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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총동문회 Daum 카페에 연재했던 글로서,
단기출가학교와의 인연이 시작된 지난 10년 동안의 제 삶을 돌아보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
다녀가시는 분들 재미삼아 보시고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길... ()()()
2015. 1. 15
5. 자원봉사, 수광전 보살님
졸업식 다음날의 적광전 새벽예불.. 여행자님들은 여럿이 남으셨는데, 남행자는 나 혼자다.
석가모니불 왼편에 오롯이 앉아 대종 소리를 듣는다. 도반들의 빈자리가 느껴져 새벽의 한기는 더하지만,
이제 진정 스스로 만들어가는 수행의 시간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은 새롭기도 하다.
아침 일과로 우선 (졸업식 날 세탁하고 가신) 행자복들을 하나 하나 골라내어 다시 빨았다.
학생 행자님들이 지내던 동별당의 이불들을 꺼내어 세탁하고, 정리하고, 쓸고 닦고,
그 무렵의 자원봉사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 힘들기도 했지만.. 참 즐거웁기도 했다.
아침 공양 후, 주봉스님과 포행을 다녀와 꽁꽁 언 손발을 따스이 녹이며 보이차를 함께 했고..
며칠 열심히 봉사하던 어느 날은,
동은스님이 자원봉사 일행을 데리고 낙산사로 훌쩍 나들이를 데려가시기도 했다.
해운스님이 수심, 심정 등과 함께 사주셨던 횡계 어느 식당의 송OO.. ^^
오대산 진고개 '산에 언덕에' 에서 교무스님, 학감스님과 나누었던.. 음악과 구운 감자와 시원한 맥O 한 잔..
청운스님과의 그 많은 얘기들.. 그리고 동해안으로의 1박 2일 깜짝 여행..
(글이 너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
일주일을 함께 수고하니 모든 일은 거의 마무리 되고, 여행자님들도 대부분 회향길에 오르셨다.
그러던 어느날 법철스님께서, 주말에 큰 행사가 있으니 같이 수고 좀 하자 하신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Asian-Pacific) 외국인 학생 200 여명이 법륜전에서 발우 공양 체험을 하는 행사다.
마침, 3기 학생 행자님들 몇 분이 봄방학을 맞아 자원봉사 하러 월정사에 다시 오셨다.
수백명을 위해 발우를 닦고, 찬상 준비하고, 진행을 돕고, 다시 설거지하고.. 그날 모두들 정말 고생이 많았다. ()
수고하신 나이 어린 중학생 도반님들이 참 고마워서, 저녁 무렵 일주문 밖 식당에서 저녁 공양을 같이 하는데..
반가운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중학교 교사이던 덧버선^^ 행자님이 봄방학을 맞아 월정사에 오는 길이란다.
모두들 행사 준비로 종일 고생이 많았으니.. 하루 쯤 푹~ 쉬기로 하고, 내일 날이 밝으면 함께 상원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왼쪽부터 일력, 일불, 전화, 가성, 청운스님, 용진, 창화, 범본)
다음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청운스님과 같이 눈밭에서 뒹굴며 축구도 했다. (위에 있는 핸드폰 사진^^)
오전 한 때 즐거운 시간 보내고, 모두 함께 버스에 올라 상원사로 향하니 흩날리던 눈발이 차츰 거세어진다.
상원사 문수전 앞 계단의 눈을 쓸고 계시던 행자님(단기출가학교 1기)은, 우리 일행에게 반가운 미소를 건네며
초코파이, 과자 등을 한보따리^^ 챙겨주셨다. (지금은 비구계를 받으신 법은스님)
인광스님께 차도 얻어먹고, 초코렛도 얻어먹고, 즐겁게 이야기 나눈 후.. 버스 타러 내려오니..
이런~ 갑작스런 폭설에 시내버스 운행이 중지 되었단다. 지나가는 차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날은 어두워가고, 발을 동동 구르는데.. 다행히 진부 내려가는 우체국 차가 있어, 기사님께 부탁 말씀 드리고 짐칸에 들어 앉았다.
함박눈 퍼붓는 산 길에, 짐칸에 모두 쪼그리고 앉아, 깔깔 웃으며 초코파이를 나누던, 아.. 꿈결같은 시간들.. ()
다음날이 되어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 이제는 정말 나 혼자로 남는다.
