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일 연중 22주간 금요일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5,33-39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모기눈알 스프
중국 어떤 유명한 조리사 한 분은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답니다. 그는 세상의 만물은 음식 재료가 된다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음식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은 모든 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데 신명을 다 바쳐서 요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가장 대접 받는 직업이 요리사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아주 진기한 음식들이 많이 있고, 그 음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맛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식도락가들을 불러 모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름과 초가을에 가장 싫어하는 모기도 식도락가에게는 버리기 아까운(?) 음식재료라고 합니다. 87년에 중국에 갔을 때 나는 아주 희귀한 ‘모기 눈알 수프’를 먹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찹쌀로 된 스프라고 하는데 모기 눈알에 찹쌀가루 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 찹쌀 스프에 띄었는데 그 맛이 아주 특이하고 맛있었습니다.
‘모기눈알 수프’ 요리가 유명한 곳은 사천성의 성도(省都)인 중경. 이곳에는 수많은 동굴이 있고 동굴마다 박쥐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박쥐들이 모기를 주식으로 하지만 모기 눈알만은 소화시키지 못하고 배변 때 배설한답니다. 그러면 박쥐의 배설물을 체에 걸러서 모기 눈알만 채취해서 잘 닦아 유명한 ‘모기눈알 수프’를 만드는 것입니다. 식도락(食道樂)은 여러 가지 음식을 두루 맛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식도락가뿐만 아니라 맛있고 귀한 음식은 누구든지 다 맛보고 싶고, 좋은 음식은 단식을 하거나 절제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 거리나 비용을 가리지 않고 찾아 나섭니다. 단지 호기심 때문에 먹기도 합니다. 그러나 돈이 많이 들고, 배를 채우는 데에는 부적절합니다. 잘 먹지 못해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때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배고픈 것은 정말 참기 힘듭니다. 가난한 사람의 단식과 배부른 사람의 단식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참으로 홍보와 광고 수단이 발달 되어서 TV에 나오지 않은 음식점이 거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편에서는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한 편에서는 너무 잘 먹어서 탈이 난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이 우리의 숨길 수 없는 현실입니다. 먹는 것에 대한 조화는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불균형입니다. 굶어보고, 헐벗어본 사람만이 그 부조화에 대해서 얘기도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단식(斷食)은 단순히 밥을 굶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먹고 싶고, 맛있는 것을 보고 자신을 절제하며 탐식의 유혹에서 벗어나서 고통을 체험하려는 하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먹어야 하는 본능의 절제(節制)를 통해서 인간을 잘 다듬고, 보다 성숙한 내면의 세계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하나의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에서도 그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단식을 권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단식함으로써 은혜를 받는다든지, 단식함으로써 거룩해진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예수님은 단식의 중요성을 다른 곳에서 찾으십니다. 단식하면서 주님을 떠나 있는 것보다는 주님과 함께하는 동안 잘 먹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더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조화로운 삶입니다.
이제 주님은 구약과 신약의 조화로운 삶을 통해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율법에 따른 의미 없는 단식보다는 새로운 약속에 따라서 하느님 나라를 상속 받는 길을 말씀하십니다. 완전한 크리스천이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와 함께할 수 있는 그 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님 제가 형식적인 단식의 버릇에서 벗어나 당신을 체험할 수 있는 단식의 기회를 허락하소서. 아직 단식의 참 의미도 잘 모르고 있사오니 당신께서 깨우쳐 주소서. 자비와 사랑의 주님!!!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자신을 절제하며 탐식의 유혹에서 벗어나서.....
절제의 덕을 살 수 있더록 이끌어 주소서.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수산나 자매님
아멘 주님 주님과 함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네스 자매님
아멘.
감사합니다. 아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