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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대통령업적
초고속 경기 회복
경제성장률
98년 -6.9%
99년 9.5%
00년 8.5%
01년 3.8%
02년 7.2%
당시의 세계 평군 경제성장률은 3.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2&aid=0002480923
98년을 포함하지 않고 계산한다면 평균 7.25% 세계평균 경제성장률의 두배초과를 달성
국민소득은 98년 당시7364달러였으나 김대중 정부 말기인 02년 11586달러로 증가
실업률 감소,고용률 증가
90년대 2%정도의 실업률을 유지하던 한국이 외환위기 이후 실업률은 98년 7.0% 고용률은 97년 63.7%에서 98년 59.2%로 급감, 김대중 정부 말기인 02년의 실업률은 3.3% 고용률은 63.3%로 외환위기 직전수준으로 회복
물가 안정
98년 환율로 인한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7.5%에 달했으나 김대중 정부 말기인 02년의 물가상승률은 2.8%로 안정을 되찾음
98년을 포함하지않고 계산한다면 평균 물가상승률은 2%로 역대정권중 가장 최저
제조업 부채비율 감소
98년 당시 제조업 기업의 매출액당 부채비율이 396.3%였지만 김대중 정부 말기인 02년 135.4%로 감소,기업의 재정 건전성이 회복됨
부도업체수 감소
98년 당시 부도업체수는 22812개에 달했으나 김대중 정부 말기인 02년 부도업체수는 4244개로 80% 감소
소득격차 감소
98년 당시 소득 5분의 분배율은 5.41에 달했으나 김대중 정부 말기인 02년 5.18로 감소
기업경쟁력 강화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였던 중복투자를 기업간의 빅딜(big deal)을 추진하였고 기업의 경쟁률이 급격히 상승,몇몇 분야에서 세계를 선두로 하는 삼성,LG,현대등의 대기업이 성장
IT,벤처산업 육성
국가정보화 순위가 98년 당시 22위였으나 김대중정부 말기인 02년 12위로 급상승
98년 당시 인터넷 가입자는 1만 4000명에 불과하였으나 김대중정부 말기인 02년 1040만명으로 700배 증가
98년 당시 pc보급대수는 827만대에 불과하였으나 김대중정부 말기인 02년 2437만대로 3배 증가
IT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98년당시 8.6%에 불과하였으나 김대중정부 말기인 02년 14.9%로 확대
문화산업,콘텐츠 산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이를 육성
1999년에 문화산업진흥기본법과 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이 수립됬고, 이들 정책을 집행할 주무기관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2001년도에 설립됨.
당시 젊은이들의 우상이였던 문화 대통령 서태지를 직접 만남.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등의 복지제도확립을 통하여 소외계층들의 인권을 보장함.
50여년동안 지속된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햇볕정책으로 긴장감을 완화시키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함.
5년동안 846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달성함으로써 99년 9월부로 대한민국은 건국최초의 순채권국이됨.
97년 말 당시 외환보유액은 89억달러에 지나지않았으나 김대중정부 말기인 02년 1189억달러로 증가.
S&P 기준 98년 당시 B+로 추락한 국가신용등급을 김대중정부 말기인 02년 A로 7단계 회복.
전두환,노태우 두명의 전직대통령을 사면하여 정치보복을 하지않고 과거를 청산.
외국의 긍정적 평가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그린은 “DJ는 주변 4강과 모두 친하면서 대북관계를 개선하는, 한국에 꼭 필요하나 실현하긴 힘든 난제를 풀어낸 전무후무한 지도자”라 극찬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였으며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교수이자 한미관계연구소장를 맡고 있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돈 오버도퍼는 그의 저서 《두 개의 한국》에 “1980년 필자의 대담에서 일부 고위 군 관련 인사들은 김대중이 과거에 북한의 사주를 받았거나 현재까지도 사주를 받는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는 김대중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김대중과 여러 차례에 걸쳐 인터뷰해온 필자로서는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을 믿지 않았다. 1980년대 말 CIA 전문 요원 출신인 제임스 릴리 주한 미 대사는 김대중의 과거 행적을 면밀하게 조사한 뒤 그가 공산당에 가담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기술하였다.