공양간 일을 마치고 가끔씩 수광전에 들러, 보살님과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3기 수행 때 수광전 소임을 앞서 맡았던, 그 일불 행자님의 얘기를 참 많이 하셨다.
맑은 웃음과 밝은 성품이 무척 마음에 드셨나 보다.
한 술 더하여, 내 나이를 물어보시더니.. '둘의 인연이 참 좋네~' 말씀 하신다. ^^*
절집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내다 보니.. 어떤 스님은 만날 때마다 출가를 권하시기도 하고,
큰스님 조차 슬쩍 웃으시며 '이제는 출가하지?' 농담을 건네시기도 한다.
며칠전 법당에 단정히 앉아, 원각경의 환(幻)을 돌아보다가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나와 나 아닌 모든 생명의 소중함, 또한 안타까움에 대해.. (당연하고도 작은 그 깨달음에..)
그리고, 이제는 내 삶의 자리로 돌아갈 때라 살며시 결심했었다.
사중에 말씀드리고 (동안거 해제 후 며칠을) 상원사에서 자원봉사 하기로 했다.
지장암 봉사를 마치신 대도님(1기), 보궁에 기도 오신 심상님(3기)과 동행 했다.
상원사 종무실 이전하는 일을 돕고, 총무스님(인광스님) 방을 이사 및 정리해 드리고,
문수전 주지스님(나우스님)의 방에서 컴퓨터 등을 정리하며.. 잠시 3기 도반들의 지대방에 글 하나를 남긴다.
다음날 혼자 비로봉을 다녀와서 월정사 큰 절로 내려가 인사 드리고는 내가 살아온 바로 그 자리.. 나는 비로소 서울로 돌아왔다. ()
홑이불같은 옅은 구름이 오대를 포근히 감싸는 따스한 겨울낮입니다.
내일이면 단기출가학교를 졸업한 지 꼭 한 달이 되는군요.
저는 이제 회향을 준비합니다.
오늘 상원사 스님들과 보살님 처사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월정사 큰절로 내려가 하루이틀 인사드리고 일하고 정리하며 이제서야 회향하려 합니다.
어젯밤 상원사 뜰위에서 반짝이던 반달은 왜 그리도 쓸쓸하던지요..
알면서 대들지 못하고 이제는 그만 돌아서려 하는 제 모습이 오히려 쓸쓸했던 게지요..
청정하게 살지 못한다면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는데, 자신은 과히 없으면서도 이제 일주문 밖을 나서려 합니다.
좋은 인연을 만들어 주신 부처님들, 스님들, 월정사 직원여러분, 그리고 도반님들..
참으로 마음 깊이 감사드리며 인사를 대신합니다.
정말 행복했던 두달간이었습니다.
(2005년 봄, 월정사 홈페이지 3기 지대방에 올린 글에서)
6. 프로방스의 스파게티
두어달만에 돌아온 동서울 터미널은, 형형색색 간판들로 눈이 피로했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음들도 귀에 거슬렸다.
집에 도착하니.. 밝고 편안해진 내 모습을 보고 가족, 친구, 지인들이 나보다 더 반가워 하는 얼굴들이다.
예전에 계획했던 일도 천천히 돌아보고, 새로운 집도 구하러 다니며, 바쁘지만 행복한 날들의 시간을 보낸다.
출판 기획 프리랜서인, 단기출가학교 3기 도반 대경님을 홍대앞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런 저런 부탁도 있다 하고 (출판은 나와도 조금 관련 있는 분야라서) 흥미있게 얘기 나누면서 점심을 함께 했다.
헤어지며 조만간 다시 만나기로 하고, 다음에는 (내가 아는) 파주 근처의 스파게티 집에서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일산에 사는 덧버선^^ 행자, 일불님으로부터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쩌고 저쩌고 잘 지내느냐' 묻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학생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나이 서른이 다 되는 처녀였고, 단기출가학교 때 정겨운 마음도 많았고,
수광전 보살님께 좋은 얘기를 하도 들은 지라.. 웃음을 머금고 장난 한 번 쳐 본다.
"이제는 장가 가고 싶은데, 일불님을 데리고 갈까요?"
화들짝 놀라는 답장이 왔다. ^^;;
농담이라 얼버무리고, (마침 대경도 일산에 살고 있으니) 우리 셋이서 밥이나 같이 먹자고 슬~쩍 얘기를 넘긴다.
