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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논문을 쓰다가 도저히 머리가 안 돌아가서 식힐겸, 재미삼아 작성해 봅니다.
연의적 시각에서 삼국지의 무장들은 초인입니다. 단기필마로 수십, 수백을 감당해내고, 싸움의 승패는 일기토에서 대부분 판가름이난다는... 뭐, 소설적 재미+ 마초근성들을 건드리긴 하지만, 고금동서를 통틀어 이런 식의 싸움이 일어난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개인의 무력이 몇백, 몇천, 심지어 몇만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소설적 과장이라고 볼 수 밖에 없고, 제아무리 무예가 뛰어날지라도 칼맞고 활맞으면 죽는게 사람입니다. 서쪽의 소드맛스타 리차드씨도 결국 석궁 저격 한방에 저세상 가셨다는게, 물리법칙이 통용되는 우리 세계의 현실이지요.
그렇다면 뛰어난 무장은 무얼 말하는 것이며, 어떻게 평가할수 있을까요?
바로 병사들을 휼륭하게 지휘해서 어려운 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큰 전쟁에서 업적을 보여준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뭐,
뛰어난 지휘관이 뛰어난 무장이라는 말.
휼륭하게 지휘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어선 곤란합니다. 뭐, 역사적으로도 종종 소수의 군대로 압도적인 다수의 군대를 거의 피해없이 박살낸 경우들이 없는건 아닙니다만, 서로 비슷한 군제와 정리된 병법들이 있다면, 상대를 압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단번에 회전 걸어서 박살낼수도 없으며, 상대 지휘관의 기량이 부족하다고 해서 언제나 손 쉬운 승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닐겁니다. 도저히 승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패배했다고, 혹은 우발적인 사고에 의해 전사했다고 해서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할수도 없지요. 한니발도 스키피오에게 패배했고, 이순신 장군도 총탄에 쓰러지셨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이 글은 이러한 부분들을 고려했을때 과연 누가 뛰어난 장군이었을지를 따져보는 글입니다. 당연히 삼국지 정사 및 사서의
기록만을 고려했으며, 연의와 만화, 게임(;;)들의 '포스'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1. 조조
압도적인 부동의 1위. 수많은 지방제후 중 하나로 출발해 위나라를 건국하고, 아들내미 황제될 밑거름까지 깔아주신 분.
삼국지 정사의 기록이 다소 과장되었다고는 하나, 그걸 감안해도 실적면에서 따라올 자가 없습니다.
혹자는 중국은 조조에 의해 거의 통일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오나 촉은 지방군벌에 불과했다는 평까지 합니다. 그 말을 모두
받아들이진 않더라도, 위의 국력이 오와 촉을 합한 것보다도 더 강대했다는건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패배도 꽤 있지만, 압도적인 전력차이(동탁 추격전) 혹은 국지전의 패배(여포, 마초, 원소...), 수전(적벽)정도입니다.
반면 승리는... 화려 그 자체. 여포 격파, 유비 격파, 원소 격파, 마초 격파.... 그외 수많은 군웅들이 조조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말년의 주요 전투들(한중쟁탈전, 합비전)에서는 특유의 신출귀몰함이 상실되고, 한중이나 적벽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지형지물의 변화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걸 보여주긴 합니다만, 당시 상대했던 적들의 유능함, 지형적 유리함, 천운(기후나 역병)들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로 삼국지 최고의 장군의 자리가 위협받진 못하지요.
소수정예+기동전으로 다수의 적들을 물리치는 것이 조조의 특기였습니다. 황건적 정도를 제외한다면 나름 당대 최강의 군대들을
더 약한 전력으로 격파했다는게 대단한 점. 역시 최고는 관도대전입니다.... 연의처럼 관도대전의 전력차가 압도적이었던 것도, 원소의 피해가 결정적이었던 것도 아닙니다만, 그 대신 상대는 공손찬과 싸우며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은 정예병들이었고, 실전에선 지력 100이 계략을 쓴다고 지력 70이 족족 걸려주지도 않았습니다. 직접적인 전력차와 원소의 병력보충 능력, 보급력은 명확히 조조군을 앞섰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다들 아시다시피 원소군의 군량고였던 오소를 공격하여 보급을 끊은 일.
