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먼트 (외 2편)
김민지
뼈가 보호하는 방식 살이 보호하는 방식 털이 보호하는 방식 우린 그걸 어떻게 지켰나 싶어 시접이 없는 니트를 입은 듯 안감의 기분을 모른 채 솔기솔기 꿈에서 꿰맨 잔상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함께하겠다 곁꾼으로서 할 일을 하겠다 약속을 하고 보풀을 떼서 뭉치고 놀았다 각자 몸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일이었다
*홀가먼트 : 한 벌을 통째로 편직하여 만든 의류. (옮긴이) 대기실 들러리라는 말 나는 왜 그 말이 외국에서 왔다고 생각했을까 멀리서 온 줄 알았는데 여기에 줄곧 있던 것들 그런 것들은 세월과 실수에 의해 발견되지 주인공은 정전기를 일으킨다 마찰은 주인공의 숙명이라는 지문에 따라 풍선을 머리카락에 갖다 대는 들러리 실수로 들러리가 풍선을 터뜨리면? 시선을 가져와도 입장은 드러내지 못할 거야 주인공이 손에 물을 묻히는 동안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모든 것에 맞출 준비를 하면 어긋났다 같은 앵글 다른 구도에서도 감정은 연결하고 가자 행복한 하루 되세요 하루는 되는 게 아니라 보내는 거지 형식적인 말들을 비틀면 뭐가 좀 나오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는 걸 보면서 조용히 극장을 걸어 나왔다 혼자 있는 공간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공간이 될 것처럼 가만히 있는 혀의 감각을 익히며 ‘아’ 소리를 낸다 떠오르는 감정에 따라 ‘아’의 높낮이가 달라진다 호흡을 다 쓰고 나면 아무 말이나 해본다 입안을 벗어나지 않지만 움직이고 있는 혀의 심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느끼고 말하는 것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마티에르
붓에게 방향을 준다 깊은 숨 섬에서 섬으로 들어가는 작은 배처럼 떠다닐 뿐인데 가로지른다는 생각 같은 날 하늘은 수채화 같고 땅은 유화 같다 다 마른 그림인 줄 알았는데 방금 덧칠한 문짝이 많다 녹슨 철문에 페인트 칠하기 전에 벗기지 못한 포즈들 배밀이하듯 적당히 눕힌 붓으로 지나가고 지나가는 길 아직 덜 마른 자리에 먼지 몇톨이 내려앉는다
—시집 『잠든 사람과의 통화』 2024.9 ------------------------- 김민지 / 1989년 경기 성남 출생.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21년 제1회 《파란》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잠든 사람과의 통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