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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호] 2005-02-23
지율「100일 단식」행적 공개/19일간 단식 현장에 없었다.
여승 지율
속보 = 여승 지율이 「100일 단식」기간의 중간 중간에, 하루 혹은 이틀씩 어떤 때는 6일 또는 8일 동안 계속해서 단식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음이 월간조선 인터넷통신 취재결과 확인됐다. 단식 현장을 비운 기간은 총 19일이다.
공개된 장소에서, 생명을 담보로 하는 단식이란 극단적 방법을 통해 자기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사람이 개인적인 일로 단식 현장을 떠나거나, 일주일 정도 종적을 감추었다가 다시 나타난다면 이를 제대로 된 「단식」으로 볼 수 있을까.
「100일 단식」은 작년 10월27일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지율 주변의 말이다. 이날부터, 서울 서초구 정토회관에서 단식을 끝낸 2월3일까지가 꼭 100일이다.
부산시청 앞에서 단식을 시작한 지율은 다음 날 서울에 올라와 이화여대 철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부산에 내려갔다. 단식 4일째와 5일째는 토ㆍ일요일인데, 지율은 단식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6일째 되던 월요일 오전 7시40분부터 지율은 부산시청 앞에서 단식했고, 10일째 날에는 오전 9시5분쯤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 나타나 오후 4시10분까지 1인 시위를 벌였다.
낮에는 행인들이 다니는 부산시청 앞에서 단식하고, 해가 지면 부산시청 민원실에서 기거하던 지율은 단식 17일째부터 거주지를 부산 남산동 그루터기란 곳으로 옮겼다. 지율이 청와대 앞에 나타난 것은 단식 43일째인 작년 12월8일.
청와대 구내에 들어가려던 지율은 경찰이 제지하자 오후 1시35분쯤 철수했다. 다음 날, 낮12시부터 1시까지 청와대 부근 길에서 시위를 벌이다 철수한 지율은 하루를 쉰 다음, 12월11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 단식에 들어갔다. 이때가 단식 46일째라고 했다.
지율은 낮에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청와대 인근 주택에 다녀왔고, 밤에는 단식 현장을 비우곤 했다. 참고로 화장실과 수도는 단식 장소 바로 옆에 있다. 지율 지지자들은 『가르멜 수녀원과 경복궁 인근의 주택에서 기거했다』고 전했다.
단식 79일째 되던 지난 1월13일, 지율은 경복궁 인근 찻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환경 영향 평가를 재실시하지 않으면 단식을 계속 하겠다』고 밝혔다.
단식 87일째 되던 날, 지율은 단식 장소인 청와대를 떠나 거처를 옮겼다. 이때부터 8일간 지율의 행적은 묘연했다. 경찰이 찾아나서는 등 잠적 소동이 일어난 게 이 무렵이다. 지율은 1월30일,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단식 96일째라고 했다.
정토회관 내 지율 단식장은 기자 출입이 통제되었다.
[月刊朝鮮 인터넷통신 제공]
동아일보, 간부 5명에 사표 제출 통고
동아일보사가 2월22일, 간부 5명에게 사표 제출을 통고했다. 민병욱(54) 출판국장, 남찬순(56) 심의연구실 실장, 전진우(56) 논설위원실 실장, 유성수(57) 광고국장, 권순직(55) 어린이동아팀 팀장 등이다. 회사 측은 이날 오후 5시경, 이들에게 『주총(2월25일) 전에 사표를 내라. 사표를 내더라도 6월까지는 근무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편집국장, 경영기획실장 등을 제외한 주요 국장급이 다 사직하는 대폭 인사다.
한 관계자는 『동아일보는 작년에 500억원 상당의 적자를 보았다. 주총(株總)을 앞두고 간부직 10여명을 사퇴시킨다는 설왕설래가 있었다. 株總 전에 국장급 5명을 1차 사직시키는 것은 주총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月刊朝鮮 인터넷통신 제공]
李會昌씨, 열심히「운동」중
이회창 한나라당 前 총재
서울 남대문에서 남산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에 단암빌딩이 있다. 이 건물 21층에는 한나라당 李會昌 前 총재가 작년 10월 문을 연 개인사무실이 있다. 단암빌딩의 건물주는 李會昌씨 사돈인 이봉서(李鳳瑞) 단암산업회장(전 상공부 장관). 李鳳瑞 회장은 연세대 교수로 있는 李會昌씨 장남 정연씨의 장인이다.
