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살인(借刀殺人) - 빌린 칼로 제거하라
借刀殺人 敵已明, 友未定. 引友殺敵, 不自出力. 以損推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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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칼을 빌려 적을 제거한다는 뜻으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계책이다. 적의 정황은 이미 명백히 드러났고 우군의 태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을 때 사용한다. 우군을 끌어들여 적을 치는 까닭에 자신의 전력을 소모할 이유가 없다. 우군이 적을 치며 입은 손실이 아군에게는 이익이 될 수 있다. 이는 손과 익이 서로 덜어내고, 더하고, 채우고, 비우는 상호보완 관계에 있음을 논한 《주역》 〈손괘(損卦)〉의 손익영허(損益盈虛) 이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설]
인우살적(引友殺敵)은 친구를 끌어들여 적을 제거한다는 뜻으로 차도살인을 달리 풀이한 것이다. 요체는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는 부자출력(不自出力)에 있다. 《주역》 〈손괘〉의 손익 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손은 음, 익은 양에 해당한다. 손과 익은 음양이 그렇듯이 서로 덜어내면서 더해주는 관계에 있다. 상대적인 개념인 까닭에 익과 손은 사물의 안팎을 총체적으로 고찰해야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병법에 적용한 것이 바로 차도살인 계책이다.
차도살인 계책은 기본적으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기 위한 계책이다. 명대 왕정눌의 희곡 《삼축기(三祝記)》 〈조함(造陷)〉의 고사에서 나왔다. 복송 인종(仁宗) 때 상국 여이간(呂夷簡), 간의(諫議) 하송(夏竦), 어사 한독(韓凟) 등이 결탁해 사욕을 채웠다. 범중엄(范仲淹)이 개혁을 주장하자 이들은 범중엄을 제거하고자 했다. 1038년 북송의 속국이었던 서하(西夏)의 원호(元昊)가 황실에서 하사한 조씨 성을 버리고 탕구트족의 고유 성씨로 바꾸며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한독이 여이간에게 말했다.
“범중엄을 제거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지 조정 대신들이 어떻게 나올지가 문제입니다.”
하송이 곧 대책을 내놓았다.
“지금 원호가 모반을 꾀하여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조정에서는 장수를 뽑아 출병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공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황제를 알현하면서 범중엄을 환경로경락초토사(環慶路經略招討使)로 천거하십시오. 이것이 남의 손을 빌려 제거하는 계책으로 범중엄에게도 공을 세울 수 있는 은덕을 베푸는 격이 됩니다.”
범중엄이 문약한 서생임을 알고 그에게 병사를 주어 서하의 반란을 진압하도록 함으로써 서하인의 손을 빌려 그를 제거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신의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의 칼을 빌려 목적을 달성하는 계책이 바로 차도살인이다. 삼국시대 당시 왕윤이 여포의 손을 빌려 동탁을 제거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삼국연의》에 차도살인 일화가 나온다.
서기 208년, 조조는 친히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동오정벌에 나섰다. 주유가 장수들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을 때 문득 조조군 진영에서 옛 친구 장간(蔣干)이 찾아왔다. 주유가 웃으면서 말했다.
“조조의 유세객이 왔군!”
곧 장수들에게 일을 지시하고는 진영의 문 입구까지 영접하러 나가 반가이 맞이하고는 장막으로 돌아와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주유가 술에 취한 척하며 말했다.
“자익(子翼), 오늘 우리가 이렇게 어렵게 만났는데, 오늘 밤 나와 같이 자도록 하세.”
그러고는 장간을 이끌고 자기 막사 쪽으로 갔다. 막사에 도착한 뒤 주유는 침대에 눕자마자 코를 골면서 잠에 빠졌다. 잠을 이루지 못한 장간은 이경(二更)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장막 내의 등잔불에 의지해 주위를 살펴보다가 탁자 위에 여러 문서가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장간은 내심 군사기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몰래 살펴보았다. 과연 편지가 한 통 있었다. 조조의 수군 조련을 담당하고 있는 채모와 장윤이 보내온 것이었다. 부득불 조조에게 항복했으나 조만간 조조의 머리를 바치겠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은밀히 옷 안에 숨긴 뒤 고개를 돌려 주유를 보니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사경(四更)이 되자 갑자기 밖에서 어떤 사람이 안으로 들어와 주유를 깨우면서 “강 북쪽에서 사람이 왔습니다”라고 고했다. 주유가 급히 그의 입을 막으면서 몸을 일으켜 그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장간이 몸을 일으켜 밖에서 무슨 말을 나누는지 몰래 엿들었다. 장윤과 채모에 관한 일이었다. 잠시 후 주유가 장막 안으로 들어와 침대 앞에서 장간을 몇 차례 불러보았으나 장간은 자는 척하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오경(五更)이 되자 날이 밝아왔다. 장간이 몰래 몸을 일으켜 장막을 나온 뒤 수하들과 함께 배를 타고 조조 진영 쪽으로 돌아갔다. 장간이 돌아오자 조조가 그를 불러서 설득공작의 결과에 대해 물었다. 장간이 대답했다.
“주유의 결심과 의지가 매우 강해서 말로서는 설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조가 매우 불쾌해했다. 장간이 말을 이어갔다.
“주공,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록 주유를 설득하는 일은 실패했지만 매우 중요한 기밀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그러고는 주유의 진영에서 훔쳐온 편지를 조조에게 보여주면서 어젯밤에 보고 들은 바를 있는 그대로 전했다. 조조가 다 듣기도 전에 크게 화를 내며 즉시 채모와 장윤을 불러들인 뒤 엄하게 꾸짖었다.
“너희 둘은 오늘 즉시 동오로 진격하라!”
영문을 모르는 채모와 장윤이 황급히 말했다.
“지금 수군이 아직 숙달되지 않았으니 가볍게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조조가 큰소리로 일갈했다.
“수군들의 훈련이 숙달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내 수급이 먼저 주유에게 바쳐질 것이다!”
채모와 장윤이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조조가 좌우에 명해 두 사람을 군영 밖으로 끌어내 참수하도록 했다. 이후 이것이 주유에 의한 차도살인의 계책임을 알게 되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이 일화는 비록 허구이기는 하나 차도살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연관목차무경십서
제1계 만천과해 -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라
제2계 위위구조 - 우회전술로 적을 끌어내라
제3계 차도살인(借刀殺人) - 빌린 칼로 제거하라
제4계 이일대로(以逸待勞) - 쉬면서 적이 지치게 만들라
제5계 진화타겁(趁火打劫) - 적의 내우외환에 올라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