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어장대(守禦將臺)는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로, 장대란 지휘관이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臺)를 말한다.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으로 조선(朝鮮) 인조(仁祖) 2년(1624)에 남한산성(南漢山城) 축성(築城)과 함께 축조된 동, 서, 남, 북의 4장대(四將臺)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장대이다.
청량산 정산(해발 482m)에 위치하고 있어 성내와 인근의 광주,하남 및 서울,까지 조망할 수 있다. 당초에는 단층누각으로 축조하고 서장대(西將臺)라 불리었으며 남한산성의 수어(守禦)를 맡았던 수어청(守禦廳)중 우영장(右營將)이 진(陳)을 치고 있었던 곳이다. <2017.12.16.>

인조(仁祖) 14년(1636)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는 인조(仁祖)가 친히 군사들을 지휘, 격려하며 청태종(淸太宗)의 13만 대군과 대항하여 45일간을 항전하였던 곳이며,현 건물은 헌종2년(1836)에 유수 박기수가 개건하였는데 중층(重層)의 누각건물(樓閣建物)로써 그 형태와 구성이 우리나라 전통목조건축물 중 특이한 예에 속한다. 지붕과 내부를 모두 이층으로 꾸몄으며 하층의 내진고주(內疹高柱)가 상층에서는 변주(邊柱)가 되는 평면구성방식을 택하였다.

수어장대의 옆모습...수어장대(守禦將臺)를 수어장대(守御將臺)로 잘못 알고 있는 이가 매우 많다,
어자가 임금 어거할 御자가 아니고 막을 禦자 수어장대임을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알려주는데, 대부분 인조임금이 항전했던 역사를 떠올려서인지 임금 어거할 어자 수어장대(守御將臺)로 잘못 알고 있다

담 밖에서 본 수어장대...오른쪽 지붕은 누명을 쓰고 죽은 이회의 사당인 청량당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전나무는 잘 자라고 있다

영조 27년(1751)에는 유수 이기진(李箕鎭)이 왕명으로 서장대(西將臺) 위에 2층 누각을 건립하고 외부 편액은 수어장대, 내부편액은 무망루(無忘樓)라 이름하였다.
무망루라 함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인조의 아들인 효종(孝宗)이 볼모로 심양(瀋陽)(현 봉천(奉天))에 잡혀 갔다가 8년 만에 귀국하여 북벌(北伐)을 꾀하다 승하한 원한을 후세에 전하고, 그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그후 영조, 정조가 여주(驪州) 영릉(寧陵)에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 장대에 들러 하룻밤을 지내면서 병자호란 때의 치욕사(恥辱史)를 되새겼다고 전한다.


천흥사 동종...고려 헌종1년(1010)에 제조 된 국보 제280로 지정된 동종으로 천안의 천흥사에 있었던 것을 남한산성으로 옮겨와서 조선시대 남한산성 주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것으로 행궁 입구에 있다.
현재 산성 종각에 걸려있는 종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남한산성은 2014년 6월 22일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1번째이며, 경기도에서는 수원 화성에 이어 두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