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 중 짐정리는 내몫이 되었다.
남편은 그냥 벗어놓으면 그만이다. 그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지니 한마디 한다.
“좀 개켜놓으면 안될까?” 남편은 아무말 없이 개켜 놓는다.
나는 거기에 또 생색을 내고 만다.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할거야?”
“자기처럼 못해서 그러지, 나도 혼자 여행 잘 다녀왔잖아?” 한다,
그렇지. 남편이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것이지.
그 안함은 바로 나로 인함이고.
스스로 자초한 일을 상대에게로 그 탓을 돌리고 있는 나다.
맘에 안들어도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면 되는 것을.
내 맘에 들게 하라고 간섭한 결과이다.
그런 나를 보게 되니 남편을 탓할 수 없네.
남편 또는 다른이에게도 나의 불편한 부분, 못마땅한 부분이 분명 있을테니까.
2.
교도훈련 가는 길, 통도사에서 비빔밥 점심공양을 받게 되었다.
사전에 교무님으로부터 기대에 못미칠수 있음을 고지받았지만 부처님 오신날 무료로 제공하는 맛있는 절밥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기에 그래도 맛있게 먹을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비빔밥재료가 너무 부실하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인원을 상대하는 공양간이라지만 너무 푸대접이다. 무료급식 배급받는 기분이랄까?
함께 자리한 도반들과 이렇게 큰 절에서 너무 물질적인 이익에만 급급한 것은 아닌가? 부처님의 자비심과 같이 좀 넉넉한 인심을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불평을 반찬삼아 밥을 먹었다. 부처님 도량에서 주는 귀한 밥을 먹으면서 원망의 소리를 내고 있는 나를 보면서 교무님의 사전 고지 말씀이 걸렸지만 멈추지는 못했다.
한편 식사 중 내 눈에 들어온 벽에 걸린 문구가 있다.
부처님께 올린 공양물로 만든 음식이니 남기지 말라는 것과 음식을 남긴 그릇은 설거지를 받아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많은 대중공양을 하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당연한 글귀이고 안내문이었지만 왠지 나는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져 이 또한 마음이 상당히 불편하였다.
식당을 나오면서 돌아본다.
식사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그로부터 확장되어 느껴진 글귀에 대한 불편한 마음.
도대체 이런 마음들은 왜 일어난걸까?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나의 생각, 나의 기준을 들이대어 분별하고 판단함에서 일어났음이 알아진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니 지역적인 문화차이가 있으니 우리의 기준과 그들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겠고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하다보면 그럴수도 있겠지 해진다.
그리고 글귀는 부처님께 올린 공양물로 만든 음식이니 더 소중히 여겨달라는 안내 글귀일 뿐인데 내가 거기에 나의 요란한 감정을 넣어버렸네...
똑같은 글귀가 경계 이전과 이후가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이게 바로 진공묘유의 조화인가?
식사를 하며 내 마음에 들어진 여러 생각들을 보면서 원래 없던 요란함이 기대에 못미친 식사라는 경계를 따라 내 마음에 요란함이 있어지고 그 요란함을 늦게나마 이렇게 나를 통해 원인을 찾아 연마하니 ‘그렇구나~ 그럴수도 있겠다’ 해지며 상대와 내가 하나가 됨을 느낀다.
첫댓글 1. 내가 불편하니 한마디 하지만 그럼을 알고 나면 나 짐정리 하려니 힘든데 도와주는 샘치고 스스로 정리하면 좋겠다는 정달이 되지요.
2. 네~ 경계임을 알아차리고 대조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크지요.. 잘 대조가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