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며칠 전 한 지인으로부터 카톡을 한 통 받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여배우 최은희 씨에 대한 신문 기사였다.
90을 넘긴 당대 최고의 여배우가 경기도 한 요양병원에서 한 인터뷰 기사.
요양원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혼자 떠날 날을 기다리던 때였다.
잘 나가던 시절 입양해서 키워준 자식들도 원로 여배우를 모시지 않고 양노원에 맡겨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옛날 조용한 지적 여인상으로 최고의 미모와 연기력을 보여준 스타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보며 인생무상을 느꼈다.
한때는 북한의 권력자 김정일이 탐내어 납치까지 당했던 여배우다.
이런 미모의 여인도 늙음과 죽음 앞에는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모습이 너무 외롭고 불쌍해 보였다.
자신의 장례식엔 가수 김도향의 노래를 장송곡으로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살아 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 버린 것이 아닐까
흘러 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우 우 . . .
< 중 략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우 우 . . .
자신의 죽음에 장송곡으로 선택한 노래 말이 너무 애잔하고 허무한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화려했던 삶에 무기력한 채 빈손으로 떠나간다.
빈손으로 떠나가는 저승길에 돈도 명예도, 부(富)도 화려함도 모두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든 건 다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인생은 나그네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라는 노래가 더욱 실감나게 들리는 것 같다.
인간에게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자연 속에 펼쳐지는 드라마 같은 인생사다.
생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길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은 스스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웰 다잉(Well-Dying)이라고 한다. 자신의 생을 뜻깊게 보낼 뿐 아니라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노년의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제가 있다.
‘건강할 때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가고 싶은 곳 모두 가보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다 가자 . . ’
자식들 위해 희생과 고생은 더 하지말자는 주장도 이어진다.
아이들의 남은 세계는 더 좋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황혼의 인생길에 여생을 더욱 즐겁게 보내라고 한다.
남은 인생 친구나, 연인과 함께 여행 다니면서 인생 말년을 재미있게 보내는 것이 제일 값진 인생이라고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이 드는 일을 배우자.
세상의 변천사에 따라 시대적 ‘고려장’ 이 된 오늘의 요양원이다.
요양원을 가고 싶어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식들 가족들에게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가는 곳이다.
요양원의 적나라(赤裸裸)한 현실을 바라보는 노년의 삶에는 허무감과 서글픈 감정이 일렁인다.
첫댓글 요양원을 가고 싶어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식들 가족들에게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가는 곳이다.
요양원의 적나라(赤裸裸)한 현실을 바라보는 노년의 삶에는 허무감과 서글픈 감정이 일렁인다.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이 드는 일을 배우자.
세상의 변천사에 따라 시대적 ‘고려장’ 이 된 오늘의 요양원이다.
요양원을 가고 싶어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식들 가족들에게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가는 곳이다.
요양원의 적나라(赤裸裸)한 현실을 바라보는 노년의 삶에는 허무감과 서글픈 감정이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