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밴쿠버 땅을 밟았을 때만 해도, 취직부터 그 모든 것이 순조로울 거라 믿었다. 내가 가진 이력만 내밀어도, 상대방은 황송한 듯 ‘웰컴 인사’를 건넬 줄 알았다.
하지만 이민을 결심한 후에도 밴쿠버가 캐나다 어디에 있는지초자 몰랐던 나에게 현실은 달랐다. 초기 정착자금이 하는 일도 없이 조금씩 빠져나갈 때마다 느끼는 불안감, 나는 짧게 절망했다.
이렇게 보낸 시간이 약 1년.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지금은 짐 패터슨 외래 진료센터(Jim Patterson Outpatient Care and Surgery Centre)에서 정간호사(RN)로 당당히 일하고 있다. 나의 이름은 성영주다.
“나의 시행착오, 누군가 미리 알려줬더라면…”
얼마 전 밴쿠버에는 또 다른 한인단체가 새로 생겨났다. 이름은 ‘BC 한인보건의료인협회’, 초대 회장은 성영주씨가 맡았다.
성 회장은 “의료 계통 종사자들이 나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얻어낸 정보를 한인사회와 공유하기 위해 협회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성 회장이 밝힌 설립 취지 이면에는 자신의 쓰린 경험도 숨어 있다. 길을 알려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거치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았고, 같은 이유로 사람들이 모였다.
한국에서도 간호사로 일했다고 들었습니다.
서울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2년간 근무했어요.
생각보다 경력이 짧군요.
뭐랄까요. 한국에서는 의사들이 보다 권위적이고 간호사는 그들의 의견에 무조건 따라야 했는데, 저는 그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표를 내게 된 거죠. 마침 다른 회사로부터 새로운 제의도 있었구요.
어떤 일을 하게 됐는데요?
외국계 기업 존스앤존스의 마케팅 담당이었어요. 간호학과는 전혀 생소한 분야였죠. 하지만 나름 열심히 일했고, 능력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민을 결심하게 된 거죠?
8년간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다 보니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군요. 동료들은 대부분 MBA 출신인데, 저 혼자만 간호학 전공자다 보니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래서 유학 준비를 하게 됐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이민까지 이어지게 된 거에요. 벌써 14년 전 일이네요.
이민 후 처음에는 어떤 일을 할 계획이었나요?
마케팅 쪽 일이었죠. 간호사를 다시 시작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어요. 그때만 해도 간호사 일은 너무 힘들게만 느껴졌거든요.
취직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제 자신에 대한 어떤 강한 자부심 같은 게 있었어요. 이력서 한 장이면 취직은 너무나 쉬운 일일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웬걸요. 현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한국에서 제가 쌓아왔던 배경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 가슴 한구석에 폭탄이 하나 떨어진 느낌이었지요. 내가 좋아하던, 내가 너무 잘했던 마케팅 관련 일은 다시는 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영어, 고교과정 이수가 큰 힘”
그때의 상황이 간호사를 다시 꿈꾸게 된 계기가 된 건가요?
그렇게 볼 수 있겠지요. 주변의 조언도 있었고…. 간호사였다는 좋은 경력을 놔두고 왜 다른 쪽에 눈을 돌리냐는 거였죠. 그런 말들에 용기를 얻기 시작했어요.
한국의 간호사 자격증을 이곳에서도 인정해 주나요?
영어 수준을 갖추고 관련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간호사로 일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1년짜리 재교육 코스를 다시 밟았어요. 의료 현장을 떠난지 너무 오래되서, 뭔가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거죠.
간호사 자격증을 인정받기까지 무엇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나요?
저도 그랬지만, 한국에서 간호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실무보다는 영어가 가장 큰 장벽일 거에요. 대부분 영어 앞에서 좌절하곤 하죠.
어느 정도의 수준을 요구하는데요?