미국의 작가·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전화를 통해 “아내 하이디와 저는 대통령께서 최근에 아프시다는 소식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 대통령께서 쾌차하셔서 내외분과 저희 부부가 다시 만찬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수년 전 대통령과 가진 첫 만남 이래 대통령님을 계속 깊이 존경해 왔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을 세계의 모범국가로 변화시키신 분이다. 무슨 일이든 저희 부부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주저 없이 불러주시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MIT 언어학과 교수 노엄 촘스키는 “오래 기간 존경해왔다”며 “그는 남다른 용기를 갖고 일관되게 한 생을 산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한국과 세상 모두에 위대한 공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에즈라 보겔 하버드 대학교 명예교수는 “햇볕정책을 만들어낸 비전, 남북한, 중국, 일본, 그리고 서구 세계와의 화해 추구 노력을 존경한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시대의 진정한 위인 가운데 한 분이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루빈 전 미 재무장관은 “한국이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고 극찬했다. 최근 미국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타개하는데 정치 시스템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의 리더십을 상기하며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면 어떻겠느냐?”는 말도 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김대중을 “위대한 비전, 위대한 상상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했다. 다이안 파인스타인 미 상원의원은 “역사 속의 인물인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비전을 가진 분을 지도자로 가진 한국민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김 대통령은 비전이 있고 그것을 조직적 방법으로 추진하는 뛰어난 인물로 자신의 업적 위에 우리가 대북관계를 쌓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평가했다.
제임스 울펀슨 전 세계 은행 총재는 김대중에 대해 “엄청난 탄압에도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뤄낸 김대통령은 만델라의 삶을 연상시킵니다. 민주화뿐 아니라 경제의 재구축에 성공하고 있는 김대통령은 세계를 감동시키는 지도자 입니다”라고 평가했다.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는 고별기자 회견에서 “한국은 김대중씨를 대통령으로 두고 있다는 자체를 행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경제위기를 맞아 몇가지 고비가 있었지만 IMF와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 전반은 김 대통령을 믿고 한국을 밀어준 측면이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고 밝혔다. ‘레이건 신화’ 주역 마이크 디버 전 대통령 특보는 “김 대통령은 메이크 업이 필요 없는 논픽션 드라마의 인생을 살아왔다”며 “이름 석자만 갖고도 국제사회에 영향을줄 수 브랜드”라고 극찬했다. 미국 망명 시절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펴낸 《대중경제론》과 《3단계통일론》는 하버드 대학교의 교재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리오넬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는 “김 대통령은 나에게 살아가야 할 힘, 살아가야 할 도덕적 스승이자 길잡이다”라고 극찬했다. 요하네스 라우 전 독일 대통령은 “김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독일이 한국의 금융위기 때 한국을 돕는 동기가 됐다”고 밝혔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정상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대북정책에 대해 “김 대통령은 지금 한반도의 정세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김 대통령의 일관된 비전과 강인한 의지는 이를 성공작으로 만들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국방예산을 줄여 사회복지를 늘릴 수 있겠지요”라고 평가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대중에게 “나에게 1년이라는 시간만 더 있었다면 한반도의 명운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고 밝혔다. 한종우 시러큐스 대학교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에 가장 큰 공헌을 하셨고,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시고, 북한과의 교류를 탄탄대로에 올려놓으셨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 미국 UCLA대학 교수는 “김 대통령처럼 한국 경제에 공헌한 대통령은 없기 때문에 한국민은 떠나가는 김대중씨를 마음으로부터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에서 단임 5년에 지금처럼 많은 변화를 이뤄낸 대통령은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5년 사이에 한국 경제를 V자 회복 시킨 김 대통령은 희대의 명대통령”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이어 한국과 일본 경제를 비교, “한국은 혼미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을 뒤로 하고 여러 분야에서 전망이 좋아졌다”면서 “장거리 트랙경기로 친다면 일본보다 2 바퀴정도 뒤쳐졌던 한국이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다가온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살아남아 더욱 강해진 재벌의 총수들은 결코 김대중씨에게 감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적 경제전문 통신인 블룸버그는 “김 대통령은 경제ㆍ정치ㆍ외교 분야에서 이룬 업적으로 반세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블룸버그는 “77세의 김대중씨는 한 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지도자의 업적을 이뤘다”며 극찬했다.