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하여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군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서 포로 수용소의 제40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승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는 조금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길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에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는 못하고
야경군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이 시에서는 옹졸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특이한 어조로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고 묻는다. 이 시에서 왕궁은 온갖 비리와 부정과 음탕을 감추고 있는 정치권력을 상징한다. 그 위세에 억눌린 ‘나’는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여러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주변의 자잘한 세상사에 화를 낸다. 반체제 문인들의 구속 문제, 월남 파병 문제, 언론 자유 문제는 입을 벌리지 못하고, 옹종하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보여준다. 가난하고, 맥도 없이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저주하듯 하지만, 이 시는 역설적으로 하층민의 삶을 아주 강렬하게 표현해내었다.
김수영의 시는 ‘현실 참여’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가 중요시했던 개넘은 ‘자유’이다. 그는 4.19로 고양되었던 혁명이 군사 정권에 의해서 좌절되는 것을 보고, 깊은 회의에 빠진다. 그가 퍼붓는 악담은 무기력하게 적응해가는 소시민에게 퍼붓는 악담이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퍼붓는 말이다.
김수영이 ‘반시론’에서 시에 대한 자기 의견을 펼친다. 그는 시를 진정 시답지 않게 대한다. 시를 시답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은 시를 시 이상의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가 말하는 삶의 의미와 속성을 시를 떠나서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는 말로만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반시론’은 자신의 사적인 고백에 불과하지만, 거기서 김수영은 지적한다. 시 정신은 정신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정신의 여유가 정신 활동을 정지하고 삶을 안이하게 살도록 한다. 지적 능력을 상실하게 한다.
요약하면 김수영은 일상의 현실 속에서 지적 언어와 서정성으로 조화를 추구하여, 어떤 가치를 만든다.
한편으로, 이것은 김수영 시인의 인생역정에서 만들어진 슬픈 사실이지만, 나는 지난 시절에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매맞는 아내’를 다루었다. 그래서 김수영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데는 약간의 거부감을 느낀다. 나는 그가 아내 폭행을 자행하였디는데에 분노마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만큼 김수영 시인을 기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김수영 시인은 수시로 아내를 폭행하였다. 폭행을 하고 난 뒤에 그가 쓴 글이 나를 경악하게 했다.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이 사실을 알가봐서 긍긍했다는 것이다.
물론, 강제로 인민군에 끌려가서 포로가 되어 거제 포로 수용소 생활을 했고, 그 사이에 아내는 부산서 다른 남자와 동거했다. 반공포로 석방 후에 재결합하여 평생을 지냈다고 한다. 아픈 과거이지만 재결합을 하였으면 ----
김현 선생의 평가
평론가 김현은 그를 "1930년대 이후 서정주·박목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적 서정의 틀과 김춘수 등에서 보이던 내면의식 추구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의 난삽성을 깊이 있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공로자"라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