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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빌립보서 2장5~18절
제목 : 순종으로 이루는 구원
바울은 죽기까지 복종하신 후 만민의 왕으로 높아지신 그리스도 예수의 겸손한 마음을 본받고, 또 그의 순종을 배워 구원을 완성하라고 권면합니다.
1. 그리스도의 본(5~11절)
1)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한 권면(5절)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본절은 앞에서 빌립보 교회의 일치를 위해 '겸손'을 권면한 것에 대한 예증으로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전환절입니다.
그리스도는 궁극적인 모델로서 이 땅에 오셔서 '겸손'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모델이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권면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자기를 부정하심으로 십자가를 지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인들도 서로가 겸손하고 자신을 부정할 때 다툼이나 허영은 사라지고 '교회의 일치'를 낳게 될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先在)(6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본체'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르페'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혹자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외적인 형체와 영광이 동일시되며(출 16:10;24:15,16;레 9:6,23;민 12:8;14:10) 선재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나누셨기 때문에(요 17:5;고후 4:4;골 1:15), '본체'를 '영광'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7절의 '종의 형체'(모르펜 둘루)에서 나타나는 '고난당함'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2) 혹자는 이것을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과 성품'으로 이해합니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 안에서 존제하신다'는 의미로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본질을 소유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본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입니다.
(1) 혹자는 '하나님과 동등됨'이 그리스도께서 장차 취하실 영광이지만 고난을 통과하기까지 유보하셨다고 해석합니다.
(2) 혹자는 본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 된 분이나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는 인간으로 오시기 위해 자신의 영광을 포기하셨다고 해석합니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도 이미 그의 영광은 하나님과 동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십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동등 됨을 포기하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7~8절)
(1) 성육신 하심(7절)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자기를 비워 - '자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아우톤'은 강조적 용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비어'의 헬라어 '에케노센'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⓵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을 포기하였다.
⓶ 독립적인 권위 행사를 포기하였다.
⓷ 하나님의 대권적(大權的) 권능을 포기하였다.
⓸ 존엄과 주권의 표지(標識)를 포기하였다.
⓹ 하나님의 속성 즉 무소 부재, 전지 전능 등을 포기하였다.
위의 견해들 중 세 번째가 타당한 듯합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사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종의 외적인 모습을 취하셨거나 종으로 가장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종의 본질적인 속성을 취하셔서 종이 되셨음을 의미합니다.
'종'에 대해서 혹자는 사 52:13-53:12에 나타난 '야웨의 종'의 개념을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본절의 '종'은 11절에 나타난 고양된 그리스도이신 '주'와 대조적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권리나 특권을 포기하여 죄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시사합니다(막10:45;눅 22:27).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 '같이' 의 헬라어 '호모이오마티'는 '유사함'(similarity)이나 '동일함'(identity)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죄의 본성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다른 모든 인간들과 같이 되셨음을 시사합니다.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십니다.
(2) 십자가의 죽으심(8절)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그리스도의 겸손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낮아지심에서 잘 드러납니다.
영화로우신 분께서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은 지극한 겸손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겸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발적인 순종 가운데 십자가를 지시는데 까지 나아갑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과 동등 되심에도 불구하고 동등 됨을 포기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히 5:8).
이런 점에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겸손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결과(9~11절)
(1)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심(9절)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 '지극히 높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립소센'은 '휘페르'('위로')와 '휩소스'('높은 곳')의 합성어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지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겸손과 수치스러운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부활과 승귀(昇貴)를 통해 영광에 이르도록 높이셨음을 시사합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바울은 이 이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이름'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라고 주장하며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문맥상 '이름'은 11절에 나오는 '주'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전 우주를 다스리시는 주권을 소유하신 '주'이심을 시사합니다
(2)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앞에 복종하여 섬기게 하심(10절)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시고 '주'라는 이름을 주신 목적은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앞에 복종하게 하여 주로 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예수의 이름'은 앞 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뛰어난 이름'과 동일한 것으로 '주'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主)이시기 때문에 모든 만물이 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한편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할 대상에 대해 세 가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하늘에 있는 자들'(에푸라니온), '땅에 있는 자들'(에피게이온) '땅 아래 있는 자들'(카타크도니온)입니다.
세 대상의 헬라어는 남성과 중성 둘 다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그것을 남성으로 이해해서 이성적이며 생물적(生物的) 존재인 천사와 같은 초자연적 존재와 인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에푸라니온'이 천사들과 하늘에 있는 성도들, '에피게이온'이 땅에 살아있는 자들, '카타크도니온'이 사단의 무리와 지옥에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혹자는 중성으로 해석해서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를 주로 경배하며 복종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닙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심(11절).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시인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사본에 따라 다르게 사용됩니다.
