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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북한산 백운대 단독 산행을 계획할 때는 ‘우이역 → 도원사 → 육모정공원지킴터 → 용덕사 → 헬기장 → 영봉 → 하루재 → 백운대피소 → 백운봉암문 → 백운대 → 백운봉암문 → 노적봉 → 용암문 → 동장대 → 대동문 → 중흥사 → 산영루 → 중성문 → 법용사 → 북한동역사관 → 계곡 길 → 수문 → 북한산성분소 → 북한산성 입구'의 12.5km 코스를 6시간 동안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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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北漢山)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 강북구 · 종로구 ·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 · 양주시 · 의정부시에 걸쳐 있는 산.
[개설] 북한산의 높이 835.6m이고, 전체 면적 중 서울은 약 39㎢, 경기도는 약 41㎢를 점하고 있다. 북한산은 경위도상 위치는 동경 126° 56′∼127° 03′, 북위 37° 35′∼37° 43′에 있다.
[명칭 유래] 북한산은 예로부터 명산으로 일명 한산, 삼각산(三角山) 또는 화산이라 불렀으며 신라 때에는 부아악이라고도 하였다. 옛날 개성의 송도에서 한양으로 오다가 이 산을 바라보면 백운대(白雲臺), 만경대(萬景臺), 인수봉(仁壽峰)의 세 봉우리가 삼각으로 나란히 우뚝 솟아 있어 삼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이곳 부아악에 올라 살 만한 땅을 찾았다고 한다. 또한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이성계를 위해 도읍지를 정할 때 백운대에서 맥을 찾아 만경대에 올랐다가 서남쪽으로 가서 비봉에 이르렀다고 하여 만경대를 일명 ‘국망봉(國望峰)’이라고도 한다. 비봉은 진흥왕순수비가 꼭대기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환경] 북한산은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남쪽의 만경대·보현봉 및 북악산으로 연결되는 주 능선과 북쪽으로 인수봉·우이암·주봉·자운봉과 사패산으로 연결되는 주 능선을 축으로, 동서로 크게 나뉜다. 이러한 산봉이 하나의 거대한 암괴로 된 돔(dome) 형상을 띄는데 일종의 도상구릉(島狀丘陵)이라고 한다. 이는 두꺼운 풍화층이 침식되어 없어지고, 그 하부에 있던 절리 간격이 넓은 화강암이 지표 혹은 지표 가까이로 노출되면서 하중 제거에 의한 판상절리가 탁월하게 발달된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북한산의 각 봉우리 사이를 흐르는 계곡으로는 정릉계곡·구천계곡·소귀천계곡·육모정계곡·효자리계곡·삼천사계곡·세검정계곡·진관사계곡·구기계곡·평창계곡·산성계곡 등이 있다. 이들 북한산에서 발원한 계류는 중랑천·창룡천·불광천·모래내 등을 이루어 한강으로 유입된다.
북한산의 식물상 조사 결과 108과 692종류의 관속식물이 조사되었다. 식생으로 미선나무군락·나도국선나무·백선나무 등 희귀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주요 식물군락은 신갈나무·소나무군락·굴참나무군락·상수리나무군락·아카시아군락·소나무군락·당단풍군락 등이다.
주요 동물상은 족제비·고슴도치·철설모 등 13여 종의 포유동물, 참새·박새·쇠딱따구리 등 114여 종의 조류, 도롱뇽·맹꽁이·두꺼비 등의 양서류와 함께 1,000여 종의 곤충류가 서식하고 있다.
북한산 지역은 대도시 지역인 서울과 경기도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각종 오염물질과 황사 및 산성비가 북한산의 생태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노출암석이 많고 경사가 심하고 사양토 및 사토가 많아 보수력이 낮은 데다가 등산로의 과밀 이용으로 인해 다른 산보다 실물 종 수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형성 및 변천] 북한산은 중생대 말에 관입한 화강암이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지표에 노출된 뒤 절리와 표면의 풍화작용으로 현재와 같이 산세가 험준하고 경사가 심한 암벽 봉우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 봉우리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상장봉(上將峯), 남쪽으로는 석가봉(釋迦峯)·보현봉(普賢峯)·문수봉(文殊峯) 등이 있다.
