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동서 문화교류 주역들의 흔적을 찾아서
몽골 알타이 시베트 하이르한 유적 중앙아시아 내륙 고원지대에 우뚝 솟아 동서로 연결된 알타이산맥은 그 길이가 2,000km에 달하며 예로부터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의 고국(故國)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알타이의 깊은 협곡은 수천 년 동안 동서 문화교류의 통로가 되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와 ‘문화유산 연구 교류 협력’ 약정을 체결하고, 2009년부터 우리 역사·문화 관련 고대 문화 네트워크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01.몽골 알타이 시베트 하이르한 유적 전경
대자연 속에서 마주한 고대 유목 문화
조사지역은 몽골 최서단 바양울기(Bayan Ulgii) 아이막에 소재한 해발 3,300m 시베트 하이르한(Shiveet Khairkhan)산에 위치한다. 나무 하나 없이 삭막한 바위산에 둘러싸인 광활한 초원 속에는 한·몽 공동 발굴조사단과 우리가 조사할 무덤, 그리고 가끔 지나가는 양떼와 유목민이 전부였다. 과연 이곳에 사람이 살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무덤 속에서 확인한 고대 유목민과 그들 삶의 단편을 보여주는 유물을 마주할 때면 경이로우면서도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조사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차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대상은 스키타이 중 하나인 파지릭(Pazyryk) 문화의 무덤 7기(기원전 4세기~기원전 2세기)와 선비 시기 무덤 7기(기원후 1~3세기) 였다. 조사 결과 당시 이 지역 고대 유목민의 무덤 축조 방식, 피장자의 매장 방식, 장례의식, 사망원인, 생산기술, 교역 양상 등 과거 다방면의 인간 행위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출토인 골의 DNA 분석, 안정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식생활 분석, 동물 유체의 동물 고고학적 분석, 복식 보존처리 등 다양한 과학적 연구를 병행해 고대 유목문화를 생생하게 복원 하고자 했다.
파지릭 문화 무덤은 돌을 쌓아 만든 적석묘이다. 평면 형태는 원형으로 작은 것은 지름 5m에서 큰 것은 18m까지 차이가 있다. 석재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큰 돌을 이용했으며, 적석 높이는 약 1.5m로 그리 높지 않다. 매장주 체부(시신이 있는 자리)는 지표에서 2~3m 가량의 지하에 위치하며, 석관, 목곽, 통나무관 등을 다양하게 사용했다.
02.선비시기 무덤 4호에서 출토된 반미라 상태의 인골 03.파지릭 문화 무덤 9호의 매장주체부. 출토 인골의 두개 골에 구멍이 뚫려 있다. 04.파지릭 문화 무덤에서 출토된 목제 금박 장식품. 황금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그리핀의 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발굴조사로 확인한 흥미로운 옛 이야기
몇 가지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하자면 파지릭 문화 피장자는 대부분 전투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출토 된 인골을 살펴보면 두개골이 뾰족한 도구에 뚫린 경우도 있고, 무슨 연유인지 인골 일부가 훼손되어 적석부로 올라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인골 DNA 분석 결과, 동아시아에서 보이는 유전정보와 유럽 지역에서 보이는 유전정보가 함께 검출되어 동서문화 교류의 주역다운 유전적 다양성도 확인되었다.
한편 안정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소, 양, 염소의 낙농을 통한 생계경제가 있었고, 인근의 호수 낚시를 통한 담수어 섭취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유물로는 황금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그리핀(griffin)’ 머리가 장식된 목각 짐승이 출토되었다. 이는 2,500년 전 그리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알타이 지역에는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이 있다” 라는 기록과 부합하는 양상이다.
한편 선비시기 무덤은 지름 3~5m의 평면 타원형의 작은 적석 무덤으로 3~4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4·5·6호 무덤 내부에서 완전한 형태의 인골이 한 구씩 출토되었는데, 일부 피장자가 미라 상태로 발견되어 놀라웠다. 반미라 상태인 4호 주인공은 35~40세, 신장 170cm 정도의 남자로 대머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5호 주인공은 연령은 알 수 없었지만 역시 반미라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장이 168cm 정도로 매우 컸다. 그리고 퇴색된 머리카락과 겨드랑이 체모 일부가 확인되었는데, 복장으로 보아 상류층임에도 불구하고 고지대의 척박한 삶을 반증하듯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라는 의도적으로 시신의 부패 방지를 위해 별도의 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 춥고 건조한 환경에 기인한 것으로 보였다. 착용하고 있었던 염습용 끈과 직령의(깃이 곧고 소매가 넓은 상의), 동물털로 짠 직물에 부착된 은 장신구 등이 확인되어 고대 선비족의 수의(壽衣)까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했다. 한편 선비 시기 3호 무덤에서는 주로 대만 동남해안~한반도 남해 안에 서식하는 개오지(cowry, 카우리)라는 조개껍데기가 확인되어,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물질문화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현대 문명과 완벽하게 차단된 알타이 대자연 속에서 고대 유목민을 마주할 수 있었던 이번 조사는 필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한·몽 양국을 대표하여 수행하는 공동 프로젝트가 앞으로 세계 문명 교류사를 밝히는데 많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글, 사진. 남상원(국립문화재연구원 고고연구실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