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신중현이라는 전설적인 인물에 의해 탐사를 시작한 락이란 장르는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이르러 산울림이나 마그마,사랑과평화등의 밴드를 통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이후 1980년대 중반,대중음악계 전체를 집어 삼킬만큼 타오른 한국 락&메탈음악의 최대 중흥기를 맞이한다.
이 즈음 활동을 시작한 밴드들이 들국화/시나위/백두산/블랙홀등으로
이미 한국 락음악계에 전설로 추앙받는 그룹들이 절대다수 포진하고 있다.
이중 신대철과 임재범을 필두로 한 시나위,김도균과 유현상의 백두산,
김태원과 이승철의 부활은 80년대 중반 3대 헤비메탈 밴드라 불리고
이 세 밴드에서 기타를 맡았던 이들 또한 한국 3대 기타리스트라 불린다.
한국 대중음악과 락밴드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그룹 부활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26년전인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부활의 전신인 디엔드(the end)가 결성되 활동을 시작한다.
김태원,이지웅,황태순,이태윤을 기본 라인업으로 시작해 김종서가 보컬로 가세하며
디엔드는 84/85년까지 활동하며 많은 인기를 끌게된다.
1회공연 관객 최다동원 신기록을 세웠다는 등의 이야기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이 당시의 팬클럽 회장이 불과 몇년 지나지 않은 1988년 대학가요제에 대상을 거머쥐고
훗날 서태지와 더불어 1990년대 대중음악계를 양분했던 넥스트의 신해철이다.
각설하고 그렇게 잘 나가던 디엔드는 부활로 팀명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준비하지만
김종서가 군문제로 갑작스레 팀을 떠나며 잠깐의 위기를 맞이한다.
(김종서는 몇년 후 시나위의 보컬로 참여하게 되고 김종서가 시나위 보컬로 있을 때의 멤버 중 하나가
훗날 데뷔 앨범 한장으로 대중가요계를 송두리째 전복 시켜버린 정현철-서태지-로 이때 쌓은 둘의 친분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김종서를 대신해 김태원과 같은동네에 살던 후배 이승철을 보컬로 맞이하며
1986년 역사적인 부활 1집-rock will never die-을 내면서 단숨에 당대 최고의 인기밴드로 자리한다.
(비어있던 보컬자리를 노리던 이승철은 그 당시로써는 거금을 들여 악기를 김태원에게 상납??하며
오디션을 통해 보컬자리를 꿰차게 된다-물론 그의 실력이 뛰어났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희야/비와 당신의 이야기 비롯해 1집의 모든 곡들이 젊은 세대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이승철의 앳되고 곱상한 외모와 미성이 잘 부각된 희야의 인트로부분
희야~날좀 바라봐~가 나오면 많은 소녀팬들이 설레여했다.
희야란 곡으로 소녀팬을 중심으로한 대중적인 인기도와 더불어
비와 당신의 이야기외 인형의 부활 너뿐이야 등의 곡이 헤비메탈 팬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인기도면에서만 보자면 당대 밴드들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부활 1집에서는 김태원만이 아닌 이지웅 역시 기타를 담당했기에 트윈기타의 밴드였다.
부활의 리더자리는 김태원vs이승철이 아닌
김태원과 이지웅의 대결 구도였으나 이지웅 역시 1집을 끝으로 탈퇴하게 되고
(이지웅은 이후 시나위 출신의 임재범외에 손무현,박문일,손경호와 함께 외인부대를 결성한다)
1집 멤버였던 김태원과 이승철 외에 정준교,서영진,김성태가 새 멤버로 합류하며
부활 앨범중 단연 최고라고 평가받고,더불어 한국 대중음반 역사에서 명반 중 하나로 꼽히는
2집-remember(1987)-을 발표하게 되고 2집 역시 엄청난 인기와 판매고를 기록한다.
그러나 절정의 인기를 얻었던 이들의 나이는 불과 20세 전후였으니 너무 어린 나이에
큰 인기를 얻은게 독이 되었는지 연예인들의 대마초 파동 속에 김태원 역시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된다.
김태원이 대마초를 흡입하고 만든 곡들이 바로 천국에서와
그가 환각상태에서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는 것을 알면서 지켜보던 여자친구(소녀-현재의 아내)를 위해
만든 회상3 등이 있다.
대마초 사건 이후 이승철은 팀을 떠나고 부활은 해체 되기에 이르른다.
