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5
전쟁의 패배와 승리 / 김이봉 목사
1.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입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쟁은 끊일 때가 없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 민족과 민족간에 피 흘리는 전쟁은 항상 있어왔습니다.
전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는 문제에 관하여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입장에서도 제각기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대로 보면 악을 응징(膺懲)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고, 또는 정의의 전쟁, 또는 성전(聖戰)이라고 미화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전쟁만 보아도 모두 자기편에서의 해석은 자신들이 정의요, 상대방이 악이라고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서 어떠한 전쟁이라도 인간 편에서는 미화시킬 수 있는 전쟁은 없습니다.
과거 역사 중, 십자군 전쟁이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십자가를 높이 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이 희생되었습니까?
오늘에 와서 보면, 모두가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교훈으로 보면, 하나님 편에서 전쟁은 인간의 죄악을 징벌하는 수단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악한 자는 더욱 악함으로 전쟁을 일으키게 하였고, 불의한 자는 더욱 불의함으로 마음을 굳게 하여 전쟁을 일으키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이 인류역사의 흥망성쇠의 역사입니다.
고대 앗시리아(Assyria)나, 바벨론(Babylonia)이나, 페르샤(Persia)나, 헬라 (Greece)나, 로마(Rome)가 다 그러했습니다.
저들이 모두 전쟁을 통하여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기도 했고, 또한 전쟁으로 패배한 나라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편에서 보면, 모든 전쟁은 심판의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전쟁을 원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은 <평화의 동산>이었습니다.
어린이가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어도 해함이 없었고,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며, 모두가 서로 조화롭게 살도록, 그리고 질서를 유지하며 살도록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 평화가 깨어졌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그때부터 서로를 비난하며 책임을 전가하면서 서로 반목하게 되었고, 물고 물리는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첫번 피를 흘리기는 형이 동생을 쳐죽이면서 시작된 것이 전쟁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쟁을 원하는 하나님이 아니지만, 범죄한 인간이 일으키는 전쟁을 통하여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심판의 원리입니다.
2. 그러므로 전쟁에서의 패배와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서 이루어집니다.
전쟁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라고 이해한다면, 악한 자의 승리는 승리가 아니라 도리어 더 큰 패망의 원인으로 연결되고, 반대로 전쟁에서 패배한 자의 진실 된 회개는 다시 승리로 인도하는 동기가 된다는 사실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제각기 자기편에서 정의를 외칩니다. 어느 전쟁치고 당사자들은 자기들이 정의라고 하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모두다 정당 전쟁론을 내세웁니다.
특히 종교적 전쟁일 때 더욱 더 그렇습니다.
이번에 미국의 부시나, 이라크의 후세인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죠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 감행의 명분을 뭐라고 내세웠습니까? 작년 1월 29일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첫 째는, 우리는 테러범들의 훈련기지를 파괴하고, 테러 계획을 저지시켜 정의의 심판을 내릴 것이다. 둘째는, 우리는 생화학무기와 핵무기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테러조직과 정권들이 미국과 세계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런 세력들을 악의 축이라고 하면서, <북한>과 <이란>과 <이라크> 를 지목하였습니다.
여기에 맞서서 오사마 빈 라덴이나 후세인은 뭐라고 하였습니까?
지난 1998년 2월에 빈 라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과 그 동맹의 군인과 민간인을 살해하는 것은 이슬람교도들의 의무이다"고 하면서 이른바 성전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번에 후세인도 미국을 대항하여 결사 항전을 독려하면서, 알라는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가 정의라고 하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자기편을 하나님이 도울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인간 편에서는 모두 정당 전쟁론을 내세웁니다.
그러면서 서로 싸우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 전쟁을 통하여 당신의 섭리와 뜻을 이루어 나간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것이 잘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배할 때는 반드시 그들 나름대로의 범죄의 결과이었고, 또 이방의 나라들이 불의한 것일 때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시33:16)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인 아이성 전투에서도 잘 드러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의 승리로 교만에 빠졌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성 쯤이야...'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 중에 3천명만 올려 보냈었습니다.
