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성공회(Church of England)는
16세기 잉글랜드 왕국의 종교개혁으로 형성된
잉글랜드의 성공회이다.
세계 성공회 공동체(Anglican Communion)의 원조(元祖)와도 같은 교회이다.
흔히 잉글랜드 국교회 라고 부르는 교회는
성공회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잉글랜드 성공회만을 가리킨다.
종교개혁 이전 잉글랜드 교회
잉글랜드 교회의 유래는
터툴리안 교부가 200년경 영국에 주둔하던 로마 군대에
기독교인이 있었다는 기록을 남긴 것이나,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잉글랜드 교회도 참여했다는
아타나시우스 교부의 설명을 볼 때에
최소 2세기이후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6세기 말에는
아우구스티노가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어
잉글랜드 교회를 더욱 발전시켰으며,
6세기 휘트비 회의를 통해
로마교회에 합병되었다.
15세기
서방 교회 대분리(로마와 아비뇽에서 동시에 교황이 나온 사건) 때는
로마측을 지지하였다.
잉글랜드 종교개혁
16세기 유럽 종교 개혁의 영향과
국내외의 종교, 정치 요인 등으로
헨리 8세가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크랜머의 건의로
잉글랜드 교회의 로마교회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잉글랜드 종교개혁으로
잉글랜드 성공회의 기틀이 잡혔다.
잉글랜드 종교개혁 시기에
영국 성공회에서는
전례(Liturgy)가 개혁되었는데,
종교개혁자 토머스 크랜머 캔터베리 대주교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평신도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1549년
영문 성공회 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를 작성하였으며,
아침·저녁기도와
감사성찬례 때마다 영문 성서를 쓰도록 하였다.
이러한 종교 개혁 전통은
세계성공회공동체 성격형성에도 영향을 주어,
현재 각 지역 성공회들은
자신들이 속한 지역말로 만든 성공회 기도서와 성서를 사용하고 있다.
메리 여왕 때
로마 가톨릭 복귀 운동으로
휴 레티머 주교, 토머스 크랜머 대주교 등의 성공회 성직자들이 순교하는 등
탄압을 받았으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즉위하여
잉글랜드 성공회를 부활시킴에 따라,
영국 성공회는 명실공히 잉글랜드의 국교로 확립된다.
세계성공회공동체 형성
18세기 산업혁명기에는
존 웨슬리 신부의 감리교 운동,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성공회 평신도들의 사회참여
(로버트 레이크스의 주일학교 운동, 윌리엄 윌버포스의 노예폐지운동)등의 복음주의 운동이
활발했으며,
1830년대에는
옥스퍼드 대학교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옥스퍼드 운동으로
성공회의 보편적 교회(Catholic)전통들이 회복되었다.
또한 근대 성공회는
대영제국의 식민지 개척과
선교사들의 활발한 해외선교활동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등으로 교세가 퍼져나가면서
잉글랜드 성공회(Church of England)에서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