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기행
김 영 호
배는 잠들어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질주하던 프로펠러도 창고 속 선풍기 마냥 때를 기다리며 휴식에 젖어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주말을 보낸다.
연안 부두는 주말인데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삶을 질주하는 배들이 쉼 없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삶을 노래하고 있다.
오랜만에 맑게 게인 파란 하늘이다. 삼월에 시작을 알리며 봄이 왔다는 걸 보여주나 싶다.
봄 처녀가 봄이 오면 설레는 마음처럼 겨울을 유난히 싫어하는 나로서는 벌써 마음만큼은 봄이 자리해 있다.
봄이 온 소리를 피부로 느끼고 파서 점심은 먹자마자 봄나들이에 나선다.
봄이 오는 걸 가장 먼저 느끼는 곳이 삶의 현장인 시장 통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싣고 신포 시장으로 향한다.
차장 밖은 잔뜩 움츠렸던 나뭇가지들도 이제는 기지개를 켜는지 파릇이 잎 새를 내미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연안부두에서 이 십 여분 가니 신포시장이다. 신포시장은 인천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큰 시장이다. 시장 입구에는 닭 강정 집들이 즐비해 있다. 조류 독감으로 썰렁 해야 하는 분위기가 맞는 것 같은데, 30년 전통이 말해주듯 길게 늘어선 줄에 사장님들은 바쁜 손놀림에 땀 딱을 여유도 없이 바쁘다.
닭 집 안으로 들어가면 찐빵. 만두가게와 빵집이 있다. 찐빵은 천원 자리가 아기 얼굴만큼이나 크다.
나는 빵을 유난히 좋아해서 빵가게에 들려 빵을 몇 개 샀다. 빵 가격이 일반 빵집보다 엄청 싸다.
빵집을 지나면 야채 가게가 나온다. 야채 가게에는 봄이 온 걸 파릇한 냉이가 알려 주는가 싶다.
대파. 양파. 쪽파. 무우. 양파. 감자. 고구마. 도라지...
쪽파를 보니 어머니 생각이 갑자기 난다. 어제 전화 통화에서 '뭐하세요' 물었더니 쪽파 깐다고 하신다. 올 해는 작년에 비해 많이 하락한 가격 때문에 인건비가 나올까 말까 한다며 마음 아파하신다. 그래도 어쩌지 못해 혼자 작업 하시는 어머니 모습에 마음 한 곁이 저려온다.
야채 가게를 지나자 팥죽가게와 생선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생선 가게 좌판에는 내게 윙크하는 도다리와 고등어. 동태. 집사람이 좋아하는 멍게와 홍합들이 주당들을 기다리는지 한 귀퉁이에 자리해 있다.
시장 통을 한 바퀴 돌고 나와 지하상가로 들어가 동 인천으로 향하며 이 가게 저 가게 둘러본다.
속옷과 필요한 생필품 몇 가지를 샀다. 주말이라 모든 가게들이 분주하다. 사진 인화 하는 곳은 싼 가격에 학생들이 늘어서 있다.
지하상가를 나와 월미도를 가려 한다. 입구를 못 찾아 복권방에서 길을 물으며 복권도 구입하며 행운에 여신을 기다려 본다.
월미도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 십 오년 전 군 생활할 때 휴가 나와 집사람과 갔던 추억이 자리한 자리 월미도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뀌었으니 모든 게 변하고 내 기억 속에는 아스라이 형태만 남아있다.
아파트는 대나무 가지처럼 죽죽 솟아있고, 가는 길에 차이나타운은 또 다른 관광 명소로 자리해 있다.
월미도에 다가 오자 선착장들마다 블록처럼 컨테이너가 쌓여져 있다.
월미도에 버스에서 내려서 보니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제일 가까운 곳에 한국 이민사 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뚜벅이가 되어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언저리에는 체육공원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 나온 학부모들은 술 한 잔씩 걸쳤는지 애들보다 더 들뜬 기분이다. 체육공원 뒤로 월미도 정상에 레이더 기지가 보이고, 둘레 길에는 운동 나온 이들이 봄을 노래하며 팔을 힘차게 흔들어 댄다.