보기 좋게 패했습니다. 도망치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들 내부의 부정직이 도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교만해졌습니다. 그 결과 보기 좋게 패배하였습니다.
<아간>이란 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눈이 어두워 시날산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의 금덩이 하나를 자기 집에 감추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눈 밖에 나게 된 이유이었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결코 무력의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정의롭게 보느냐에 달렸습니다.
죄 중에 사는 인간이 모두 죄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얼마나 깨닫고 뉘우치느냐에 승패는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성공하였을 때가 제일 조심스러울 때입니다.
성공이 곧 바로 교만으로 이어지고, 교만이 부정직으로 이어져, 하나님에게 구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만 의지하게 되면 그것이 실패의 원인이란 말입니다.
잠언서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반드시 물리치시고 꺾어버리는 하나님이십니다.
교만한 나라, 교만한 정권, 교만한 가정, 교만한 개인은 반드시 패하고야 맙니다. 이것이 전쟁의 승패의 원리입니다.
3.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아골 골짜기의 회개와 성결이 필요합니다.
전쟁은 죄를 멸하고 더러움을 씻어내는 하나님의 심판의 수단입니다.
죄 된 인간으로 하여금 죄의 관영으로 교만하게 되었을 때, 반드시 하나님은 가만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은 거짓됨입니다.
거짓의 아비는 사탄이라고 하였습니다.
거짓을 용납하고 거짓이 판을 치는 사회와 나라는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오늘의 전쟁에서도 이 원리는 적용될 것입니다.
어느 쪽이 더 하나님 편에 정직한지? 사람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모두 양쪽이 하나님을 자기의 신으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어떤 쪽이 더 거짓됨이 있는지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입니다.
강한 자는 더욱 강하게 만들어 부러지게 하고,
불의한 자는 더욱 불의함으로 패망하게 만듭니다.
그럼으로 오늘의 승리가 패배의 씨앗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패배가 내일의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는 것이 전쟁에서의 패배와 승리의 교훈입니다.
이제 우리는 눈을 우리에게 돌려야 하겠습니다.
한반도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함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원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평화를 위함이 머리에 띠나 두르고, 촛불이나 들고 거리로 나선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 여론을 환기시키고, 전쟁을 막아보려는 노력은 가상히 여겨야 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보다, 인간의 다수의 힘을 의지하려는 노력이라면,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아골 골짜기의 회개와 성결이 크리스천들에게는 앞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아골>이란 희브리어로 <아코르>인데 그 의미는 '괴롭다', '고통스럽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골 골짜기라고 하면, '고통의 골짜기' '괴로움의 골짜기'란 뜻이 됩니다. 왜 괴로움과 고통이 있게 됩니까?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사사로운 자기 욕심의 아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평화운동이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이겠습니까?
스스로의 정직성의 회복입니다.
아간과 같은 거짓된 마음을 청산해야 합니다.
이것 없으면 우리 나라는 튼튼한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지난번 9.11 테러로 전 미국이 침통에 빠졌을 때 9월 14일 워싱톤 국립대성당에 서 행한 빌리그래함 목사님의 설교문을 읽어보았습니다.
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악의 실체(reality of evil)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시작된 이 나라에 하나님께서 왜 고난을 주시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이 재난을 통해 하나가 되고, 회개의 새로운 영적 각성이 일어날 때, 우리는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회개의 영적 각성이 일어날 때....'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핵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정치적, 경제적, 민족적 동일성에 호소하기보다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들의 영적 각성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아간과 같은 부정직이 판을 치고, 믿는 사람들이 물질로 교만해져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이미 지어 놓은 죄과를 치루게 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요시아왕 때의 개혁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 말씀의 도(道)를 바로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서부터 불의를 제거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평화는 위에서부터 오는 하나님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샤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입니다.
<샤롬>은 평화운동가들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 속에서 진정 아골 골짜기의 회개와 성결이 일어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
"이 평화를 얻으려고, 주 앞으로 나아갈 때,
주 예수님 우리에게 이 평화 주리로다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