(2005년 봄 프로방스에서, 대경과 일불, 맞은편에 선일)
그렇게 함께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예전에 부천에 살 때,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자주 가던 곳이었다. 일산 지나서 파주 통일전망대 근처의 프로방스..
요즘에는 그 규모가 너무 거대해져 버려 약간은 아쉽지만.. 스파게티 맛은 여전히 으뜸이라 할 수 있다.
3월의 날들을 그렇게 즐겁고 들뜬 마음으로 휘리릭 보내고, 어느덧 단기출가학교 4기 준비를 위한 자원봉사 겸,
<3기 수련회>를 월정사에서 마련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스님들 그리고 도반들과 이런 저런 얘기로, 둥둥 떠다니는 마음이 이리저리 분주하다.
예불도 드리고, 포행도 다녀오고, 차담도 나누고.. 진고개로 나들이도 다녀왔다.
이 날 저녁의 (선일과 일불만이 아는) 어떤 시간과 공간은, 잠시 생각해 보니 이 곳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맑고 아름다운 기억이지만^^) 둘만의 추억도 소중하므로.. 읽으시는 분들의 넓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
다음날 도반들과 적멸보궁에 올라 함께 사진도 찍고, 수련회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일불님을 (저녁 식사 후) 일산까지 모셔다 드리기도 했다.
아래 사진 왼쪽부터.. 범일님, 주봉스님, 선일, 관불님, 수청님, 무량님, 도월님 등.
수련회에 다녀와서 어느덧 나는 일산의 한 오피스텔로 이사 했고, 어떤 날은 일불님이 근무하는 행신동 중학교에서 같이 만나 식사도 하며, 둘은 조금씩 서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일이 있을 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법.. '호사다마' 라 했던가?
단기출가학교 졸업 후, 하루가 멀다 하고 월정사에 자주 다녀오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 무렵 내가 월정사로 다시 출발한 날은,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하루 전
단기출가학교 4기 <작은음악회>가 있던, 바로 그 봄날 아침이었다. ()
7.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
단기출가학교 3기를 졸업한 후, 하루가 멀다 하고 자원봉사 차 월정사를 자주 오가던 터에,
합창단 지선보살님으로부터 4기 후배님들을 위한 <작은음악회>에 함께 연주하자는 요청이 있었다.
당시에는 단기출가학교 프로그램 안에 저녁 나절 행자님들을 위한, 그야말로 "작은" 음악회 순서가 있었다.
피아노, 기타, 플룻, 그리고... <첫마음으로> 를 비롯한 여러 찬불가들을 행자님들과 함께 노래했었다.
(여기서, 사족이지만 저의 직업과 관련된 과거를 잠시 언급하고 갑니다.)
나는 (음악과 무관한 전공의) 대학을 졸업한 후, 국내 및 일본에서 전문적인 음악 연주를 다시 공부한 이력이 있다.
어릴 때부터 악기를 좋아했었고, 학창시절 음악 동아리에서 오래 연주를 했었기에,
직업적 연주자로서의 진로를 꿈꾸며, 졸업 후 늦깎이 음악 공부를 몇 년 더 했고, 결국은 직업 연주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 무렵은 갑작스런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연주 활동을 포기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중이던 때이기도 했다.
초파일 전날 콘트라베이스를 차에 싣고 월정사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저녁 무렵... 단기출가학교 4기 행자님들과 법륜전에서 조촐한 <작은 음악회> 행사를 했다.
음악회를 마치고, 재무스님(법상스님) 방에서 수고하신 다른 분들과 함께 다과를 나누고는, 휴식을 위해 이른 저녁 배정받은 동별당 숙소로 향했다.
고즈넉한 월정사의 늦봄 저녁...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으니, 법당에서 조용히 좌선을 하든지 절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해보는 악기 연주에, 스스로 만감이 교차하여, 홀로 전나무숲길을 나선다.
어둑어둑해진 전나무숲길과 일주문을 지나, 매표소 옆 보배식당에서 감자전에 가볍게 동동주도 한 잔.
외로운 뒷풀이를 짧막하게 마치고 나는 다시 큰절로 향했다.
내려올 때는 숲길로 왔으니, 올라갈 때는 큰 길로 가리라.