이후 팬들은 부활의 재기를 갈망하지만 2집 이후 3집이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90년 김태원은 홍성석,황길상,이현주,황태순(부활 1집 멤버)과 게임(game)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잠시 외도 아닌 외도를 하지만 제대로 말아 먹게 되고
(게임이란 밴드는 부활인지 부활짝퉁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부활 냄새가 농후하다.
김태원이 리더였고 부활에서처럼 대부분의 곡을 작사/작곡 했으므로 은연중 부활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사이 김태원은 대마초 흡입으로 다시 한번 교도소 생활을 한다.
이승철이 없어도 부활은 잘 나갈 수 있다 호언장담했던 그는
92년에 이르러서야 팀을 다시 추스리고 2집 멤버였던 김성태,정준교 외에
최태완과 남정호등을 불러 들이고 작은하늘에서 활동했던
고 김재기를 오랜 구애 끝에 보컬로 영입하며 불후의 명곡이 된
사랑할수록이 담긴 3집-기억상실(1993)-을 발표하며 부활의 부활을 알리게 된다.
(거의 막장이다시피 했던 그당시의 김태원은 김재기가 군대를 갔다 올 동안 계속 기다리는
열성을 보여주며 결국은 보컬로 영입하는데 성공한다)
김재기는 이미 이승철을 뛰어넘는
(이승철은 그당시에도,지금에도 조용필과 임재범과 더불어 최고의 보컬리스트라 평가된다.)
천재보컬리스트라 칭송받았던 인물이었지만 견인된 차를 가져오다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절치부심 끝에 영입한 보컬이 세상을 떠나간 후 김태원에게 희망이 된건 김재기의 친동생 김재희이다.
(김재기는 자신이 사망하기 몇일전 김재희를 김태원에게 소개시켜 주기도 했고
김재기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버지가 김재희를 끌고 와 형의 한을 풀어달라고 부탁한다)
김재희는 음색도 그의 형과 비슷했고 출중한 실력을 갖춰
3집 활동을 무사하게,그리고 대성황리에 마치게 된다.
폐인이었던 김태원의 요청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합류한 김재기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렇게 많은 사연이 담긴 3집의 사랑할수록으로 김태원을 절망에서 구원해준다.
3집은 부활 역사상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는등 화려한 비상을 이룩하게 된다.
참고로 1/2집때의 거칠고 포악하던 사운드는 3집부터 맑고 아름다운 선율로 바뀌게 된다.
4집-잡념에 관하여(1995)-보컬 역시 김재희 였다.
4집은 6집과 함께 부활 음반중 인기도면에서 최악으로 꼽힐만큼 참패를 한다.
형보다 더 허스키하고 암울한 김재희의 목소리로 세상에 나온
4집은 역대 부활 앨범 중에서 가장 난해한 앨범이기도 하다.
그렇게 대중적인 실패 후 김재희는 팀을 떠난다.
(김재희는 몇년후 솔로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고,다시 가무진이란 이름으로 앨범을 내고,
기독교에 빠져들며 ccm 앨범을 발표하기도 하고,
우연히 접한 자리에 예수를 꼭 닮은 모습-장발에 덥수룩한 수염등^^으로 뮤지컬 지저스크라이스트에
주인공으로 발탁되 활동하기도 하고,간간히 드라마 배경음악에도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미 십수년이 지났지만 김재희는 여전히 비운의 천재보컬리스트 김재기의 동생이란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4집의 참패 이후 송탄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박완규를 보컬로 맞아들여
4집의 난해하고 몽롱하던 사운드를 벗어던지고 론니나잇/21c 불경기 같은 경쾌하고
박완규 특유의 보이스와 잘 매치되는 곡들을 담은 5집-불의발견(1997)-으로 부활이 건재함을 알린다.
4집까지 참여했던 드러머 김성태 역시 정동철로 교체된다.
부활의 역대 보컬중 이승철을 제외하면 부활의 후광을 가장 크게 받은 이가 박완규일 것이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미미했던 박완규는 5집에서 파워풀하고 군더더기없이 처리되는
고음과 카리스마를 보이며 당대 최고의 고음을 자랑하던 김경호와 비교될만큼의 네임밸류를 형성하게 되고
5집을 끝으로 팀을 탈퇴,솔로로 전향해 1집 천년의사랑으로 초대박을 내면서
가수로서의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다
6집-이상시선(1999)-은 하늘소리/킹덤등의 밴드에서 활동했던 김기연을 보컬로 녹음을 했으나
보컬의 성대결절등의 이유로 활동 한번 제대로 해보질 못한채 활동을 마감한다
(김기연은 이후 음악과는 무관한 삶-건축계통에 몸담고 있다고 몇해전 들은 기억-을 살아간다고 한다)
5집에 이어 드러머가 다시 한번 교체되면서 현재의 드러머 채제민
(채제민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매일매일 기다려라는 곡으로 동상을 수상한
티삼스-인하공전 건축과 그룹사운드 동아리로서 뜻은 T자,삼각자,스케일의 앞글자를 따서
밴드 이름을 지었다는-출신이다)이 멤버로 잠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인기도 측면에서의 참패는 결과적으로 7집에 이르러 김태원 외의 모든 멤버가 모두 교체되는 변화를 불러온다.