여기서 다시 문수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나한봉(羅漢峯)·응봉(鷹峯) 등의 줄기가 백운대 서쪽 줄기인 원효봉(元曉峯) 줄기와 만난다.
[현황] 북한산은 서울에 근접해 있으면서 자연 경관이 뛰어나 1983년 4월 경관의 보존과 합리적 이용을 도모하기 위하여 도봉산(道峯山) 일대와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나한봉에서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1711년(숙종 37)에 축조된 연장 8㎞의 북한산성(北漢山城)이 있으며, 지금도 14개의 성문 중 대서문(大西門)·대남문(大南門)·대성문(大成門)·보국문(輔國門)·대동문(大東門)·용암문(龍巖門) 등이 남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이곳 부아악에 올라 살만한 곳을 찾았다고 하며, 무학대사(無學大師)가 태조를 위하여 도읍지를 정할 때 백운대에서 맥을 찾아 만경대에 올랐다가 서남쪽으로 비봉(碑峯)에 이르렀다고 하여 만경대는 일명 국망봉(國望峯)이라고도 불린다. 비봉은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국보, 1962년 지정)가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진흥왕 순수비를 보존하기 위해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고 현재 있는 것은 모조 비석이다.
이밖에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태고사 원증국사탑비(보물, 1977년 지정)·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 1983년 지정)·동장대지(東將臺址) 등 많은 유물·유적지가 있으며, 상운사(祥雲寺)·원효암(元曉庵)·진관사(津寬寺)·승가사(僧伽寺)·회룡사(回龍寺)·광법사(廣法寺)·문수사(文殊寺)·원통사(圓通寺)·화계사(華溪寺)·도선사(道詵寺) 등 30여 개의 사찰이 있다.
중흥사지(重興寺址)는 북한산에서 가장 큰 사찰로 승군의 총지휘를 맡았던 곳이었으나, 갑오경장 이후 승군이 해산되고 고종 말년에 모두 불타 지금은 초석만 남아 있다. 교통이 편리하여 서울 시민의 등산 코스로 많이 이용되며, 정상에 오르면 서울 시가지는 물론 멀리 서해까지 보인다.
특히, 북한산은 계곡에 물이 많고 산림이 우거져 야영지로 적당하다. 북한산장(北漢山莊)·우이산장(牛耳山莊)·도봉산장(道峯山莊)·백운산장(白雲山莊) 등이 있어 등반객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백운대·인수봉 등과 같은 높은 암벽이 있어 암벽등반 훈련장으로도 이용된다. 우이계곡·도봉계곡·송추계곡에는 유원지가 만들어져 시민들이 많이 찾는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5년 1월 25일 토요일은 2024년 12월 28일 가려다, 친구의 요청으로 날짜를 변경한 용문산 장군봉에 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여러 사정으로 원하는 산행을 하기 힘들어 뒤로 연기하고 하루 뒤인 일요일, 혼자 가려고 계획을 세웠던 2023년 6월 오른 후 다시 찾지 않았던 북한산 상봉 백운대를 1년 7개월 만에 오르기로 했다. 애초 단독 산행이라 영봉 코스로 올라, 중성문 방향으로 하산할 생각이었으나, 최대한 많은 친구가 참석할 수 있도록 최단 코스로 오르기로 했다. 그럼에도 참석하겠다는 친구는 흥수 등 셋으로 나를 포함 네 명이 백운대에 오르게 됐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혼자 다녀오는 산행이 많았고, 그 결심을 더욱 굳히는 촌극이 다시 발생했다. 어쨌든 북한산이라 특별히 다른 산행 준비를 하지는 않고, 점심은 오랜만에 뜨거운 물과 컵라면을 가져가기로 했다. 