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興宣大院君(흥선대:원군)은 安東(안동) 金氏(김씨)가 勢道政治(세:도:정치)를 할 때, 남의 잔치에 가서 술밥이나 얻어먹으며 미친 놈 행세를 하고 돌아다녔지요. 그래서 ‘상가집 개’라는 비아냥도 받았지만 그분은 나름대로 다 생각이 있었지요. 왕실 사람으로서 똑똑한 체하면 安東(안동) 金氏(김씨)가 가만히 놔두지 않고 제거해 버림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죠. 곧 興宣大院君(흥선대:원군)은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 곧 “삼감은 몸을 지키는 부적이다”는 생각을 품고 隱忍自重(은인자중:)한 거지요.
그리고 哲宗(철종)이 後嗣(후:사)가 없이 昇遐(승하)하였을 때 기민하게 趙大妃(조:대:비)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둘째 아들을 高宗(고종)으로 올리는 데 성공했지요. 사람 일은 다 때가 있지요.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때가 안 맞으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가 무르익을 때가지는 실력을 갈고 닦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섣불리 나섰다가 죽거나 망하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선비들은 늘 進退(진:퇴:)할 시기를 놓고 저울질하며 고민했습니다. 이번에 吳世勳(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일도 그런 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5-7) 太公이 曰 勤爲無價之寶요 愼是護身之符니라.
태공 왈 근:위무가지보: 신:시:호:신지부:
‘勤(부지런할 근:)’은 勤務(근:무:), 勤勉(근:면:), 勤勞(근:로), 出勤(출근:) 등으로 쓰이지요. ‘槿(무궁화 근:)’과는 부수가 다르니 주의하세요. ‘勤(부지런할 근:)’은 힘을 쓰므로 부수가 ‘力(힘 력)’이고, ‘槿(무궁화 근:)’은 나무이므로 부수가 木(나무 목)이지요. 그러니까 ‘菫(제비꽃 근)’이 소리[音]를 나타내고 부수들은 뜻[義]을 나타내지요. 이렇게 한 漢字는 대개 뜻을 나타내는 部首(부수)와 소리를 나타내는 音部(음부)가 결합되어 만들어집니다. 이것을 ‘形聲(형성)’이라 하는데, 전체 漢字의 90% 정도가 이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爲(될 위)’는 여기서는 ‘~이 되다’로 풀이하는 게 좋습니다.
‘價(값 가)’는 약자로는 ‘価(값 가)’로 쓰지요.
‘寶(보배 보:)’는 약자로는 ‘宝(보배 보:)’로 쓰지요.
‘愼(삼갈 신:)‘은 愼重(신:중:), 愼獨(신:독), 謹愼(근:신:), 敬愼(경:신:) 등으로 쓰이지요.
‘是(바를 시:)’는 “~은 ~이다”로 풀이합니다. 현대 중국어에서 아주 많이 쓰이는데 ‘스'라고 발음하지요.
‘護(보호할 호:)’는 護身(호:신), 護身術(호:신술), 警護(경:호:), 辯護士(변:호:사:), 庇護(비호:) 등으로 쓰이지요.
‘符(부신 부:)’는 符籍(부:적), 符信(부:신:), 符號(부:호), 長音符(장음부:) 등으로 쓰이지요.
無價之寶(무가지보:)에서 無價(무가)는 “돈이 없다”"값어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돈으로 셀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無價之寶(무가지보:)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보배”라는 뜻입니다.
위 글 전체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太公(태공)께서 말씀하셨다.
“부지런함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요. 삼감은 몸을 지키는 符籍(부:적)이니라”.
