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 부스럼
1.
긁어 부스럼이란 그냥 두었으면 괜찮을 것을 공연히 건드려서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다리에 침놓기라고 한다. 부스럼은 긁을수록 성깔을 부리며 커진다. 뒤늦게 수습하면서 결국 상처를 입는다.
작은 빌미도 주지 마라. 개미굴이 저수지를 무너뜨리고 쥐구멍이 논물을 다 빼내 간다. 낌새에 타깃 될 수 있다. 3월 하순은 봄이 기세를 돋우면서 개나리 샛노랗고 목련이 새하얗다. 쏟아지는 햇살에 나른해진다.
장난삼아, 심심해서, 무심코 긁었다가 그만 큰코다치는 격이다. 내 기분 따라 상대방을 필요 이상 자극할 필요 없다. 쫓기는 쥐도 궁지 몰리면 달려들어 문다고 하지 않는가. 난감한 일 벌어지면서 후회하게 한다.
무심코 뒤통수 호되게 맞은 기분이다. 복사뼈를 긁다가 그만 발목을 꽉 잡혔다. 정신 말짱한 나이롱환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약간의 부기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종종 그런 일이 있었고 자고 나면 괜찮겠지 했다.
왼쪽 발목 복사뼈에 딱지가 생겨서 자꾸 신경 거슬리게 하였다. 아무렇지 않게 손길이 가고 손톱으로 깐족깐족 생딱지를 떼어내다가 그만 문제가 발생하였다. 마구잡이로 떼다 피가 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손톱에 반기를 들었다. 너무 많이 괴롭혔다고 앙심을 품고 독기를 풀어놓았다. 처음에는 약간 께름칙하면서 부기가 있는 듯싶더니 서서히 발등까지 부어올랐다. 괜찮겠지, 저러다 잦아지겠지 하면서 방관한 것이다.
온몸이 쑤시거나 정신이 몽롱하도록 아픈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다리 하나가 부러진 것도 아니다. 고작 발목의 복사뼈에 종기 생겨 약간 부풀어 올랐을 뿐인데 소란이다. 쩔뚝거리며 온몸이 아픈 것처럼 심란하다.
얼마 전에 포항지역에 진도 5.4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현지 주민은 물론 온 나라가 술렁거렸다. 한 지역에 있은 일이지만 그곳에 한정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비록 한곳 아픔이지만 비상사태로 온몸이 뒤흔들렸다.
한반도 지도를 펼쳐본다. 포항은 동남쪽의 한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재난은 그곳만이 아닌 나라 전체의 일이다. 복사뼈는 몸의 극히 일부분이지만 그곳 아픔은 온몸의 아픔이다. 나라도 몸도 같은 하나로 비상이었다.
고등학생인 아들 친구가 떠돌이로 방황하는 것을 보고 집에 들여 반년쯤 무상으로 함께 지내게 하였다. 그러나 행실이 아주 고약하여 더는 감당할 수 없어서 내보내려고 하였다. 눈치채고 친구가 아버지를 살해하였다.
그간의 은혜는 그만두고 선의의 베풂을 오히려 죽음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아주 참담한 현실이다. 정말 무섭고도 잔인한 세상이다. 아들을 생각하며 안쓰럽다고 거두었다 변을 당한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안 해도 될 일을 선심을 쓰거나 호의를 베풀다가 엉뚱한 빌미를 줄 수도 있다. 심심하다고 피부를 자꾸 긁적거리다 상처가 생기면 후환이 된다. 뒤늦게 아차 하였지만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어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잘되어도 본전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꼭 이번 같은 경우다. 완치되어도 긁지 않았으면 괜찮았을 상처가 생기고 덧나 여러 날 병원에 오고 갔다. 돈은 돈대로 들고, 시간은 시간대로 들고, 고통은 고통대로 겪었다.
긁어 부스럼으로 어쩔 수 없는 시간적, 경제적, 심적인 부담을 하였다. 긁어 부스럼은 신체적인 부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대인관계에 불쑥 끼어들었다 곤경에 빠진다. 이 또한 긁어 부스럼이나 다를 것 없다.