어떤 사본에서는 제1부정과거 가정법인 '엑소몰로게세타이'를 사용하여 '시인하였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기술합니다.
다른 사본에서는 미래 직설법인 '엑소몰로게세타이'를 사용하여 '시인할 것이다'라는 미래적 의미로 기술합니다.
두 가지 경우 중 문맥상 전자가 더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10절의 '꿇게 하시고'의 헬라어 '캄프세'는 '캄프토'('굽히다')의 제1부정과거 가정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높이셔서 '주'라는 칭호를 주심으로 모든 만물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주'라고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주'에 대한 시인은 하나님 뜻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2. 순종으로 구원을 이루라(12~18절)
1) 대내적 문제에 대한 결론적 권면(12~13절)
(1)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12절)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사랑하는 자들아'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목양하는 자로서 친근 감있게 부르는 호칭입니다.
친근한 호칭과 더불어 바울은 본절에서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이 '구원을 이루라'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⓵ 혹자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차원에서 본절을 이해합니다.
본절의 권면은 칭의 이후에 오는 성화의 과정에서 신인협동(神人協同)의 차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미 구원의 확증은 얻었지만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구원의 증거들을 실증하며 살아가야 함을 시사한다고 합니다.
⓶ 혹자는 '그리스도인의 연합적인 차원'에서 본절을 이해합니다.
바울은 4절에서 이미 개인적인 삶만 집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돌보아 주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본절 이하에서 개인적 구원의 문제를 생각한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전혀 나타나지 않기에 교회 전체의 집합적, 공동체적 권면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에 있어서 '개인'과 '교회'는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완성을 향해 계속해서 성숙해가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협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엡 4:1-6).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 구원을 이루어가는 방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명령에 늘 순종하는 것입니다.
(2)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심(13절)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행하시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르곤'은 현재분사로 하나님께서 진정한 힘을 부여하시며 우리의 결심과 소원까지도 인도하시는 분임을 시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본절이 인간의 자유 의지나 책임적 선택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의 계획과 성취에 있어서 그 모든 것을 인도하시되 강제적인 방법이나 수단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은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이것은 비록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신비일지 모르지만 바울이나 성경이 명백히 증거하는 교훈입니다.
2) 대외적 문제에 대한 결론적 권면(14~16절)
(1)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14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
'원망'은 '투덜대는 불평'을 의미하며, '시비'는 '악의 있는 논쟁'을 의미합니다. 결국 사소한 일을 가지고 '악의 있는 마음으로 불평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후자는 바울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출 15-17;민 14-17)들을 염두에 두고 서로 유비(類比)시켜 기록한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그와 같은 추정을 내릴 만한 근거가 전혀 없으며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권위를 빙자하여 하나님께 도전한 반면에 빌립보 교회의 문제는 순수히 교회 내부의 불화(2절)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내에서 불평과 싸움이 없이 모든 일을 행하기를 권면합니다.
(2)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냄(15절)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
'흠이 없고'는 타인에게 책망 받을 만한 일이 없는 것을 의미하며 '순전하여'는 이질적인 것이나 온전치 못한 것이 전혀 섞이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타인에게 책망 받을 만한 일이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온전한 성품을 닮아서 세상에 빛을 나타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으로서 온 세상을 비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마5:14;엡 5:8).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드러내야 할 '세상'을 의미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과 연합한 타락한 세대입니다(엡 6:12).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빌립보 교인들의 사명은 흠이 없는 자로서 세상에 빛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16절)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
생명의 말씀을 밝혀 - '밝혀'의 헬라어 '에페콘테스'는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단단히 붙들다'이며, 다른 하나는 '제시하다'입니다.
'에페콘테스'의 의미에 따라서 본절에 대한 해석도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⓵ 혹자는 본절을 앞절의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와 대조하여 '생명의 말씀을 단단히 붙들다'란 의미로 해석 합니다
⓶ 혹자는 '제시하다'는 의미를 받아들여 세상에 '생명의 말씀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두 가지 견해는 서로 다른 견해가 아닙니다.
전자의 견해는 후자를 뒷받침해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의 말씀 즉 복음을 굳게 붙들지 않으면 그것을 세상에 밝히드러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 빌립보 교인들이 생명의 말씀에 사로잡혀 말씀을 세상에 밝히 드러낼 때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고 고난가운데 복음을 전파하여 열매를 맺은 것이 헛되지 않게 되며 '그리스도의 날' 즉 재림 때에 '자랑'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그리스도인들 이 땅에서 애써 수고한 대가를 보상받을 것입니다.
3)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마음(17~18절)
(1)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17절)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
'관제'는 고대 제사의 관습에서 포도주를 제물에 붓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런 제사 행위를 연상시켜 자신의 순교를 암시합니다.
