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2. 22. 목요일.
오늘 점심 무렵에 대전 누나한테서 전화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가 내게 말했다.
'시누이가 어머니 제사 지내라고 당신 통장에 입금했대요'
점심 뒤에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서호쉼터로 걷기운동하러 나갈 때 길 건너편에 있는 농협에 들러서 누나가 보냈다는 돈을 찿았다.
간밤에 눈이 제법 많이 내려서 석촌호수 주위의 나무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고, 이따금씩 바람에 흔들려서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덩어리가 무너져서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
석촌호수 서호, 동호 한 바퀴를 돈 뒤에 집으로 되돌아왔다.
방금 전 농협에서 찾은 돈을 아내한테 건네주었다.
아내는 사흘 뒤에 오는 시어머니 제사 음식물 구입에 보탤 게다.
지금은 내가 6개월째 활동하지 않는 < ....5060카페> '삶의 이야기방'에서 아래 글을 발견했다.
지난해 2023년 8월 23일부터 나는 그 카페에서는 글자 하나 올리지 못한다.
이유는 있었다.
어떤 신규 회원(차x두)이 만화와 글을 함께 올려서 무척이나 인기 많았고, 잘난 체를 했으나 그의 글에서는 오탈자가 많았고, 한국어맞춤법에 어긋나는 낱말들이 너무나 흔했다.
내가 글다듬기를 더 해야 한다는 뜻으로 댓글을 연거푸 달았더니만 이게 미운 털이 되었는지 나는 2023. 8. 23. 부터 준회원으로 강등조치되었고, 지금껏 글자 하나조차도 쓰지 못한다.
남의 글에서, 틀리고, 잘못된 문구에 대해서 지적하는 댓글을 다는 습성을 지닌 나는 반성한다는 차원에서 그 카페에서는 활동을 접었다.
6개월이 된 이후에나 '준회원' 신분을 '정회원'으로 상승 요청하겠고 마음먹었다.
내일이면 만6개월이 되기에 오늘은 그 카페에 들렀더니만 내 글 445개가 아직껏 남아 있었다. 다행이다.
몇 개를 뒤적거리다가 아래 글을 발견했기에 복사를 해서 <한국국보문학카페> '세상사는 이야기방'에 올린다.
오래 전에 쓴 내 글(일기) 즉 제사에 관한 내용이다.
이제 사흘 뒤인 2월 25일에는 내 어머니의 제삿날이 돌아온다.
새로운 제사문화
곰 내
1.
어머니는 2015년 2월 25일 23 : 45. 자정이 거의 가까울 무렵에 먼 여행길을 떠났다. 아흔여섯 살이 된 지 며칠 뒤이었다.
어제는 2017년 2월 25일. 두 돌째 제삿날.
내 큰딸과 인도 사위, 인도 총각인 아프로바, 작은딸과 사위, 큰아들 내외, 손녀와 손자, 막내아들, 나와 아내 모두 함께 제사를 올렸다.
어머니한테는 태어난 지 30개월 째인 증손녀, 15개월 째로 접어든 증손자이다. 어린애의 말소리로가 제사상을 차린 거실에 가득 찼다. 기고 분위기가 침울할까 싶어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전, 제삿날은 슬퍼서 우는 날이다. 이제는, 나는 다르게 해석한다.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제삿날에 내려와서는 자손들을 만나는 일이기에 즐거운 날이다'라고 말했다.
제주(祭主)인 내가 이렇게 말했으니 자식들은 아뭇소리도 하지 않았다.
내가 제사의 뜻을 새롭게 해석하는 이유이다. 돌아가신 분은 그날부터 우주 저너머로 여행 떠났다. 죽음은 한번뿐이다. 해마다 제삿날이 온다고 해서 돌아가신 분이 되돌아오지 않는다. 영혼이 있다면 지구로 뒤돌아와서는 자손을 잠깐동안만 만나는 날이다. 슬픈 날보다는 오히려 기뿐 날로 해석했다.
둘째사위가 양력 제삿날에 대해서 물었다.