당연히 제대로 된 점심은 빨갱이를 반주로 산성 입구 식당가에서 먹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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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 시작은 멀리서 오는 친구를 고려해 10시 우이역에서 집합하는 거로 했지만, 친구 중 한 명의 오후 일정 때문에 한 시간 당긴 9시 집합으로 바꿔, 8시경 집에서 출발하면 되는 산행이다. 해서 느지막이 기상하려고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 바람에, 아지트로 나와 기상청 사이트로 들어가, 북한산 산악날씨를 먼저 확인했다. 우리 산행 시간에는 구름이 약간 끼고, 0℃~6℃ 사이의 기온에, 2㎧~1㎧의 아주 약한 바람이라, 체감 기온은 -3℃~6℃로 땀은 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추위를 느낄 날씨도 아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는 여러 특보가 발령 중이나, 북한산은 어떠한 특보도 발령된 게 없고,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 모두 '좋음'이라 조망은 기대할 만하다. 그리고 레이더 영상에 의하면 오후에는 무언가 내릴 듯도 하나, 산행 중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무엇인가를 만날 일은 없을 듯하다.
그렇게, 날씨를 확인하고 있는데, 산행에 같이하기로 한 친구에게서, 설을 맞아 우이역 길목에 있는 동생 집에 가져다줄 게 있어, 차로 이동할 예정이라, 역촌 오거리에서 픽업할 테니 같이 가자고 전화가 왔다. 우리는 중간 우이신설선 역에 하차해 경전철로, 우이역으로 가면 된다. 해서 끓인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준비한 배낭을 둘러메고 7시 55분경 집을 나서, 역촌 오거리로 향했다. 그리고 8시 10분이 조금 넘어 친구와 만나, 솔샘역에서 하차해, 우이신설선 경전철을 타고 8시 49분경 집합 장소인 우이역에 도착했다. 이후 역 밖으로 나갔으나, 먼저 출발한 걸로 알고 있던 사당팀이 보이지 않아, 우리가 먼저 도착한 걸로 알고 두 친구를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되자 흥수가 편의점에 있다고 전화했다. 그런데, 같이 사당에서 출발한 친구는 경전철에서 자는 바람에, 돌아가는 열차에서 다시 우이역으로 오고 중이라고 해, 다들 그 친구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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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오는 친구를 기다리며 현 위치, 즉 우이동 날씨를 확인했다. 집에서 확인한 것과 큰 차이는 없다. 이후 산길샘의 '기록 시작'을 누른 후 위성과 동기화가 될 때까지, 많이 본 거지만,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이후 두 등산 앱의 지도로 우이역 입구의 고도를 확인했다. 22.1m~46m, 백운대의 높이가 836m니, 고도차는 790m가량이다. 즉 수직으로 790m를 올려야 하는 산행이라, 한국 산 중에는 꽤 높다. 920m의 한계령휴게소에서 시작하는, 1,708m의 설악산 대청봉 산행과 비슷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9시가 조금 넘어 어제 숙취로 정신이 없는 친구가 도착해, 바로 백운대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스팔트 포장도로 도선사 방향으로 올라가다, 오른쪽 능선을 주시했는데, 그게 과거 인공위성 바위와 응응바위를 찾아 헤매던 능선이라는 깨달았다. 그리고 영봉에서 이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날머리를 찾기 어려워 철책을 넘어야 하는데, 거꾸로 여기서 시작하면 쉽게 오를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럼, 이 코스로 올라가는 건 처음?