21층에 내리면 흰색 바탕에 검은 색 글씨로 「2105」라고 쓴 아크릴판이 붙어 있다. 21층 5호실이 李會昌씨 개인사무실이다. 「00연구소」나 「00사무실」이라고 하면 정치 재개를 염두에 두고 사전 준비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까 봐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사돈 건물이지만 구설수를 피하기 위해 사무실 임대료는 낸다고 한다.
크기는 30평 정도. 두 개의 방이 따로 있고 가운데에 테이블이 놓여 있다. 출입문 왼쪽으로 사무실 살림을 보는 여비서가 앉아 있고, 창가 쪽에 이흥주 前 행정특보와 이종구 前 언론특보의 책상이 놓여 있다. 두 사람은 사무실 상근 멤버이다. 총재 수행비서였던 이채관씨도 이곳으로 「출근」한다.
이종구 前 특보는 사무실을 연 데 대해 『집에만 있을 수 없어서 집과 멀지 않은 곳에 개인사무실을 낸 것』이라며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방문객은 전ㆍ현직 정치인과 시골 친구들, 그리고 해외 知人들이며, 최근에 기자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李會昌씨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매일 이곳으로 출근해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 역사책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국내 뉴스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특히 TV는 거의 시청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CNN 같은 외국 언론을 즐겨 본다고 한다.
이종구 前 특보는 李會昌씨 정치 복귀 가능성에 대해서 『정계은퇴를 선언한 만큼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며 『때가 되면 원로 정치인의 입장에서 할 말은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주변 인사들은 李會昌씨에게 꾸준히 정치 재개를 요구한다고 한다. 팬클럽인 「창사랑」과 국회의원 모임인 「함덕회」의 요청이 강력하다고 한다. 李會昌씨와 가까이 지내는 전ㆍ현직 의원모임인 「함덕회」는 양정규, 김종하, 정창화, 목요상, 김기배, 유흥수, 하순봉씨 등이 회원이다.
李會昌씨 전직 측근들은 지난 1월27일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고무돼 있다고 한다. 이 여론조사에서 李會昌씨는 「차기 대통령감」 항목에서 25.9%의 지지율로 4위를 차지했다. 1위는 고건 전 총리(46.9%), 2위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32.5%), 3위는 이명박 서울시장(29.4%)이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李會昌씨가 대구ㆍ경북 지역에서 지지율 39.2%로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표는 38.0%로 2위였다.
李會昌씨는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한다. 등산이나 산책보다는 집에서 헬스기구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약해지는 근육을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자신이 직접 개발한 요가와 유사한 체조로 매우 건강하다고 한다.
[백승구 月刊朝鮮 기자]
「내기 골프」무죄 판결 판사, 1달러「내기 골프」즐긴다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
억대 「내기골프」를 치다 도박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남부지법 이정렬(李政烈ㆍ36) 판사에게 2월22일 밤 8시30분경 전화를 걸었다. 동료 판사들과 함께 탁구를 치고 나서 저녁 식사 겸 술 한잔 하고 있노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주위는 왁자지껄했다.
골프를 치느냐고 물었다. 그는 『1995년 軍 법무관 시절에 배우기 시작해 지금은 97 내지 98타 정도 친다』고 말했다. 내기골프를 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에는 동료 판사들과 1타당 1달러짜리 내기 골프도 쳤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못 친다』고 했다.
그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한바탕 웃어 제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전주지법 판사 때 골프장에 많이 나갔죠. 국내보다는 해외에 나가 즐겼어요. 서울로 올라온 후에는 통 골프장에 못 나갔어요』
이정렬 판사는 지난해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첫 무죄 판결과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선고유예 판결 등으로 주목받았다. 서울 광성고 졸업 후 서울대 법대와 법대 대학원을 거쳐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4년 육군 법무관을 시작으로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 서울지법 판사, 전주지법 판사 등을 역임했다. 오는 7월경 미국 연수 떠나는 부인을 따라 가기 위해 휴직할 계획이라고 한다. 부인은 서울대 1년 선배로 같은 법원 판사다.