멋모르고 며칠 동안 긁어 부스럼의 세계를 여행했다. 다소 힘들었어도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런대로 본전이라고 좀은 겸연쩍으며 어설픈 미소를 머금어 보지만 어딘가 좀은 씁쓰름하였다. 정신 좀 차리자!
2.
병원도 주말이면 쉰다. 이제 독 안에 든 쥐라는 듯 마음 놓고 후끈후끈 곪는 모양새다. 말 그대로 발목을 잡힌 셈이다. 불안하기 짝이 없다. 월요일에 병원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병과로 가야 하는지 막막하다.
고심하다 피부과를 찾아갔다. 의사와 대면했다. 환부를 보고 잘못 왔으니 정형외과로 가라며 접수를 취소시켜준다. 그렇게 많았던 병원이었는데 필요해 찾으려니 그렇지도 않다. 헤매다 가까스로 정형외과를 찾았다.
복사뼈 환부를 들여다본다. 발등까지 부기가 빵빵해졌다. 그렇다고 크게 아픈 것은 아니다. 엑스레이부터 찍어보자고 한다. 뼈에 이상은 없으므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 본 후 상태를 지켜보자면서 대수롭지 않다.
어찌 보면 병원에서는, 그것도 정형외과에서는 흔한 종기 하나 제거하는 것인데 환자 혼자 호들갑 떨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호두알 정도로 딱딱하면서 윗부분이 노릇노릇 곪아서 말랑해졌다.
다음 다음날 기어코 환부를 마취 없이 째면서 고름을 짜냈다. 수술했으니 오늘은 물을 대지 말고 술은 마시지 말란다. 음식은 가려먹지 않아도 괜찮냐는 물음에 상관없다고 한다. 좀은 허탈하고 머쓱하며 계면쩍었다.
상처를 쨀 때는 몇 번쯤 나도 모르게 아악~ 소리를 내질렀지만 몇 분에 끝냈다. 환부를 붕대로 칭칭 감았다. 환자라고 한다. 환자?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이름 같다. 병원 문턱을 넘나드는 것이 쑥스럽기만 하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물론 상대적일 수도 있다. 이번 일로 병을 만들어 고통을 겪어가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어느 부위 하나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해 있는 것이고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손톱 밑에 작은 가시만 찔려도 아프다고 앓는 소리다. 신경 쏠려 긴장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평소에는 그 존재조차 잊고 지내다 일 커지면 물불 가리지 않고 화근이 온몸에 번지게 된다.
몸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서로 떳떳하고 뒤탈 없다. 요즘 불쑥불쑥 뛰쳐나오는 ‘Me Too 운동’도 그렇다.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으로 상대를 무시하면서 오는 것이다.
아픔과 병원과 약국은 같은 고리의 특수공간으로 보고 들으며 생각하는 각도도 자연스럽게 같아질 수밖에 없다. 우선 접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환자가 중심이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다가 놓쳤던 일들이 보인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들어오며 생각하게 한다. 그간 달려온 길과는 다르게 잠시 멈춰 돌아본다. 일상을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그간 보아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드러난다.
무관심하게 여기며 타인의 일이었다. 보는 각도나 보는 시간대는 같아도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보이는 것은 직접 관련 없어 그랬을 것이다. 더구나 정상적인 상황과 비정상적인 상황을 비교하는 것처럼 같을 리 없다.
단순하게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관심과 심각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당장 다급하지 않으면 보고 느끼고 지향하는 것이 확연히 다르다. 앞으로 가기만 하다가 불쑥 멈춰 뒤돌아보는 태도와 의미가 다르다.
아픔이라는 낯설게 바뀐 특이한 현실에서 당면한 일에 생각이 많아진다. 그간 오로지 희망이라는 앞날만을 보고 돌진하다가 이미 지나온 과정에서 겪었던 일을 되새겨보며 새로운 정황을 인식하며 시각이 달라졌다.
그런데 이 정도는 사실 말만 환자다. 복사뼈가 약간 부어올라서 활동에 다소 불편할 정도다. 엄청난 장애로 입원한 것도 아닌 단순한 외래객일 뿐이다. 대부분 사소한 아픔은 여간해 환자라고 선뜻 드러내지 않는다.
