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눈] ‘자살’이란 표현 자체를 삼가야 / 김지영
독자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⑩
발행일2019-03-17
[제3136호, 23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압도적 1위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압도적’이라는 수식어를 쓰는 것은 2003년 이후 내리 1위 자리를 고수해오고 있고 자살률 수치도 매우 높기 때문이다.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8명, OECD 국가 평균 11.6명보다 훨씬 높다.(2018년 OECD 보건통계, 2016년 기준) 하루 36.8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가령,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년간 우리나라 자살 사망자 수는 7만1916명으로 같은 기간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민간인의 수 3만8625명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망자 1만4719명을 합한 수보다도 많았다. 최근 10년 가까이 그전에 비해 수치가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OECD국가 중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저출산율도 OECD 국가 중 1위다. 생명 존중을 무엇보다 큰 가치로 삼고 있는 우리 교회로서는 너무나 마음 무거운 현실이다.
이혼 증가율이나 교통사고 사망률 같은 수치도 세계 수위권에 들고 있어 우리 삶의 현주소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주로 물질적 성장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도 어쩌면 필연적 결과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젠 모두가 애써 정신적 여유를 갖고 삶과 행복의 의미를 새로 성찰하며 영성을 키워야 할 때다. 그런 가운데 정부와 국민의 계획적인 노력이 따른다면 이 같은 수치는 시간을 앞당겨,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 이미 여러 나라들이 정부를 중심으로, 사회 각 분야가 협조한 결과로 효과를 보았다. 핀란드가 대표적 사례.
한때 자살률 1위였던 핀란드는 1980년대에 국가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1년간 발생한 자살자 전수를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전 국민을 상대로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는 등 10여 년간 대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14년 만에 자살률을 절반 이상 감소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거기에는 언론의 보도가 큰 힘이 됐다. 가능하면 자살 사건 자체를 다루지 않고, 다루더라도 자살이라는 표현 자체를 삼가는 등 적극적으로 자살예방 사업에 참여했다. 기본적으로 매체가 모방 자살을 부추기기 쉽다는 사실은 그동안 여러 조사를 통해 확인된 바다. 배우 최진실씨가 자살한 지난 2008년, 자살자는 예년보다 1000여 명 늘었고 그녀와 유사한 방법으로 죽음을 택한 사례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당시 우리 언론은 자살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녀와 가족의 사생활을 샅샅이 파헤치는 등 엄청나게 많은 양의 보도를 한 바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2004년 한국자살예방협회와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제정한 뒤 2013년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 등과 이를 개정해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을 공표했다. 권고기준은 자살보도 최소화, 자살미화 금지, 자살 경위와 방법의 구체적 묘사 금지 등 9가지 원칙이 골자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도 자살보도는 신중해야 한다는 기존 윤리강령 실천요강을 개정, 제목에 ‘자살’이라는 표현 자체를 삼가도록 했다.
하지만 많은 매체들이 권고기준이나 윤리강령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오늘날은 신문이나 방송, 영화 등 전통매체뿐 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인터넷 매체가 운영 중이어서 자살예방을 위한 매체의 협조는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오히려 클릭 수 자체가 수익과 직결되는 생태상 많은 매체들이 자살 기사조차 선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자살’을 표현하거나 자살방법과 수단 등 내용을 기사나 사진, 동영상을 통해 자세하게 보여주고 올가미, 한강교량별 자살건수 도표 등을 그래픽으로 게재하는 사례가 넘친다. 매체마다 관련 자체 심의기구에서 사후 심의를 하지만 잘 줄어들지 않는 현실이다.
미디어 대변혁기, 수많은 매체가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보도를 한다면 그야말로 미디어는 곧 선물인 시대의 징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쏟아내는 것이 자살을 방조하거나 조장함으로써 생명가치에 반하는 보도들이라면 이는 가짜뉴스보다 더 나쁜 흉물로서 미디어는 곧 재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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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이냐시오)전 경향신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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