이 글귀는 『明心寶鑑(명심보:감)』 중에서도 제가 특히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勤爲無價之寶(근:위무가지보:)’ 곧 “부지런함은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배”라는 말은 萬古(만:고:)의 진리지요. 왜냐면 부지런해야 무슨 일이든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과거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의 시대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지요. 농사란 제때를 놓치면 곧바로 실패지요. 늦게 일어나면 남보다 뒤떨어졌지요. 모내기를 한 주만 늦춰도 농사에 차질이 빚어지고, 秋收(추수)도 하루 늦추다가 비바람이라도 불어버리면 망쳐버립니다. 그래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이 나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산업시대에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일용노동을 하려 해도 새벽에 일찍 나가서 대기해서 일감을 따야 하지 않습니까? 게으른 사람은 기회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와 극을 이루는 재벌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大宇神話(대:우신화)를 이룬 金宇中(김우:중) 회장이 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읽어보았습니다. 김 회장은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앉아서 신문도 보면서 하루 할 일을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메모하더군요. 그리고 하루 종일 그 계획대로 정신없이 바쁘게 뛰는 거죠. 그러니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 같은 대학교수는 놀고먹는 줄 아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몰라도 요즘에는 워낙 교수에게 요구하는 게 많아서 게으르면 승진은커녕 재임용도 탈락하기 쉽습니다. 저도 근래 매년 책 한 권, 논문 한 편씩은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물론 수업은 기본이고 다른 업무까지 하면서요. 게다가 매주 『明心寶鑑』 글 한 편씩도 쓰고 있고요.
요즘 경제도 어려운데 게으르면 월급쟁이든 자영업자든 밥 먹고살기 힘들지요. 그래서 가장 편해 보이는 공무원이나 교사 등을 선호하는데, 그것도 그리 만만한 직업이 아닙니다. 過勞死(과:로사:)하는 공무원이 가끔 나오는 걸 보면 공무원도 편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교사들도 나름대로 바쁩니다. 중고교 교사들, 요즘은 방학도 거의 없습니다. 평소에도 야간자율학습(야:자) 감독하느라고 밤 10시 넘어야 퇴근하는 교사들 많습니다.
여기 『明心寶鑑』에도 나오지만 “大富由天(대:부:유천), 小富由勤(소:부:유근:)”입니다. 곧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부지런함이 냅니다. 큰 부자는 자본도 있어야 하고 또 단순히 부지런해서는 안 되고 머리도 잘 써야 합니다. 그래서 큰 부자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財閥(재벌)이 아무나 됩니까? 하지만 작은 부자는 웬만하면 될 수 있습니다. 겨우 전세금 마련해 가지고 시작한 월급쟁이들도 맞벌이로 착실히 돈 모아서 작은 집 산 다음에 은행융자 받아서 차차 집 늘려 가면 자식들 가르치고도 노후에는 집 한 채는 남지 않습니까? 게다가 재테크 잘한 사람들은 더 많이 재산을 모을 수도 있고요. 그러니 착실히 월급 타서 저축 잘 하고 節約(절약)하여 열심히 살다보면 작은 부자는 될 수 있지요. 물론 점점 그런 일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증권 같은 데 투자하면 큰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망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근래 美國 경제의 영향으로 韓國 증시도 대폭락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식투자자들이 자살하는 일까지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一攫千金(일확천금)을 노리면 一朝(일조)에 敗家亡身(패:가망신)할 수 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소액투자자를 ‘개미’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잘못된 이름이죠. ‘개미’는 땀 흘려 부지런히 일하는 자의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주식투자하는 사람이 어떻게 ‘개미’입니까? 최소한 은행 금리보다는 몇 배 높은 차익을 얻으려고 달려들고 있는 사람들은 ‘배짱이’지 ‘개미’가 아닙니다.
아무튼 부지런히 땀 흘려 일해서 돈을 벌어야지 투기성으로 돈을 벌려 해서는 위험합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일은 현대 지식사회는 과거 농업시대와는 다른 점이 있다는 점입니다. 똑같이 부지런하더라도 현대 지식사회는 좀더 머리를 쓰기를 요구합니다.