7집-7 color(2000)-에서는 아기천사/신조음계에서 활동했던 이성욱을 보컬로 맞이한다.
(작곡가로 이름을 알려가던 엄수한과 이승철,최재훈 등의 밴드에 있던 서재혁,
전인권 밴드에서 활동했던 김관진이 합류한다.
1987년부터 활동하던 정준교는 팀을 탈퇴 후 4집부터 부활에 합류했던 최승찬과 새 밴드를 결성한다)
김태원 자신을 제외한 모든 멤버를 교체하면서 분위기 쇄신을 꾀하고,
역대 앨범중 손에 꼽힐 정도로 좋은 작품이 나왔지만 기획사의 부도로 홍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90년대 후반 이후 재편된 아이돌 위주의 음악시장에서 다시 한번 고배를 마시며 이내 절판되고 만다.
그리하여 7집은 저주받은 명반이란 꼬리표를 달게 된다.
하지만 7집이 실패만 있던 것은 아니다.
7집에서 기존의 올드팬 외의 매니아층이 두터워졌고,그 당시에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몇년 지나 부활을 알게된 팬들이 7집 음반을 구하기 위해 온오프라인을 뒤지고 다니는 기현상이 종종 벌어진다.
오프라인에 흩어져 있던 부활의 팬들은 7집을 전후해 온라인에서 모여들기 시작했고
부활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공식 팬클럽인 다음 카페 부사모(부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7집의 실패 이후 이성욱도 팀을 떠나게 되고
(이성욱은 이후 post라는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이승철과 뜻을 모아 7집과 8집 사이의 스페셜음반을 발표한다.
그 음반이 큰 인기를 끌었던 네버엔딩스토리가 담긴 음반으로
너무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어찌어찌하다 보니 8집-새,벽(2002)-이 되어 버린다.
멤버에서도 변화가 있어 6집에서 잠시 모습을 보였던 드러머 채제민이 8집에서 다시 팀에 합류하며
현재 팀에서 악기를 담당하는 라인업이 갖춰진다.
이 앨범은 1/2집에서 보였던 거칠고 투박하던...젊은이의 열정을 느낄 수 있던 사운드에서 벗어나
20년 가까이 고집스레 음악을 해온 두 거장들의 농익은 연주와
힘을 빼고 부르는(네버엔딩스토리 제외^^) 보컬의 조화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부활 골수팬들과 네버엔딩스토리로 뒤늦게 부활을 알게된 팬들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부활(김태원)+이승철이 만났을 때의 파급효과가 얼마만큼인지를 재확인만 시키고
이승철은 다시 부활을 떠나간다.
이승철 이후의 보컬은 공개오디션을 통해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정단-본명 김병건-으로 낙점된다.
9집-Over The Rainbow(2003)- 역시 대중성 면에서 그다지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한다.
탤런트나 가수들의 한류 바람속에 부활도 중국으로 진출을 모색하지만
이 역시 큰 성과를 거두지 못 한채 활동을 마감하고 정단 역시 떠나간다.
정단은 이후 그린페이스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내게 된다.
3집에서부터 서서히 보이던 팝적인 요소가 이 앨범에서 한층 완숙하게 표현되며
락밴드인지 팝밴드인지 구분이 모호할만큼 앨범 전체가 부드러워진다.
10집-서정(2005)-에 이르러 현 보컬인 정동하가 보컬로 모습을 보인다.
정동하의 노래를 처음 듣자마자 김태원이 반했다는 표현을 했을 정도로 음색과 가창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정동하는 군 제대 이후 연습을 꾸준히 하던 시점에서
평소 알고 지낸 지인의 조언을 듣고 부활 보컬 오디션을 거치고,
짧지 않은 시간동안 새보컬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김태원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어
단번에 보컬로 자리하게 된다.
김태원은 첫 가수활동을 시작하는 정동하를 두고
이승철/임재범/김종서보다도 뛰어나다고 누누히 말할 정도로 완전히 반해버린 모양이다.