간호사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IELTS 아카데믹 기준으로 7점 정도가 필요해요. 그 후에는 간호사협회의 자격 인증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짧게는 수개월 내에 끝낼 수도 있어요. 만약 심사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간호사 인증 전인데도 일할 기회를 잡게 되죠.
첫 관문은 영어라는 거네요.
맞아요. 저는 외국계 회사에서 꽤 오래 근무한 탓에 읽고 쓰는 것은 큰 부담이 없었어요. 회사 보고서를 영어로 써야 했으니까. 하지만 말하고 듣기는 지금도 너무 어렵게 느껴져요.
그래도 어느 정도 극복했잖아요.
영어의 벽을 뛰어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제 생각에는 이곳 고등학교 과정에 등록하는 것 같아요. 10학년 정도의 언어 능력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 천천히 간호사 인증시험 준비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문제 때문에 일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죠. 지금은 뭐 상대방 얘기를 잘 못 알아 들어도 크게 주눅들지 않아요. 어차피 영어는 내 모국어가 아니잖아요. 완벽히 구사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처음 제 태도는 이게 아니었어요. 의사나 환자의 요구를 못 알아 들었을 때는, 혹은 상대가 내 얘기를 이해하지 못할 때는 너무 힘들었죠.
“이민 온 것 후회하냐구요?”
그 힘들었던 순간을 어떻게 넘어갔나요?
영어는 어차피 완벽히 할 수 없죠. 하지만 간호사로서 주어진 임무는 완벽히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을 잘하면 영어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텃새 같은 것도 나중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처음에는 이걸 몰라, 종종 괴로웠죠.
그 이외에도 다른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일 자체가 너무 힘들었어요. 환자들 기본 간호, 그러니까 씻기는 일부터 의사 오더 수행까지 제겐 너무 벅찬 일이었죠.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구태여 캐나다 와서까지 해야 하나, 라는 어떤 자괴감마저 들었어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한 것 같아요.
상황이 심각했군요. 그런데 계속 버틴 이유는?
우선 일이 필요했고, 그렇게 좋은 직업을 왜 포기하려 하냐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요. 어찌됐건 그렇게 2년을 생활했는데, 제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어떤 기회였죠?
정간호사가 되더라도 처음에는 누구나 임시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요. 그 다음에 퓰타임, 혹은 개인 취향에 따라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죠. 임시직으로 일할 때는 선택의 폭이 좁죠. 하지만 간호사 관련 구인 정보를 죄다 알 수 있는 혜택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죠. 이런 정보는 외부로 누출이 안 되거든요. 업계 종사자들만이 알 수 있어요. 여하튼 그런 정보들을 접하면서 간호사도 경력이 쌓이면 자기 적성에 따라 일을 골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결국에는 그 내부 정보를 통해 제게 딱 맡는 일자리를 찾게 된 거죠. 만약 그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처음 간호사 일을 시작할 때의 그 힘들었던 순간을 즐겁게 참을 수 있었을 거에요.
조금 다른 얘긴데요. 간호사 취업 현황은 어떤가요? 취직이 쉬운가요?
취업률 자체는 매우 높은 편이지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취업 기회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좀 전에도 얘기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첫 시작을 하게 되면 내부 구인 정보를 활용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자기가 원하는 병원, 자기가 원하는 분야로 지원이 가능해요.
간호사들의 급여 조건은 좋은 편이죠?
정간호사의 경우 첫 임금은 시간당 32달러로 책정돼 있죠. 경력이 계속 쌓이면 최대 50달러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이민 온 것, 이젠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아직도 반반이에요.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더 좋은 지위에 있을 거란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달라진 건 있죠.
뭔가요?
‘BC 한인보건의료인협회’를 통해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 누군가를 위해 내 시간을 내주는 것, 이건 이민 오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에요. 저희 홈페이지(www.medikorean.com)에 많은 분들이 방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의사나 간호사 뿐 아니라 BC주에서는 전공과 상관 없이 보건의료인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