산행 후 남아 있는 기록을 다 찾아봤으나, 이 코스로 하산한 기록은 많지만, 등산한 기록은 찾지 못했다. 우이동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도봉산으로 향하거나, 북한산은 영봉 코스로 올랐다. 혹시 학창 시절에 올랐을 수도 있으나, 그건 기록이 없어 확인이 안 된다. 하긴 북한산 넘어 집이 있는데, 최단 코스로 백운대에 오르기 위해 굳이 차를 타고 빙 돌아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거다. 학창 시절에는 마음 맞는 친구 몇이 수업을 제치고 북한산으로 출발한 일이 몇 번 있다. 그럼 당연히 관악산에서 출발했으니, 도선사 코스로 올랐을 확률이 높다. 그때 처음으로 멋모르고, 만경대에 올라, 피아노바위도 건넜다. 그런데, 도선사 방향은 맞지만, 능선으로 올라야 하는데, 그 입구가 기억이 안 난다. 거기를 날머리로 했지, 들머리로 한 적이 없어 기억이 안 나는 거다. 해서 수시로 앱의 지도를 확인하며 올라가는데, 갑자기 갑판 등산로가 나타나고, 갑판을 따라 10여 미터를 가자,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여기가 들머리다.
우회전해 돌계단으로 위로 올라, 차단봉과 전자계수기가 설치된 '백운대2공원지킴터'를 지나, 거의 산책로 수준의 능선 위 등산로로 하루재를 향해 갔다. 와중에 심장 수술을 한 친구가 늦어 완만한 능선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수술 부위 통증 때문에 하산하겠다고 전화가 왔다. 해서 조심해서 내려가라 얘기하고, 나머지 셋이 다시 하루재로 향해, 9시 49분 울창한 숲 사이로 도선사가 보이는 곳을 지나, 9시 58분 도선사 셔틀을 타고 올라왔을 확률이 높은 등산객으로 붐비는 도선사 갈림길에 도착했다. 분위기로 봐서 여기서부터 줄을 서서 백운대까지 올라가야 할 듯하다. 설 연휴 둘째 날이라, 등산객이 별로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오판이다. 어쨌든 갈림길 기준 400m 거리의 하루재로 향해, 10시 9분 하루재가 보이는 곳에 도착해 기록을 위해 동영상을 촬영하며 위로 올라, 10시 10분 영봉 갈림길이자, 많은 등산객이 쉬는 중인 쉼터가 있는 하루재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서 앞에 보이는 인수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 후 바로 백운대피소로 향했다.
10시 11분 하루재를 떠나, 백운대피소로 향하며 보니, 등산로가 빙판이다. 북동사면이기는 하나, 그보다는 상장능선과 영봉능선이 햇볕을 가리고 있는 게 영향이 크다. 그건 백운봉암문까지 마찬가지로, 경험으로 알고 있던 거라 놀랄 것도 없다. 다만, 반대편 산성 입구로 향하는 너덜 하산 길도 그렇다면 심각해진다. 물론 그런 경우를 대비해 아이젠과 스패츠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하루재에서 출발해, 고개를 돌자, 지금까지 울창한 숲에 가려 보이던 인수봉이 아무런 방해 없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어, 가던 길을 멈추고, 파노라마로 기록했다. 이후 다시 길을 재촉해, 인수대피소 앞을 지나, 10시 18분 인수암 앞을 지났다. 그리고 백운대피소가 멀지 않은 곳에서 역시 기록을 위해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 10시 40분 도착했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 백운산장을 국립공원에서 접수한 후 잔치국수나 막걸리 등을 파는 건 금했으나, 다른 국립공원의 대피소와 같이 매점은 운영했는데, 지금 보니 대피소 자체를 폐쇄했다.
