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내재적 삼위일체와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를 간략히 설명하면서 현대 신학 안에서는 이 둘의 동일성을 강조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를 설명할 때 저는 주로 역사적 과정 안에서 체험된 하느님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교회 역사 안에서 신학적으로 정리된 과정들을 설명하는 방식들을 주로 택합니다. 이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삼위일체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성부는 이미 우리가 우리말에서도 쓰고 있는 대로 '아버지' 입니다. 세상의 창조주, 모든 만무르이 근워능로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신명 32,6; 말라 2,10참조) 물론 하느님의 부성은 모성의 모습으로도 표현될 수 있으며 인간의 성별을 초월하여 그저 하느님이신 분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39항)
예수님께서는 이 성부를 새로운 의미에서 '아버지'로 알려 주십니다. '성자' 곧 아들인 당신과의 관계에서 영원히 '아버지' 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가 이루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의 부자 관계와는 다릅니다. 인간 부모는 부부 사랑의 결실로 어느 특별한 순간에 자녀를 출산합니다. 부모와 자녀는 많은 부분에서 닮긴 했지만, 완전히 동일하진 않습니다. 성부와 성자가 이루는 출산의 관계는 성부께서 성자를 낳는 시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자께서는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늘 성부와 함께 계셨던 분이지 처음에 존재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성부에 의해 존재하게 되신 분이 아닙니다. 이는 성부가 아버지가 아니었던 때,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으며 성부께서 어느 시점에 성자를 창조한 것으로 보았던 아리우스 이단과의 논쟁 사이에서 정리된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슨느 사랑의 비유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성삼위에는 사랑하는 이, 살아받는이, 그리고 사랑 자체가 있다."(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로서 성부는 당신을 온전히 성자에게 내어 주는 분, 성자는 사랑받는 이로서 이 사랑에 오나전하게 응답하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성부와 성자의 고나계 안에서 그 사랑을 이어주는 끈, 사랑 자체로서 성령께서 계십니다. 성령께서 성부, 성자와 이루시는 관계에 대해 가톨릭 교회는 '발출(spiratio)' 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 고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 자신을 선물로 온전히 내어 주시는 것으로 표현되기에 성부께로부터 나오는 사랑은 바로 하느님 그 자신이며, 성자께서도 같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는 분이시기에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는 사랑 그 자체, 성령께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발출에 대한 교리는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분리까지도 가져오게 된 아주 중요한 신학적 논쟁이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신학적 난점을 갖고 있는 주체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한 분의 하느님께서 각각의 위격들 안에서 이루시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온전히 당신 자신을 내어주고 거기에 옩너히 응답하여 하나로 일치되는 사랑의 관계 안에 계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며, 우리들은 바로 그 사랑의 관계 안으로 초대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