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은
한때 국내 석탄 생산량의 13%를 캐냈던 곳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석탄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이 폐광되더니
사람들이 썰물처럼 떠나갔다. 지난 2000년 석탄을 실어날랐던 가은선은 결국 폐선이 됐다. 흉물스럽게
방치되던 녹슨 선로가 다시 반짝거리게 된 것은 작년 4월. 폐선로에 기차 대신 철로 자전거가 놓였다.
역무원도 없는 ‘간이역’이 추억을 만들려는 사람들로 주말마다 북적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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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자전거
체험 구간은 진남역에서 석현터널까지 다녀오는 왕복 2.5㎞ 코스. 특수제작된 자전거에는 4명까지 탑승이
가능하다. 2명은 양쪽에서 페달을 밟고 나머지는 그 중간에 앉아있으면 된다.
출발은 약간 오르막이다. 자전거에 장착된 3단 기어를 1단에 놓고 출발한다. 맞바람이 불어와 페달에서
묵직한 느낌이 전해온다. 그렇다고 큰 힘이 드는 것은 아니다. 페달밟기는 금방 익숙해진다. 자전거가
탄력을 받아 사뿐히 전진하면 시선은 자연스레 주변으로 옮겨간다. 자전거 탈선의 위험이 없으니 엉덩이만
좌석에 붙이고 눈은 아무데나 두어도 상관없다.
자전거는 출발한 지 2분쯤 지나자 철교 위로 들어선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시원하다. 몸이 움찔하기도 한다. 철교의 높이는 20m가 족히 넘어 벼랑 위에 올라 있는 듯하다. 주변의
풍경도 빼어나다. 발 밑으로 영강의 물줄기가 ‘S’자로 굽이친다. 강변의 기암괴석·층암절벽이 하늘로
치솟아 있다. ‘경북 팔경’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진남교반의 경치다. 철교 저 너머로 석현터널이 자전거를
기다리고, 터널 위로는 고모산성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자전거의 최대속도는 시속 30㎞쯤. 제법 속도감이 느껴진다. ‘과속’이라 생각되면 좌석 옆에 창작된 브레이크를
잡아준다. 탈선사고? 자전거에 주행용 바퀴 외에 레일 이탈방지용 보조바퀴가 설치돼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석현터널에 이르면 자전거의 주행 방향을 돌려야 한다. 회차지에는 회차시설이 따로 따로 마련되었다.
전에는 60㎏의 자전거를 손수 양쪽에서 들어 위치를 바꿔야 했다. 2.5㎞ 구간을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남짓.
요즘은 더 긴 시간을 탈 수 있다. 문경시청에서 진남역~가은역까지 9.6㎞ 구간의 자전거코스를 운영하고있다.
☞ 진남역 가는 길 ☜
수도권에서
간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IC에서 빠진다. 3번 국도를 타고 문경(점촌) 방면으로
간다. 10분쯤 더 가면 문경 마성면.
진남휴게소가 보이면 좌회전해서 들어간다. 휴게소 앞쪽으로 점촌가는 구길이 나 있는데 5분쯤
가면 진남역이다. 자전거는 토·일요일·공휴일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탈 수 있는데 타려는
사람이 많아 장시간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미리 승차 신청을 하고 대기시간을 이용해 인근의
석탄박물관, 문경관광사격장 등을 다녀오는 것도 방법이다. 문경새재, 드라마 ‘태조왕건’ 세트장도
문경의 이름난 관광지. 귀로에는 문경온천에 들러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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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방학을 맞아 내려온 녀석들의
즐거운 표정들
고모산성 (지난
정월 초이튿날에도 소개했던....) |
진남역에서 나와 1분거리에 있는 고모산성 주차장에서 차를 세웠다. 주차장 끝쪽에 고모산성 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친절하게 서 있다. 계단을 오르니 자전거를 타고 지나쳤던 철길이고 철길을 가로질러
넘어서니 S자로 휘어진 야트막한 숲길이다. 오른쪽으로 휘어진 길을 지나치니 고모산성의 진남문이 바라다
보인다.
산성 오른쪽으로는 그 옛날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다니던 영남대로 옛길 중 원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토끼벼루로 가는 길이란다. 신라가 건국된 2세기말 축조되었을거라고 전해지는 고모산성은
최근에 복원되어
반듯하게 정비된 모습이다. 성벽 따라 5분 정도 걸어 오르니 곧 정상, 산 아래로 진남교반의 경치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빠르게 걸었더니 이마에 땀이 살짝 맷혔다. 2월말이건만 걸친 옷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화창한 날이다.
함께간 외손자 남매가 옛 성의 애환이나 한양 가는 선비들의 고달픔을 알랴만은 마법의
성이니, 임금님이 살았다느니 저들 나름대로의 성에대한 상상들을 지껄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성을 오른다.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탄광, 지금은 박물관으로.... |
문경시
가은읍 왕릉리에 있는 문경석탄박물관은 1999년 5월에 개관했다. 한 때 우리나라의 주요 에너지원이었던
석탄의 역할과 역사적 사실들을 전시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어릴 적 연탄에
의존했던 기억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 불과 십몇년전만 해도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집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겨울이면 골목마다 집밖에 층층이
쌓인
연탄재는 흔한 풍경이었다. 연탄에 대한 추억들이
있어 요즘은 연탄불 석쇠 돼지고기 구이가 인기를 끌고 있다나.....그리고 겨울이면 그놈의
연탄가스로
인해 목숨이 끊어지는 일들이 어김없이
뉴스가
되어 나타나 꽉 닫힌 창문을 불안해 하며 잠을 못이루곤 했던 기억들, 밤에 연탄불 꺼질까봐 시간
맞추어 연탄 갈아주던 일들......시몬이와 사라에겐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사실 내겐 아직도 생활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이 추억이 되었듯 탄광도 박물관의 일부가 되었다.
박물관은 2층으로 이루어진 실내전시관, 그리고 각종 장비가 전시된 야외전시장, 그리고 탄광 안 갱 모습을
보여주는 실제 갱도 안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갱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좁은 공간,
땅 밑으로 끝도 없이 이어진 길, 한낮에도 캄캄한 어둠속에서 죽음과 맞서 일하던 그 때 그 사람들......진폐증으로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오로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녀의 학업을 위해 시커먼 탄가루를 마다 않던 사람들이
그 때 있었음이다.
문경은 유명한 탄광도시였다. 일대에 한 때 광업소가 40여개나 있었고 광부만도 만명이 넘었었다고
한다. 전국 석탄 생산량의 15% 가까이 차지했었다고 하니 가히 국가경제의 일익을 담당하던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1994년 은성광업소를 마지막으로 모든 탄광은 문을 닫고 광부들은 떠나갔다.
인구도 그때보다 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탄광이니 석탄이니 진폐증이니 하는 단어들은 생활에
필요치
않은 단어가 되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들어간 단어들.......우리나라 근대화의 또 다른 상징인 셈이다. |
△ 신기한듯 두려운듯 갱 속으로
들어가는 녀석들, 석탄의 고달픔을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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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손자들 보는 재미가 쏠쏠 하겠습니다
손자손녀가 울 할아버지 최고라하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