과거 農耕時代(농경시대:)에서는 단순히 근면하면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하늘에 맡겼습니다. 雨順風調(우:순:풍조) 곧 비가 잘 오고 바람이 조화로우면 농사는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더 부지런하냐가 잘 살고 못 사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옛날이야기에는 ‘게으른 사람’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게 그 시대에서는 큰 문제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시절에는 남보다 덜 자고 부지런히 일하면 ‘농사는 정직하니까’ 잘 살 수 있었습니다. 풍년 들면 재산을 불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기 땅이 있어야 했습니다만.
하지만 근대 들어 産業革命(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을 위한 장치산업이 발달하였습니다. 이 때부터는 기계의 效率性(효:율성:)이 중시되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는 기계의 부품처럼 취급되었습니다.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라는 영화에서 그걸 풍자하지요. 노동자의 부지런함은 기계처럼 勞動(노동:)의 效率性(효:율성:), 곧 勞動生産性(노동: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지런하다고 하더라도 기계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들어와서는 사람의 단순한 부지런함은 評價切下(평:가절하:)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대 지식사회에 들어와서는 무엇보다 創意性(창:의:성:)을 요구합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머리를 써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애플의 스티븐 잡스가 개인용 컴퓨터 곧 PC를 만들어 내자 세계의 패러다임이 정보화시대로 바뀌었습니다. 빌 게이츠가 윈도우를 개발해 내자 세계가 인터넷시대로 바뀌었습니다. 다시 애플의 스티븐 잡스가 스마트폰을 개발해 내자 시대가 다시 스마트폰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 여파로 최근 세계적 하드웨어 업체들이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거대 기업들이 인수 합병의 대상으로 전락할 지경입니다.
農耕時代(농경시대:)에는 부지런함이 최고 가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創意性(창:의:성:)이 최고 가치인 시대입니다. 머리를 써서 획기적인 그 무엇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대입니다. 현대 노동자는 모두 피터 드러커가 말한 ‘知識勞動者’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부지런하다’는 개념을 ‘몸’의 개념이 아니라 ‘머리’의 개념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知識情報化社會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 하나를 하더라도 머리를 써서 남과 다른 메뉴와 서비스를 개발해야 합니다. 쏘스 하나라도 남과 다른 걸 개발하면 새로운 치킨업체를 차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부지런히 머리를 굴립시다. 그렇게 해서 자기 몸값을 높입시다.
이번에는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앞서 선비는 태평 시에는 벼슬에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돌아와 숨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유교와 도교 두 가지가 발달했습니다. 벼슬자리에 나가면 儒敎的(유교:적) 생활자세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벼슬에 나가지 못하거나 또는 하다가 돌아왔으면 그때부터는 道敎的(도:교:적) 생활자세로 살았습니다. 暴君(폭군)이 들어서면 생각 깊은 선비는 미련 없이 벼슬자리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언제 禍(화:)를 당할지 모르니까요. 그러니 그런 시대에는 저절로 늘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라는 말을 마음속에 담고 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朝鮮時代 成宗(성종)이 燕山君(연산군) 어머니를 조정에서 왕비에서 폐위시킬 논의를 할 때, 한 관리는 어찌해야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현재의 조정 분위기를 따르자니 폐위에 찬성해야 할 것 같고 세자가 나중에 왕이 될 훗날을 생각하니 반대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현재를 따르자니 미래가 위험하고 미래를 따르자니 현재가 위험합니다. 그래서 그 관리는 자기 그 고민을 자기 누나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누나가 한 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튿날 그 관리는 登廳(등청) 길에 일부러 말에 떨어져 落傷(낙상)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등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 논의에서 빠졌습니다.
나중에 燕山君이 왕위에 올랐을 때 任士洪(임:사:홍)의 밀고로 자기 어머니 廢妃(폐:비) 尹氏(윤씨)가 억울하게 죽게 된 사정을 알게 된 燕山君은 격노하여 甲子士禍(갑자사: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당시 논의에 참여한 관리들은 모두 滅門之禍(멸문지화:)를 면치 못했습니다. 20여 명은 死刑(사형), 10여 명은 剖棺斬屍(부:관참시:), 그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1504년 3월부터 10월까지 7개월에 걸쳐 燕山君에게 보복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登廳(등청)하지 않았던 그 벼슬아치만은 죽음을 면했습니다. 이런 게 바로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를 잘 실천한 보기입니다. 甲子士禍(갑자사:화:)는 月灘(월탄:) 朴鍾和(박종화) 선생의 『錦衫(금:삼)의 피』라는 소설로 씌어진 바 있고, 근래에는 드라마 『王과 나』로도 작품화된 일이 있습니다.