한국 이민사 박물관은 이층 구조다.
전시실은 한국인이 미국으로 간 첫 이민사부터 시대별로 전시해 놓은 곳이다. 육성 증언까지 녹음해 놓아 지난 아픈 과거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면 산교육 현장 체험 학습 장소로 너무 좋을 것 같다.
박물관을 나와 월미도 문화의 거리를 따라 산책하며 월미도 문화관으로 향했다.
월미도 문화 거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 시설도 있고 주위에는 조개구이 집을 비롯한 횟집과 맛 집들도 눈에 보인다.
한참을 걸어서 가니 월미도 문화관이 보이고 그 옆에는 해군 제2함대 사령부 주둔비가 서 있다.
나는 해군에서 군 생활을 했고 여기 2함대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어 주둔비 앞에 선 나는 고개 숙여 잠시 묵념을 올렸다.
주둔비에 서서 보니 옛 2함대 기지가 보인다. 출렁이는 물결 따라 옛 추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주둔비에서 나와 전통 음식 문화 연구원에 갔다.
그곳에는 영상으로 옛 모습과 실상도 보여주고, 그 전시물들도 전시해 있다.
수랏상과 대왕대비가 입었던 옷들도 무료로 입어서 사진 찍는 곳도 있어, 연인과 중년 부부들에게 인기가 많다.
음식 문화 연구원을 나와 한국 전통 정원으로 향했다.
한국 전통 정원을 초가와 기와집을 비롯해 옛 삶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그 규모가 꽤나 크다.
정원 입구는 둘레 길로 향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시간이 나면 다음에는 둘레 길을 와 봐야겠다.
정원 안에 들어서자 긴 담에 병풍처럼 한시가 100자나 펼쳐져 세겨져 있다.
한 줄 한줄 훔쳐가며 시상에 빠져보며 천천히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벽담 길을 지나자 초가삼간이 자리해 있다.
부엌에는 검은 솥단지와 아궁이가 있고 망태기. 키. 메주. 됫박 등이 걸쳐져 있다.
마루에는 베틀이 소박히 옛 그림자를 지키고 있다.
그곳을 지나자 기와집이다.
초가집과는 달리 세간 살림도 눈에 뛰게 많다. 마당에는 널뛰기. 굴렁쇠. 윷놀이. 제기차기를 비롯한 놀이시설들이 즐비해 있다.
여객들은 직접 해 보며 그 재미에 빠져 있다.
방 한곁에는 디딤이가 보인다. 잠시나마 옛 향기가 그리워 디딤이를 두들겨 봤다. 그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한국 전통 정원을 나오자 해가 바다 속으로 자맥질을 하려 한다.
배로 귀가하려고 한참을 기다려도 직접 가는 버스가 오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또 다시 동 인천으로 해서 갈아타려고 버스를 탔다. 버스에 타니 배가 고픈지 배꼽시계가 야단이다.
신포시장에서 내려 유명한 해물짬뽕 집에 갔다. 근데 벌써 문 닫으려는지 반쯤 문이 잠겨 져 있다.
되돌아 나오다 보니 국밥집이 보인다. 국밥집에 들려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여정을 마무리 해 본다.
'인천' 뿌연 스모그와 안개 낀 날이 의외로 많은 도시다. 이곳은 눈으로 직접 보다 보면 우리네 삶의 여백을 느낄 수 있고 삶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집 사람과의 아름다운 추억만큼이나 다시 찾아 온 인천은 나를 또 다른 추억에 미로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블로그(태국아이) http://blog.daum.net/dudgh4219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카테고리에서 수필. 좋은글1, 좋은글2에서 잠시 쉬다 가세요.
첫댓글 작가님의 글을 보며 월미도를 산책합니다. 신포시장의 봄 내음도 맡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