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항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조반 융리(造反有理), 반항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毛澤東 이 紅衛兵들을 부추키기 위해서 내건 口號),
이 말은 중국에서 1966년 부터 1976년 까지 진행되었던 文化革命,중국의 정식 명칭은 無産階級文化大革命 시
모택동 이 사용한 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택동은 농업과 공업의 大增産 정책의 일환으로
1958년 부터 1962년 까지 大躍進運動을 전개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농촌현실을 무시한 집단농장설치,
원시적인 철강생산 독려, 인민공사 설치 등으로 참담한 실패를 초래합니다.
지도자의 무지와 비판없는 정책추진은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로 모택동이 농촌현지 지도 때 참새가 곡식을 먹는 것을 보고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는 한마디 때문에
打麻雀運動(참새 잡기운동)이 시작되어 참새가 멸종되자 생태계가 파괴되어 메뚜기 떼의 창귈로 농사를 망치게
됨으로써 인류역사상 최고의 餓死者가 생기게 됩니다.
증국 정부 공식 아사자는 2000만명이지만 학계 추산으로는 최대 600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국 지도부는 어쩔 수 없이 소련으로 부터 20만 마리의 참새를 들여오기도 합니다.
이 대약진운동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1959년 7윌2일 부터 8월 1일 까지 강서성의 루산회의에서 三面紅旗
(총노선,대약진,인민공사)정책의 실패를 토론하는 자리에서 국방부장 이었던 彭德懷가 대약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가
모택동의 미움을 받아 실각된 후로 누구 하나 모택동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1962년 모택동은 국가주석직을 시임하고 당 주석직만을 맡고 행정은 유소기와 등소평이 맡게 됩니다.
모택동은 권력을 다시 확보하고 政敵을 제거하기 위하여 학생들을 부추키게 됩니다.
이른바 文化革命, 중국의 공식명칭은 無産階級文化大運動으로 1966년 부터 1976년 까지 일어난 소위 紅衛兵으로
불린 학생들의 반항운동은 모택동의 정적제거, 구시대적,부르주아적인 것들의 파괴로 많은 문화재와 최대 2000만
여명의 국민들을 희생시켰습니다.
1966년 홍위병 대표단이 "사회와 정치를 뒤집어 엎자"라는 편지를 모택동에게 보냈을 때 모택동은 반항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며 造反有理라고 그들을 부추킴으로서 홍위병들은 중국을 무법천지로 만들었습니다.
1959년 팽덕회의 대약진운동 비판을 수용했었다면 6000만명의 아사자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1966년 공산당
중앙회의에서 林彪의 "우리 모택동님은 天才,모택동님의 말씀은 무조건 다 옳다"라는 연설이 없었더라면 문화혁명
으로 2000만 여명이 희생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국가 지도자의 견제없는 독단, 무지는 이런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중국의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에서
보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어도 중국은 功七過三 이라하며 모택동을 國父로 받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건국 대통령과 경제발전을 일구어낸 대통령 지우기에 여념이 없는듯 하여 참담하기만 합니다.
<송인성 님이 주신 카톡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