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이드라인 유명무실
서울 마포구의 한 고층빌딩의 2층 화장실은 마치 고시원 자취방 같았다.
화장실에 들어서자 마자 탕비실 앞에는 막 벗어놓고 간 장화가 놓여 있었다.
작은 문틈 사이에 판자로 약 1.5m 침대, 소형냉장고,거울,달력,옥걸이 등이 보였다.
청소원 김영애(60) 씨의 휴게실이었다.
김 씨는 빌딩 안에 별도의 휴게공간이 없어 이곳에서 쉬는 시간을 보낸다.
너무 비좁아 문이 완전히 열리지도 않는 이 곳은 선풍기나 소형 열풍기 하나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올해 여름 기록적인 폭염에도 손바닥만한 미니선풍기 하나로 버텼고,
겨울에는 매트 위에 깔아놓은 전기방석에 의지한다.
오전 5시에 출근해 한층 청소를 모두 마치면 김 씨는 아픈 허리를 제대로 펼 수도 없지만
1평(3.3m2)도 안되는 이곳에서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1m 남짓한 판자 위에 고양이처럼 웅크려야 누울 수 있다.
새벽 5시에 출근해 4시까지 일하는 그는 이곳에서 잠깐 눈도 붙이고 간식도 먹고 옷도 갈아입는다.
김 씨는 '좁아서 불편하지만 이런 곳마저 없는 곳도 있다'며 씁쓸해했다.
청소원들의 쉬는 시간은 여전히 그림의 떡이었다.
별도의 휴게공간이 없는 이들은 영하의 날씨에도 텅비실, 건물 계단, 복도 모퉁이 등에서 고단한 몸을 달래고 있다.
5년째 건물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조모(61.여) 씨는 쉬는 시간 남자화장실 바로 옆에 마련된 탕비실로 향한다.
전등도 없는 곳이라 그는 반쯤 열어놓은 문 사이로 들어오는 불빛에 의지해 커피를 타고 가끔은 신문을 본다.
남자화장실 옆에 붙어있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조 씨는 '괜히 휴게실 얘기하다가 잘릴 수도 있다.
그런 말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청소원들의 휴게공간 문제는 그동안 꾸준히 지적돼 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휴게 시설 위치와 규모, 시설 등 설치기준. 운영 가이드'를 마련해 현장에 배포하고
실태점검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업장 내 휴게시설은 1인당 1m2, 6m의 면적을 확보해야 하고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냉난방.환기시설 등을 설치해야 한다.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적절한 조명과 소음을 차단하는 장비도 갖춰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를 아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서울 시내 청소원들의 공통적인 희망은 '화장실 탕비실이라도 좋으니 쉴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사업장 109곳의 휴게시설 현황을 조사한 연구용역 걀과를 보면
응답한 노동자들의 64.6%가 '휴게 시설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정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