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화뇌동 (附和雷同)의 참화
임병식 rbs1144@daum.net
달포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벌어진 폭도 난입 사건을 떠올리면 ‘부화뇌동(附和雷同)’이라는 사자성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당시 폭동의 주체는 주로 20·30대 청년들이었으나, 그 모습은 조직된 집단이라기보다 방향을 잃은 오합지졸에 가까웠다. 사태가 수습된 뒤 드러난 현실은 더욱 씁쓸하다. 주모자로 의심되는 인물들은 자취를 감췄고, 실제 처벌을 받은 이들은 개별 가담자 66명에 불과했다.
이 사건에서 지금까지 단 한 명의 ‘배후’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소환 조사조차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없다. 이 장면은 나로 하여금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군과 산업 전반뿐 아니라 민간인의 삶을 무참히 파괴했다. 전쟁 이듬해, 큰댁은 지방 폭도들이 저지른 방화로 전소되었다. 당시 여섯 살이던 나는 어른들을 따라 그 현장을 보았다. 대문이 달린 행랑채가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고, 불에 탄 대나무 발 닭장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공포는 어린아이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큰댁과 우리 가족은 피난길에 올랐다. 난리가 나면 외딴곳으로 피신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어른들은 오히려 읍내로 들어갔다. 그 편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무렵의 기억 가운데 특히 두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나는 아버지를 따라간 대중목욕탕에서의 일이다. 커다란 통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구조였는데, 중앙으로 갈수록 물이 깊어졌다. 발을 내딛는 순간 상상 이상으로 뜨거운 물에 놀라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다른 하나는 피난에서 돌아온 뒤, 불타버린 큰댁 터에 임시로 지은 오막살이에서 겪은 일이다. 제사 음식을 준비하느라 집안이 분주했고, 마당에는 대나무 발을 엮은 평상이 놓여 있었다. 나는 개구멍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틈 사이로 늘어진 고추를 평상 밑에 있던 닭이 먹이로 착각해 쪼아버렸다. 눈앞이 번쩍할 만큼의 통증이 몰려왔고, 피가 흐르자 어른들은 웃음과 걱정이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역시 폭도들의 방화라는 집단적 광기에 따른 2차적 피해였다.
내가 파악한 여러 사건 가운데 여수·순천 14연대 반란사건 역시 본질은 부화뇌동의 결과였다. 이는 내가 자료 조사를 통해 확인한 바, 사상이나 이념으로 단단히 무장한 집단의 조직적 봉기라기보다 일부 핵심 인물에 의해 선동된 다수의 단순 가담자들이 벌인 사태였다. 지창수 상사, 김지회 중위, 홍순석 중위, 민간인 유목윤 등 소수의 핵심 인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상황에 휩쓸린 이들이었다.
여순사건을 이해하려면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해방 직전 여수 천일고무공장에 취업해 남로당 세포조직을 확장했다. 이 공장은 당시 국내 굴지의 규모를 자랑했다. 이후 박헌영은 정판사 위조사건을 일으킨 뒤 월북해 황해도에 정착했고, 군사정보학교를 세워 핵심 간부를 양성했다. 김지회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해방 직후 여수 지역에는 불순단체가 20여 개에 달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가장 큰 문제는 좌익 세력의 준동이었고, 경찰은 사찰 활동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주목 대상이 된 인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군으로 피신했다. 당시 14연대는 모병제로 운영되었기에 입대 의사가 있으면 출신과 이력에 대한 엄격한 검증 없이 받아들였다. 그 결과 문제가 누적되었다.
반란이 발생하자 현직 경찰관 72명이 무참히 살해되었다. 비상소집에 응했다가, 혹은 파출소 근무 중, 또는 집에 숨어 있다가 끌려 나와 희생되었다. 이들을 붙잡은 주체는 지방 좌익뿐 아니라 14연대 군인들이었다. 과거 남로당 세포로 활동했던 이들이 이미 경찰관들의 거주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9일 동안 여수와 순천을 장악하며 수많은 우익 인사와 경찰을 학살했다. 그러나 정작 주모자들의 최후는 흐릿하다. 김지회와 홍순석은 지리산으로 숨어들었고, 이용기 인민위원장은 진압군이 접근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지회는 이듬해 구례 달궁에서 진압 부대에 의해 사살되었는데, 시신 확인은 애인 조경순의 증언으로 가능했다. 그녀의 확인이 없었다면 그의 죽음조차 미궁에 빠졌을 것이다.
지창수는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6·25 전쟁 중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 지시에 따라 보도연맹 사건과 함께 즉결 처분되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비극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거대한 실체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선동에 휩쓸린 이들만 희생되었다는 점이다. 주모자는 언제나 숨어버리고, 잡히는 것은 늘 ‘송사리’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뒤에 숨어 선전과 선동을 일삼는 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일벌백계(一罰百戒)로 부화뇌동의 악순환을 끊지 않는 한, 비극은 형태만 바꿔 반복될 것이다. 여러 사건을 되짚으며, 나는 그 절실한 필요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2025)
첫댓글 <부화뇌동의 참화>가 참으로 타산지석이 될 만한 교훈 적인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번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도들 모두가 핵심들은 오리무중이고 잔챙이들만 잡혀서 신세를 망치게 되었으니
부모된 사람은 자녀 교육을 잘 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리 통에 개구멍바지 입고 평상 밑에 있던 닭이 고추가 쪼임을 당했으니 얼마나 황당하고 고통이었습니까!
아연실색 기절초풍했지 싶습니다.
요즈음 시위 현장에 일당 얼마 씩 받고 참가하는 국민의 힘 집회 참가자들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돈 몇 푼 받고 시위에 참가하고 그 중에 일부는 폭도로 잡혀 일생을 망치게 되었으니 얼마나 애석합니까.
유튜브에 돈을 나눠 주면서 '이것 민주당 모르게 하라' '돈을 감춰라'하는 장면을 보고 큰 일이다 생각했습니다.
여수 14연대 반란사건도 주동자는 따로 있고 현장에서 폭도로 활동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20대의 젊은들이
부화뇌동하여 참화를 당하였으니 예나 지금이나 역사는 반복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작금의 시국이 걱정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생각없이 선동선전에 현혹되어 부화뇌동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자기를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고 신세망친 것은 자기인데 세상물정 모르고 선동질에
놀아난 것이 안타깝습니다.
본인들의 안타까움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부모님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부화뇌동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사람들은 마치 사술에라도 걸린 듯 미치광이처럼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영웅심리와 군중심리가 작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이고 최고라고 맹신하는 듯합니다 어제도 저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다가 건너는 사람도 없는데 신호가 바뀔 때까지 멈춰선 앞차 때문에 혈압이 올랐지요 뒤차가 가자고 보채거나 하면 혹시 내가 무얼 잘못하고 있을까하고 생각해 봄직도 한데 백년하청입니다
부화뇌동하기 전에 한번쯤 자신이 하려는 언행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어리석은 짓을 잘도 저지릅니다
이번 검찰의 잘못으로 구속된 대통령이 풀려나 나라가 두쪽으로 갈라질까 우려됩니다.
왜 그런 빌미를 주며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내가 대통령권한으로 국회를 해산할수 있는데 않했다"
한동훈 자서전에 그렇게 쓰여 있다지요.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풀려나 무슨짓을 저지를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마도 주중에 탄핵 판결이 날 것 같습니다.
지은 죄가 어디 가겠습니까.
이번 법원의 석방 결정은 우환을 제거하기 위한 현명한 판단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면 다행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