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도식(link schema)에 대한 우리의 체험은 다음과 같다. 우리 인간은 처음에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탯줄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면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다닌다. 또한 우리는 물건을 서로 연결시키기 위해 풀이나 줄을 사용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형성된 연결 도식에는 구조적 요소로 A와 B라는 두 실체 및 그 둘을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있다.
연결 도식의 기본 논리는 다음과 같다. A가 B에 연결되면 A는 B에 의해 제약을 받고 그것에 의존한다. 더욱이 연결 도식은 대칭적이라서 A가 B에 연결되면 B는 A에 연결된다.
연결 도식의 일차적 신체 경험은 어머니의 탯줄이다. 태아는 탯줄이라는 연결을 통해서 어머니로부터 생명의 에너지와 안전을 제공 받으며, 유산하는 일은 임산부로부터 태아의 연결고리가 도중에 끊어지는 것을 뜻한다. 태어날 때 유아는 어머니의 탯줄에서 분리되는데, 이 연결고리는 단지 물리적으로만 단절될 뿐, 가정이라는 사회적 층위에서 부모의 양육을 통해 새로운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따라서 연결은 긍정적 경험으로 분리는 부정적 경험으로 인지된다. 이 원초적 연결은 생명의 탄생으로서의 교접 행위, 결혼, 공동 사회의 유대 형성 등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연관관계로 투사된다.
끈, (밧)줄, 인연 등의 연결고리는 대상물을 연결시키는 매체인데, 사람은 연결을 형성하려는 뿌리 깊은 경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평생 동안 혈연, 지연, 학연의 연결고리에 묶여 있다.
-<인지언어학과 의미>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위의 글을 필사하면서, 처음 생각난 것은 창의성과 글쓰기였다. 창의성은 서로 무관한 것들을 연결시켜 사고하면 나오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이러한 연결은 생각, 실험, 연구, 개발 등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창의적인 이론들이나 물건들로 나오고, 이러한 창의적 연결을 더욱 잘할 수 있는 수단이 글쓰기라고 알고 있다. 자세히 보면 글쓰기로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은 사람들을 통해 인류는 더 깊은 인식의 세계를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점점 더 빠르게 연결되는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시간도 공간도 말이다.
그런데 다시 읽다 마지막 문장 “따라서 우리는 평생 동안 혈연, 지연, 학연의 연결고리에 묶여 있다”라는 부분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무의식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부분에 대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많다. 어느 것이 옳을까? 스펙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만 보는 사회는 과연 올 것인가? 섞여 있는 것 같다. 쉽고도 어려운 문제다. 그러면서 또 하나 생각이 든다. 우리는(나도 당연히 포함) 과연 옳다고 말하는 것들을 얼마나 현실에서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 물론 그 옳다는 기준이 다 다르지만, 입 밖으로 내는 말들을 얼마나 자신에게 적용시켜 살고 있을까? 입으로 글로 하는 말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역시 나도 당연히 그러하다. 그러면서 말을 통해 글을 통해 그러한 생각이라도 해보는 것이 우리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만 안다. 좋은 말씀이 수천 년 전부터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것을 다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그것을 계속 되뇌고 새롭게 말과 글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으로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