『三國志(삼국지)』에서 劉備(유비:)가 曹操(조조)에게 의탁하고 있을 때 일입니다. 둘이 함께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마침 천둥이 치자 劉備는 거짓으로 천둥을 두려워 떠는 척합니다. 그걸 보고 曹操는 劉備가 자기를 위협할 만한 영웅이 아니라고 흐뭇해합니다. 劉備가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를 실천한 쑈에 그 영리한 曹操가 넘어간 것입니다.
과거 선비들은 橫厄(횡액)을 당하지 않기 위해 늘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를 마음에 새기고 행동했습니다. 중국 秦(진)나라 始皇帝(시:황제:)가 될 왕 밑에서 왕전 장군은 60만 대군을 거느리고 楚(초)나라를 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터에서 왕전 장군은 왕에게 자기가 전쟁에서 이기면 땅을 달라고 계속해서 글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해야 자기가 땅밖에 모르는 속물로서 왕에게 반역할 그릇이 못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똑똑한 왕은 최측근이면서 힘을 갖고 있는 신하를 늘 의심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벼슬아치들은 늘 행동을 謹愼(근:신:)했습니다. 왕이 난폭하면 어떤 사람은 몰래 도망쳐 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미친 척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벙어리가 된 흉내를 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隱遁(은둔)해서 ‘杜門不出(두문불출)’하거나 ‘竹林七賢(죽림칠현)’이 되거나 하였습니다.
6.25 때도 그랬습니다. 낮에는 국군, 밤에는 인민군이 민가를 찾았으니 살기 위해서는 민간인은 누구나 거기에 맞춰 變身(변: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제 집안은 그런 변신을 하지 못해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제 맏 큰아버지가 地主(지주)에다가 그 지역의 反共靑年團長(반:공청년단장)이셨으니 인민군이 들어오자 바로 갇히셨습니다. 그러자 4촌 동생이 인민군을 찾아가 따졌다고 합니다. 인민군을 말이 통하는 사람들로 착각한 것입니다. 결국은 두 분 다 인민군에게 희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분들은 올바르기는 했으나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는 모르셨던 것입니다. 그 두 분은 제 집안에서는 가장 똑똑하신 분들이었는데, 그 두 분이 희생당하자 집안이 기울었다고 합니다.
盧武鉉(노무:현) 정부 때 우리나라에도 公職者(공직자) 聽聞會(청문회:)가 도입되었습니다. 요즘 李明博(이:명박) 정부에서 高位(고위) 公職者(공직자) 후보자를 검증하기 위한 聽聞會(청문회:)를 보면 可觀(가:관)입니다. 후보자들 중에 兵役免除(병역면:제), 僞裝轉入(위장전:입). 땅 投機(투기). 논문 剽竊(표절). 脫稅(탈세:), 前官禮遇(전관예:우)로 떼돈 벌기 등등 각종 치사한 범죄들을 적어도 한두 건 안 저지른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大法官(대:법관) 후보자도, 檢察總長(검:찰총:장:) 후보자도 모두 僞裝轉入(위장전:입)을 했습니다. 법으로 국민을 심판하는 책임자가 될 사람들이 모두 범법자인 것입니다. 웃기는 건 그런 사람들이 결국은 다 그 자리에 임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범법자가 대법관도 되고 검찰총장도 될 정도로 大韓民國은 지도층이 썩어버린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 고위공직자 후보들에게 왜 僞裝轉入(위장전:입) 등 범법행위를 했느냐고 몰어보면 그때는 자기가 이렇게 출세할지를 몰랐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뒷날을 예측하지 못하고 당시에는 거리낌 없이 범법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그들은 후회하는 척하면서 말로 때우고 넘어갔습니다. 그런 모습에서 국민은 그들의 추한 뒷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훗날 고위공직자로 출세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를 마음에 새기고 지금부터 범법을 하지 말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이번에 서울시장을 물러난 吳世勳(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일을 생각해 봅시다. 이번 사건이 나자 吳世勳(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金文洙(김문수) 京畿道(경기도:) 지사의 처신이 對比(대:비:)되었습니다.
