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의 해산토굴,
땅끝에서 시작된 남파랑 길은 장흥군 회진면 신상리로 이어지고, 신상 1길 21-38 에 장흥이 낳은 소설가 한승원의 생가가 있다. 명덕초등학교와 장흥중교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 예대를 졸업한 뒤 고향 마을과 바다를 배경으로 <목선> <앞산도 첩첩하고> <그 바다 끓며 넘치며> 등 수많은 소설을 발표한 한승원은 <그 바다 끓며 넘치며>에서 고향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 김발을 거두어들이는 늦은 봄이나 여름 같은 때에 큰 동네와 새텃물을 갈라 놓는 한재 큰 골짜기로 젖빛 운무가 끼고, 득량만의 쪽빛 물굽이에 홑이불 자락처럼 자욱하게 덮이어 있던 안개 덩어리가 동남풍에 밀려 응달의 해송 숲으로 거대한 원시 양수류처럼 기어오를 세면, 이 골짜기는 살아 있는 암컷처럼 암내를 풍기곤 한다고 했다.
”해변 사람들의 일이란, 밥술이나 넉넉히 쌓아두고 먹고 사는 사람이건, 그날 건져 그날 먹고 사는 사람이건, 일단 배를 타고 바다에 나서면, 그 갯물처럼 짭짤하여지고, 앞뒤 가림없이 메어치는 파도처럼 험해져 버리는 게 상례여서, 대단하게 성을 낼 일이 아닌데도 일단, 상스럽고 험한 욕지거리를 앞에 내세우고 나서 하고자 하는 말을 시작하곤 하는 것이었다. 큰 동네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응당 개포 여기저기 뜬 큰 동네 사람들의 배 위에서는 “네 어미 잡아먹고 네 애비를 똥으로 싸면서 냄비타령 할 놈아” 하는 투의 험한 욕지거리들이 와르르 해일처럼 모래밭 들독에게도 밀려들었다.“
문학평론가인 천이두 선생은 한승원의 문학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한승원의 바다는 시적인 바다가 아니고 산문적인 바다이다. 아귀다툼을 벌이는 삶의 현장으로서의 바다이며, 한으로서의 바다이고, 마녀와도 같이 요괴스럽고 천사의 늪처럼 뜨거운 신비의 바다이며, 질긴 생명력의 표상으로서의 바다이기도 하다.“
소설가 한승원의 문학 DNA가 딸에게로 이어져 그의 딸 한강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29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고 2016년 5월에는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했고, 2024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작품으로 대한민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네 젖기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이젠 더 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실린 글인데, 한강이 맨부커 상을 받았던 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이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부른 가수 밥딜런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봐야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될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날아야
백사장에 편히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지나가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친구여, 그 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야
높은 산이 씻겨 바다로 흘러 들어갈까.
사람이 자유를 얻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 걸까.
사람은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지.
사람이 하늘을 얼마나 올려다봐야
진정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려야
다른 사람들의 비명을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너무도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는 걸 알게 될까.
친구여, 그 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지.“
밥 딜런의 시詩보다 더 시 같은 노랫말 가사와 닮은 듯 다른 글로 이 세상의 사랑과 자유, 그리고 평화를 노래해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 대한민국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세상을 놀라게 하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신정일의 ㅡ<남파랑 길 인문기행> 중에서
소설가 한승원은 고향 신상리를 두고 안양면 사촌리 율산마을에 해산토굴이라는 당호를 가진 집을 짓고, 그 집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
2025년 을사년 1월 1일 찾아간 작가의 집은 굳게 닫혀 있고, 철 이른 동백꽃만 피어서 찾아오는 길손들을 맞고 있었다.
2025년 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