그걸 보니, 저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치솟는다. 과거 백운산장이던 시절 잔치국수와 생두부에 막걸리를 마시려고 일부러 백운봉암문(아니 '위문'으로 불리던 시절)에서 산장으로 내려왔고, 또한 북한산도 최소 격월 한 번은 올랐다. 하지만 국립공원이 접수해 백운대피소 바꾼 다음부터는 거의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나마 그 대피소도 폐쇄했다는 걸 이번 산행에서 알았다. 해서 등산객은 대피소 안에는 못 들어가고 그 앞 야외 식탁에 모여 앉아 간식이나 점심을 먹고 있다. 도대체 환경청은 무엇을 위해 산장을 접수해 대피소로 만든 걸까? 덕분에 손기정옹의 친필 현판도 볼 수 없고! 어쨌든 등산객으로 붐비는 야외 식탁 한쪽 구석에 주저앉아 식탁을 보니, 친구가 옆 식탁의 여성 등산객으로부터 떡을 올려놓은 게 보인다. 하긴 하루재 쉼터에서 배를 채우고 가자는 걸 대피소에서 먹자고 달래서 데려왔다. 하지만, 오는 중 배낭 허리띠 주머니에서 에너지바를 꺼내 체력을 보충하라고 주기도 했는데!?
그렇게 셋이 다른 등산객과 동석해, 떡과 비스킷, 귤 등을 안주로 친구가 마시다 남은 거라고 들고 온 위스키를 마시고, 대략 16분이 지난, 10시 56분경 대피소를 떠나 백운봉암문으로 향했다. 역시 기록을 위해 동영상을 촬영하며 올라, 11시 3분 암문에 도착해 그걸 기록으로 남기려는 순간 반대편에서 암문을 통과한 외국인 다섯이 나와, 문제가 될 수도 있어, 암문이 아니라, 그 옆 '음주 산행 금지' 경고문만 찍었다. 많은 등산객이 산의 모든 곳에서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거로 오해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 지정된 장소에서만 금주다. 그 경고문 또한 마시면 안 되는 장소를 알려주는 거다. 고로 저기에 언급되지 않은 곳에서는 마셔도 된다. 그건 그렇고, 그 외국인들도 다른 등산객의 방해로 암문을 배경으로 인증을 못 찍어 우왕좌왕하다가 간신히 인증을 남겼다. 그런데, 이번 산행에서 다시 깨달은 거지만, 여기저기 들리는 소리의 거의 반이 다양한 국적의 외국어다! 하긴 지리산이나, 설악산에서도 외국인 등산객을 자주 만나는 시절이 됐다.
암문에서 이번 산행의 목표인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백운대 정상을 사진에 담은 후 바로 거기로 향해 성벽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갔다. 그리고 거의 1년 7개월 만에 오르는 동안 등산로가 많이 변했다는 걸 알았다. 하긴 가장 많이 변한 건 인수대피소에서 백운대피소까지로 거의 갑판 계단으로 도배를 했다. 암문에서 정상까지는 과거에도 병목지점에는 중앙분리대가 있었지만, 이번에 보니 거의 전 구간에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어 있다. 어쨌든 가끔 뒤로 돌아 불암산, 수락산, 만경대, 비봉능선, 의상능선, 노적봉 등을 기록으로 남기며 올랐다. 그리고 정상이 멀지 않은 곳에서 늘 그랬듯이 동영상을 촬영하며 등산로가 아닌 약간 경사진 리지로 올라, 11시 19분 인증을 남기기 위해 줄 서서 대기 중인 등산객으로 꽉 찬 정상 바로 아래에 도착했다. 우리 셋 모두 인증을 위해 줄 서서 기다릴 인간이 아니라, 정상 비석과 태극기, 그리고 인수봉과 도봉산, 오봉, 상장능선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는 거로 만족했다.
