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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교회가 이날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여 신자들의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하는 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이 재의 예식에서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나 머리에 얹음으로써, ‘사람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창세 3,19 참조)는 가르침을 깨닫게 하여 준다. 오늘 재의 수요일에는 단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킨다.
본기도
주님, 그리스도를 믿는 저희가
거룩한 재계로 악의 세계와 맞서 싸우려 하오니
극기로 보루를 쌓게 하소서.
제1독서
<너희는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12-18
12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13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14 그가 다시 후회하여 그 뒤에 복을 남겨 줄지
주 너희 하느님에게 바칠 곡식 제물과 제주를 남겨 줄지 누가 아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16 백성을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원로들을 불러 모으고 아이들과 젖먹이들까지 모아라.
신랑은 신방에서 나오고 신부도 그 방에서 나오게 하여라.
17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은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아뢰어라.
“주님, 당신 백성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소유를 우셋거리로,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로 넘기지 마십시오.
민족들이 서로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해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18 주님께서는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
제2독서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5,20─6,2
형제 여러분, 20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6,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불교와 가톨릭에서 말하는 고행의 차이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순절에 우리가 실천해야 할 ‘자선-기도-단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이것을 실천할 때 남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매번 강조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기도-자선-단식은 일종의 도구요 무기입니다. 도구로 사용되려면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망치라면 못을 찾아야 합니다. 또 무기라면 적이 확실해야 합니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 못하는 군인에게 총을 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일단 총을 줬다면, 누구에게 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자기에게도 이웃에게도 해가 됩니다.
일단 기도-자선-단식이 도구라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 도구일까요? 기도하면 순종하게 됩니다. 자선을 하면 청빈한 삶을 살게 됩니다. 단식하면 절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정결해집니다. 곧 청빈-정결-순명의 덕을 얻게 됩니다. 이 덕을 꽃피우면 무엇일 좋을까요? 사랑이라는 하느님께서 그 정원에 살게 됩니다. 기도-자선-단식은 복음삼덕을 자라나게 하는데, 기도-자선-단식이 없다면 복음삼덕과 그로 인한 사랑이 실천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사랑과 반대는 이기주의입니다. 자기 행복만 바라는 이들은 내가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니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기주의자는 자기만 가지려 합니다. 또한 절제가 없습니다. 자기 먼저 먹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기도-자선-단식이 삼구(三仇), 곧 세속(소유욕)-육신(성욕)-마귀(교만)을 쏴서 죽이기 위한 총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불교의 교리와 차이를 보입니다. 불교도 인간의 욕구가 고통의 원인이라 보았습니다. 그 욕망을 이기기 위해 고행을 하고 자신과 싸웁니다. 그러나 욕망이 사라지면 행복이 올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점 고행의 방향을 찾으려는 방향으로 불교도 발전하게 됩니다.
영화 ‘삼사라’는 “어떻게 하면 한 방울의 물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타쉬라는 수도승은 3년 동안 동굴에서 나오지 않고 고행합니다. 그렇게 육체를 이기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믿었지만, 한 방울의 물은 다시 육체가 힘을 얻고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여자를 보았을 때 사라지게 됩니다.
타쉬는 욕망을 이기기 전에 욕망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겠다며 환속합니다. 여자와 결혼도 하고 아기도 얻게 됩니다. 농사도 짓고 돈도 어느 정도 법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점점 탐욕에 물들어갑니다. 심지어 처제와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처제가 언니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것을 보고는 다시 세상에 환멸을 느낍니다. 역시 모든 고통은 욕망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때 스승이 죽으며 타쉬에게 보낸 편지를 받습니다.
“수천 가지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과 한가지 욕망을 정복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를 알게 되기를!”
타쉬는 한 가지 욕망을 정복하기 위해 다시 삭발하고 집을 떠납니다. 아내가 뒤쫓아오며 말합니다.
“한밤중에 자식을 버리는 어머니는 없어요. 남자만이 그럴 수 있죠. 싯다르타는 병자들을 가엾다고 여겼어요. 그가 깨우침을 얻기 훨씬 이전부터요.”
아내는 알고 있었습니다. 참다운 고행의 의미는 사랑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타쉬는 윤회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원만 빙빙 돌기 때문입니다. 그때 물 한 방울이 마르지 않는 이유를 발견합니다.
“바다에 던지면 되느니!”
타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고행의 방향이 사랑이라는 방향성을 잃으면 아무리 고행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삼구는 사랑에 반대되는 욕망입니다.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물을 빼내야 합니다. 그 작업이 우리가 말하는 고행입니다. 하느님과 이웃과의 사랑이 증가하지 않는 사순절은 더는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약속은 맺을 약, 묶을 속, 즉 단단히 묶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 관계가 헐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 참석할 사람 몇몇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안 오는 것이냐?”라고 물으니, “조금 늦는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약속 자체가 많이 헐거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휴대전화가 없을 때는 연락이 되지 않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너무 쉽게, “미안, 급한 일이 있어서…. 조금 늦어.” 식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그만입니다.
약속이 헐거워 짐은 관계 역시 헐거워지게 됩니다. 실제로 몇 차례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를 보면서 아예 약속을 잡지 않게 되지 않습니까?
주님과 우리는 많은 약속을 합니다. 죄짓지 않겠다. 열심히 살겠다. 가정에 충실하겠다. 사랑하며 살겠다 등등…. 그런데 그 약속이 헐거워진 것이 아닐까요? 너무 쉽게 약속을 깨고 “다음에는 꼭 지키겠습니다.”라는 말을 한 뒤에 또 다른 약속을 만듭니다. 이렇게 약속을 지키지 않아 주님과 헐거워지는 관계가 되면, 결국 전혀 상관없는 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재의 수요일을 맞이하여 머리에 재를 얹으면서 사순시기를 시작합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간,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얼마나 큰지를 다시금 묵상할 수 있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많은 약속을 주님께 하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많이 지으며, 주님 뜻과는 정반대로 나아가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서 다시 주님께로 향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그냥 입에서만 맴도는 공염불이 될 때가 많습니다. 약속이 계속 헐거워지면서 주님과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재를 얹으면서 사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주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삶은 다른 이들에게 칭찬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칭찬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선과 기도와 참회를 겉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모두 갚아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약속이 헐거워지도록 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과의 약속을 통해 더욱 주님과 단단한 결속을 맺을 수 있고, 주님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은혜로운 사순시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하려면 자신이 끊임없이 변화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에이브스 칼슨).
사진설명: 재의 수요일입니다.
첫댓글 오늘은 신명기 12-15장 입니다!! 길지 않아 빨리 읽었습니다~^^ 모세오경도 얼마남지 않았어요!!
신명기 15,15
너희는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다는 것과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구해 내신 것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이것을 명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