[徐喆仁 月刊朝鮮 인터넷통신 기자]
유시민의 자기 과시인가, 네티즌의 확대 해석인가
유시민 열린 우리당 의원
『盧武鉉 대통령의 자서전은 내가 쓴다. 자서전 권리는 내가 갖고 있다』
盧武鉉 대통령의 대변인임을 자처하는 열린 우리당 유시민(고양시 덕양구 갑) 의원이 인터넷 포탈사이트 팬 카페 회원들과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터넷신문 「프런티어 타임스」 기자도 이 자리에 있었다.
『盧武鉉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서 유 의원이 자서전을 대신 쓸 것이냐』는 한 네티즌의 질문에 유 의원은 『원래 계획이 그렇다』면서 시인하고 『盧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도 계속 바쁘면 즉시 쓰기가 곤란하지 않겠느냐. 그 권리는 내가 갖고 있다』는 취지로 대답했다.
盧 대통령의 자서전 권리를 갖고 있을 만큼 盧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답이었다.
유시민 의원실 장윤숙 보좌관은 발언의 진위가 왜곡되었다며 이렇게 해명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유시민 의원이 盧武鉉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유 의원은 작가였다. 작가 신분에서 유 의원은 대통령에게 「퇴임 후 회고록을 제가 쓰면 어떨까요」 라고 제의했다.
盧武鉉 대통령은 「유시민씨가 써주면 좋죠」라고 대답했다.
유시민 의원은 네티즌에게도 그렇게 말했는데 네티즌들이 잘못 알아듣고 왜곡했다』
장윤숙 보좌관은 盧武鉉 대통령 자서전 출판권을 유시민 의원이 갖고 있다는 얘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月刊朝鮮 인터넷통신 제공]
X파일이 미혼의 유명 여배우를 죽였다
이은주
2월22일 자살한 여배우 이은주는 1980년생으로 군산초등학교, 군산중, 영광여고를 졸업했다. 1996년 선경 스마트학생 선발대회에서 은상을 수상, 스마트 교복 CF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97년 KBS 드라마 「스타트」를 시작으로 「카이스트」 등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2000년 데뷔 영화 「오! 수정」(미라신 코리아, 2000)으로 대종상 신인 여우상을 수상했다. 「주홍글씨」(2004), 「하늘정원」(2003), 「안녕! 유 에프 오」(2003),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필름, 2003 ), 「하얀방」(2002 ), 「연애소설」(2002 ), 「아미지몽」(2001 ), 「번지점프를 하다」(눈 엔터테인먼트, 2000 ) 등에 출연했다.
연기활동과 병행하며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지난 2월18일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숨진 그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함께 사는 오빠 이모씨(28). 그는 경찰에서 『새벽 6시까지 나와 어머니, 은주 셋이서 얘기를 하다가 은주는 자기 방에 갔는데 오후 1시가 넘도록 인기척이 없어 방에 들어가 보니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발견 당시 그녀는 운동복 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고, 침대 위에는 연필깎이 칼과 혈흔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려다가 목을 맨 것으로 추정된다.
자살 직전에 쓴 것으로 보이는 「엄마, 미안해. 사랑해」라는 혈서와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다. 돈이 있음 좋은데…. 돈을 벌고 싶었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가족들에 따르면 그녀는 연예인 X파일 사건 이후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月刊朝鮮 인터넷통신 제공]
『인텔 인사이드! 도요타 인사이드!』
김경준
지금 세계 자동차 산업은 전쟁 중이다. 1990년대 초반, 30여 개였던 회사가 현재 10개 남았고, 몇 년 후에는 다시 6개 내외로 줄어들 전망이다. 살아남은 회사 절반이 죽어야 되는 처절한 상황이다.