뭐, 조조의 업적을 일일이 다 말할수는 없습니다만, 유인, 급습, 보급로 차단에 아주 능했던 장군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2. 손견
정사에서의 손견은 정말 대단한 장군입니다.
삼국 시대의 직전을 휩쓸던 최고의 지휘관이지요. 그리 많지 않은 병사로 중국 각지의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뛰어난 공을
세웠습니다. 물론 상대가 정예병은 아니었지만, 기세를 탄 반란군들을 제압하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쨌든, 더 중요한 것은 동탁과의 싸움입니다. 연의와는 다르게 화웅의 목을 벤 것은 손견이며, 당연한 말이지만 소설처럼
중간보스 화웅 최종보스 여포 식으로 동탁군이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손견이 상당히 고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동탁을 결국
격파하고 장안으로 내쫒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배송지의 주에 따르면, 여포 역시 손견과의 싸움에 참전했지만 특별한 공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산양공재기의 기록은 좀 더 흥미로운데, 동탁과 주변 인물들은 손견의 무재를 이각, 곽사보다 못 하다고 그가 한 공적은 자신들도 할수 있다며 격하합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대화에선 손견군 대부분이 급조된 의병(장사에서 북진하며 중간의 태수들을 쓸어버리면서 세력을 불립니다;;)이지만 손견이 장군으로서 예리한 면과 노련미, 완고함을 모두 갖추고 있어 위협적이라는 말을 하지요.
이는 손견의 장군으로서의 역량을 엿보게 해주는 부분입니다. 소설 속의 동탁, 게임 속의 동탁은 여포빼면 모두 멍청이들이지만,
실사의 동탁은 유능한 장군(황건적 토벌때 패하긴 합니다만, 북방민족과의 전투에선 전설적인 지휘관이었고, 이후에도 왕광을 패퇴시키고 조조도 격파합니다)이요, 동탁 밑의 장수들도 기병운용에 능하며, 동탁군 자체가 당대 최고의 기병군단이었습니다.
당대의 기준에선 단일 세력으로 최강의 군대를 뽑자면 동탁군이 단연 일순위. 그런 상대를 급조된 의병으로 격파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말 대단하지요.
이후 유표와의 싸움에서 다소 허무하게 죽습니다만, 유능한 지휘관의 급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종 벌어지는 일입니다.
혼자 말타고 가다가 저격을 당했다, 혹은 매복에 걸려 낙석에 맞고 전사했다, 등등 여러 주장이 있지만, 어쨌든 전면전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말로가 비참했던 편이고요. 장군으로서의 역량에 비해 정치적인 역량이 확실히 부족했던건 맞지만, 그런 점이 손견의 평가를 떨어뜨리진 않습니다. 비교적 초반에 사라지는 인물이지만 과감히 2위에 랭크해봅니다.
3. 관우
관우의 장군으로서의 업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조조 휘하에서 안량을 격파한 일, 그리고 형주에서 번성을 공격한 일입니다.
안량을 격파한 일도 분명 대단한 용맹을 보여준 일입니다. 당시의 관우가 선봉장으로서 아주 뛰어난 장수였음이 입증되는 부분.
- 안량이 유비와의 관계때문에 방심해서 반응을 못 했다는건 실제 전쟁에선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찾아본 바로는
정사에는 그런 이야기 자체도 없습니다 - 그러나 이런 종류의 업적은 항우나 사자왕 리처드 급이 아니면 큰 의미는 없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형주에서 번성공략을 한 부분입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번성에서 패하고 오의 여몽, 육손에 의해 죽게 되긴 하지만, 정사를 기준으로, 실제 역사를 재구성한다면
관우의 장군으로서의 역량을 재평가 하게 될꺼라 봅니다.
우선 관우는 북쪽으로 진격을 하고, 조인을 번성으로 밀어넣습니다. 조조는 우금과 방덕을 구원병으로 보냅니다.
관우 부대와 조인, 우금 방덕 부대의 정확한 병사 수는 알수 없습니다. 숫자에 대한 언급은 이후 서황과 싸웠던 관우의 주력정예병
이 보병과 기병을 합쳐 5000이며, 우금이 항복했을때의 병력이 7군의 3만이라는게 전부입니다. 여기에 조인군이 제군,즉 여러부대라는 표현이 나오지요. 그외 서황의 원군이나, 여몽군의 숫자는 말그대로 알 수 없습니다.
