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에 살다
김 상 립
지난 날, 남녀 사이에는 결코 순수한 친구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실제로 그렇겠지 하며 적당히 수긍하고 지내왔다. 그러나 이젠 사뭇 다르다. 만일 서로 취미가 같거나 얘기가 잘 통한다면 어떤 여성이라도 남성 못지 않는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평소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굳이 남성과 여성이란 성적(性的) 특징을 구분하여 대하지 않게 되었다. 또 사람을 두고 괜한 욕심을 부리거나 질투하는 마음을 낼 이유도 없어졌고, 복선을 깐 계산을 하지 않으니 상대방을 보는 시각도 보다 단순, 명료하다. 사람이 어느 나이에 들면 상대방을 통상적인 사회적 기준 따라 구분하는 경계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라고 있다.
내가 80줄에 들어서니 여태 상상도 못했고 실제 믿지도 않았던 일들이 하나 둘씩 일어난다. 정신 적으로 내게 무슨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런 입장에서 지내는 시간이 차츰 길어지다 보니, 그게 단순하게 성징(性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고 일상의 여러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즈음은 내가 지인들을 만나거나 모임에 가도 그들 앞에 나서서 내 존재를 확인 시키려 애쓰지 않는다. 남성성이 많이 퇴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나를 튀게 만들어야 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 더불어 남들의 행동에 대해 지나친 관심이나 간섭도, 누구의 실수를 앞장서서 공격하는 행위도 삼가 한다. 여하튼 남자든, 여자든, 부자나, 가난한자나, 잘나가든, 못나가든 그냥 같은 사람으로 대하자는 생각이 점차 굳어져간다.
내가 제3지대라고 이해하고 있는 이 영역은 옛사람들이 즐겨 쓰던 중용의 개념과는 또 다른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낀다. 나는 이를 계기로 다가 올 초 고령 사회에서 예견되는 노인들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실마리가 보이는 듯하여 나름 세심하게 관찰 하고 있다. 요즈음 같은 장수시대에는 사람의 생애를 제1 인생과 퇴직 후에 오는 제2인생으로만 구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고령에 들면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제3의 기회가 꼭 찾아 올 것이라 믿는 까닭이다. 물론 그때 닥치는 상황은 사람 마다 차이가 있어서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관련학계에서는 깊이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너무 빠른 속도로 장수시대를 맞으니, 노령에 남들보다 유별나게 잘나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하다못해 80이넘은 나이에 댄스선수도 있고, 보디빌더도 있다. 드럼을 치며 공연하는 사람도, 철봉 대에 매달려 묘기를 부리는 사람까지 있다. 이들 모두는 특출한 그들의 인생일 뿐이다. 생각해보라! 어느 대단한 명사가 100세가 넘어 꼿꼿이 서서 강연을 한다 하여 과연 너도나도 따라 할 수 있겠는가? 최고령의 러너가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나도 한다고 같이 나서는 게 가능할까? 사람이 어느 선의 나이에 들면 남보다 뛰어나려 애써서는 안 된다. 재산이고 명예고 간에 남과 차별화하려 죽을 노력을 쏟으면 안 된다. 제 환경에 맞추어, 제 능력에 맞추어, 제 장끼에 맞추어 제 삶을 살아가면 그뿐이다. 삶이 자기가 되고, 자기가 제 삶이 되어야 한다. 진짜배기 자기로 살아가야 한다.
지금 나는 남들이 알아주든 몰라 주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오직 내 스스로가 무엇인가 말없이 해나가고 있을 때 더 큰 기쁨을 맛보고 산다. 설령 그 일이 글을 쓰는 일이든, 걷거나 수련하는 일이든, 또 집 앞길에서 몰래 휴지를 줍는 일이든 상관없다고 여긴다. 여태 나름으로 열심히 살았으면 이제는 생긴 그대로 조용히 사는 게 상수(上手)다. 하지만 내 경우 마음은 이처럼 훤한데 현실적으로는 실수도 저지르고 어려움도 만난다. 예하면 생각지도 못한 일에서 갑자기 내가 코너에 몰리면 불쑥 성을 내기도 하고, 자존심을 건드리면 괜한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또 눈 앞에 이익을 두면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는 은근히 목에 힘을 주기도 한다. 특히 늙으면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순간을 참지 못하고 사이에 끼어들어 떠들고 나면, 나는 집에 돌아와 언제나 심한 후회에 빠진다. 말을 아껴야 하는 과제가 아직도 내게 남았다는 증거니 말이다. 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기대는 건 제3지대를 소중하게 여기고 잘 살아내야 한다는 염원을 계속 지키고 있으면 분명 모든 면에서 많이 좋아질 것이라는 바람이다.
현재의 내 삶은 복잡한 사회적 흐름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편협 되지 않은 사고로 자신을 잘 지켜내어, 순간 순간 행복하게 살라고 대자연이 준 고마운 기회라고 받아 들이고 있다. 이런 때는 다른 사람을 앞서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평범하게 내 길을 가는 게 옳다고 본다. 내가 쓰고 있는 수필도 작품을 통해 남에게 인정 받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내 영혼이 원하는 글을 써야 할 시기일 터이다. 이처럼 내가 이름 지은 제3지대는 육신을 위해 사는 때가 아니라 정신을 위주로 살아야 하는 시간대이다. 그러자면 육신이 정신을 지배하는 빈도수를 최대한 줄여가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현실적으로 병들어 몸이 아프니 수시로 고통이 나를 지배한다. 이제 어떻게 하면 육신을 잊고 보다 태연하게 행동할 수 있느냐를 고심하고, 그 방법을 찾아 일상에 적용하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 정말 사람 같이 살아 볼 날이, 얼마나 주어질지 알 수는 없어도 하루 하루가 나의 마지막 날일 것이라 여기며 산다.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신성함을 출발점으로 그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첫댓글 노경에 이른 작가가 많은 것을 내려놓은 채 바라보고 대하는 생의 자세를 사유 깊게 풀어낸 수필로 읽힙니다.
육신의 고통이 정신을 지배하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도 정신의 황폐화에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고뇌가 알알이 묻어나 있어 새삼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가시는 김 선생님의 삶의 자세에 존경의 염을 갖습니다.
제3지대... 많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하루하루를 깨달음 속에 사시는 선생님이 참 부럽습니다...
비우고 놓는다는 뜻을 선생님의 글 속에서 배웁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