10년 前,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본 사람은 별로 없었으나, 현대-기아차는 당당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전쟁의 중심에 일본 도요타가 있고, 도요타의 독보적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기술은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기술 주도력을 더욱 강화하면서 폭발력을 키워가고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휘발유와 연료전지를 동시에 사용하는 차. 가격이 좀 높지만 연비는 동급 휘발유차의 3~5배에 이른다. 도요타는 1997년 1500cc급 「프리우스」라는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를 시작했다.
2002년 9월에 판매를 시작한 2400cc 급 「신형 프리우스」는 우리 돈 2500만원 정도의 가격에, 휘발유 1리터로 35km를 달린다. 유가 급등과 맞물려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고, 미국에서는 주문 후 6개월을 기다려야 물건이 인도될 지경이다.
상용 수준의 하이브리드 기술은 도요타, 혼다만 가지고 있다. 부랴부랴 GM은 작년 12월 다임러크라이슬러와 하이브리드 기술 공동개발 제휴를 맺었으나 도요타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회사들은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도입을 통한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 진입 전략을 펴고 있다. 포드와 니산이 그렇고, 고급 스포츠카 회사인 페라리, 심지어 GM의 자회사인 일본의 후지중공업도 기술도입을 추진 중이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이 세계 표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자동차 회사가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하게 되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먹는다」는 이야기처럼,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만들어서 파는 것은 남이 하고 돈은 도요타 혼자 버는 구조가 될 수도 있다.
세계 PC산업이 급성장하였지만, 실제로 돈을 번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인텔이 자신의 CPU(중앙기억장치)를 적용한 PC에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붙이게 했듯이, 전 세계 대부분의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도요타 인사이드」가 될 가능성도 현실화 되고 있다.
[김경준 딜로이트 파트너ㆍ상무]
중국에서 최고 성장한 곳은 天津市
작년에 중국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지역은 천진市였다. 천진市는 발해 연안에 위치한 중국 최대의 공업도시로 인구는 878만명이며 화학ㆍ기계ㆍ방직ㆍ전자ㆍ의약품 분야의 6500여개 기업체가 상주해 있다.
15.7%의 성장률을 기록한 천진市는 전국 평균 성장률(9.5%)보다 높았다. 천진市 다음으로 절강省, 광동省, 강소省이 14%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고, 북경과 上海는 13%대의 성장률을 유지했다.
◇ 2004년 중국의 省/市별 경제지표 ◇
(억 위안)
省/市
GDP
경제 성장률(%)
투자 증가율(%)
소비 증가율(%)
북경
4283
13.2
17.2
14.4
상해
7450
13.6
25.8
10.5
천진
2932
15.7
20.3
14.1
중경
2665
12.2
26.8
14.3
강소성
15000
14.0
28.0
16.6
절강성
11243
14.3
20.2
15.5
광동성
16040
14.2
19.9
13.6
복건성
6053
12.1
25.9
13.6
해남성
790
10.4
16.7
14.4
요녕성
2958
12.2
43.1
13.4
흑룡강성
5303
11.7
22.1
13.0
길림성
6873
12.8
20.9
12.8
하남성
8815
13.7
31.3
15.7
안휘성
-
-
29.6
12.9
광서자치구
3320
11.8
27.1
13.5
영하자치구
460
11.0
19.5
14.1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KITA) 자료 인용]
우크라이나 경제를 주목해야 할 이유
지난해 말 「오렌지 혁명」으로 서방 세계의 관심과 국민의 지지 속에 등장한 우크라이나의 개혁파 대통령 빅토르 유셴코(50)로 인해 우크라이나가 얻을 경제적 플러스 효과가 엄청나다.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통제경제에서 시장 경제로의 변화가 우크라이나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우크라이나의 GDP 성장률은 12%. 1인당 GDP는 2003년 1070달러에서 2000달러로 1991년 8월 독립 이후 최고이다. 먹고 입는 물가는 무척 싼 편이어서 구매력 평가지수(PPP)는 5400달러 이상(2003년 기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4년 11월 말까지 수출도 4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독립 당시, 넓은 국토에 5300만 명의 인구, 풍부한 곡물 생산량, 강력한 공업 생산력 등으로 희망에 차 있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는 舊 소련의 핵무기까지 보유, 세계 3위의 군사 강대국으로도 꼽혔다.