달 없이 밤하늘이 맑게 갠 날은, 저녁 무렵 캄캄한 밤길 포행이 참 좋았다.
그 쏟아질 듯한 별빛들 사이로, 마치 '무소의 뿔처럼' 오대 속을 홀로 걸어가는... 아 지금도 물론 다시 해보고 싶다.
그러나,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길 옆을 흐르는 오대천의 방둑이 때로는 야트막하지만 때로는 상당한 높이라서,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밤길 보행은 자칫 큰 위험이 따른다.
하물며 그날은 구름이 잔뜩 끼어 별빛도 없고, 초파일 행사 차량들로 길에는 밤늦게까지 자동차의 행렬이 이어졌다.
오고가는 차를 피해 가장자리로 천천히 걷다가, 잠시 소피도 볼 겸 오대천에 바싹 붙어서는데...
아차차! 발이 칠흙같은 허공을 내딛는 순간, 나는 3~4 미터 높이에서 그대로 추락했다.
떨어진 곳이 돌 아닌 흙이라서, 다행히 큰 충격은 없었던 듯, 정신도 말짱하고 다만 다리가 많이 불편했다.
일어서려 했지만 일어설 수 없었다. 다리를 만져보니.. 어? 부러졌다. 통증도 천천히 시작된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찾았다. 다행이다. 신호가 잡힌다.
정신을 가다듬고는 119 에 구난 전화를 하고 위치를 설명했다.
십여분 후 구급차가 도착하고, 나는 응급구조대원들의 들것에 실려 엠블런스와 함께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담담했다. 다리 골절상 이외의 별다른 상처도 없었다.
응급 수술을 위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단다. 수술 날짜는 다음날로 잡혔다.
왜 그랬을까? 나는 '덧버선 행자님'이 문득 떠올랐다.
부모님은 오래전 돌아가셨고, 굳이 수술 동의를 위해 보호자를 찾자면 분당에 계시는 누님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밤 늦은 시간 '덧버선 행자님'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 저 일불 행자님, 놀라지 마시고요...
부탁이 있는데, 내일 아침에 강릉 아산병원으로 와주실 수 있어요? 이유는 낼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큰 기대는 안했는데, 의외의 대답이 간단했다. " 네, 그럴게요."
다음날 일불 행자님과 나는 담당 의사와 상의 후, 집 근처 일산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낫겠다 판단하여
다시 구급차를 같이 타고 일산으로 향했다. 물론 나는 임시 깁스와 함께 구급차 안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덜컹거릴 때마다 통증이 다리에 그대로 전해졌지만... 문제 없었다. 그것은 좁은 공간 둘만의 첫 데이트였기에...
일산병원에서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한 달 간 더 입원했다.
근처 행신동 백양중학교에서 근무중이던 일불 행자님은 거의 매일을 내게 문병와서 위로해 주었다.
"새옹지마" 란 이럴 때도 붙일 수 있는 고사(古事)이리라.
단기출가학교의 가피에 취해 하늘을 걸어다니는 기분일 때 갑작스런 골절 사고로 큰 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 수술의 와중에서 또 평생의 인연이 새로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因緣)으로...
나는 '덧버선 행자님'과 조금씩 연인(戀人)이 되어 가고 있었다. ()
8. 크리스마스 출산
그렇게 1년.
그러나, 연애의 과정은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좋기만 하던 둘만의 시간에 때로는 다투는 일도 있었고, 겨울 어느 때는 고만 헤어지자고 선언한기도 했다.
신출가(身出家) 하겠다고 이별을 고했는데.. 막상 다시 나서려하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또 따듯한 인연의 품이 좋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된다. 나이 많은 사위라서 경상도 처가에서는 '나배기' 라 불리웠고
한 살 아래의 손위 처남은 주먹을 쓰면서까지 결혼을 말리려고도 했다.^^
그러나, 혼수(?) 앞에서는 누구도 반대하기 힘든 법.
처가집이 있는 진주에 예식장을 잡고 동은스님을 주례로 모셨다. 주봉스님과 더불어 3기 도반들도 참석하여 축하해 주셨다.
원래, 월정사나 보궁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혼수(?) 때문에 결혼이 급했고 집안 어르신들을 고려해서 참아야 했다.