의회가 지자체장의 생각과 달리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켜버린 점은 서울시나 京畿道나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자체장의 대응은 달랐습니다. 金文洙 지사는 도의회와 타협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무상급식 예산을 받아들이는 대신 도의회가 대폭 삭감했던 자신의 역점사업 예산은 살리는 방법으로 `빅딜'을 추진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김 지사는 무상급식 논란을 잘 풀어나갔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습니다.
반면에 吳世勳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조례가 자신의 판단 재량을 박탈하고 예산편성권을 침해한다며 大法院(대:법원)에 무효 확인소송을 내서 법정싸움으로 비화시켰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이번에는 무상급식 전면 실시 여부를 서울시민에게 묻겠다며 서울市政(시:정) 사상 최초의 ‘住民投票(주: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그 투표를 하기 위한 시민 발의 과장에서도 엉터리 署名(서:명)이 많아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죽은 사람, 이민 간 사람까지 署名(서:명)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런 無理手를 두면서까지 오 시장은 주민투표를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투표율 25.7%로 개표에 필요한 33.3%를 넘지 못해 개표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기가 한 약속대로 시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로 吳世勳(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名分(명분)도 實利(실리:)도 잃었다는 게 衆論입니다. 우선 정책문제인 무상급식을 정치문제로 이슈화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는 책임론이 일고 있습니다. 언론들이 투표율이 높은 강남 3개 구와 투표율이 낮은 다른 구들을 비교함으로써 서울 시민 간의 분열을 표출시켰습니다. 정치인이란 국민을 화합시키는 사람이 되어야지 분열시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오 시장 자신은 守舊層(수구:층)에서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국민 전체의 지도자로서는 자격 미달임을 스스로 입증했습니다.
특히 아이들 밥 먹이는 일을 가지고 혈세 182억을 낭비하면서까지 주민투표를 강행했다는 점에서 지나쳤다는 비판이 높습니다. 무상급식에 드는 돈은 서울시 예산의 0.3%에 불과하다 합니다. ‘디자인서울’이니 ‘漢江르네상스’니 뭐니 하면서 吳世勳(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낭비한 돈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오 시장 임기 동안에 서울시 빚이 수십 조 원이 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 단계적 무상급식과 전면 무상급식 금액 차이는 몇 백 억 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자신이 마음대로 쓰고 낭비한 돈은 아무리 많아도 정당하고 아이들 밥 먹이는 일은 그보다 액수가 훨씬 적어도 부당합니까? 자신이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입니까? 아이들 밥 먹이는 일을 가지고 주민투표에 붙여서 서울시민에게 반드시 투표하라고 압박을 가하기 위해 大選(대:선:) 불출마에다 그것도 모자라서 서울시장직까지 걸어서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서울시민에게 ‘협박정치’를 해야 합니까? 이렇게 정치를 ‘도박판’으로 만들어야 합니까?
결국은 투표함도 개봉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혈세 182억 원에 더하여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르기 위한 300억 원까지 더 낭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吳世勳 전 시장은 사퇴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一言半句(일언반:구)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곧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 그리고 바람직한 복지정책의 방향을 확인할 수단, 한번의 유일한 기회, 그 기회를 놓치게 돼서 안타깝습니다”, “시민의 소중한 뜻이 오롯이 담긴 투표함을 개봉조차 할 수 없게 되서 그 부분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투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여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투표에 당당하게 참여해주신 서울시민 유권자 여러분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한 것은 정말로 건방진 태도인 것입니다. 투표한 시민들에게만 감사를 표시하고 자신이 혈세를 낭비한 일에 대해서는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자신이 잘했다고 하면서 반대한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유감을 표시하기까지 했습니다. 大韓民國에서는 吳世勳 전 시장 혼자 똑똑한 것 같습니다.