이후 준비한 컵라면을 먹기 위해 아는 사람만 안 다는 테라스로 가려는 데, 한 친구가 무섭다고 거부해 어쩔 수 없이, 정상 아래에서 컵라면과 컵쌀국수로 간단히 요기 후, 거의 30분간의 휴식을 마치고, 백운대를 떠나 하산을 시작했다. 역시 내려갈 때도 기록을 위해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뒤로 돌지 않고 앞에 보이는 전경을 기록으로 남기며 갔다. 와중에 만경대를 배경으로 독야청청 중인 소나무를 기록으로 남기려고, 역시 그걸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두 청춘이 떠나기를 기다렸는데, 갈 생각이 없는 듯해, 그 둘도 자연의 일부라 생각하고 사진을 찍고 내려갔다. 그리고 위문을 통과하며 그걸 배경으로 두 친구의 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다행인 건 반대편과는 달리 산성 입구로 내려가는 너덜 하산 길에는 눈이 다 녹아 빙판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등산화 바닥이 거의 다 닳아, 빙판이 아니라 바위에서 미끄러진 게 두서너 번 된다. 등산화를 바꿀 때가 됐다.
의상봉과 용출봉 아래 금녕사를 사진에 담고, 굶주린 듯한 새끼 밴 암캐가 목을 축이는 모습, 그리고 그렇게 주지 말라는 개 사료를 주는 엄마, 그게 창피한 듯 말리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들! 참 북한산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걸 보며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건 기록으로 남기고 그렇지 못한 건 눈에 담으며 내려가, 12시 36분 일주문이 낡아 쓰러진 대동사 앞을 지나, 거대한 바위가 만든 비좁은 기독교인의 기도처도 지나, 12시 54분 보리사에 도착했다. 여기가 허용된 사람은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아스팔트 포장도로의 종점이라, 사실상 산행이 끝난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아직 2km가 조금 못 되게 더 내려가야 해, 대서문 방향의 포장도로가 아니라 수문 방향의 계곡 길로 가, 1시 13분 거의 완성된 시암사 대웅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계속 걸음을 재촉해, 1시 16분 북한산성과 관련된 세 개의 수문 중 하나인 수문의 흔적인 성벽에 도착해 역시 사진에 담았다. 이후 1시 24분 북한산국립공원 표지가 있는 곳에 도착하는 거로 1년 7개월 만의 백운대 산행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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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일찍 하산했으니, 당연히 빨갱이를 반주로 늦은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 산성 입구의 우리만 단골로 생각하는 식당에 갈까 하다가, 평소 산성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막걸리를 마시던 북한산성 분소 바로 앞에 있는 초원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김치찌개를 안주로 하산주를 마셨는데, 몇 병이나 마셨는지 기억이 없다. 물론 계산을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집에 갔는지도! 다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지트에서 자고 있었다. 아마, 백운대피소에서 마신 위스키가 빨갱이를 만나, 정신을 잃은 듯하다. 다만, 교통 카드 기록을 보면 3시 58분 13초가 최종이다. 구산역일까? 버스 정류장일까?
처음 계획과는 달리 오랜만에 달리는 친구를 고려해 단축한 '우이역 → 우이분소 → 선운교 → 백운대2공원지킴터 → 도선사 갈림길 → 하루재 → 인수대피소 → 백운대피소 → 백운봉 암문 → 백운대 → 백운봉암문 → 대동사 → 개연폭포 → 보리사 → 북한동역사관 → 계곡 길 → 수문 → 북한산성분소 → 초원식당'의 12.22km(산길샘) 코스를 4시간 31분 동안 달렸다. 이동 3시간 49분, 휴식 42분!
2023년 6월 단독으로 백운대에 오른 후[산행기], 1년 7개월 만에 오른 백운대다! 자주 찾는 산이라, 정상에 오르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 생각보다 백운대에 오르는 산행이 적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친구들의 참여를 기대하고 토요일 용문산 장군봉을 버리고 선택한 북한산 백운대 산행으로, 정상에 집중하기 위해 최단 코스로 백운대에 오른 산행이다. 와중에 하루 연기가 탁월한 선택이었던 거진, 모든 환경이 좋아, 조망도 좋았다. 물론 추위에 떠는 일도 없었다.
중도 탈락한 친구를 보며, 역시 꾸준한 산행이나 운동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은 산행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