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자가 장공의 신하로 있을 때, 그의 의견이 크게 받아 들여져서
매번 조회 때마다 장공이 안자의 작록(爵祿)과 봉읍(封邑)을 더하여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의견이 채용되지 않자 이번에는 매번 조회 때마다
이전에 받았던 작록과 봉읍을 삭탈하여, 그만 모든 것을 다시 내놓게 되었다.
이에 안자가 조회에 수레를 타고 가면서 혀를 차며 탄식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웃었다.
그러자 그의 마부가 이상히 여겨 안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찌하여 탄식과 웃음이 그렇듯 번갈아 들며 잦습니까?”
이에 안자가 이렇게 설명 하였다.
“내가 탄식한 것은 우리 임금이 난(難)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요,
내가 웃는 것은 내 스스로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역시 죽지 않을 것이로다!”
최저가 과연 장공을 시해하자, 안자가 최저의 집 문앞에 우뚝 섰다.
이에 최저의 시종이 나타나 “죽으러 왔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안자가 “설마 나 한 사람만의 임금이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나만이 그를 위해 죽을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시종이 “그렇다면 도망가시렵니까?”라고 물었다.
안자는 다시 “나 혼자만의 잘못으로 임금이 죽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나 혼자만이 도망갈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시종이 다시 “그렇다면 돌아가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안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모시던 임금이 죽었는데, 어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찌 백성을 능멸하기 위해 임금노릇을 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오직 사직을 위해 일할 뿐이지요.
또 임금의 신하가 되어 어찌 먹기 위해 일하겠습니까? 오직 사직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임금이 사직을 위해 일하다가 죽게 되면 신하도 따라 죽는 것이고,
사직을 위하다가 쫓겨나게 되면 신하도 마땅히 쫓겨나는 것이지요.
만약 임금이 임금으로서 자신을 위하다가 죽거나 자신을 위하다가 쫓겨나게 된다면,
그의 사사로운 측근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런 임금을 위해 함께 죽고 함께 도망가는 일을 맡겠습니까?
또 다른 사람이 임금을 모시다가 이를 시해한 경우에, 내 어찌 그런 일을 위해 죽으리요?
내 어찌 그런 일을 위해 쫓겨 나리요? 그러나 임금이 없으니 내 어디 돌아갈 곳이 있으리요?”
그러면서 최저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최저가 이를 보고 다급히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죽지 않는가? 그대는 어찌하여 죽지 않는가?”
이에 안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앙화(殃禍)는 내가 없을 때 시작되었고, 앙화의 끝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마감 되었습니다.
내 어찌 죽을 수 있으리요? 또 내가 들으니 도망가는 것을 최선으로 삼는 자는 그 임금을
존속시키기에 부족하고, 죽음을 의로움으로 여기는 자는 공을 세우기에 부족하다 하였습니다.
내 어찌 어린 노비처럼 목을 매어 따라 죽겠습니까?”
그리고는 드디어 옷을 벗고 앉아, 임금의 시신을 자기의 무릎위에 올려놓고 곡(哭)을 하였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세 번을 몸부림치며 뛰어서 슬픔을 표시하고는 나가 버렸다.
최저의 부하가 “저런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라고 하자, 최저가 이렇게 만류하였다.
“백성의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다. 그를 살려 주고, 대신 백성의 지지를 얻도록 하자!”
최저가 장공을 시해하고 경공을 세워, 그 자신과 경봉(慶封)이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뒤 여러 장군과 대부들, 그리고 저명한 선비와 서인까지 태궁의 구덩이 옆에 세워놓고
협박하되 맹약을 거부하는 자가 없도록 하였다. 또한 세 길 높이의 단과 그 아래에 구덩이를 파놓고,
1천 명의 병사를 벌려 세워 그 안과 밖을 둘러싸 지키게 하였다.
이 맹약을 위해 들어오는 자는 누구나 검을 풀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안자만이 이를 거부하였다.
최저는 할 수 없이 이를 허락하였다. 그리고 감히 맹약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창과 구(鉤)를 그 목에 걸고,
검으로 심장을 겨누고 나서는 스스로 다음과 같은 맹약의 말을 하도록 하였다.
“최저와 경봉의 편을 들지 않고 공실(公室)의 편을 드는 자는 상서롭지 못한 결과를 맛볼 것이다.”
그리고는 망설이면서 말을 하지 않는 자, 손가락에 피를 묻히지 않는 자는 죽여 없앴다!
그렇게 하여 죽음을 당한 자가 일곱 명이나 되었고, 드디어 안자의 차례가 되었다.
안자는 피가 든 잔을 들고서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탄식하였다.
“아! 최저가 무도하게 굴더니, 끝내 임금을 시해하였구나.
오히려 공실의 편을 들지 않고 최저와 경봉의 편을 드는 자도 똑같이 이러한 화를 입으리라!”
그리고 나서 고개를 숙이고 그 피를 마셨다. 그러자 최저가 안자에게 이렇게 제의하였다.
“그대가 말을 바꾸면, 이 제나라를 그대와 함께 차지할 것이오. 그러나 그대가 말을 바꾸지 않는다면,
창이 이내 그대의 목을 겨누고 검이 그대의 심장을 겨누리라.
오직 그대의 결정에 달렸다!”
안자는 이렇게 거절 하였다.
“나를 칼날로 위협한다고 그 의지를 잃는다면, 나는 용기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또 나를 이익으로 회유할 때 이를 위해 임금을 배반한다면, 나는 의롭지 못한 자가 된다.
최저여, 그대는 홀로 이 시를 읽지 못하였는가?
시(詩)에 “뒤엉켜 뻗어난 칡덩굴 줄기와 가지 뒤덮었는데,
훌륭하신 저 군자여 복을 구하되 어긋난 짓은 아니 하네!”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뜻을 굽혀 복을 구하란 말인가?
굽은 구(鉤)의 칼날로 끌어 베고, 곧은 칼로 찔러 죽인다 해도 나는 그 뜻을 바꿀 수 없다!”
이에 최저는 장차 안자를 죽일 셈이었다. 그때 곁에 있던 자가 이렇게 만류하였다.
“안 됩니다! 그대는 그대의 임금을 무도하다 여겨 시해하였습니다.
지금 안자는 그 신하 가운데서도 도(道) 있는 선비로 알려진 인물인데,
이를 죽이게 되면 어떠한 교화의 명분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제서야 최저는 드디어 이를 풀어 주었다. 안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대부가 되어 큰 불인(不仁)을 저질러 놓고도
나에게는 조그만 인을 베풀겠다고 하니, 이것이 사리에 맞는 짓인가?”
그리고는 뛰쳐나가 고삐를 잡고 수레에 올랐다.
이에 그의 마부가 급히 내달리려고 하자, 안자가 그의 손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만류하였다.
“천천히 가자! 급히 간다고 해서 반드시 살아난다는 법도 없고, 천천히 간다고 해서 반드시 죽는 것도 아니다.
사슴은 들에서 태어났지만, 그 운명은 요리사에게 달려있다. 나의 운명도 그처럼 매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절도를 다 갖춘 후, 그 자리를 떠났다.
시(詩)에 “저러한 군자라면 의지 굳세어,
그 절개를 지켜 번치 않으리!”라고 하였으니, 안자 같은 이를 두고 한 말이로다.
-《안자춘추(晏子春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