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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鳳梧洞)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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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등 독립군의 국내진입 유격전에서 여러 차례 패배한 일본군은 1920년 6월경 두만강을 건너 간도의 독립군과 근거지를 공격하였다.
독립군의 대표적인 승리로 알려진 봉오동 전투는 함경도 온성에서 두만강 건너편인 봉오골에서 1920년 6월 7일 발생하였다.
상해 임시정부 군무부 주장에 따르면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은 전사 157명, 중상 200여명, 경상 100여명을 내었고 독립군측의 피해는 전사 4명, 중상 2명 이라고 「독립신문 1920. 12. 25.일자」에 보도되었다.
(※ 6월 4일경부터 발생하였다는 자료도 있다. 봉오동 전투는 인터넷과 많은 책에서 다루고 있으므로 상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 전투 중 하나하나 사망자 수를 표시하면서 세지 못하고, 대충 추정하여 과장된 전과가 알려질 수도 있습니다.
리인섭 작성 「회상기(아령과 중령에서 진행되던 조선민족해방운동)」 등을 보면 수기를 남긴 김재규는 최진동 군대 270여명, 의군부 허영장 군대 5백여명, 국민회 안무 군대 200여명, 홍범도 군대 700여명, 신민단 군대 70여명, 무산 쪽 군대 수십명을 합한 천여명이 회합하여, 형식적으로 총군부를 조직하였고 전투가 벌어진 지역이 중국지역이여서 외교의 편리를 위하여 최진동을 총지휘관으로 선출하였으나, 실제로는 홍범도와 허영장이 전투를 지휘하였다고 한다.
왜적이 출현하자 봉오골 10여리에 살던 조선여인이 「일본이 오오」라고 소식을 전하였고, 삿갓을 꺼꾸러 세운 듯한 봉오골의 산봉우리 산의 등떼를 따라 독립군이 포진하였고, 제일 첫봉우리에는 신민단 군대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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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인섭 작성 「회상기(아령과 중령에서 진행되던 조선민족해방운동)」 중 의군부 김재규 수기를 살펴보면,
김재규의 수기
제일봉에서는 극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따금 신민단 군인들 러시아 총소리가 한두 방씩 나더니 그만 끊어지고 잠잠 하였다. 왜놈들은 「반자이」 하고 육박전에 대들었다.
10개에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소리가 그치였다.
안개는 차츰 거두고 태양이 희미하게 비치였다. 봉오꼴 가운데 첫 봉 신민단 군인들 총소리를 들은 왜놈들은 자우산에서 그 총소리를 듣고서 러시아 총소리가 나니 물론 독립군 총소리라고 간파하고 그곳에다가 모든 사격을 내리고 나중에는 총 소리가 그치니 탄환이 진한 것을 알아 마치고 단병 접전에 대여 들면서 좌우편에서 일시에 제가끔 몰사격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깊이 패인 나무뿌리 웅덩이에 은신한 신민단 군인들에게는 총알이 미치지 못하고 덮어 놓고서 상대방만 향하고 날아다니는 일본 탄환은 상대방에 있는 일본 장졸을 잡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 나무뿌리 있는데 와서 8명의 영웅들에 포탄까지 맛을 보고서야 왜놈들은 저희 왜놈들끼리 싸웠다는 것을 알아 마치고서 다 죽고 남은 놈들은 높은 봉을 끼고 있는 좌우 골짝 그 근방으로 미친 개무리처럼 군율도 계획도, 전략도 없이 덤비게 되었다.
바로 그때에야 우리 사령관 홍범도는 덤비는 왜놈들에게 “일제 사격 !” 하고 군령이 내리였다. “이곳에 일제사격! 저 봉에서 일제사격 !” 따따따~~~ 생생하고 규모있게 요란이 나는 총소리는 되는 대로 덤비는 사무라이 놈들을 신통히도 찾아가서 명중탄 하나씩 먹여 주었다. 왜놈의 신체는 모든 싸움터에 질서 없이 개죽음처럼 너무 질펀하였다.
이 전투에서 그 지방에 살던 조선 농민 18명이 죽었다.
한 집에서는 7명이 다 왜놈들의 총살을 당하였는데 어린 아이 하나가 7곳이나 경상을 당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 전쟁에 참여하였던 왜놈 수백여 명에서 살아서 달아난 놈이 불과 18명이라고 한다.