(2006년 크리스마스, 분당 제일산부인과에서)
결혼 후, 분당 이매동에 신혼집을 정하고 복닥복닥 시간이 흘러 어느덧 크리스마스.
드디어 혼수(^^)로 준비해 온 율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았고, 그리고 참 예뻤다.
<조율>이라는 이름은, 도반들과 친구, 친지들께 30만원 상금을 걸고 공모를 거쳐 정하게 되었다.
율이의 한자인 붓 율(聿) 자는 동은스님이 골라서 정해주셨다.
부모가 월정사 단기출가학교에서 만난 인연으로, 오대산 불보살님들의 가피 속에, 그리고 예수님 생일에 태어난 율이..
이 녀석이 어떤 인생을 살지 궁금하다. 적어도 인류에 해는 끼치지 않으리..^^ ()
주민등록등본 위에 이름 하나가 어느덧 셋이 되었고, 행복도 괴로움도 거의 세 배 만큼의 무게가 된 것 같다.
그만큼, 기쁜 일과 힘겨운 일은 마치 사이좋은 남매처럼 시차를 두며 그렇게 우리 가족을 방문했다.
(2007년 여름, 지리산 산청에서)
이제 돌아보니 지나온 세월은 잠깐의 시간이었다. 찰나라는 표현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결혼 직후의 시간은 참 벅차고도 정신 없는 시절이다.
첫 육아의 행복하고도 고된 경험들, 육아 휴직을 끝내고 다시 시작된 힘겨운 맞벌이 생활,
아이 돌보아줄 마땅한 친지가 없어 한 살박이 아이를 남에게 맡겨야 하는 무거운 마음...
의외로 마주친 현실들은 미리 예상하거나 준비하지 못한 것들이었고, 그렇게 좌충우돌 하며,
때로는 그 고생 만큼의 행복에 젖어, 아무튼 비교적 건강하게 그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 돌잔치에, 남원에서 올라온 3기 수심님)
그 무렵 생각했었다.
월정사 단기출가학교가, 타력(他力)의 힘으로 진정한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해준 고마운 선물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오로지 나만의 힘으로 스스로 수행해 가고 청정하게 살아야 하고 또한 바르게 살아야 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예감하다시피 결코 쉽거나 그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찍이 원효스님이 그리 산중에서 수행하기를 권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가. 그것도 가족과 함께.
그 당시에 나는 그리 지혜롭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많이 어리석다.)
<함께하는 수행의 길> 은 그러므로...
쉽게 선물처럼 다가오지 않았고, 이후로도 참~ 많은 고뇌와 절망과, 또한 희망과 새로움의 시간들을 거쳐
지금 역시 현재진행형으로 (마치 바닷가의 파도처럼 해변을 들락날락 하며) 나의 삶을 감싸고 있다. ()
(2006년 가을 삼천포에서)
이제는 더 늦추면 안된다.
장식(藏識)의 깊은 바다를 파도처럼 뒤흔드는 육식(六識)의 물결.
청정하게 살지 못한다면 속세에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10 년 전 그때의 마음으로,
불혹의 가운데를 지나는 46 번째 생일 아침에... 깊은 숨 들이마시며 조용히, 그리고 다시 다짐해 본다.
6. 프로방스의 스파게티
9. 함께하는 수행의 길
* 오래 전 글을 쓰고는 마지막 <9. 함께하는 수행의 길>은 아직도 쓰지 못했습니다.
지금부터 이 곳, 그리고 월정사에서 동문님들과 함께 하며 즐겁게 이루어 갈 수행의 길을
다시 글로 표현하는 날이 온다면 좋겠습니다. 두서 없는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http://m.cafe.daum.net/WoljeongsaDangi
월정사 출가학교 3기 동문 선일 올림 ()
첫댓글 佛ㆍ法ㆍ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You are welcome to the Buddha, the Dharma, and the Three Seasons.
I pray with the utmost heart that the holy and merciful Buddha's hide and mercy shine. Thank you.
attain Buddhahood
Amitabha Buddha, Avalokiteshvara Bodhisattva()()()
= 朴圭澤 華谷·孝菴 公認 大法師(佛敎學 碩士課程 2學年 在學中)의 좋은글 中에서(Among the good articles of Park Gyu-Taek HwagokㆍDharma-Bhānaka and Hyoam's official Daebosa(I'm in my second year of a master's course in Buddhist studies) =
마하반야바라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