'관제로 드릴지라도'의 헬라어 '스펜도마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⓵ 혹자는 현재 수동태로 보아서 가까운 미래의 의미를 포함하는 형태라고 해석하여 현재나 가까운 장래에 바울자신이 순교당할 것을 예견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⓶ 혹자는 현재 중간태로 보아서 바울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교의 제단에 드리려는 심정을 고백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스펜도마이'는 두 번 나타나는데(17절;딤후 4:6) 모두가 수동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바울 자신이 가까운 장래에 순교당할 것을 예견(豫見)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한편 '믿음의 제물과 봉사'의 헬라어 '테뒤시아 카이 레이투 르기아 테스 피스테오스'에서 '제물과 봉사'는 하나의 관사 '테'로 수식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물과 봉사'가 '희생적 봉사'를 의미하는 중언법적 표현임을 시사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행하는 모든 희생적인 봉사위에 자신을 관제로 즉 순교로써 드린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음과 교회를 위한 바울의 헌신적인 열정을 시사합니다.
2) 나와 함께 기뻐하라(18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본절은 바울 자신의 고난과 순교가 빌립보 교인에게 슬픔과 좌절보다는 기쁨과 소망이 되도록 하라는 권면입니다.
앞절과 본절에 '함께 기뻐하라'가 계속 나오므로 혹자는 17절의 '함께 기뻐하니'를 '축하하다'로 해석합니다.
이미 빌립보 교인들이 기뻐할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본절에서 두 번씩이나 기뻐하라고 권면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문맥상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관제로 순교를 당할 바울에게 '축하를 보낸다'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함께 구원을 이루는 한마음 공동체가 됩니다.
하나 되는 일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 개인의 비전으로 하나가 된다고 해도 저절로 그것이 주님의 몸인 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성도 각자가 죽기까지 복종하신 겸손한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그것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길입니다.
묵상 Point
1) 낮춤과 비움
하나님과 같아지려 했던 교만한 아담(창3:6)과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당연한 지위와 권리마저 다 버리고 종의 형체를 입고 사람이 되셨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까지 자기를 낮추셨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아를 숭배하는 시대에, 앞서 가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을 긍정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겸손과 순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자.
2) 높임과 영광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예수님에게 가장 높고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그 앞에 모든 피조물들이 복종하게 하셨고,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그 주권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신앙은 자라고 공동체는 하나가 되며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3) 두려움과 떨림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예수님의 본을 따라, 이미 다 이룬 것처럼 자만하거나 방종하지 말고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 중에 있으니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한다.
지도자가 있을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은 자세를 견지하라고 말한다.
이제 시작한 경주를 다 마치기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에 비추어 늘 자신을 살피며 한눈팔지 말고 푯대를 향해(3:14)달려가자.
4) 붙듦과 밝힘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공동체 안에 원망과 시비는 사라질 것이다.
또 생명의 말씀을 붙들 때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존재로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빛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이런 성도들이 마지막 때에 주 앞에서 지도자의 자랑과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1:11)이 된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6-8절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가지셨지만, 스스로 자기를 낮추고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왕이 종이 되셨고,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 십자가에 죽으시려고 자기를 내어주셨습니다.
사랑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희생입니다.
9-11절 땅 아래 음부까지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 위까지 높이셨습니다. 십자가의 순종으로 만물의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만민의 주(왕)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절대 군주의 힘과 권력이 아닌, 겸손하신 사랑의 능력으로 만국을 정복하시고,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인정받으셨습니다.
겸손하신 왕을 섬기는 교회도 힘으로 세상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해가야 합니다.
13절 우리 마음에 선을 행하려는 마음과 능력을 주십니다.
구원을 이루는 복종은 사람의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음 하나 제대로 다스릴 수 없고, 마음먹은 대로 행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외에는 순종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5,12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순종을 배워 구원을 이루는 이들입니다.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종은 힘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 선을 기뻐하는 마음을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순종도 알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 얼마나 있는지 헤아려봅시다.
14-18절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불평하며 다투지 않고(14절), 흠이 없고 순전한 사람이 되면(15절), 어두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 일은 자기 의지로 되지 않고 생명의 말씀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도들이 말씀을 순종하여 살도록 지금까지 수고하며 섬겨 왔고, 이제는 자기 생명이라도 드리겠다고 고백합니다.
생명의 말씀이 내 말과 행동을 통해 얼마나 밝게 드러나고 있습니까?
[기도]
공동체-주님의 마음을 닮고 순종을 배워 세상을 겸손히 섬기게 하소서.
열방-미국 젊은이들 가운데 교회에 다니는 이들이 감소하고 무교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미국 청년들 가운데 영적 각성이 일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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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