독립 후 정치 불안의 지속, 중앙정부의 경제적 통제 와해, 舊 소련 구성국들 간의 分業체제 붕괴, 과중한 에너지수입 부담 등으로 급격한 산업 생산 감소로 경제는 파탄 상태에 직면했다. 독립 후 1999년까지 9년간 연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2000년 여걸 유센코 총리에 의해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5.9%)으로 돌아섰다.
우크라이나 경제를 주목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유셴코 대통령의 최대 목표는 EU 가입이다. 작년 5월, 같은 동구권인 폴란드ㆍ헝가리ㆍ체코ㆍ발트 3국 등이 EU에 가입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의 60%가 EU 가입을 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경제의 EU 편입은 빠른 경제 성장을 예고하는 것이다.
2. 서방의 지지를 받고 있는 「유셴코 대통령 효과」로 미국과 EU의 對우크라이나 투자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올 한해 투자액이 벌써 19억에서 30억 달러로 예견되고 있다. 對우크라이나 직접 투자(FDI)는 2002년 6억9000만 달러, 2003년과 2004년은 각각 14억 달러 규모였다.
한국의 투자 누계액은 2억 달러에 이르고 작년에는 10억 달러에 가까운 교역 관계를 맺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한국의 IT산업 또는 자동차 공장 등의 진출을 기대하고 있다.
3. 투자는 주로 이 나라 경제의 핵심인 철강, 화학 분야에 집중될 것으로 보이며, 작년부터 호황을 맞고 있는 자동차, 조선, 기계류, 항공기, 건설업, 식품산업 등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건축과 인프라에 관련된 설비와 자재, 정보기술(IT)과 환경기술 투자도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4. 국내 생산의 19%를 점하고 있는 농업도 대대적인 혁신이 예상되는 분야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흑토대의 25%, 국가 전체의 56%가 경작 가능한 땅이다. 우크라이나의 농업은 토지사유제로 전환할 경우 엄청난 생산성이 예상된다.
5. 과거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모두 법적으로 처단할 것임을 선언했던 유셴코 대통령은 민영화 과정에서 특정인에게 불하, 정경(政經)유착의 온상이 됐던 주요 국영회사를 다시 국유화할 것이라고 2월15일 밝혔다. 이를 통해 그는 GDP 대비 27%에 불과한 국가 세입을 유럽 수준인 40%대로 끌어 올려 교사, 의사, 공무원들의 봉급을 인상하고 각종 SOC에 투자할 예정이다.
6. 과거 400년 가까운 피침(被侵)의 역사 속에서 계속된 학살ㆍ숙청ㆍ유배를 피해 수많은 우크라이나人들이 유럽,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에는 이미 10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출신(슬라브族)들이 있으며, 우크라이나 출신 상ㆍ하원 의원은 수십 명이 넘는다. 캐나다에도 6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人들이 있다. 이 파워가 부시 美 대통령을 움직여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에 대한 지지를 보내게 했다.
[月刊朝鮮 인터넷통신 제공]
부산의 면적은 서울보다 크고, 인구는 서울보다 적다
부산에서는 하루 82명이 태어나고 50명이 사망한다. 하루 55쌍이 결혼을 하고 39쌍이 이혼한다. 쓰레기는 하루 3980t이 수거되는데 8t 트럭 498대 분량이다. 범죄는 369건, 화재는 5건 발생한다.
부산시 면적은 763.30㎢로 울산(1056.29㎢), 인천(964.53㎢), 대구(885.61㎢)에 이어 네 번째로 크다. 서울은 605.52㎢이다. 인구는 368만명(2004년 12월 기준)으로 서울(1028만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세 번째는 인천(261만)이며, 대구(253만), 대전(145만), 광주(140만), 울산(108만) 순이다.
9개 도 중에서는 경기도가 1062만명으로 인구가 가장 많고, 경남(316만), 경북(271만), 전남(199만), 충남(197만), 전북(191만), 강원(152만), 충북(150만), 제주(55만)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