3.
자주 안 갔거나 처음 병원에 가면 첫날은 비싸고, 주말은 휴일이라 진료비가 더 비싸진다. 진료비만 놓고 보면 병원은 자주 다녀야 하고 주말에는 아프지를 말고 만부득이 하면 주중에만 아파야 병원비 절약이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마음에 꼭 드는 날을 정해놓고 아플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처방된 약 3일분 (9번 복용)는 단돈 1,000원으로 요즘 물가로는 이해되지 않을 만큼 싸다. 그렇다고 더 먹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어쨌거나 무관심 속에 이미 지나쳐서 미처 몰랐던 사실을 다시 되짚어보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다. 현장에 뛰어들어 가까이서 조명해볼 수 있었던 나름대로 큰 성과다. 알아서 손해 볼 것 없다면서 뭔가 대견하다.
첫째 날은 엑스레이 찍고 주사 맞고 7,500원 약값 3일분(9회) 1,000원이고, 두 번째 날은 주사를 맞고 1,500원 붕대 800원(7.5x5cm) 이다. 세 번째 날은 상처를 수술하고 주사 맞고 8,800원 약값 3일 1,000원이다.
네 번째 날은 상처 소독하고 주사 맞고 1,800원, 다섯 번째 날은 수술 상처 소독하고 주사 맞고 1,800원이며, 여섯 번째 날은 수술상처 소독하고 주사를 맞고 3,000원인데 주말이라 수가가 1,200원(2/3) 할증된다.
일곱 번째 날은 병원은 휴일이라도 아픔은 휴일이 없다. 여덟 번째 날은 휴일 건너 상처 소독하고 주사에 1,800원 약값 1,000원이고 그렇게 스물네 번째 날 겨우 ‘치료 끝 선언’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한다.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이라고 항상 그렇지는 않다. 처음에 다소 역겨운 모습이라 해서 항상 그렇지는 않다. 때로는 아름다움에서 추한 모습으로 역겹다가 다시 친근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잘못도 반성하고 고치면 괜찮아진다. 부족함은 보태고 가꾸면 보충되고 미움은 걷어내면 달라질 수 있다. 좋은 것도 잘못하면 좀먹어 쓸모없게 될 수 있다. 모자란 것도 가꾸어 가면 윤기가 흐르며 마음에 들게 된다.
내가 폐품으로 내놓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요긴하게 쓰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필요 없다고 내놓은 것을 내가 소중하게 쓸 데가 있을 수 있다. 같은 물건도 그 용도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며 재활용될 수 있다.
한 번 나빴다고 아예 버리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어딘가 손을 조금만 보면 그런대로 쓰일 데가 있을 수 있다. 또 한 번 괜찮았다고 하여 언제까지 그 모습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질 수가 있다.
과일은 적기에 수확해야 질이 좋은 과일이 된다. 너무 농익어도 가치가 반감될 수 있으며 너무 서둘러 수확해도 좋지 않다. 또한 적당한 시기에 소비하여야 제맛을 유지할 수가 있다. 좋다고 마냥 보관할 수는 없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오늘 건강하다고 내일도 자신만만할 수 없어 항상 보살펴야 한다. 오늘은 아파도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 따라서 건강에 자만은 금물이고 서둘러 포기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세상은 시샘이 많다. 내가 마음 두고 하고자 하면, 되지 않고 한발 물러서거나 아예 사라져 버린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린 듯 부딪쳐 발목 잡히고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래서 핑곗거리가 생긴다. 내 탓이 아니고 네 탓이라고 한다. 나는 잘해도 너는 아니라고 한다. 열심히 잘한 일도 있고 못 한 일도 있고 우연히 술술 잘 풀리기도 한다. 자만심에 멈출 줄을 모르다가 변을 당한다.
보잘것없고 하찮다 싶어 방심하다 화근이 된다. 상처가 아물어 병원 출입은 멀어져 일상으로 돌아가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히게 된다. 긁어 부스럼으로 뜻밖에 치료까지 받으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