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가책 앞에 서는 용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집회가 올림픽공원에서 6.3선거 이후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삼상 16:7). 사람의 눈은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과 동기, 그리고 양심을 살피십니다. 그래서 공적인 직분을 맡은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선거관리위원회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하는 기관입니다. 만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했다면, 그 문제는 단순히 법적 책임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양심과 마주하는 영적 책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거나, 근거 없는 비난으로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 역시 그리스도인이 경계해야 할 죄입니다. 성경은 "거짓 증언하지 말라" 고 명령하며, 진실과 공의를 함께 세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한 마음입니다. 죄를 지으면 양심은 우리를 책망하고, 회개하면 다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다윗도 자신의 죄를 숨기려 했을 때는 뼈가 쇠하는 고통을 겪었지만, 하나님 앞에 자복했을 때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시편 32편).
오늘 우리 모두는 질문해야 합니다. 공직자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거리낌 없는 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정직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열매입니다. 교회는 어느 편의 정치적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진실과 정의, 회개와 화해를 선포하는 예언자적 사명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이 있다면 철저히 밝혀지고 책임이 따르기를 기도하며, 잘못된 비난이 있다면 그것 또한 바로잡혀 진실이 드러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단순합니다.‘주님, 우리 모두에게 깨끗한 양심을 주옵소서. 진실을 사랑하게 하시고, 잘못은 회개할 용기를, 억울함은 인내할 믿음을, 공직에는 청렴을, 국민에게는 분별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자유이며, 가장 큰 평안입니다. 양심이란 어질 양(良) 마음 심(心)으로 서양의 사고방식은‘지식과 함께’라는 뜻입니다.
성군 다윗은 남의 아내를 범한 죄책으로 침상을 적시고 몸이 수척할 때까지 회개했습니다. 어거스틴, 루소, 그리고 톨스토이는 각각‘참회록’을 썼습니다. 의인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자기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고치는 것에 신속했습니다. 실로 붓은 칼보다 무섭고 양심은 붓보다 강하고 예리합니다. 인간은 그 누구나 양심의 가책 앞에 3가지 중에서 택일해야 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묵살해 버리거나, 가책의 주체를 인멸하려는 태도 즉 자살, 그리고 자복 회개하고 신앙의 길로 귀의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은 누구나 가집니다. 그러나 그 가책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는 본인의 결단에 있고 그 답은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