일단 관우군을 살펴보면, 숫자를 도저히 가름할수 없습니다. 다만 조인군보다는 숫적으로 우세하지 않았을까 싶고, 5000명
이상;;이라고 밖에는 말할수가 없습니다.
조인군은 제군 이라는 표현인데... 1군이 한나라의 편제를 따르는 용어라면 1만2500~25000명입니다. 조인군은 최소 2만5천. 우금군은 7군이니 8~9만에 육박하는 대군입니다. 당시 관우군은 여몽이 장사, 영릉, 계양을 쳤을때 유비가 끌고 온 5만이 한계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당수를 형주 방어를 위해 남겨놨다는 것을 봤을때, 그리고 당시 형주의 상황을 봤을때 5만 이상은 무리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면 조조군은 10만이 넘고 관우는 5만 정도의, 엄청난 대군이 되어버립니다. 최대 4만정도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긴 함.
흠. 우금이 당시 서황, 장료, 장합, 악진보다 높은 직위이긴 했지만(...중진 중의 중진) 10만을 책임질수 있었는지는...
물론 조인의 위치를 고려해보면 우금은 7군만을 거느렸을겁니다만 어쨌든 대군입니다. 이 7군에 대한 해석은 분분한데,
4만 내외의 다른 단위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강물의 범람으로 조인군은 보급문제에 시달리게 되고, 우금군은 3만명이 포로로 잡히고 완전히 궤멸되게 됩니다. 어느정도는 운이 따르기도 한 부분. 다만 이 부분도 명확하지 않은 것이, 여상은 별도로 양양성에서 포위당하게 되서... 우금군이나 조인군 중 일부가 포로로 잡히거나 죽은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상의 부대가 별도로 있는 것인지...
어쨌든 관우군이 조조군을 대파 했다는건 명백합니다. 지원군을 격파하고 번성과 양양성이 당장 함락당할 위기에 처했으니...
조조는 급하게 다시 서황을 원군으로 보내는데, 서황은 일단 시간을 끌면서 추가 원군이 오길 기다립니다. 이 시점에서 서황군은 관우군보다 숫적으로 열세이고 대다수가 신병이라 교전을 피합니다. 다시 조조가 서상, 여건을 보내고 이 시점부터 서황이 작전을 시작하여 조인군과 합치게 됩니다. 이후 은서, 주개의 12영(營)이 합류하고, 관우와 본격적으로 싸워 격파시킵니다.
여기서 영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천명 정도의 단위로 보면, 즉 1만2000명이 합류한 것이고, 아니라면 군영의 의미로 12만이나 합류한 것인지... 어쨌든 서황군의 규모가 관우군보다 월등했다고 봐야 이치에 맞지 않나 싶습니다. 조조가 서황에게
군대가 집결한 이후 작전을 개시하라고 했었고, 이미 우금이 패하고 여러 성들이 위험한 상황에서 서황이 관우와 엇비슷하거나 더 적은 병사수로 맞선다는건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여겨지는군요.
이후 관우는 형주에서 오의 여몽-육손에게 잡혀 죽게 되는데, 어찌보면 크게 위력을 떨치긴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죽었으니 저평가 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 가지 이유때문에 관우를 높이 평가 합니다.
1)무려 조조를 흔들었다 - 가장 큰 부분. 원소와의 싸움 이후의 조조는 당대의 제후 중 최강이었습니다. 과거의 동탁이나 원소의 위세에 비할 바가 아니었죠. 조조군에서 동원된 병력을 최대로 계산하면, 적벽대전에 버금가는 수준의 병력이 동원된거나 마찬가지. 조조는 마초와의 싸움에서도 상당히 고전하긴 했지만, 조조의 언행과 대응의 수준은 상당히 달랐습니다.
