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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의 개선이 요망되는데도 호응도(呼應度) 양호한 서울둘레길
나는 2명의 어린 손자(당시 중2, 초등6)와 함께 '157km서울둘레길'을 걸었다.
(메뉴/'서울둘레길'의 '어린 손자와 함께 걸은 157km서울둘레길' 참조)
2015년, 5개월에 걸쳐서 4.000km 까미노를 걸음으로서 까미노의 7개 메인 루트를
완주는 했으나 백팩을 도난당하고 맨몸으로 귀국한 후 긴 패닉상태에 빠져있었다.
사진1.988매가 담긴 USB 2개(3.976매)와 수집한 자료 일체가 들어있는 배낭이니
안 그러겠는가.
이에서 벗어나는 것과 미구에 학교생활에 시달리게 될 손자들을 위해서 택한 일이
2016년 말의 '157km서울둘레길' 걷기였다.
애들의 방학 일정이 다른 이유로 반은 따로따로, 반은 모두 함께 걸음으로서 나는
2장의 완주증서를 받았다(일부를 홀로 보완하여)
리버스(reverse/anti-clockwise)로 한번 더 하여 3회를 마쳤다.
'서울둘레길'이라는 타이틀에 일치하는 것이 옳다면 난이도를 높여야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해도 일부 구간에 개선(변화)이 있어야 하겠으며, 현재의 둘레길은 아무나
걸을 수 있는 무난한 길이라고 생각된다.
시민의 호응도도 양호한 편이다.
2014년 11월15일에 개통하였다는데 내가 2019년 2월 9일에 5회째로 받은 완주증
번호가 26544번이다.
UNESCO 등재를 갈망하고 있는 시코쿠헨로(일본)는 1.200년 역사를 가진 길이다.
2004년 4월 8일에 발급을 시작했다는 완주증(遍路大使任命書)을 나는 2014년 10
월 15일에 받았는데 26675번째다.
시코쿠 헨로는 10년 반에 26.500명대를 돌파했는데 서울둘레길은 4년 3개월도 못
되어 그 수가 완주했다.
개통한지 2년 2개월 된 2017년 1월10일에 내가 최초로 받은 서울둘레길의 완주증
번호는 13.484번이며 그로부터 21개월만에 24.228번째가 되었다.
4개월 후에는 26544번째가 되므로 월 평균 500명대의 증가폭을 유지하고 있다.
두 길의 캐릭터(character)가 다르고 서로 다른 조건들이 있으므로 비교 우열을 논
하는 것은 무리지만 단순 비교를 하면 그러하다.
간지(干支)에 따른 12번의 완주를
한데, 최초의 완주증서 수령일이 1월 10일인데 2번째 받은 날은 10월 1일이다.
의도한 일이 전혀 아닌데도 복수(複數)가 되면서 흥미롭게 느껴진 수령일(1월 10
일과 10월 1일)이 2자릿수의 완주를 시도하게 했다.
2자릿수란 최소 10번(10~99)을 의미한다.
3번째 받은 날은 12월 9일인데, 육갑 간지로 보면 12지 마지막 달(亥月)의 첫 해일
(乙亥日)이다.
12지(支)의 이 날은 내가 태어났다는 해(年/乙亥年/갑자 간지가 딱 맞는)도 된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며 한 발 더 나아가게 한 계기가 되었다.
새 해(2019년/己亥年)에 12지법에 따라 12번의 완주를 계획하도록.
1월을 자월(子月)로 하여 12월(亥月)까지 12번 하며 매월 그 달의 첫 지일(支日)에
완주하는 것으로.(1월3일/庚子, 2월9일/丁丑, 3월6일/壬寅, 4월12일/己卯. . . 등)
1월과 2월은 이미 마쳤으며 2월 이후도 여의하게 진척되고 있다.
일간(日間) 20.000보 ~ 60.000보의 걸음을 그 길(서울둘레길)로 옮겨 음으로서
전반기 내에 한해의 목표를 완성할 수 있겠기에 조절(조정)이 필요할 정도다.
그러나 실은, 내 몸의 고질 외에도 시각(視覺)의 이상 현상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이로 인한 초조감, 보지 못하게 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극단적 생각 때문에
시력을 잃기 전에 성취하려는 조급증이 일는 듯 한데 곧 안정될 것이다.
대안 없이 일방적이지 않는 분, 문을 닫아야 하면 다른 문을 열어놓는 분, 그 분이
내 편이니까.
그러므로, 눈이 제 기능을 잃게 되면 다른 무엇이 눈을 대신할 것이다.
구하는 자가 얻고, 찾는 자에게 나타나고, 문은 노크하는 자에게 열리므로 구하고
찾고 노크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리 될 것.
