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에 러시아 시장을 포기하고 애프터서비스(A/S)만 남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26일 전해졌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부사장)이 전날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매출 전망에 부정적인 요인을 하나 꼽는다면 내년에 러시아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시장 자체가 완전히 붕괴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기아가 A/S 서비스만 남기고 러시아를 떠나는 마지막 대형 외국자동차 제조회사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에 따르면 주 본부장은 "기본적으로 러시아에 자동차를 공급할 수가 없어 A/S 사업만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철수 시기 등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기아, 러시아 시장서 자동차 판매 중단 가능성 밝혀/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러시아 현지 언론들도 블룸버그 통신을 인용, 기아의 러시아 시장 철수 시나리오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는 25일 '기아에게는 판매이후의 시대가 다가온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를 전한 뒤, "러시아의 생산 시설에 쏟아부은 투자비를 아직 다 회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철수를 연기할 수는 있지만, 자금 여력이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철수)할 것"이라는 전문가의 견해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 전문가는 현대기아차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현지공장 외에도 2020년 인수한 GM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등 러시아에 다양한 생산 시설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투자에 대한 성과를 분명히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상황이 개선되기를 기다리며 철수를 연기할 수도 있지만, 기업의 재정 여력은 제한적이며, 조만간 급여를 지급하고 생산 능력을 유지할 자금이 바닥날 것"으로 우려했다.
현대차는 최근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 대한 봉인 작업, 즉 '모스볼링'(Mothballing) 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기아에게는 판매이후의 시대가 다가온다'고 쓴 현지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웹페이지 캡처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현지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러시아의 현 자동차 수요는 월 4만대 수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 더 감소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진단이다.
현지 자동차 통계전문 기관 '아프토스타트'(Автостат, Avtostat)의 세르게이 우달로프는 자동차 시장은 공급이 급격히 증가하더라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면서 물류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러시아 정부가 서방의 제재조치를 피하기 위해 도입한 '병행수입'만으로는 시장 상황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자동차 전문가 블라디미르 베스팔로프는 공급이 증가하면 시장 수요는 월 6만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충격이 없는 상태"라는 전제를 달았다.
유럽 기업 협회(AEB)에 따르면 기아는 올해 들어 9월까지 러시아에서 작년 동기 대비 65%가 감소한 5만7천여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3분기에는 1만4,000대로(74.6% 감소) 줄고, 9월에는 3,300대로, 무려 81% 감소하는 등 시간이 갈수록 판매량은 떨어지고 있다. .
칼리닌그라드 '아프토토르'에서 기아차를 조립하는 장면/사진출처:아프토토르 홈페이지
이같은 상황은 주 본부장의 지적대로, 자동차 자체를 공급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기아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차 공장과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있는 '아프토토르'에서 다양한 차종의 자동차를 생산해 왔는데, 두 곳 모두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차 공장은 연간 2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는 마쓰다와 도요타, 닛산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잇따라 철수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기아도 빨리 결정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러시아에서 인기가 높은 기아 리오/사진출처:기아
하지만, 기아가 러시아 시장 철수를 쉽게 결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 기업 협회(AEB)에 따르면 기아 '리오'는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제차로, 신차 판매 대수 면에서 현지 브랜드 '라다'(그란타, 베스타 2종류)에 이어 2위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기아차는 지난해 러시아 시장 점유율 12%로, '라다'를 생산하는 아브토바즈(AvtoVAZ)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