나는 '예전 어른들은 음력일에 지냈지만, 나는 양력을 쓰는 세상에서 산다. 음력은 모르기에 양력으로 지낸다. 내 어머니 제삿날은 모두가 기억하기 쉬운 양력이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수십 년 전인 1982년 6월(윤4월)에 돌아가셨기에 지금껏 음력 4월 날짜로 제사 지냈다. 앞으로는 양력 6월 날짜로 지낼 예정이다.
올해 내 나이는 일흔 살이다. 기력도 줄어들고, 아픈 곳이 자꾸만 늘어간다. 일은 커녕 가만히 앉아있는 것조차도 힘이 든다. 이런 이유로도 제례문화는 제주(祭主)인 내가 먼저 고쳐 나아가야겠다. 간단하게 축소하거나 없애고, 현실과 상황에 맞게끔 변화 변형해야겠다.
먼저,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야겠다.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조상을 떠올리고, 생각하는 문화로 정착하고 싶다. 이렇게 하려면 제수물도 축소하고, 제례절차도 줄여야 한다.
늙은 아내는 제수물을 적게 장만한다면서도 며칠 간이나 재래시장 다니며, 주방에서 고생했다.
제사 지내면서 사진 속의 얼굴을 보았다. 더 이상 늙지도 않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합죽이 할머니가 늙어가는 나를 말없이 쳐다보았고, 나 역시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2008년 하반기에 퇴직한 뒤 시골로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했던 마지막 때를 잠깐이나마 떠올렸다. 흘러간 시간들이 꿈만 같다. 그런 때가 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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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는 글이 너무나도 안 써졌다.
억지로 썼더니만 글맛이 하나도 없다. 뻔한 내용이기에 더욱 그랬다.
2.
어제 제사 지냈으니 오늘부터는 마음이 느긋해진다.
창밖을 보니 햇볕이 서울 송파구 잠실지역 아파트 단지에도 기어들었다. 서남향 아파트라서 아직까지도 햇살은 베란다 유리창으로 비치지는 않았다. 베란다 쪽에 올려놓은 화분들. 몇 종류의 외국식물들이 싱싱하다.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서울에서 어머니의 기일도 치루었고, 날씨도 많이 풀렸으니 이제부터는 서울에 머물 구실거리가 없어졌다.
일전 서해안 고향에 있는 사촌동생은 대전 회덕에 있는 계족산에서 할아버지 무덤 앞에 세웠던 빗돌 모두를 거둬서 서해안으로 가져 왔다. 석물공장에서는 3월 중순 넘어서야 시간이 난다고 하니 3월 중순 쯤에는 고향에 내려가야겠다.
지난해에는 11대조 이하 모든 석물을 해체해서 내다버렸다. 올 봄에는 아주 간소하게, 무덤 앞에 누구의 무덤인지를 알 수 있도록, 작은 빗돌을 세울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초에 다 만들어 놓고도 날씨가 추워서 옮기지 못했다.
그저께던가, 고향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언제 내려오실 거냐고.
시골은 벌써부터 나무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단다. 나무뿌리가 물기를 빨아 올려서 싹이 움튼다는 뜻이다. 1,600여 평 밭 세 자리에 심은 과일나무, 꽃나무, 키 작은 야생화들이 많이도 새싹을 올리겠다. 또한 추운 겨울을 이기는 잡초들은 더욱 무성하겠고.
아쉽다.
서울생활도 조금씩 접어야겠다.
춥다는 구실로 방안에만 쳐박혀서 카페에서 회원들의 글을 읽었고, 나도 이따금 잡글을 올렸다.
2017. 2. 26. 일요일. 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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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 위 글에서 나오는 산소 건이다.
대전 대덕구 읍내동(계족산 아래)에 있는 할아버지 묘소를 팠고, 유골을 수습해서 고향 선산으로 운반해서, 모셨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 죽청리 선산에 있는 할머니 묘소도 파묘하여서, 이번에 이장하는 할아버지 묘소에 함께 합장했다.
곳곳에 흩어진 묘소를 이장해서 한 군데로 합장하는 방법도 하나의 절약이다. 묘역이 크게 줄어들고, 또한 시간, 비용 등도 줄어든다.
위 글을 쓴 지도 곧 만7년이 다가온다.
많은 시간이 흘러가도 글과 사진 등은 오래토록 남아서 옛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2024. 2. 22. 목요일. 최윤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