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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네, 송승준입니다.” 윤팀장은 송승준(27)에게 간단히 안부를 묻고는 “해외파 2년 유예조항이 올해에 한해 한시적으로 없어질 것 같다”고 전했다. 같은 날 오전, 한국야구위원회(KBO) 8개 구단 단장들은 회의를 갖고 ‘1999년 1월 이후 해외에 진출해 5년이 지난 선수들이 국내 복귀할 경우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규약을 올해에 한해 없애기로 합의했다.
송승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진짜요?”하고 물었다. 송승준은 얼마 전 군입대를 결심했다. 상무 입대를 위해 필요한 서류를 반 정도 제출한 상황이었다. 내년까지 군입대 연기가 가능하지만 메이저리그 입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연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외파 2년 유예조항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송승준의 고백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송승준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1월 31일 KBO 이사회가 단장 회의의 안건을 최종 결정하자 그는 허탈한 듯 “심사숙고 끝에 군입대로 가닥을 잡았는데 상황이 변하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날 윤팀장이 송승준에게만 전화를 걸었던 건 아니었다. 부산공고에서 개인훈련 중인 이승학(28)에게도 같은 내용을 전했다. 윤팀장은 “네가 지명될 수도 있고, (송)승준이가 될 수도 있다”며 “아무 것도 결정된 사항이 없으니 꾸준히 몸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승학은 짧게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윤팀장은 깜빡하고 묻지 않은 게 생각났다. 다시 이승학의 휴대폰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가수 김종국의 ‘제자리걸음’이라는 노래가 통화 연결음으로 흘러 나왔다. “천 걸음을 가도 만 걸음을 걸어도 난 언제나 제자리걸음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 니가 와줄까봐.” 윤팀장은 갑자기 침울해졌다. 송승준과 이승학이 미국 무대에서 고전할 때 사심 없이 한국 복귀를 권유했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롯데로 복귀하든 어느 팀을 가든 고향 후배들이 야구를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두 후배의 통화 연결음은 지금의 처지를 그대로 말해주는 고해성사였다. 이승학이 전화를 받자 윤팀장은 이렇게 물었다. “네가 스크랜튼(필라델피아 산하 트리플A)에서 방출된 날짜가 정확히 언제지?”
‘나를 외치다’와 ‘제자리걸음’
KBO의 이번 결정으로 혜택을 받는 선수는 송승준과 이승학을 포함해 김병현(28,콜로라도), 최희섭(28,탬파베이), 추신수(25,클리블랜드), 류제국(24,시카고 컵스) 등 총 6명이다. KBO 이상일 사무차장은 “롯데, KIA 연고 선수가 많아 형평성을 고려해 이 팀들에게 1명씩 우선 지명권을 주기로 했다”며 “나머지 4명은 6개 구단이 추첨을 통해 배정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나머지 4명을 두고 6개 구단 단장들이 머리를 싸맬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 선수들 가운데 올해 국내로 복귀할 선수는 없다. 김병현은 내년 이후 자유계약선수(FA)를 노리고 있고 최희섭은 메이저리그 진출이 무산되면 차라리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이다. 추신수나 류제국은 낙담하기 이른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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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는 송승준과 이승학을 저울질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이승학이 지명대상이다. 송승준은 언제든 병역을 해결해야 하지만 이승학은 허리 수술로 군 면제를 받았다. 방법이 없진 않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일단 송승준을 지명하고 군 제대까지 기다리는 방안도 있다”라고 말했다. 반드시 송승준을 잡겠다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나 지금 롯데는 누구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2001년 이후 롯데는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전무하다.
롯데도 이 점을 감안한 듯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겠느냐”며 “해외전훈지에 떠나 있는 이상구 단장이 국내에 복귀하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롯데는 늦어도 2월 28일까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편 송승준은 다시 고민에 들어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의 ‘미칠 지경’이 됐다. “갑자기 전해진 소식이라 충격이 크다. 군 입대를 강행해야 할지 혼란스럽다”며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몸 상태를 묻자 “요즘은 캐치볼 위주로 몸만 관리해 왔다”고 밝혔다.
송승준에 비해 이승학은 고민이 덜하다. 그토록 바라던 국내 복귀가 성사됐고 고향팀 롯데에서 뛸 수 있게 돼 반가울 따름이다. 부모님께도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아직 이승학의 부모님은 아들이 다시 미국에 가는지 국내에 남아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고민이 있다면 지난해 마이너리그 트리플A 플레이오프전 이후 실전투구를 하지 못해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라는 것. 이승학은 부산공고에서 몸을 만들어 왔지만 송승준처럼 주로 하프 피칭과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감각만을 유지해 왔다.
이승학은 “어느 팀이든 받아만 준다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가능하면 선발투수로 뛰고 싶지만 팀이 원하는 보직이면 무엇이든 맡겠다”며 “미국야구에서 익힌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승학은 마이너리그 시절 시속 140km 초∙중반대의 포심패스트볼과 투심패스트볼을 잘 던졌다. 변화구로는 커브와 하드슬라이더를 주로 던졌다. 지난해 트리플A 스크랜튼에서 투구하던 이승학을 체크했던 롯데 스카우트팀 정진식 씨는 “공이 묵직하며 제구력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승학의 또 다른 장점은 승부구로 몸쪽 공을 잘 던진다는 점이다.
송승준과 이승학은 절친한 선∙후배 사이다. 미국 진출 후 삶도 거의 같았다. 그러나 앞으로 찾아올 운명은 그전 같지 않을 전망이다. 두 선수의 통화 연결음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승학 생년월일 1979년 2월 6일 신체조건 195cm/105kg
약력 부산공고-단국대학교 중퇴-필라델피아 필리스
*송승준 생년월일 1980년 6월 29일 신체조건 183cm/84kg
약력 경남고-보스턴 레드삭스-캔자스시티 로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