이런 동키호테 같은 吳世勳 전 시장을 지지했던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은 모두 함께 위신 추락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 전 시장은 심지어는 한나라당 洪準杓 대표가 다시는 볼 일이 없다고 화를 내게 할 정도로 제멋대로 행동했습니다. 첫째, 주민투표를 제멋대로 강행한 점, 둘째, 서울시장직을 제멋대로 건 점, 셋째, 서울시장 사퇴 시기를 10월 이후로라고 靑瓦臺와 당 지도부와 약속해 놓고도 자기 마음대로 즉각 사퇴한 점 등입니다. 조직원으로서 자기 조직과도 상의 없이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하면 그 사람은 욕을 먹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민투표가 실패로 끝나고 나서 靑瓦臺와 한나라당이 오 전 시장에게 끌려간 게 잘못이었다고 후회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吳世勳 전 시장은 倫理的으로 볼 때, 대외적으로든 대내적으로든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를 알지 못한 철부지로서 輕擧妄動(경거:망:동:)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치적으로 전면 무상급식 반대가 옳은 판단이든 아니든 떠나서 倫理的 관점에서 평가하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金文洙 경기도 지사도 오 전 시장과 같은 소신이었지만 그 뒤의 처신이 슬기로웠다고 평가한 것도 윤리적 평가입니다. 오 전 시장의 정치적 판단이 정치적으로는 옳은지 그른지 저는 모릅니다. 나중에 이 일이 오 전 시장의 정치 인생에서 득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그렇게까지 지나치게 極端的으로 또 제멋대로 행동해야 했느냐에 대해선 저는 의문입니다. 이렇게 否定的으로 평가하는 것은 윤리적 평가입니다. 결코 정치적 평가가 아님을 노파심에서 덧붙입니다.
댓글에 郭魯炫(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글이 씌어 있어서 덧붙입니다. 물론 郭魯炫(곽노현) 교육감도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를 알지 못한 철부지인 것은 吳世勳 전 시장과 똑같습니다. 저는 郭魯炫 교육감이 학생 무상급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정책은 옳다고 보지만 선거에서 상대 후보에게 돈을 준 행위는 명백히 잘못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郭魯炫 서울시 교육감은 그 문제에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郭魯炫 교육감의 그 買收(매:수) 행위가 잘못이라고 해서 그의 무상급식 정책까지 잘못된 건 아닙니다. 그 두개는 별개의 사안입니다. 또한 郭魯炫 서울시 교육감이 그 점에서 잘못했다 하더라도 吳世勳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반대 정책이 옳은 것도 아니고 또 주민투표를 붙인 헹위가 정당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韓國 바둑의 영웅 李昌鎬(이:창:호) 선수는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도 건너지 않는다”는 碁風(기풍)으로 유명했지요. 李昌鎬(이:창:호) 선수야 말로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를 천부적으로 깨닫고 실천한 천재라 하겠습니다.
끝으로 한마디 덧븥입니다. 오늘날 우리 직장인들도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를 마음에 새기고 행동해야 합니다. 상관이 무슨 말을 할 때 아무리 자기 직감으로는 안 될 것 같다 할지라도 “안 됩니다”고 하지 맙시다. 상관의 명령에는 일단은 무조건 肯定的(긍:정:적)으로 답변해야 합니다. 상관의 말에 즉각 “안 됩니다”고 말하는 사람은 직장에서 오래 버티기 힘듭니다. 직장인은 輕擧妄動(경거:망:동:)하지 말고 愼重(신:중:)히 행동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굵고 짧게 사는 것보다 길고 가늘게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깊이 생각하고 삼가 행동해야겠습니다,
--타이젬 에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