2) 형주라는 소규모의 배후지 - 형주가 요충지이긴 했고, 전란에서 비교적 안전한 지대이기도 했지만, 조조가 차지한 중원이나 손권의 강남, 유비의 촉한에 비할바는 아니었습니다. 그 형주의 일부를 차지하고 중원 전체와 서량까지 집어삼킨 조조를 위협했다는건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었지요. 사실상 역량있는 장군이 그 혼자인 상황에서 이뤄낸 일로는 대단한것.
3) 조조와 손권의 연합 - 관우가 서황에게 크게 패하긴 했지만, 여몽과 육손이 아니었다면 어찌되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관우가 손권을 모욕한 것이 시발점이 되긴 했지만, 손권이란 인물은 자신에게 유리하면 그런 문제를 참아넘길 인물...(이라고 저는 생각) 그만큼 당대 관우의 위용이 엄청났다고 봐야 할겁니다.
4)장료
5)주유....는 다음 시간에... 쿨럭... 관우 관련해서 병제, 수치를 뒤지다보니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해서;;
하긴 연의에서 워낙 듣보잡 취급해서 그렇지 칭제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겠네요
실제로 명성으로만 따지면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 중 원술을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원씨 가문의 적자로서 가문을 이끌어 나가는 인물이었죠. 원소는 나이가 많았으나 어디까지나 서자, 조조는 환관의 손자에서 이미 원씨 가문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물론 조등이 당대의 세력가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사세 삼공을 지낸 명문 원가에 비할 바는 아니죠.) 유비야 사방에 널려있는 황족 찌그러기였고.
엄밀하게 말하면 원소는 얼자였죠. 뭐 대충 서얼로 엮이긴 합니다만; 서자도 대접을 못 받는 판에 얼자.. 확실히 원소가 대단하긴 대단한 사람입니다.
뭐 그래도 조조가 국지전에서 최강의 지휘관중 하나라는 것은 사실이겠죠.. 무제기니까 뻥튀기 한거 감안해도 국지전에서 승리기록은 무수하니까.. 문제는 전략적인 상황에서 부하들 데리고 싸우면 좀 심하게 삽질한다는 거고..(규모가 커지기 시작하니까 말리는 경향이 있달까..-_-;;) 지휘능력으로 따지자면 전역 총 사령관 클래스라기 보다는 1개 군 정도를 지휘하는 정도가 본인 적성에 더 맞았던 듯 합니다. 뭐 유방도 전역의 총 사령관 하기는 역량이 좀 부족하지만 일군의 장군으로서는 한 가락 하는 분이기도 하지요..
군의 규모에 관계 없이 먼치킨성을 보여주는 장군은 의외로 별로 없죠..
전국시대의 염파나 백기가 그런 장군들이고.. 제갈량이 의외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긴 하는데 안타깝게도 유비가 이릉에서 홀랑 말아먹는 바람에 부하놈들이 대체로 부실한 애들이 많아서 고생을 참 많이 했죠.. 게다가 본국에서 내정까지 총책임을 져야 하는 판국이니..-_-;;
아니, 조조는 전역의 총사령관으로써도 나름 괜찮은 성적을 보여줬어요. 적벽 이후 한중 이전까지 조조가 벌인 대규모 전역에서 패전한 건 없고, 심지어 유수구 전투에서는 지휘부에서도 역병으로 풀썩풀썩 쓰러져 죽는데도 근성있게 버티면서 밀어붙여 손권이 명목상이나마 항복선언을 하게 만들었죠.
물론 순욱 사후 뭔가 끝까지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전역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야금야금 다시 주도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한중에서 패하기 전까지 말이죠. 조조가 밀어붙이는 걸 나머지 세력이 정면승부는 피하고 요충지를 잡아 방어전을 벌이는 형국이라 초기처럼 화려한 승리가 나오긴 힘든 모양새라.
확실히 조조는 '다다익선' 스타일의 장군은 못 되는듯.
제갈량과 사마의, 육손같은 이들이 스케일 큰 전투에선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긴 하는데, 제갈량은 상대가 위나라를 등에 업은 사마의라 결국 전투의 승리가 전쟁의 승리로 이어지질 못했고, 육손은 군주가 손권;;
전 오히려 원소의 세력을 물리치고 관도대전의 판을 뒤집은 것만 봐도 전략적인 식견이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제갈량이야 뭐 논외고 사마의의 경우도 사실 이 친구가 대장군 조진의 공을 상당히 가져간 부분이 있어요. 물론 훌륭한 장수이고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낸 공은 큽니다만 좀 과장이 있는거죠. 육손은 이릉대전에서 뒤집은 건 있습니다만 그 이후에는 특기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사실 육손의 능력 부족 보다는 오군이 시궁창인게 더 크지만.)