수많은 전쟁품을 얻고 신민단 군인 죽은 시체를 봉오꼴 승지짝 첫 봉 그들이 싸우던 곳에 장래를 지내였다.
......김재규의 수기 하략......
봉오동 전투 참가 김재규 선생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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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인섭 작성 「회상기(아령과 중령에서 진행되던 조선민족해방운동)」 중 홍범도 부대 이종학의 수기를 살펴보면
이종학의 수기
그날 아침 훤히 동이 트자 어떤 조선 여자 한 분이 우리 보초선에 당도하여 일군이 오오하고 기혼하여서 쓰러졌다. 그 여자는 발을 벗고 달려와서 발이 전부 피 못시였다.
그 후에 알아보니 그 여자는 당시 「모드미 솔밭」이라는 지방 사는 여자인데 그 전날 밤에 일본 군인이 자기 집에 와서 유하였는데 새벽에는 파수 보던 놈 까지 잠을 드니 그 여자는 가만히 물동이를 가지고 물 길러 가는 모양으로 물가에 나왔다가 일본 군인들이 뒤를 아니 따르니 가만히 달려와서 “일본이 와요” 하고 흥분에 넘쳐서 기혼하였던 것이다.
이 통보를 접한 사령관 홍범도는 전쟁 준비하라는 명령을 각 부대에 전하였다. 망탑(望塔)은 봉오골 가은産 맨 마지막 3골 어구 가운데 봉에 있었다. 일본 군대는 일시에 자우방면에서 침입하여서 망대(望坮)를 향하고 돌입하여 우리 망대(望坮) 있는 데다가 사격을 시작하였다.
우리도 마주 사격을 시작하였다. 잠시 후에 홍범도 대장은 사격을 그치고 북쪽을 향하여 차츰 높은 봉으로 오르라는 명령을 전하였다. 그러나 봉오골 어구에서 좌우산(左佑山) 첫봉(峰)에 있던 신민단 군인 8명은 말하기를 우리는 다른 군대 군인이니 그 명령에 불복하고 자비로 행동한다고 하고 그냥 그 자리 나무뿌리가 빠진 웅덩이에 자리 잡고 엎드려서 사격을 계속하였는데 그들 총은 러시아식이여서 총소리가 유표하였다.
전투를 시작하자 청청하던 날 상공에는 시커먼 구름이 한 장 떠돌더니 삽시간에 뇌성벽력이 진동하며 주먹뎅이 같은 우박이 박으로 내리 부어서 지척을 분별치 못하였다.
총소리인지, 기관총 소린지 우뢰와 벽력소리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홍범도 사령관은 외인산 고지에서 자리를 아니 떠나고 전쟁을 지도 하였다. 왜놈 군인들은 러시아 총소리가 나는 곳을 향하여서 좌우편에서 서로 있는 힘을 다하여 장총·기관총 기타 있는 무기를 다 사용하여서 몰 사격을 퍼부었다.
몇 시후에 우박이 그치니 겨우 정신을 차려서 분간하게 되었다. 사격 소리도 그치고 좀 사면이 잠잠 하였다. 그때에야 왜놈들은 저의 끼리 서로 사격한줄 알게 되자 미친개 모양으로 봉오골 좌우에 있던 조선 농촌에 흩어져서 되는 대로 사격을 시작하였다.
홍범도 장군은 자기 있는 산 앞에 들어오는 왜놈들을 향하여 따꿍 따꿍 따꿍 연 3방을 놓았다. 왜놈 3놈은 따꿍 소리와 같이 쓰러졌다. 이 따꿍 소리는 당시 몰 사격을 놈들에게 퍼부으라는 암호였다.
사면에서는 기관총 소리와 흡사한 일제 사격소리와 같이 되는대로 덤비던 사무라이 놈들이 이리저리 쓰러지고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때였다.
장군탑 근방 홍범도 장군을 옹호하던 헌병대에서는 따꿍따꿍따꿍하는 연발 사격 3방이 터졌다.
이것은 놈들 추격하지 말고 앉은 자리에서 명심하여 사격하라는 암호 명령이었다. 이산에서 저산에서 이 골목에서 저 골목에서 불시에 터지는 따꿍따꿍따꿍 소리는 왜놈들을 걸어서는 달아도 못나게 하였다. 놈들은 거의 죽고 몇 놈이 이리저리 기여서 잔명을 보존 하였다.
봉오골 삼거름 왼쪽 어구에는 수백 명 사무라이 놈들 썩어진 시체가 있었다.
......이종학의 수기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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