그동안의 앨범에서는 지극히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던 부활은 이 앨범에서 외부와 교류를 시작한다.
추억이면의 뮤직비디오 주인공인 조승우가 작은 너에게를 피쳐링을 하고
조피디가 회상3를 자신의 느낌으로 재해석해 앨범에 넣었다.
20대 중반의 꽃미남 보컬로 분위기를 쇄신하면서
8집 이후부터는 보컬 외엔 멤버 변화도 없어 안정기에 접어든다.
노을이라는 곡은 조인성이 열연한 영화 비열한거리의 ost에 실리며 뒤늦게 인기를 끌기도 한다.
11집-사랑(2006)-은 10집의 타이틀이 서정이었음에도 그보다 더 서정적일정도로 팝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계속된 말랑말랑한 음악으로 인해 질타를 당하기 시작한게 이 시기이기도 한다
11집은 이승철 이외에 같은 보컬로 두장 이상의 앨범을 낸 적 없던 부활의 역사에
정동하가 10/11집 연속으로 보컬로 참여하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긴 시간동안 함께하던 키보드의 엄수한은 2009년 팀을 탈퇴한다.
12집이 나오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 기간동안 각종 공연을 통해 정동하와 멤버간의 호흡은 완숙의 경지에 이르른다.
12집은 part1/2로 나누어지는 앨범으로
2009년 생각이나를 타이틀곡으로 하는 part1,
2010년 사랑이란건을 타이틀곡으로 하는 part2를 발매한다.
2009년으로 정동하와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다시 5년 재계약까지 하면서
김태원이 얼마나 정동하를 애지중지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컬 재계약은 20년을 훌쩍 넘는 부활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다.
12집이 나오기 전 의미가 큰 음반이 하나 나오니
이 음반이 바로 부활에게 후배 음악인들이 바치는 헌정앨범인 25th song book-사랑,이별,그리움...이다
한정음반이라는 것이 해체하거나 멤버가 세상을 떠나 더이상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전설적인 인물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바치는 음반인 성격이 강한데
헌정음반이 얼마 없는 한국에서 아직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중인 밴드에게
헌정음반을 바친다는 것 자체가 센세이션한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느낌일지는 모르되 음반의 큰 의미만큼 훌량한 작품이 되진 못 한듯 하다.
그외의 활동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김재희가 보컬일 당시 이승철과의 조인트 콘서트 실황앨범이 있고,
'94 환경보전 슈퍼콘서트 내일은 늦으리에 참가,앨범에 새가 나는 곳 이란 곡이 수록되어 있다.
(요즘으로 치면 드림콘서트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당시 최고 인기 가수들이 모이는 대규모 콘서트)
2001년 락밴드들이 참여한 희노애락이라는 앨범에 너에게(이성욱 보컬)가 수록되 있다.
그리고 몇해전인가 썸데이 ost에 참여했던 적이 있는걸로 기억된다.
매번 보컬이 교체되며 에너지가 분산되는 것을 지켜보는 팬의 입장에서 안타까움이 적지 않았는데
정동하로 인해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듯 해서 참 반갑다.
초창기처럼 대중을 휘어잡는 인기나 엄청난 속도로 몰아치는 기타 연주를 기대하기는 무리겠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부활이라는 밴드가 내 나이 오십이 될 때도
현역으로 활동해주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세세한 부분에서 사실과 차이가 있을 수 있고,견해 차이가 생길수 있으나 주관적인 견해임을 양해 바란다.
더불어...번외편? 형식으로 이승철과의 글을 쓸까 많이 망설이기도 했지만
이승철 골수팬들에게 집중포화를 당할까봐 그냥 단념했다(무서워서 단념한게 아니라 귀찮아서 단념했다)
나 또한 이승철이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보컬리스트 중 하나임을 알고
이승철의 많은 곡들을 좋아하지만 부활 팬들이 그러하듯 인간 이승철에 대해서는 적지않은 반감이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제와 부활이란 밴드에 대해 알고자 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과 몇해전만 해도 어린 친구들에게 부활을 아냐고 물으면 100명에 99명은 모른다고 답했을텐데
이제는 초등학생 중에도 부활이나 김태원을 아는 것을 보니 방송의 힘이 참 크구나...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다만...그 관심이 단순히 예능인 국민할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기타리스트 김태원으로...부활을 26년간 지켜온 김태원으로 번져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부활이란 밴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길 바라며...!!
출처 - 네이버 오픈백과 1442rain 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