사마의는 정사에서는 제갈량과의 싸움 이외에서 보여준 능력이 더 탁월합니다. 자신의 상대가 제갈량이어서 기량을 못 펼쳤다는 듯이 거의 양학을... 맹달, 공손연을 격파할때의 모습이나, 제갈량 사후 오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능력들을 보면 대단한 장군. 진서 선제기의 기록을 믿는다면 사마의의 적수가 없을 정도이지요(얼마나 믿어야 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진만 불쌍한게 아닐까 싶다는..
육손은 관우를 잡을때도 여몽과 더불어 큰 공을 세웠고, 이릉 전투 이외에도 조휴를 격파했습니다. 굵직한 것 이외의 작은 공들은 더욱 많습니다. 오군, 손제리가 문제이지 않았을까 싶다는.
전술적인 부분에서는 육손도 이래저래 활약이 많죠. 그러나 이게 전략적으로 가치있게 이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육손의 능력부족보다는 오군이 시궁창인게 더 크구요.(은영전 양 웬리 생각나네요.)
확실히 건전하면서 열띤 논쟁의 장을 여는데 삼국지만한 떡밥도 없군요^^
그리고 글 속에서 선정된 장군들에 대한 평가기준을 보면 전략가나 전술가의 뚜렷한 구분이 아니라 특정 전역에서 활동한 일정 군 단위의 집단군(?) 사령관을 뽑은 느낌이 듭니다. 장료와 관우 조조를 동일선상에 세워서 일까요? 각 장군이 활동한 특정한 전역에서의 지위로 봐야 지금 선정된 장군들을 묶어서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관도와 창정에서 말아먹은 원소는 정말........
말아먹고도 조조가 원소 죽을때까지 함부로 깝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원소의 위엄이...
아닛, 장료랑 주유를 왜 걍 엎어버리심. ㅋㅋㅋㅋ
근데 소패왕이라 불리는 손책은 어떤가염? 손견이 한수 위인가...?
글구 강유는...? 소심남이고 실패도 한 사람이지만, 능력치만 봐선 팔방미ㄴANG인뎅.
저는 몇위죠?
馬草 말씀하시나요? 마초는 군마에게 먹히는 풀이죠. ^^;;
오의 군사, 지배 체계가 중세 봉건적 시스템인게 문제.. 이게 반군, 이민족의 반란이 많은 오의 특성에 효과적 체계인듯합니다.
장군과 병사와의 끈끈한 유대 관계로 각 부대별 전술적 능력은 의외로 ㅎㄷㄷ한 모습을 보이죠. 유수구 전투 때 조조 후방에 표류되자 조조군을 격파하고 본대로 되돌아 온 서성이나, 조비가 친히 강릉 침공을 해서 초전에 오군이 대패를 해서 강릉이 포위되었을 때, 역병에 내통자까지 나오는 역경에도 수천을 이끌고 반년간 지켜내 조비가 성과없이 물러나게 한 주연, 수만의 반란군을 열흘만에 평정한 동습, 장료의 공격에 손권이 위험해지자 부대가 '전원 사망'할때까지 버텨 손권을 구해낸 능통 등..
근데 부하 장수의 병사는 내 병사가 아니라는 봉건 시스템 덕에 수많은 장수가 참전하는 경우 대장군이 마음에 않든다고 장수가 태업하기 일쑤(그럼 그 부대는 사용불가)라 일정 규모 이상은 손권이 직접 친정을 해야하는 상황에, 대규모 전투에서는 서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죠.
장수가 죽거나 파직당해도 그 부대는 상급 지휘자나 주군에게 가는 것이 아닌 대부분 전 장수의 친족(대부분 아들, 또는 동생)이 인수합니다.
오나라는 각 부대가 홀로 있으면 강한데 뭉치면 약해지는 부대 이미지..
수준 높은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