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부처
-남산 감실부처
정영숙
돌부처는 동짓달 보름날의 푸른 달빛을 받으며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연유로 이 밤을 밟고 왔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온화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돌부처 앞에 꿇어 앉았다. 한 겨울 너럭바위의 차가운 감촉은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그 예리한 날카로움은 손가락 끝, 발가락 끝까지 낱낱이 전해져 왔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주룩주룩 흘러 내렸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자신의 삶이 토막 난 나무처럼 여겨졌다. 어느 새 소리 없던 눈물은 흐느낌이 되고 통곡이 되었다. 행여 말이 될세라 토해내지 못했던 울음들이 강물처럼 넘쳐났다.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하자 맹세했던 남편과 남남으로 갈라 서던 날, 그녀는 악머구리처럼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감실부처 앞에서 쏟아 놓고 말았다.
신라 석공들의 애환과 환희가 살아 숨쉬는 경주 남산은 700여개가 넘는 보물과 사적, 문화재가 있어 천년의 숨결을 오롯이 전해주고 있다. 그저 친숙하고 따뜻해 보이는 감실부처를 남산 주변의 마을 사람들은 할매부처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산의 야트막한 자락에 자리 잡은 감실부처는 온화한 시골 할머니의 모습으로 고단한 사람들의 가슴을 따듯하게 쓸어 준다. 할매부처는 동해를 지나 석굴암을 넘어오는 햇살과 달빛을 돌집 가득 채웠다가 가슴에 그늘 하나 드리워져 아파하는 이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줄 것만 같다. 어머니도 들어주지 않는 일로 생떼를 써도 일일이 다 들어주는 할머니처럼 할매부처는 뭇 사람들의 소망 하나 쯤은 거뜬히 들어 줄 것 같기도 하다.
크고 거대한 불상도 아니고 잘 지은 절집은 물론, 한 칸 초막도 가지지 못한 할매부처인지라 사람들이 번잡스러울 정도로 드나들지도 않는다. 감실부처 앞에서는 독야청청 일생 푸른 소나무도 산정을 휘돌아 골짜기로 미끄러지는 바람도 모두 고요한 벗일 뿐이다. 키 작은 대나무와 잡풀들을 벗하면서도 천년동안 고요한 성정을 잃지 않은 돌부처를 찾는 사람들은 가슴에 천년의 기와 한 장 쯤은 새겨 넣은 사람들일 것이다.
젊은 시절을 함께 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전의 감실부처는 그저 바위에 새겨진 돌부처일 뿐이었다. 우연히 지나다 발길이 닿으면 널따란 바위에 앉아 쉬어 가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부터 할매부처는 다시 찾아야 할 곳으로 각인되었다. 그녀처럼 눈물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감실부처의 온기를 받아 삭막해진 가슴 한 자락을 데우며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돌부처의 따뜻한 미소를 심장에 닿도록 퍼 담아 지엄한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달래보고 싶었다.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오동지 보름날에 꼭 감실부처를 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인가 보다. 삶의 마지막 열정을 불 지피기라도 하려는 듯이 온통 단풍으로 세상이 물든 시월이 저물어 가던 어느 날 감실부처를 찾았다. 아무 준비도 예고도 없이, 말 그대로 느닷없이 닥친 풍파 앞에 무릎 꿇던 날이었다.
제발 아니기를 간절히도 바라면서 조바심을 내던 암 검진 결과가 나왔다. 예상은 하면서도 아닐 것이라 믿고 싶었다. 암이 진행되어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눈 앞이 캄캄하다는 말은 이런 때에 필요한 말인가.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어렵사리 예약을 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였던 것일까. 회오리처럼 몰아치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주체 할 수가 없었다. 남산 할매부처의 온화한 모습이 떠올랐다.
7번 국도를 달려 경주로 향했다. 가을걷이를 하고 있는 들길을 달리는 가슴에는 들판의 풍성함이 자리 잡을 사이도 없이 눈물이 먼저 달려 왔다. 아무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원망을 내려놓으려 해도 기어이 다시 일어나고 마는 원망은 격랑의 물결로 넘실거렸다. 제 몸뚱이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안타까움에 눈물이 쏟아졌다. 남산자락에 걸렸던 노을은 자취를 감추고 으스름 달빛만 가슴을 시리게 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설움을 안고 살아간다. 남의 아픈 자리에 가서 제 설움에 겨워 우는 것이 사람이다. 효심 지극한 석공의 피눈물이 천년 세월을 건너 붉은 흔적으로 남아 있는 돌부처 앞에서도 자애롭고 따뜻하고 인자한 표정만 그리 잘 읽혔었다. 그런데 나를 집어삼키게 될지도 모르는 큰 파도 앞에 서고 보니 할매부처의 희미한 미소가 눈물처럼 슬프다. 할매부처를 바라보며 끄억끄억 소리 내어 울었다. 목젖이 아려왔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해 졌다. 할매부처의 고요한 미소가 나의 아픔을 다 쓸어 가 줄 것만 같았다.
"그래 오늘 한 번으로 내 울음을 끝내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할매부처의 미소가 너무 인자해서 눈앞을 가로 막고 있던 거대한 벽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천지간에 번뜩이는 섬광처럼 깨지고 부서지던 시간들이 한 순간에 가지런하고 고요하게 정리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순리이다. 섭리대로 살아 갈 뿐이다. 미물 같은 존재가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어이 사람의 뜻이겠는가. 주어지는 대로 받아 들이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할매부처를 찾아 이야기를 나눈다던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멀지 않아 좋고, 오르기 어렵지 않아 좋은 할매부처가 마치 친정엄마 같다고 했다. 할매부처는 사람들이 나다닐 수 있는 길목에 있어도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늘 한적하고 여유롭다. 더러 찾는 사람이 있어도 좋고 아무도 없을 때에는 더욱 좋다. 아무도 없는 달밤이라면 더 더욱 좋아서 할매부처가 그녀에게는 마음의 언덕이 되었다고 한다. 나도 그녀처럼 할매부처를 찾게 될 것만 같다.
찾아가는 시간이 늦은 밤이든 이른 새벽이든 언제 찾아도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친정엄마처럼 할매부처는 늘 그 자리에서 나를 맞아 줄 것이다. 천 년 세월보다 더 오랫동안 돌집 속의 할매부처를 비춰주던 저 말간 달빛은 또다시 천년을 변함없이 할매부처를 비출 것이다. 생과 사의 흐트러짐 없는 순리를 고요히 지켜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