여러 절체절명의 위기들을 신묘하게 극복한 것이 절로 되었거나 내 힘만으로 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가.
그토록 공을 들인 분이 무용지물처럼 버릴 리 없지 않은가.
지나온 내 삶 85년을 반추해 보면 그렇다.
<덤 인생 77년 반>
"조선땅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모래틈 마을에 가서 7세 소년을 데려와라"
1941년 한가위를 앞둔 여름 어느날, 옥황상제가 저승사자에게 내린 명령이다.
사자는 추석 전날(소년이 만7세 되는날/1941년음력8월14일)이면 이승의 명(命)이
다할 소년을 데리러 떠났다.
(떠나면서도 팔팔하게 뛰놀고 있는 7살 아이를 데려오는 일은 차마 못할 짓이라는
듯 쯧츳. . . .혀를 찼을 것이다)
.
그 무렵에 그 마을에서는 일본이 식민지인 조선땅에서 착취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여러 집을 헐고 산을 절개하는 농사용 수로(水路)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동무들과 함께 공사중인 마을 뒷산을 뛰어 오르내리며 놀던 7살배기 소년이 벼란
간 대굴대굴 구르며 죽을 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죽어가는 아들을 짐받이에 꽁꽁 묶은 자전거를 몰고 상거가 4km
쯤 되는 이웃 면청(태인면) 소재지의 작은 의원으로 달려갔다.
늑막에 구멍이 나고 창자가 터졌기 때문이라며 곧 배를 열고 터진 창자를 꿰메고
배를 다시 닫는 대수술을 했다.
시골의 작은 의원에서는 상상도 못할 큰 수술을 했으나 약(항생제)이 없기 때문에
(이 의원에만 없는것이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약) 입원한채로 생과 사의 기로
를 헤매며 천명만 기다리기 반년이었다.
(7년반 전인 2012년에도 맹장이 터져서 상당한 길이의 대장을 절제(切除)하는 등
77년반 전을 빼닮은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년의 20분의1도 못되는 9일만에 퇴원함으로서 현대의학이 이
70년, 0.7c에 얼마나 발전했는지 전율할 지경이었다)
경솔한 데가 있는 저승사자는 수술중이라는 말에 도시의 큰 병원으로 달려갔다.
작은 시골의원에서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사자가 도회지의 큰 병원들을
뒤지고 다니는 반년 동안에 천우신조로 소생하여 일단 저승길을 면하게 된 소년.
소환령을 집행하지 못한 사자의 추적이 집요하였으나 이번에는 위엄 당당한 어느
분의 보호권역에 있으므로 데려가기 실패를 거듭했다.
하지만 1년을 하루같이 보호할 수 있는가.
앉은뱅이로, 때로는 절뚝발이로 변신을 거듭하고 변장하며 사자가 설치한 함정과
덫을 피했으나 순간의 방심으로 저승으로 끌려갈 수 밖에 없는 때도 있었다.
저승배를 타러 가다가 느슨한 감시의 틈을 타서 탈출에 성공했지만.
이미 청년이 된 후였으며 이로써, 소환장이 발부된지 77년 반(2019년 2월 기준)을
이승에 머물게 되었다.
77년 반이라면 대략 930개월이며 윤월 19일을 포함하면 28.304일이 지남으로서
소년은 85세의 늙은이로 변했다.
세계 최장의 평균수명(한국 포함)을 넘긴 이 시점에서는 내버려둬도 절로 굴러올
텐데 소환장의 집행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소년은 저승사자의 판단 착오로 77년반(2019년 2월기준)을 덤으로 살았으며
이 기간은 원래의 수명 7년의 11배가 넘는 세월이다.
그 기간에 감당하기 벅찬 일이 부지기수였으나 그 분은 이 여분 인생에 아들과 두
딸을 위탁했으며 손녀와 두 손자도 주는 등 삶을 풍요롭게 했다.
그러므로 올해 안에 이승을 떠나야 한다 해도 전혀 아쉬울 것 없는 삶이다.
한달 안에 그래야 한다면 다소 바쁘겠지만.
그 분의 계산은?
한편, 일곱살 소년에서 이순(耳順)과 종심(從心), 산수(傘壽)를 넘어 미수(米壽)의
목전에 이르기까지 갖은 공력을 다 들인 그 분의 손익 계산은 어떨까.
걸핏하면 당신(3인칭)에게 대들거나 어깃장 놓기 일쑤인데다 이미 늙어서 쓸모가
지극히 제한된 상태니.
그러나 그 분의 생각은 달랐으며 되레 이 때를 기다렸는가.