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를 김대중을 꼽았다. 바이든 부통령은 햇볕정책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호콘 망누스 노르웨이 황태자는 “김 전 대통령이야말로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그 자체를 살아오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에리크 손하임 노르웨이 환경개발부 장관은 “저의 개인적 영웅이다. 다른 나라에서 하지 못했던 평화에 대한 많은 일을 하셨다”고 평가했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 교수도 “그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이며 대단히 인도주의적인 인물이다”라고 평가했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체커 전 독일 대통령은 “친구를 넘어 인류애를 갖춘 인격자”라고 김대중을 평하곤 했다. 노르베르트 람머트 독일 국회의장은 김대중을 만난 자리에서 “독일에서 당신만큼 영향력 있는 한국인은 없다”고 거듭 밝힌바 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 국민과 유가족들이 김 전 대통령의 삶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는 용감했고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투쟁했으며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하는 한편 햇볕정책을 통해 대북관계에 큰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에곤 바르 전 독일 경제협력부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이 지구 상에 마지막 남은 최악의 분단을 극복해 냉전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평화와 긴장완화, 교류협력을 강화하는 대북정책을 추진해온 것이 한국인들에게는 커다란 행운”이라고 평했다. 그는 이어 “남한과 북한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족에게 미래의 희망을 주는 정책을 끝까지 추진하는 김 대통령의 끈기에 탄복했다”면서 노벨 평화상 수상은 이에 대한 국제적 인정의 증표라고 덧붙였다. 하르트무트 코쉭 독일 연방하원의원은 김 대통령의 개혁 성과, 남북화해를 위한 기여를 기리고자 책자를 발간하게 됐다면서 퇴임 후 적절한 시기에 독일과 유럽을 방문해 강연 등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김 대통령에 대한 평가 글을 쓴 필자들에는 요하네스 라우 현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대통령을 비롯한 독일의 정치, 경제, 학계, 언론계 등의 주요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 곧 퇴임해 권력을 잃게 될 한국 대통령의 생애와 철학, 정치 등에 관해 평가하는 글을 이토록 많은 유명 인사들이 원고료도 받지 않은 채 기고한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독일 국방장관을 지낸 폴커 뤼헤 하원 외무위원장은 “유럽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비교될 만한 인물은 하벨과 바웬사 정도일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들보다 더 큰 고통을 받은 김 대통령이 일관된 원칙을 세워놓고 꾸준히 추구해온 김 대통령의 인생에 관해 엮은 이 책을 젊은이들이 꼭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뮌헨 대학교 정치학과의 고트프리트 카를 킨더만 교수는 “지난 2000년의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이 남북한 간의 긴장완화, 교류 및 공동사업을 위한 희망찬 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킨더만 교수는 “최근 한국 내에서 김 대통령이 이 획기적 계기 마련을 위해 물질적 수단을 투입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나 과거 서독 정부도 동서독 관계를 완화하고 생활수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동독에 물질적 지원을 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대중을 만나 대화를 나눴던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는 김대중에 대해 “분명한 분석, 설득력 있는 주장에 놀랐다. 많은 정치가들을 만나보았으나 이렇게 명확한 비전을 가진 분은 만나지 못했다”, “완전히 설득당했다”다고 평가했다.
2009년 9월 23일 미국 시사주간지인 뉴스위크에서 조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혁을 이끈 11인 지도자 ‘트랜스포머’로 김대중을 선정했다. 그는 계속된 암살 위협에도 불구, 평생 민주화에 헌신한 인물로 소개됐다. ‘1997년 대통령에 당선돼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여야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냈으며, 재임 때 아시아 금융위기의 나락에서 한국을 구출했다’고 덧붙였다.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해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업적도 높이 평가했다.
2011년 미국의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는 김대중에 대한 미국 대사관의 평가를 공개했다. 이 문서에서는 김대중을 "세계적으로 알려진 정치적 인물로, 외교 정책의 모든 측면에서 능숙했다"고 평가했다.
출처:
http://cafe.naver.com/lovejunbanchak/14806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2&docId=159093301&qb=6rmA64yA7KSRIOyXheyggQ==&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le9T35Y7thssZXVxbRsssssstl-409144&sid=UgR9W3JvLBYAAEuswVE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1404&docId=174988388&qb=6rmA64yA7KSRIOqyveygnOyEseyepeuloA==&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le90c5Y7uKssbQSKMwssssssto-413975&sid=UgR9W3JvLBYAAEusw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