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의 인생 목표처럼(대하34:1-7)
2025.2.2,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우리 앞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에게 ‘어디를 향해서’, ‘왜 달리는지’를 물었을 때, 그가 “모올류~”, “읍슈”, “그냥 달류”라고만 말하면,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목적도 목표도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와 같다. 일반적으로 목적(目的)이란 어떤 일을 하는 이유와 방향성을 말하고, 목표(目標)란 목적을 이루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의미한다. 우리 주변에는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고, 설령 목적이 있어도 목표가 없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벌써 1월이 훌쩍 지나고 2월이 되었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지금 내가 가는 인생길에서 또한 신앙의 여정에서 달려가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한지 또한 그 목표를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짧은 39년의 삶을 살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불꽃같은 생을 살았던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요시야 왕(King Josiah) 이다. 구약성경에서 요시야는 다윗과 함께 가장 위대한 왕들 중의 하나로 인정받는다. 열왕기하 23장 25절을 보면, 성경은 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
1. 요시야의 인생 목표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렇게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고, 우리들도 요시야처럼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자.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3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대하 34:1-3)
이 말씀에서 먼저 눈여겨 볼 것은 요시야의 나이이다. 이 말씀을 보면, 요시야는 8살에 왕이 되었고, 31년 동안 재위하였다(1절). 이 말은 곧 그가 39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짧은 생애 동안에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고,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2절).
그런데 이처럼 그가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계기가 3절 말씀에 나온다. 3절 말씀을 보면, 요시야는 왕이 된지 8년이 되었을 때(16세 때),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았다고 했다. 이 부분이 요시야 인생의 매우 중요한 분깃점이다.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았다는 것은 곧 그가 다윗이 만났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났다는 것을 뜻한다.
아마 그는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16세 때,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평생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삶을 살았던 것에 큰 도전과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신도 다윗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된지 12년째 즉 그가 20세의 성인이 되었을 때, 그는 가장 먼저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면서 종교개혁을 시작했다. 그가 20세가 되자마자 즉시 이런 일들을 시작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된 것이 아니다. 오랜 동안 다윗처럼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2. 당신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요시야가 품었던 거룩한 목표와 꿈이 그의 인생 전체를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면,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들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으면, 꿈은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는 이미지 비전(image vision)이나 희망사항으로만 끝나기 쉽다. 구체적인 목표 없이 막연한 기대감만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없다. 사회생활도 그렇고, 영적으로도 그렇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심지어 앞으로 10년 후에도 여전히 희망사항만 있을 뿐, 현재의 모습 그대로일 가능성이 많다. 이것은 기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이 두루뭉술하게 기도하면, 나중에 응답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진로나 학업의 목표든, 혹은 영적인 목표든지를 막론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야 한다. 이 목표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인 동시에 하나님과의 약속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일단 작은 목표들부터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올 한 해 안에 성경을 1독 하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다(성경은66권, 1,189장이므로 하루에 3-4장정도 읽으면 일 년에 일독함). 예배출석의 개근 또는 정근을 하겠다고 목표를 세울 수도 있고,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새벽예배에 참석하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도 있다. 일 년에 한 명을 전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도 있다. 이렇게만 해도 남은 생애동안 수십 명을 전도할 수 있다. 만약 우리 모두가 올 한 해 동안 1명이 1명을 전도한다면, 우리는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배가 부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학교 공부나 예체능 또한 개인적인 진로준비에 있어도 다 마찬가지이다. 또한 덕스럽지 못한 습관들을 고치려는 목표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요시야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3. 지금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우리들이 요시야처럼 자신의 진로나 영적인 목표들을 세웠다면, 그 다음에는 그것을 향해 꾸준히 달려가야 한다. 힘들어도 달려가야 한다. 여기에는 인내와 믿음이 요구된다.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영적으로 볼 때, 자신과의 싸움도 영적싸움의 범주에 속한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고난을 거치지 않고 얻은 승리는 영광이 아니다. 아마추어는 남을 상대로 싸우지만, 프로는 자신을 상대로 싸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아마추어처럼 믿지 말고,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프로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물의 힘이 아니라, 바위를 두드린 횟수 때문인 것을 잊으면 안 된다.
20세기 전반 미국에서 무디(D. L. Moody)를 필적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했던 빌리 선데이(Billy Sunday,1862-1935)라는 복음전도자가 있었다. 그는 생전에 백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고, 삼십만 명 이상을 결신 시켰다고 전해진다. 그는 한때 ‘시카고 화이트 삭스’라는 팀에서 메이저 리그 야구선수 생활도 했던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빌리 선데이는 본래 고아원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에 주일학교 담임선생님의 권면을 매일 매일의 삶의 목표로 정하고 실천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의 선생님이 권면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매일 15분씩 말씀을 읽고, 15분씩 기도하고, 15분씩 전도하고, 15분씩 사랑을 실천하라. 그러면 너는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이다”
빌리 선데이는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켜서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로 그리고 후에는 미국인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는 부흥사가 되었다. 우리들도 빌리 선데이처럼 매일 1시간을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시간의 십일조를 드릴 수 있도록 시간의 목표를 정할 수도 있다. 우리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이전(以前)과 비교해야 한다. 이처럼 매일 매일의 삶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믿음과 인내로 경주했던 사례들은 성경이나 교회 역사에서 수없이 많다. 이들은 한결같이 온도계가 아닌, 온도조절기 같은 삶을 살았다.
그래도 어떤 분은 “나는 지금 목표정할 상황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 절박한 상황과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을 다잡고 생각해 보라. 오히려 바람과 파도가 클수록 더욱 주님께 집중해야 한다. 오히려 그럴수록 하나님께서 왜 지금 나에게 피할 길과 새 힘과 신유의 은혜 등을 베풀어 주셔야하는지 그리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겠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와 목표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그럴듯한 이유를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이 세상에 편안하면서 존경받은 삶이란 없다. 하나님의 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좁은 길을 가는 것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지금 요시야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하나님이 함께해 주시지 않으면 안될 만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자. 그리고 그것을 위해 지금부터 힘껏 달려 나가자. 안하고 죽어도 좋을 일만, 내일로 미뤄야 한다. 늘 그렇듯이 처음시작은 가장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