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딧물의 맛
나희덕 잎꾼개미나 고동털개미는 농사를 지어요 일개미가 가져온 나뭇잎을 씹어 죽처럼 만들고 거기에 균류를 심지요 여왕개미가 입속에 보관한 종균을 퇴비 위에 뱉어 버섯 농사를 짓는 거예요 개미는 전쟁도 처절하게 하지요 어느 한쪽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싸워요 꿀단지개미는 적을 생포해 노예로 부리거나 애벌레들에게 먹인다고 해요 개미는 다른 곤충을 기르기도 하지요 개미가 목이 마를 때마다 마시는 진딧물의 즙 개미가 더듬이로 진딧물을 자극하면 진딧물은 달콤한 즙을 내놓지요 개미는 무당벌레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해 주고요 공생은 서로 돕는 게 아니라 이용하고 착취하는 거라고 진화생물학자들은 말하지요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 이득을 보도록 모든 생물종은 설계되었다고, 그들에게서 이타성을 읽어내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이나 바람일 뿐이라고 말이지요 요즘 내가 궁금한 것은 진딧물의 맛 개미의 더듬이가 진딧물을 스칠 때 진딧물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즙을 내뿜는지 과연 개미는 개미 자신을 위해서만 진딧물은 진딧물 자신을 위해서만 물기 어린 손을 잡는 것인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인지 —월간 《문장 웹진》 2024년 9월호 ---------------------- 나희덕 /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파일명 서정시』 『가능주의자』, 시선집 『그녀에게』 『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