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
"성우(聲優) 녹음으로 대사를 삽입할 시절에 대본을 철저히 암기했어요.
대사를 외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연기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 엄상익(변호사)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
서재로 배달이 온 시사잡지를 펼쳤더니 원로배우인 신영균 씨의 인터뷰 기사가 보였다.
나는 어려서 유난히 영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인 육십년대부터 그가 출연하는 영화는 거의 다 보았다.
나이 구십대 중반인 그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또래였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그의 열성 팬이었다.
젊은 시절 스크린에 나오는 그는 믿음을 주는 스타일의 잘생긴 남자였다.
광대 내지 딴따라라고 약간은 낮춰 보던 그 시절 치과의사 출신인 그는 이색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신문사 사진기자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는 얘기를 들었었다.
“영화배우 신영균 씨가 촬영하는 장소에 가 봤어.
잘나가는 배우라고 교만하지 않고 아주 겸손하더라구.
사람들하고 얘기도 털털하게 잘 하고 말이지.
후라이 보이로 알려진 곽규석 씨는 자기 사진을 잘 찍어달라고 따로 와서 부탁을 하더라구.”
인생의 성공기준은 그 사람의 인품인 것 같다.
인터뷰 기사중에 배우 김지미 씨의 평가가 보였다.
김지미 씨는 “그 양반 입에서 남의 험담 들어본 적이 없어요”라고 하고
배우 엄앵란은 “신영균 씨는 다른 사람들이 잡담할 때 혼자 대본만 읽고 영화 밖에선 목사님 같죠”
라고 하고 있었다.
그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치과의사였다. 그리고 영화배우가 됐다.
국회의원을 하기도 했다. 사업을 해서 엄청난 부(富)를 이룬 인물이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영화 ‘빨간 마후라’는 사격장면이 많은데 엔딩 때는 실제 실탄을 사용했어요.
총알이 머리를 스쳐 조종석 앞 유리를 뚫고 지나갔죠.
다른 전쟁영화에서도 전투장면을 실감나게 하기 위해서 강변 모래사장에서
진짜 폭탄을 터뜨리고 배우들을 뛰게 한 후 뒤에서 실탄사격을 가했죠.
그때 같이 뛰던 최무룡 황해 박노식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나만 남았네요.
저는 연기 중에 죽어도 좋다는 각오였어요. 연기 도중 죽는 것을 영예롭다고 믿었죠.”
목숨을 걸고 한 장면 한 장면을 찍은 그 영화를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보았었다.
그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저는 작심하고 철저히 연기공부를 했습니다.
육십년대는 나중에 성우의 녹음으로 대사를 삽입하던 때였어요.
굳이 대사를 외울 필요가 없었죠.
당시 겹치기 출연을 하던 배우들은 프롬프터를 보면서 연기를 했어요.
나는 외울 필요가 없는데도 대본을 철저히 암기했어요.
밤을 새워가며 외웠고 차로 이동할 때나 쉬는 시간에도 대사를 끼고 살았어요.
대사를 외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연기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배역 인물로 내가 바뀌면 그 인물의 감정이 내 몸에서 저절로 표현되어야 하고 우러나오는 게 연기입니다.
그게 배우의 직업적인 역량이죠.”
신상옥 감독은 그가 우는 장면에서 열 번 NG가 나면 다시 찍어도 열 번을 모두 진짜 운다고 했다.
그는 배우뿐만 아니라 사업가로도 성공했다.
나는 그가 젊어서부터 개런티를 받으면 쓰지 않고 땅을 산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대학시절 나는 그가 소유한 명보극장에서 영화를 봤었고 그가 하는 명보제과에서 데이트를 했었다.
그는 볼링장을 가지고 있었고 호텔도 운영하는 부자가 된 것 같았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그가 국회의원일 때 다른 국회의원한테서 나는 이런 말을 들었었다.
“당에서 국회의원들이 중국을 갔는데 말이야.
신영균 의원이 그중 제일 돈 많은 부자였는데 얼마나 인색한지 몰라.
밥을 한 끼 안 사는 거야.”
그에 대해 인터뷰 기사에는 신영균 씨의 이런 말이 있었다.
“구두쇠라는 말을 듣습니다만 아끼고 검소하지 않으면 절대로 재산이 모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써야 할 돈을 쓰지 않고 분수에 맞지 않는 처신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명보아트홀과 제주의 영화박물관을 사회에 기부했다.
기부 규모가 오백억이 넘는다. 그는 국회의원을 잠시 한 것에 대해 이런 답변을 하고 있었다.
“잠시 의사로 적을 두기도 했지만 일생을 영화배우로 살아왔습니다.
영화인 단체의 회장을 하다가 그 권익을 위해 정치 활동을 한 것이니
모두 영화배우라는 직업의 연장선상이라고 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노인과 바다’ 같은 노년의 정점을 찍을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각 분야에서 이런 분들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출처:http://www.chogabje.com/board/column/view.asp?C_IDX=90197&C_CC=BC