"늙은이가 무작정 걷는 것."
이 것만이 늙은이에게 무심으로 돌아가고 건강하는(physical & mental) 비법이라
는 신념과 약방문이 우이독경이며 마이동풍인 황혼의 무위자들에게 '딱'이라고.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도농 불문, 예외 없이 옳다면서도 실기했음을 탄식하고 있는 고령자들에게 건강
전도사로 가장 적합하지 않는가.
까미노(이베리아 반도)와 시코쿠 헨로(일본) 등 외국에서는 이미 확인이 되었지만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약효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전 세계에서 모여든 무수한 뻬레그리노(peregrinos)와 헨로상(遍路様)들에게 이
늙은이는 그들이 선망하는 마지막 롤 모델이며 이그잼플(example)이었는데 국내
에서도 늙은이들의 부러움과 회자(膾炙) 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쓸모가 적다고 버리겠는가.
"죄를 짓게 하는 것은 몸의 한 부분이라 해도 과감하게 버려라"(마태오5: 29,30)는
것은 기독교의 지침이다.
통째로 버리는 것보다 없어도 되는 것은 과감하게 버리지만 쓸만한 것은 고쳐서
쓰라는 뜻인데도?
늙은 아내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들먹이며 지나침을 막으려 하고 밖에서도 하나
같이 무리라고 말린다.
그러나 나에게는, 걷는 것만이 작금의 내 여분 인생에서 유일한 의미다.
그러므로, 오로지 이 것(걷는 것)만이 다다익선인데 심한 만류의 진퇴유곡에 빠진
느낌이니 어찌한다?
소위 '구구팔팔'이라는 터무니없는 과욕과 하찮은 이승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다.
역겁게 시름시름하는 몰골이나 시나브로 꺼져가는 등불이 아니라 팔팔팔팔, 미수
까지 팔팔한 몸이기를 바라는 욕심이 깔린 것만은 사실이다.
앞에서 밀했듯이 올해 안에 떠나야 한대도 아쉬울 것 없는 덤의 삶이기는 하지만,
덤으로 받았으므로 덤으로 남겨놓고 가고 싶다는 욕심이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다양한 계획을 세우며 막 추수를 시작한 논밭을 (손익계산도
하기 전에) 막강한 누가 마구 갈아 엎어버린다면?
좌절감, 공허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안팎의 여러 사정에 걸려 아무 계획도 세울 수 없게 된 늙은 내게 서울둘레길 1년
12번 걷기는 압축된 유일한 일정이다.
이제까지는, 서울둘레길 12번은 1년치 걸을 거리가 되지 못하며 쉬엄쉬엄 걷는다
해도 넉달 안에 마쳐야 걷는 맛을 느낄만한 거리였다.
그랬는데도, 몸 여러 부분의 상태가 날로 저하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남은 10번의
완주 여부가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지만, 다행히도 성취된다면?
서울둘레길 이후에는?
서울둘레길의 완주증(위)과 까미노 7개 루트의 완주증(아래)
까미노의 7개 메인 루트 중 대학인순례자의 완주증(아래 배열한 9매 중에서 7매).
중앙의 대형 증서는 중량감 있는 문서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한국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전체
루트를 완주했으므로 최초로 준다(2015년 당시 현재)고 했는데 그 후에 어떻게 변했는지.
'대학인순례자여권'이란 대학관계자(대학의 전현직 교직원, 졸업 및 재학생) 중에서 까미노를 걸으
려는 자에게 스페인 빰쁘로나대학교(대학인순례자 본부)에서 주는 스탬프북이다.
'증서'는 그 루트상에 위치한 대학들을 방문, 이 여권에 대학당국의 스탬프를 모두 받으면 발급하는
확인서인데 공휴일이 많고 휴무시간이 다양해서 스탬프 받는데 애로가 적지 않다.
한국에는 '대학학위증'으로 잘못 알려져서 그 증서 취득이 목적이 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중앙의 대형 완주증을 확대한 것/위)과 (개별 루트의 완주증을 확대한 것/아래)
(대학인순례자여권과 받은 스탬프들/위)과 (서울둘레길의 스탬프/아래)
일반순례자여권에 받은 스탬프는 당국에서 요구하는 (일당 3개 이상) 만큼만 받아도 총 220일이므로 660개
이상이다(게재 생략)
까미노의 7개 메인루트는 위(구 양식) 아래(신 양식) 양식의 완주증을 따로 발급한다.
까미노 피스떼라 루트의 완주증(위)과 묵시아 루트의 완주증(아래)
까미노 뽀르뚜 루트의 뻬드로니아에서 발급하는 완주증과 일본 시코쿠헨로의 완주증(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