 예쁜 손녀의 장성한 모습도 못 보고 가고 만 것이다.
‘그저 우리 은애만은…….’
날마다의 차례가 정해졌는데, 인천학생의 시급한 저고리 때문에 새치기를 감행하는 정선은 저녁 밥마저 가족들과 함께 먹지 못하고 말았다.
“그저 종일 저러구 서서…… 정말 골병감야.”
이날따라 할머니는 저녁밥 맛도 괜찮아 반쯤이나 먹고, 또 자기 직전에 은애의 간곡한 권으로 양떡을 한 덩이 먹고 잤더니만 기어코 밤중에 탈이 나고야 말았다.
배가 부글부글 끓고 창자가 쥐어뜯는 듯이 아팠다.
“아이구 배야! 늙으면 그저 죽어야지. 철따구니없이 맛나다구 양껏 먹었으니 왜 탈이 안 날꾸. 아이 배야.”
새로 한시엔가 잠이 든 딸이 깰까 봐 할머니는 이를 악물고 소리없이 앓다가 변소에 갔다. 불이 없으니까 발로 더듬어서 몸을 앉히고 한바탕 시원스럽 게 쏟았다. 휴지통을 더듬으니 종이가 시원찮게 남아서 부스러기까지 다 주워서 용변을 마쳤다.
“내가 앓느라구 파지 뭉텡 이를 가져다 놓지 않았더니만…….”
변소에를 다녀오니 뱃속이 좀 편한 것 같더니 조금 있으니까 또 새롭게 부글거리며 아래가 묵직한 게 갑자기 뒤가 급해졌다.
분합문 소리가 나지 않도록 다시 조심조심 유리문을 열어 놓고 나니 금시에 쏟아질 것 같은데 인제 휴지가 문제였다.
할머니는 낮에 쓰레기통에 던져 둔 파지 뭉텡이 생각이 나서 가만히 안방 미닫이를 열고 책상 아래를 더듬느라니까 마침 끄나풀로 묶은 종이 몽텡이가 손에 잡혔다.
‘그게 왜 통에서 떨어졌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하며 그는 달리다시피 변소로 가서 한 번을 내리쏟고 나니 또 뒤가 묵직했다. 할머니는 밤중에 또 오지 않도록 차분하게 일을 마치고 파지를 헤쳐서 우선 아무 종이쪽이나 집히는 대로 써버리고 나머지는 휴지통에 꽃아 놓고 나왔다.
깐질깐질 배는 아프지만 다행히 다시 변소에는 가지 않아 깊은 잠을 못 이루고 자며 깨며 하다가 날을 밝혔는데 밖에서 식모애가 호들갑스런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 아니 언니! 이것 좀 보세요. 이게 웬일이죠?”
할머니는 건넌방 앞 미닫이를 열고, 은애의 모녀는 식모애를 따라 변소로 들어갔다.
‘아마 내가 밤중에 어두워서 바닥에 깔기구 온 모양이군.’
그러나 딸의 손에는 한 몽텡 이의 새빨간 종이들이 들려 있지 않은가.
‘어제 내가 싼 종이는 보라색 이었는데…….’
“이게 웬일일까? 이게 왜 거기 가서 있지? 이걸 어째? 오늘 찾아가겠다는 저고린데…….”
딸은 대청 끝에 그것들을 펼쳤다.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그리로 갔다. 진홍색은 안감인 모양이요, 그 안에는 연연한 하늘색의 은빛 섞인 거죽감이 번쩍대고 있었다.
“아니, 하필이면 거죽이 없어졌네. 이것 봐! 섶이랑 깃 하나가 없어졌어!”
하나씩 챙겨 보던 딸이 변색을 하며 부르짖었다.
“얘야! 그거 내가 파지 뭉텡인 줄 알구…… 어젯밤 내내 배가 아파서 설사를 했는데…… 아이구 저걸 어쩌면 좋아!”
샌님 마님은 펄썩 마룻바닥에 주저앉으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어머니가?”
딸이 멀거니 어머니를 건너다보는데 곁에서 얼른 은애가 옷감을 채갔다.
“이거 이따가 제가 모자란 만큼만 사오겠어요. 그건 그렇구 할머니가 설살 하셨어요? 어머! 정말 눈이 퀑하게 들어가셨네. 아마 어제 그 카스테라가 말썽이 있나 봐! 너무 제가 강권을 했더니만, 그저 모두가 다 제 탓이에요. 할머니 조금도 염려 마세요. 제가 가서 곧 사올 게요. 자아 어서 방에 들어가 누우셔야지.”
은애는 할머니를 일으켜서 방으로 모셔 들어가면서 어머니에게 눈짓을 했다. 은애 엄마는 건넌방 문턱에서 말했다.
“어머니, 염려 마시구 약이나 잡수세요. 은애야! 이따가 옷감 가져오면서 약이랑 사오너라.”
“네에.”
방울같이 막고 쌀랑한 소리로 대답하면서 은애는 할머니의 베개를 그의 머리 밑으로 밀어 넣었다.
“얘 은애야! 안감에두 흙이 묻지 않았던? 더러워졌을 텐데…… 아이구 늙으면 어서 죽어야 해!”
“그까짓 다시 떠오면 되잖아요?”
“또 돈이 무척 들 게 아니냐?”
“뭘요? 그 헝겊은 제가 얼마든지 이용하니깐 하나두 버리진 않아요. 딴 돈 안 들구 좋죠 뭐.”
“그런 결루다 뭘 만들게?”
“별거 별거 다 만들죠. 작은 걸루두 크게, 나쁜 걸루두 좋게, 좋은 걸루는 더 훌륭하게 만들어 낸다니깐요. 글쎄 엄마 바느질하군 여엉 틀린다지 않았어요? 그러니 할머닌 아무 걱정 마시구 오래오래만 사세요, 네?”
“그 양재라는 게 말이지?”
“글쎄 그렇다니깐요.”
“그렇기만 하다면야 조옴…….”
하다가 할머니는 ‘좋을까?’를 입 속에서 덧붙였다.
‘난 남의 밥만 짓다 늙었는데 어민 남의 바느질만 해주다가…….’
그렇지만 자기의 양재는 어미의 그 융통성이 없는 바느질과는 아주 다르다고 뽐내는 손녀의 능금 모양으로 싱싱한 뺨을 바라보면서 샌님 마님은 저녁 노을 같이 붉은 희망을 품어 보는 것이다.
(《현대문학》, 196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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